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한국 장신 가드의 미래, ‘188cm 가드’ 휘문중 김승우

김영훈 기자 / 기사승인 : 2020-09-17 16:5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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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인터뷰는 7월 25일에 진행됐으며, 바스켓코리아 웹 매거진 8월호에 게재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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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웨이, 그는 한국을 괴롭혔던 중국의 장신 가드이다. 2000년대까지 한국농구의 포인트가드는 대부분 180cm 전후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박찬희라는 190cm의 가드가 탄생했다.

이후 한국 농구에는 190cm 이상의 장신 가드 유망주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휘문중에도 한 명 존재한다. 15세의 나이에도 188cm의 신장을 자랑하며 가드를 맡고 있는 김승우가 그 주인공이다.

우선 자기소개 먼저 부탁합니다.
휘문중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는 김승우라고 합니다. 키는 188cm이고, 포지션은 가드입니다.

시간 순서대로 농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는데요.
제가 어렸을 때 의정부에 살았어요. 집 근처에 의정부 SK 유소년 클럽이 있었죠. 그곳에서 농구를 처음 시작했고, 재밌게 즐기고 있었어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를 통해 삼광초등학교 농구부 테스트를 보게 되었어요. 한 번의 테스트를 통해 합격했고, 농구를 시작했죠.

의정부에 사는데, 서울에 있는 삼광초에 테스트를 봤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아버지 직장이 삼광초 근처에 있었어요. 그리고 그때 KBS에서 ‘우리 동네 예체능’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는데 마침 삼광초가 나오는 거예요. 되게 멋있었죠. 그래서 저도 농구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전했던 결과는 어땠어요?
엘리트라고 해도 키에서 밀리지는 않았어요. 제가 동기들 중에 제일 컸거든요. 그런데 클럽과 수준이 다르더라고요. 특히나 저는 기본기와 전술 이해도도 부족해서 많이 혼났어요.

키가 가장 컸으니 초등학교 때는 센터를 봤겠네요.
네. 사실 저는 센터가 아니라 게임을 할 때 깍두기 같은 존재였어요(국어사전에 따르면 깍두기는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는 사람이나 그런 신세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단어이다). 키가 크니까 코트만 왕복하면서 리바운드만 잡았죠.

그럼 언제부터 잘했어요?
5학년 막판에 인지훈 코치님으로 바뀌었어요. 코치님이 저를 보시더니, 센터 보기는 너무 마르다고 외곽을 해보라고 하셨죠. 팀에 저보다 키 큰 형도 한 명 들어왔었죠. 센터를 봤을 때는 잘 몰랐는데, 외곽에서 하니 농구를 조금씩 알게 되었어요. 그때도 엄청 잘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전보다는 잘해졌죠.

대회 성적도 달라졌겠네요.
네. 5학년 때 윤덕주배를 나가서 조금 잘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신감이 많이 올라왔죠. 6학년 때도 서울시 대회는 모두 우승했어요. (전국 대회는요?) 그건 8강이 최고 성적이었어요(웃음).




삼광초에서 농구 입문과 기량 발전을 경험한 김승우는 중학교 무대로 넘어왔다. 그가 진학한 곳은 휘문중학교. 현재 연계 학교라는 개념이 약해진 지 오래되었으나, 용산중이 아닌 휘문중을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휘문중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아버지가 추천하셨어요. 마침 휘문중에 제가 4학년 때 같이 학교에 있었던 김선우(휘문고 2) 형이 있었어요. 제 롤모델이자 가장 좋아하는 형인데, 휘문중으로 간 뒤 같이 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죠. 그런데 갑자기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긴 거예요. 바로 좋다고 했죠.

휘문중 1학년 때 생활은 어땠나요?
농구에 있어서 굉장히 진지한 분위기라 적응하기 쉽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때는 제가 잘하는 줄 알았는데, 중학교에서는 매우 못하는 수준이었어요. 그래서 경기도 많이 못 뛰었습니다.

지루한 시간이었겠네요.
그렇죠. 대신 경기를 뛰지 않는 대신 연습을 많이 했어요. 하루도 운동을 쉬지 않았고, 남들 쉴 때 연습하고 그랬죠. 주로 스피드와 드리블 위주로 연습했어요. 줄넘기를 엄청 했습니다. 그렇게 노력하니 2학년 올라가서 경기를 뛸 수 있었죠.

