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1월 14일(이하 한국시간) NBA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지난 2015년 이날에는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The Hitman’ 모리스 윌리엄스(가드, 185cm, 89.8kg)가 자신의 생애최다 득점을 퍼부은 날이다. 윌리엄스는 이날 양 팀에서 가장 많은 52점을 득점했고, 윌리엄스의 활약에 힘입어 미네소타는 인디애나에 페이서스에 110-101로 승리를 거뒀다. 무엇보다 이날 미네소타의 승리가 더욱 뜻 깊었던 점은 미네소타가 이날 승리로 15연패의 사슬을 끊어냈다는 점이다. 윌리엄스가 없었다면, 미네소타의 연패는 끊임없이 이어졌을 가능성도 있었다. 이날 팀 득점의 사실상 절반을 책임진 윌리엄스의 공이 그 정도로 컸다.
남다른 폭발력을 과시한 윌리엄스
윌리엄스는 이날 엄청난 슛컨디션을 자랑했다. 3점슛을 무려 6개나 터트리는 등 2점슛과 자유투까지 가리지 않고 엄청난 적중률을 과시했다. 이날 윌리엄스가 시도한 필드골은 33개. 이중 19개를 집어넣으면서 60%에 육박하는 필드골 성공률(.576)을 선보였다. 이 가운데 3점슛은 11개를 던져 6개를 폭발시켰다(.545). 2점슛은 22개를 던져 13개를 적중시켰다. 자유투도 9개 중 8개를 득점으로 연결시키면서 52점을 완성시켰다.
이날 윌리엄스는 비단 득점에 국한된 역할만 한 것도 아니다. 4리바운드 7어시스트까지 곁들이며 동료들의 득점까지 도왔다. 이날까지만 하더라도 윌리엄스의 득점은 지난 2014-2015 시즌 단일 경기에서 나온 가장 많은 득점이었다(이후 카이리 어빙이 55점과 57점을 넣기 전까지 시즌 최다 득점). 윌리엄스는 이날 다양한 공격루트를 선보이면서 인디애나의 림을 맹폭했다. 자신이 직접 만들어서 득점을 올리는가 하면 동료들을 활용한 받아먹는 득점까지 거리와 위치를 가리지 않았다.
윌리엄스의 52점은 미네소타 구단 역사상 1경기에서 특정 선수가 올린 가장 많은 득점이었다. 종전 기록은 케빈 러브(클리블랜드)와 코리 브루어(휴스턴)가 올린 51점. 윌리엄스는 1점 차이로 미네소타 역사에서 1경기 득점을 가장 많이 올린 선수가 됐다. 비록 미네소타에서는 단 1시즌을 뛰진 않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엔 충분했다. 가뜩이나 연이은 패배로 팀 분위기가 좋지 않았기에 이날 윌리엄스의 ‘대폭발’로 연패에서 탈출했다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인디애나를 상대로 50점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종전까지 6명에 불과했다. 윌리엄스가 이 대열에 합류하면서 웬만한 전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윌리엄스에 앞서 이를 달성한 선수는 존 윌리엄스(1978년), 조지 거빈(1980년), 래리 버드(1983년), 버너드 킹(1984년), 마이클 조던(1987년), 크리스 웨버(2001년)가 전부였다.
하지만 윌리엄스는 지난 시즌을 통째로 미네소타에서 보내지 못했다. 윌리엄스는 샬럿 호네츠로 트레이드됐다. 샬럿은 켐바 워커가 부상을 당하면서 전열에서 이탈했다. 시즌 중반에 중상을 당한 만큼 시즌 막판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샬럿은 벤치에 있는 선수들에게 주전 포인트가드를 맡겼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미네소타와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미네소타는 리빌딩에 돌입해 있는 만큼 윌리엄스를 보내기로 결심했다. 미네소타는 윌리엄스와 트로이 대니얼스를 샬럿으로 보냈다. 대신 게리 닐(워싱턴)과 2019 2라운드 티켓(from 마이애미)을 받았다. 윌리엄스는 1경기에 50점을 터트리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펼치고도 트레이드를 피하지 못했다. 샬럿도 정작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진 못했다.
