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2 NBA 역사 속 오늘] '80년대 슈퍼스타' 덴틀리와 잉글리쉬 데뷔!

Jason / 기사승인 : 2015-10-22 12:5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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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2 NBA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10월 22일(이하 한국시간) NBA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날은 80년대를 수놓은 올스타들이 나란히 데뷔한 날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The Teacher’ 에이드리언 덴틀리(포워드, 196cm, 94kg)와 ‘The Blade’ 알렉스 잉글리쉬(포워드, 201cm, 86kg)다. 덴틀리와 잉글리쉬는 지난 1976 드래프트를 통해 NBA에 데뷔했다. 덴틀리는 1라운드 6순위로 버팔로 브레이브스(현 클리퍼스)에 지명됐다. 잉글리쉬는 2라운드 6순위이자 전체 23순위로 밀워키 벅스에 호명됐다.

하지만 두 선수는 정작 다른 팀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영구결번의 영예까지 안았다. 덴틀리는 유타 재즈에서 8시즌을 소화했고, 6번의 올스타 모두 유타에서 선정됐다. 지난 1976 드래프트에서 배출된 올스타는 모두 5명. 이중 둘이 덴틀리와 잉글리쉬다. 게다가 두 선수는 같은 날에 데뷔했으며, 데뷔 첫 경기에서 마주했다. 또한 둘 모두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재즈의 전설이 된 선생님!

덴틀리는 지난 1976-1977 시즌 첫 경기에 출격했다. 덴틀리는 개막전에서 밀워키를 상대했다. 밀워키는 잉글리쉬가 속한 팀. 이 경기에서 덴틀리는 15점을 득점했다. 덴틀리의 활약이 팀의 승리에 큰 힘이 됐다. 버팔로는 이날 밀워키에 21점차 대승을 거뒀다. 유타는 이날 덴틀리를 포함한 7명의 선수들이 두 자리 수 득점을 올렸다. 잉글리쉬는 이날 4점을 올리는데 그쳤다.

덴틀리는 첫 시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덴틀리는 첫 시즌에 77경기에 나서 경기당 36.6분을 소화하며 20.3점 7.6리바운드 1.9어시스트를 기록했고, 신인상을 수상했다. 덴틀리는 한 시즌을 마친 뒤 인디애나 페이서스로 트레이드됐고, 한 시즌을 채 마치기 전에 LA 레이커스로 보내졌다. 덴틀리는 첫 3시즌 동안 3팀에서 뛰는 등 이적이 잦은 선수였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만큼 덴틀리에 대한 가치가 컸기 때문이다. 인디애나에서 덴틀리는 평균 26.5점을 득점하면서 승승장구했다. 9.4리바운드 2.8어시스트 2.1스틸을 곁들였다. 그러나 레이커스에서는 이전의 활약을 이어가지 못했다. 급기야 지난 1978-1979 시즌에는 평균 17.3점을 올리는데 그쳤다. 결국 레이커스는 스펜서 헤이우드를 받는 조건으로 유타에 덴틀리를 보냈다.

이후 덴틀리는 스타급 선수로 성장했다. 평균 득점을 꾸준히 끌어올렸고, 지난 1980-1981 시즌부터는 4시즌 연속 평균 30점 이상을 득점했다. 유타의 간판으로 올라섰다. 득점 1위만 2차례 차지하는 등 팀을 이끌었다. 지난 1983-1984 시즌부터는 3시즌 내리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지난 1984, 1985 플레이오프에서는 팀을 서부컨퍼런스 세미파이널까지 견인했다.

덴틀리는 레이커스에서 2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바 있다. 그러나 유타를 창단 첫 봄나들이로 이끌었다. 지난 1984년부터 유타는 덴틀리와 함께 꾸준히 봄소풍에 나섰다. 이후 유타는 지난 2002-2003 시즌까지 20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나섰다. 재즈 프랜차이즈의 플레이오프 첫 테이프를 덴틀 리가 끊은 셈이다.

지난 1984 플레이오프에서 덴틀 리가 보인 퍼포먼스는 엄청났다. 덴틀리는 11경기를 치르는 동안 평균 41.3분을 뛰며 32.2점 7.5리바운드 4.2어시스트를 올렸다. 비록 팀을 서부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이끌지는 못했지만, 덴틀리의 존재감만큼은 단연 으뜸이었다. 유타에서 덴틀 리가 갖는 영향력은 그만큼 대단했다. 덴틀리의 4번은 유타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너기츠의 전설이 된 득점원!

잉글리쉬도 덴틀리 못지않은 선수생활을 보냈다. 덴틀리의 올스타 선정 횟수는 6회다. 잉글리쉬는 8번이나 올스타전에 나섰다. 지난 1982-1983 시즌에는 득점 1위를 차지했다. 그는 덴버에서만 10시즌 이상을 보냈으며, 덴버에서만 올스타에 뽑혔다. 덴버의 역대 최고 선수를 거론할 때 어김없이 거론되는 선수가 바로 잉글리쉬다. 잉글리쉬는 지난 2014년 5월 13일에 미 국무부 특사로 내한한 바 있다.

