[바코 인사이드] 코트를 지배하는 작은 거인, 삼일상고 김도완

김영훈 기자 / 기사승인 : 2020-09-22 16: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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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인터뷰는 7월 25일에 진행됐으며, 바스켓코리아 웹 매거진 8월호에 게재됐습니다. (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독 링크)


농구 명문 삼일상고지만, 박정현과 송교창이 활약한 2017년 이후의 성적은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그런 삼일상고를 다시 끌어올리려는 한 소년이 있었다. 가드를 맡고 있는 3학년 김도완(180cm). 지난해 추계연맹전 우승으로 자신감을 얻은 그는 올해 성공적인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농구팬이었던 소년, 농구에 도전하다
‘아주라!’ 롯데 자이언츠 팬들이 외치는 구호이다. 이는 롯데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이 아니다. 파울볼이 날아왔을 때 아이들에게 공을 주라는 경상도 사투리다. 이러한 응원 구호 덕분에 공을 받은 어린이들은 오랜 시간, 이 기억을 간직하면서 야구를 사랑하게 된다. 그만큼 스포츠에 있어 어린이 팬들은 매우 소중한 존재이다.

농구에 이를 증명하는 사례가 있다. 삼일상고에 재학 중인 김도완의 이야기다. 유년 시절 안양에 살았던 그는 집 근처에 있는 KT&G(현 안양 KGC)의 경기장을 자주 찾았다. KBL을 보고 농구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 김도완은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직접 농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농구에 도전장을 내민 김도완은 의왕 PBC 박혜숙 농구교실에서 시작했다. 그는 이곳에서 남다른 실력을 자랑하며 열심히 농구를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이가 있었으니, 바로 벌말초의 홍사붕 코치. 그는 김도완에게 엘리트 무대로 넘어올 것을 제안했고, 농구선수가 꿈이었던 김도완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벌말초 3년 동안 농구를 배운 김도완은 중학교 무대로 넘어갔다. 그런데 그가 택한 곳은 안양의 호계중학교가 아닌 수원의 삼일중학교였다.

김도완은 “김도완 코치님(현 삼성생명 코치)이 삼일중에 계실 때였다. 직접 만나 뵙기 전에 코치님께서 김기윤(부산 KT) 선수를 가르치셨다는 기사를 봤다. 나도 한번 배워보고 싶어서 삼일중을 선택했다. 또, 그 때 삼일상고가 매우 잘할 시기였다. 고3 라인에 송교창, 박정현, 곽동기 등 잘하는 형들이 많았다. 멋있는 선배들을 보고 선택한 것도 있다”고 말했다.

김도완 코치는 김도완에 대해 “나와 이름이 똑같은 선수가 있다고 해서 유심히 지켜봤다. 처음 봤는데 농구를 잘 배워서 그런지 기본기가 좋더라. 농구에 대한 열정도 느껴졌다. 직접 만나 나를 아냐고 물어봤더니 안다고 하더라. 마침 삼일중에 선수도 부족했다. 그래서 같이 해보자고 하면서 데려왔다”고 떠올렸다.

이렇게 우연한 기회를 통해 동명이인인 두 사람은 사제 간으로 삼일중에서 뭉치게 되었다.

행복만 가득했던 김도완의 중학생 시절
아쉽게도 김도완과 김 코치의 인연은 1년 만에 끝났다. 김 코치가 삼성생명으로 떠났기 때문. 빈자리는 이한권 코치가 대체했다.

이 코치의 부임은 김도완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김도완은 “이 코치님은 항상 나를 편하게 해주셨다. 내 마음대로 플레이 할 수 있었다. 덕분에 기량도 많이 늘었고, 팀 성적도 좋았다”며 이 코치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삼일중은 2016년 마지막 2개 대회인 소년체전과 추계연맹전에서 전승 우승을 거뒀다. 상승세는 김도완이 중학교 3학년이던 2017년에도 이어졌다. 첫 대회인 춘계연맹전에서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다음 대회인 협회장기에서는 삼일중이 8강 탈락을 하며 이변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유가 있었다. 여준석(202cm, 용산고)이 전학을 갔기 때문. 전력의 절반이라고 여겼던 그의 이탈로 인해 더 이상 삼일중은 우승권 전력이라고 평가받지 못했다.

