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스켓코리아=사가/김채윤 기자] KBL을 대표하던 철인 이재도(180cm, G)가 ‘마무리’라는 말을 꺼냈다.
팬들에게 스포츠 선수는 종종 시간이 멈춘 존재로 기억된다. 가장 빛나던 순간의 기억으로 각인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트 위의 모든 이에게도 시간은 공평하게 흐른다. 계절이 바뀌듯 나이를 먹고, 언젠가는 마지막 순간이 온다. 이재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재도에게 2025~2026시즌은 여러모로 탈이 많았다. 시즌을 앞두고 허리 수술을 받았고, 2014년 10월 11일부터 쌓아온 KBL 역대 2위(508경기)에 해당하는 연속 경기 출전 기록도 2라운드 경기 도중 당한 늑골 골절로 인해 멈췄다.
‘숫자로 설명할 수 있는 선수’였던 이재도이기에, 하락세도 숫자로 드러났다. 데뷔 이후 수년간 평균 20~30분을 소화하던 이재도는 지난 2025~2026 정규시즌 평균 출전 시간이 16분 42초까지 줄었고, 득점을 비롯한 여러 지표 역시 함께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소노와 이재도는 시즌 막판 KBL을 열광하게 한 드라마를 썼다. 시즌 초반 하위권을 전전하다 막판 리그 최다 연승으로 창단 첫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고, 6강에서 서울 SK를 3-0으로 셧아웃한 데 이어 4강에서는 정규리그 1위 LG마저 3-0으로 잡아내며 6연승으로 챔피언결정전 무대까지 밟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줄어든 출전 시간과 부상 속에서도 조용히 몸을 만들어온 이재도가 있었다. 특히 4강 플레이오프 창원 LG전에서는 세 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몰아치며 이른바 ‘이재도 시리즈’를 만들어냈다.

앞서 이야기했듯, 이재도는 508경기 연속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뒤로하고 낯선 자리에 섰다. 지난 시즌이 유독 힘들었다는 말에 그는 그간 쌓인 감정을 조심스레 꺼냈다.
이재도는 “주위에서 선후배들의 그런 상황을 듣고 지켜보기만 하다가 막상 내 일이 되니 진짜 쉽지 않더라”며 “그래도 나름 현명하게, 지혜롭게 잘 헤쳐 나간 게 아닌가 싶다”라고 돌아봤다.
이어 힘들었던 시간도 경험이 됐을 거 같다는 말에는 “베테랑과 고참 선수들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됐다. 내 안에 데이터로 잘 넣어놨다(웃음)”라며 분위기를 풀었다.
그렇다면 이재도가 처음으로 자신의 농구 인생에 ‘끝’이 있다는 걸 실감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는 담담하게, 그러나 신중하게 지난 시즌의 기억을 하나씩 꺼냈다.
이재도는 “작년에 허리 수술을 두 번 하고 복귀했을 때까지만 해도 사실 믿고 싶지 않았다. 느껴지긴 했지만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아직 난 괜찮아’하고 계속 생각했는데, 복귀하고 보니 예전 몸이 아니더라. 그러다 갈비뼈까지 다치고 나서 이제 정말 ‘쓸 만큼 썼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 감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고 하자, 이재도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이 시기를 “되게 서러운 일”이라고 표현했다.
“운동선수는 몸을 쓰는 직업이라 몸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갈비뼈를 다치고 쉬면서 ‘많이 뛰었지, 안 다치기도 했고, 출전 시간도 경기 수도 많은 편이었지’ 하며 쓸 만큼 썼나 싶은 생각에 살짝 슬퍼지더라”라고 털어놨다. 회복 이후에도 완전히 예전 감각을 되찾지 못했던 시기가 이어졌다고 했다.

이제 다시 오르막이 찾아오지 않겠냐는 말에 이재도는 오히려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지금 당장 은퇴하는 건 아니지만,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할 거다(웃음). 명예롭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게 다른 경우보다는 나은 것 같다”며 “기량이 부족해졌거나 무리해서 뛰다 다친 게 아니라 정말 자연재해 같은 부상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오래 살아남는 자가 승리하는 프로 세계에서 숱한 선수들이 빠르게 코트를 떠나는 동안 이재도는 자리를 지켜왔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그는 주저 없이 ‘인성과 인내’를 꼽았다.
이재도는 “젊을 때는 돈을 벌기 시작하면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아지면서 이상해지기 쉽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 자체는 정상이지만, 그걸 얼마나 잘 참고 얼마나 잘 판단하며 생활하느냐가 오래가고 안 가고를 가른다고 생각한다”며 “나는 원래 주목받으면서 프로에 온 케이스가 아니었고, 젊을 때 나만 아는 열등감도 있었지만 그런 걸 표현하지 않고 참아온 게 지금까지 남은 이유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커리어 전체를 돌아보며 “그때그때 안 좋거나 억울한 순간은 있었지만, 지나고 보면 항상 우상향하는 것 같다. 젊을 때 이런 부상이 왔다면 진작에 전전긍긍하다 끝났을 텐데, 지금 이 시점에 온 게 감사하다”며 “폭발력 있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올라왔다는 자부심이 있다. 숫자로 내 선수 생활이 표현되지 않나(웃음).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뿌듯하다. 아직 끝은 아니지만 남은 시간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 지난 시즌 준우승 드라마로 한껏 높아진 팬들의 기대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답변 또한 이재도 다운 답이었다.
그는 “원래 우승하려면 압박감은 이겨내야 하는 거고, 그런 것 없이는 성적이 안 나온다고 생각한다. 신경을 아예 안 쓰든지, 신경 쓸 거면 최대한 즐기든지 둘 중 하나를 확실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코트에서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는 걸 직시한 이재도가 이번 시즌 코트에서 어떤 모습으로 재도약 할지 기대가 모인다.
사진 = 김채윤 기자,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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