밀워키에서 두 시즌을 뛴 잉글리쉬는 이내 인디애나로 트레이드됐다. 밀워키에서는 두 시즌 동안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그러나 인디애나에서는 평균 16점 8.1리바운드 3.3어시스트를 올리면서 반등에 성공했다. 잉글리쉬는 덴틀 리가 인디애나에서 레이커스로 트레이드된 이후에 인디애나 유니폼을 입게 된다. 두 선수 모두 인디애나 유니폼을 갖고 있다.

이후 잉글리쉬는 덴버에서 자신의 기량을 꽃피웠다. 지난 1979-1980 시즌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덴버로 보내진 그는 덴버에서 치른 24경기에서 평균 36.5분 동안 21.3점 9.4리바운드 3.4어시스트를 올렸다. 잉글리쉬는 덴버에 잘 녹아들었다. 하지만 덴버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 급기야 지난 1980-1981 시즌 중반에는 감독이 교체되는 홍역을 겪었다.

교체된 감독은 도니 월시 감독. 도니 월시는 지난 1979-1980 시즌부터 덴버의 지휘봉을 잡았다. 월시는 지난 2000년대 후반 뉴욕의 단장으로 부임하기도 했다. 월시는 저말 크로포드와 알 해링턴을 트레이드시켰고, 2010년 여름을 기점으로 샐러리캡 비우기에 착수했다. 그가 맺은 첫 대형계약은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와의 5년 1억 달러 계약이다. 또한 주축선수들을 여럿 내주는 조건으로 카멜로 앤써니도 트레이드해왔다. 그러나 그는 3년 만에 경질됐다.

덴버의 성적은 기대 이하였고, 덴버는 덕 모 감독을 선임하기에 이른다. 덴버는 모 감독이 사령탑에 앉은 이후 서부컨퍼런스의 강호로 우뚝 섰다. 모 감독이 지휘한 첫 풀시즌인 지난 1981-1982 시즌부터 덴버는 꾸준히 플레이오프에 나설 수 있었다. 덴버는 모 감독과 함께했던 9시즌 모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이후 덴버는 지난 2002-2003 시즌까지 단 2번 플레이오프에 오르는데 그쳤다.

모 감독이 이끄는 동안 덴버의 중심을 잡았던 선수가 바로 잉글리쉬다. 잉글리쉬는 덴버에서 10시즌 넘게 보내는 동안 마지막 한 시즌을 제외하고 평균 20점 이상을 득점했다. 지난 1981-1982 시즌부터는 8시즌 연속 평균 25점+ 4어시스트+를 올렸다. 덴버의 당당한 1옵션이었던 그는 모 감독의 지휘 아래 팀을 꾸준히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덴틀리와 달리 잉글리쉬는 꾸준히 플레이오프에 명함을 내밀었다. 그러나 잉글리쉬도 정작 우승반지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잉글리쉬가 이끄는 덴버는 지난 1985 플레이오프에서 서부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다. 당시 서부컨퍼런스 준결승에서 잉글리쉬는 덴틀리의 유타를 제압하며 컨퍼런스 파이널에 올라섰다.

당시 시즌은 마이클 조던이 데뷔한 시즌으로도 유명하다. 이때 덴버가 마주한 레이커스는 팻 라일리 감독(현 마이애미 사장)이 이끌었으며, 카림 압둘-자바와 매직 존슨 그리고 제임스 워디의 BIG3가 이끌던 활보하던 시기였다. 여기에 바이런 스캇(현 레이커스 감독), 마이클 쿠퍼, 커트 램비스, 밥 맥아두까지 포진하고 있었다.

결국 덴버는 레이커스를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덴버는 단 1경기를 따내는데 그쳤다. 덴틀리의 유타에 시리즈 스코어 4대 1로 승리를 거뒀지만, 레이커스에게 4대 1로 패하고 만 것. 잉글리쉬는 시리즈 평균 30.3점 6.5리바운드 4.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의 곁에 켈빈 냇이 있었지만 사실상 홀로 레이커스에 맞서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당시 잉글리쉬는 팀 득점의 절반이 넘는 55%를 책임졌다. 5차전에는 나서지 못했다.

잉글리쉬는 아쉽게 우승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후에도 잉글리쉬는 코트 위에서 변함없는 존재감을 뽐냈다. 하지만 덴버는 우승과 멀어졌다. 30대 중반에도 잉글리쉬는 꾸준한 득점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덴버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지난 1989-1990 시즌에는 80경기에 나서 평균 17.9점을 올리는데 그쳤다. 덴버는 잉글리쉬와 작별을 고했다.

덴버는 잉글리쉬와 재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잉글리쉬는 댈러스 매버릭스에 새둥지를 틀었다. 댈러스에서 그렇게 1시즌을 보낸 그는 코트와 작별을 고했다. 잉글리쉬는 댈러스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잉글리쉬는 덴틀리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전성기를 보낸 팀에서 영구결번까지 품었다. 그러나 정작 선수생활의 마무리는 다른 팀에서 했다. 잉글리쉬의 2번은 너기츠 프랜차이즈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진 = NBA L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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