그러나 세간의 평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삼일중은 곧바로 열린 연맹회장기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소년체전에서도 3위를 했다. 좋은 성적의 중심에는 김도완이 있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다들 (여)준석이가 빠진 우리 팀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그런 평가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면서 “2개 대회에서 2위, 3위를 하니 그제야 우리를 주목하더라.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중학교 무대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고등학교로 진학한 김도완. 그러나 삼일상고의 전력은 좋은 편이 아니었고, 그는 2년 동안 잠시 스포트라이트와는 멀어져갔다.  

 



우승으로 자신감 회복, 다시 한번 정상으로
김도완이 다시 전국 대회 정상에 오른 것은 지난 2019년 9월. 추계연맹전에서 청주 신흥고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강팀들이 불참한 대회였지만, 다시 한번 우승의 맛을 본 김도완은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그는 “오랜만에 결승의 설렘과 긴장감을 느꼈다. 상대가 전국대회 첫 결승이라 정말 열심히 뛰었는데, 우리도 팀이 하나가 되어서 밀리지 않았다. 덕분에 우승을 차지했다. 추계연맹전은 강팀들이 참가하지 않음에도 매우 기뻤다”며 그때의 감정을 기억했다.

우승으로 인해 기대감을 안고 맞은 2020년. 삼일상고는 대만으로 전지훈련을 갔고, 국내에서는 전주, 부산, 인천 등을 돌아다니며 연습경기를 가졌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코로나 19로 인해 무산되었다.

김도완은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다. 그렇다고 계속 쉴 수 없어서 박찬성 선생님이 있는 프라임타임에 계속 운동했다. 언제 다시 대회가 시작될지 모르고, 난 고등학교 3학년이니까 말이다”고 말했다.

확실한 기간을 모르고 노력만 하던 김도완은 8월이 되어서야 자신의 기량을 뽐낼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시즌 첫 대회인 연맹회장기에 나서게 된 것이다.

그는 “대회가 3주밖에 남지 않아 몸 끌어올리고 있다”며 “나도 올해를 마치면 졸업은 하니, 이 멤버로 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승이라는 좋은 기억을 남기고 싶다”는 다부진 각오를 내놨다.

단신이지만 괜찮아!
김도완은 180cm로 농구 선수 중에서는 단신이다. 하지만 코트에서 보여주는 플레이만큼은 2m 신장을 가진 선수처럼 대담하다. 특히 빠른 발을 바탕으로 한 시원한 돌파와 과감한 공격 시도가 눈에 띈다.

김도완은 “한 때는 신장이 작아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작은 만큼 빠른 점을 살리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열심히 뛰면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또 다른 장점은 농구 열정이다. 중학교 때까지 슈팅이 좋지 못했던 김도완은 엄청난 노력 끝에 지금은 슛이 약점이라는 평가도 바꿔놨다. 그는 “슛폼도 고치고 시간만 있으면 계속 연습했다. 그러다 보니 슛이 점점 나아졌고, 이제는 약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회만 있으면 자신 있게 던질 것이다”며 슛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의 농구 열정을 알려주는 일화도 있다. 직접 사비를 들여 미국을 다녀오기도 했다. 김도완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의왕 PBC 박혜숙 선생님의 소개로 미국에 가서 조던 라우리를 만나고 왔다. 미국의 농구도 체험하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고 말했다.

끝으로 김도완에게 롤모델을 물어봤다. 그의 대답은 없다고 했다. 김도완은 “누구를 롤모델로 꼽기보다는 내가 남의 롤모델로 언급되는 선수가 되겠다”며 멋진 답변을 내놨다.




사진 = 엠반스 스튜디오, 이주한 포토그래퍼

바스켓코리아 / 김영훈 기자 kim95yh@baske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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