중학교 대회 출전한 지 몇 달 안 되어서 좋은 성과를 얻었어요.
네. 2019년 5월 열린 협회장기 때 최우수상을 받았어요. (자세한 설명 부탁해요.) 그때 형들이 독감에 걸려서 제 컨디션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남은 인원들이 힘을 합쳐서 본선까지 갔고, 아팠던 선수들도 돌아오면서 좋은 결과를 얻었어요. 사실 잘하는 몇몇 팀이 대회를 안 나왔기도 했어요. 운이 좀 따랐죠.

결승에서 27점 10리바운드로 맹활약을 했어요.
전국대회 첫 결승이라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많이 했어요. 그날 슛이 잘 들어갔죠. 그래서 우승할 수 있었어요. 우승 때의 그 기분은 아직도 잊지 못해요.

우승 후 실력이 한층 올랐을 거 같은데요.
자신감이 생겼어요. 농구에 대한 열정도 배가 되었죠. 그런데 (최종훈) 코치님이 우승해서 그런지 더 강하게 잡아주셨습니다.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 고요. 덕분에 더 노력했던 거 같아요.

우승만으로도 2019년 한 해는 정말 기억나는 해일 거 같아요.
네. 우승한 것뿐만 아니라 경기도 많이 뛰었고요. 실력도 늘었죠. 키도 갑자기 10cm 이상 컸어요. 정말 좋았던 기억들이 가득했던 1년이었어요.

올해 휘문중의 전력을 좋게 평가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코로나로 인해 대회를 하지 못해 아쉽겠네요.
솔직히 저도 저희 팀이 세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회를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다른 팀들도 많이 올라온 거 같아요. 이제는 정말 어떤 팀이 강하다고 말하기 힘들어요. 한 경기를 하더라도 방심하지 말고 최대한 집중해야 우승할 수 있을 거예요.




팀과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고, 이번에는 김승우의 농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188cm면 중학교에서 작지 않은 키인데, 가드를 보고 있는 게 신기해요. 어떻게 가드가 된 거예요?
중학교 2학년 때 3학년 형들이 부상을 당해서 가드를 볼 사람이 저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코치님이 가르쳐주셨죠. 잠깐인 줄 알았는데, 형들이 돌아와도 가드를 봤어요.

가드라면 1번과 2번 중에 본인의 스타일은 어디에 더 가까워요?
현재는 2번을 맡고 있어요. 그런데 처음 가드를 시작할 때 1번을 봤거든요. 그래서 1번도 자신 있어요. 코치님이 맡겨만 주신다면요.

가드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지휘하는 게 재밌어요. 선수들의 움직임을 지시하고, 경기를 조율하는 게 다른 포지션에서는 할 수 없잖아요. 그게 매력이에요.

장신 가드면 수비에서 어려움도 있을 것 같아요.
아니요. 키가 커서 오히려 블록슛 같은 것에 편해요. 작은 선수들을 따라다니는 것도 자신 있어요. 작년에는 강성욱 선수(지난해 가드 포지션 랭킹 1위에 해당하는 유망주였다)를 막기도 했어요. 스피드가 약점이었는데, 잘 보완해서 이제는 괜찮아요.

슛은 어때요?
코치님이 슈팅은 ‘전국에 있는 또래 중에 네가 가장 좋다’고 하세요. 솔직히 제가 봐도 그런 거 같아요(웃음). 진짜 슈팅은 자신 있어요.

이렇듯 김승우는 모든 것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올해 김승우의 말을 증명하기는 매우 어렵다. 코로나로 인해 9월까지 대회가 열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당장의 상황에 신경 쓰기 보다는 먼 미래의 꿈만 바라보며 달리고 있다.

앞으로 마지막으로 목표가 있다면 말해주세요.
우선 연령별 대표 선수를 해보고 싶어요. 앞으로 진학하는 팀에서 우승도 많이 하고 싶고요. 현재 생각하고 있는 끝은 당연히 프로에 진출하는 겁니다.




사진 = 엠반스 스튜디오 이주한 포토그래퍼

바스켓코리아 / 김영훈 기자 kim95yh@baske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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