윌리엄스와 캐벌리어스의 아주 큰 인연
윌리엄스는 지난 여름에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새둥지를 틀었다. 윌리엄스는 클리블랜드에서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 지난 2008-2009 시즌부터 약 2시즌 반을 클리블랜드에서 보냈다. 지난 2008-2009 시즌에는 르브론 제임스의 좌장역할을 도맡았다. 윌리엄스는 데뷔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올스타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윌리엄스는 가장 좋은 시즌을 보냈다. 81경기에 나선 그는 경기당 35분을 소화하며 평균 17.8점(.467 .436 .912) 3.4리바운드 4.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3점슛 성공률이 일품이었다. 이는 윌리엄스가 데뷔한 이후 가장 높은 3점슛 성공률이기도 하다. 제임스가 수비를 끌어 모은 덕을 톡톡히 봤다.
플레이오프에서도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당시 클리블랜드는 지난 2007년 이후 처음으로 동부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다. 그러나 클리블랜드는 올랜도 매직에 덜미를 잡히면서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다. 이듬해에도 윌리엄스는 팀의 2옵션으로 중심에 서 있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는 이번에도 플레이오프에서 좌절했다. 동부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보스턴 셀틱스를 만나 무릎을 꿇었다. 클리블랜드는 2000년대 후반 동부를 지배했던 보스턴과 올랜도에 맥을 추지 못했고, 결국 우승에 실패했다. 지난 2010년 여름에는 제임스가 떠났다.
윌리엄스는 제임스가 나간 이후에도 클리블랜드를 지켰다. 그러나 클리블랜드는 지난 2010-2011 시즌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윌리엄스를 트레이드하기로 결심했다. 클리블랜드는 윌리엄스와 자마리오 문을 LA 클리퍼스로 보냈다. 대신 배런 데이비스와 2011 드래프트 1라운드 티켓을 받았다. 클리블랜드는 트레이드 이후 데이비스를 방출했다. 클리블랜드로서는 대대적인 재건사업에 돌입할 뜻을 내비쳤다.
이는 확실한 효과가 되어 돌아왔다. 클리퍼스가 건넨 드래프트 티켓은 다른 순위도 아닌 1순위가 됐다. 클리블랜드는 이를 통해 카이리 어빙을 지명했다. 어빙은 현재 클리블랜드의 중심에 서 있는 선수. 더불어 제임스가 다시 클리블랜드로 돌아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선수다. 결국 윌리엄스의 유산으로 어빙이 지명됐고, 연쇄적으로 제임스가 (다시)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게 됐다. 그리고 윌리엄스는 클리블랜드에서 제임스, 어빙과 한솥밥을 먹고 있다. 과장 좀 보태서 윌리엄스의 유산으로 클리블랜드가 ‘원투펀치’를 구성할 수 있었다. 클리블랜드는 현재 동부컨퍼런스 1위를 질주하고 있다.
비록 윌리엄스는 일전에 클리블랜드에 있었을 때처럼의 기량은 아니다. 하지만 불과 지난 시즌에 1경기에서 52점을 폭발시켰을 정도로 정확환 외곽슛을 비롯한 녹슬지 않은 폭발력을 갖추고 있다. 지금은 어빙이 주전 포인트가드로 나서고 있지만, 윌리엄스가 벤치를 지키고 있어 클리블랜드의 백코트가 더욱 탄탄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연 윌리엄스는 이번에 제임스와 못다 이룬 팀의 우승에 일조할 수 있을까? 윌리엄스와 제임스 그리고 그가 도래하게 한 어빙이 클리블랜드를 첫 우승으로 이끌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 = NBA Mediacentral
[저작권자ⓒ 바스켓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BK포토화보] 2026 태백시장배 전국실업농구연맹전](/news/data/20260617/p1065540194818400_415_h2.jpg)
![[BK포토화보] 부산 KCC vs 고양 소노 챔피언결정전 4차전 경기모습](/news/data/20260511/p1065589134006878_578_h2.jpg)
![[BK포토화보] 부산 KCC vs 고양 소노 챔피언결정전 3차전 경기모습](/news/data/20260510/p1065541043822507_203_h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