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The Big Ticket’ 케빈 가넷(센터-포워드, 211cm, 114.8kg)이 끝내 코트를 떠났다. 가넷은 최근 미네소타와의 계약해지협상에 나섰다. 은퇴를 위해서였다. 지난 시즌에도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그는 불혹을 넘긴 만큼 이제는 농구공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가넷은 지난 여름에 미네소타와 2년 1,650만 달러의 계약을 체결했다. 적어도 다가오는 2016-2017 시즌을 끝으로 코트를 떠날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가넷은 끝내 정들었던 농구공을 내려놓기로 했다.
가넷의 여정은 실로 대단했다. 지난 1995년부터 시작된 그의 NBA 생활은 데뷔 때부터 화제였다. 이후 그는 미네소타를 대표하는 선수로 발돋움했다. 미네소타의 각종 누적 기록은 모두 그가 싹 다 갈아치웠다. 심지어 긴 시간 동안 동부 여행을 하고 왔음에도 미네소타에서 그가 남긴 행적들을 따라갈 이는 아무 것도 없었다. 미네소타를 떠나 보스턴 셀틱스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브루클린 네츠를 거쳐 다시 미네소타로 돌아오기까지 가넷은 우리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몸소 들려줬다.
브루클린을 거쳐 다시 미네소타로!
2013년 여름, 우승에 목만 말라하는 브루클린은 보스턴과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보스턴은 가넷과 피어스 그리고 제이슨 테리(밀워키)를 브루클린에 보냈다. 대신 2014, 2016, 2018 1라운드 티켓과 함께 2017년에 지명권을 교환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았다. 그 외 여러 선수들도 받았지만, 핵심은 1라운드 티켓이었다. 이후 보스턴은 브루클린 덕에 성적도 올리면서 좋은 신인을 수혈할 수 있는 지름길을 닦았다. 반면 브루클린은 신인선수들을 확보할 수 있는 통로를 내주면서, 하위권을 전전했다. 새로 영입한 선수들도 기대 이하였다. 나이도 많았고, 호흡도 원만하지 않았다. 트레이드 이후 양 팀의 모습은 천지차이다.
# 블록버스터 트레이드
네츠 get 폴 피어스, 케빈 가넷, 제이슨 테리
셀틱 get 키스 보건스, 마션 브룩스, 크리스 험프리스, 크리스 조셉, 제럴드 월러스, 2014-2016-2018 1라운드 티켓, 2017 1라운드 티켓 교환권리
[브루클린 기자회견] https://www.youtube.com/watch?v=I7pQxfJA5zc
당시 브루클린은 데런 윌리엄스(댈러스), 존슨(유타), 브룩 로페즈를 데리고 있었다. 2012년 여름에 존슨을 데려오면서 나름 3인방을 구축했다. 하지만 윌리엄스는 해마다 부상을 당하면서 예전과 같은 경기력을 잃었다. 엄청난 규모의 연장계약을 받은 직후 몸값을 하지 못하는 선수로 전락했다. 동시에 존슨의 잔여계약(당시 기준 4년)까지 떠안았다. 애틀랜타가 전력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6년 1억 2,300만 달러로 붙잡았던 존슨까지 포섭했다. 여기에 2013년 여름에 다수의 1라운드 티켓을 주고 피어스와 가넷까지 데려왔다. 외형은 우승후보 못지않았으나 막상 속사정을 보면, 피어스와 존슨, 가넷과 로페즈의 역할과 포지션이 중첩됐다.
제이슨 키드 감독(밀워키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브루클린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2라운드 진출에 만족해야 했다. 브루클린은 2라운드에서 제임스가 이끄는 마이애미를 대적할 상대가 아니었다. 가넷은 브루클린에서 한 시즌을 더 소화하던 도중 가넷에게 희소식이 당도했다. 미네소타와의 트레이드가 단행된 것. 미네소타의 플립 선더스 감독 겸 사장은 테디어스 영을 내주는 대신 가넷을 데려왔다. 선더스 감독은 가넷이 미네소타에서 뛸 당시 대부분을 감독으로 재직했던 인물. 선더스 감독은 가넷이 어린 선수들을 이끌어주길 바랐다. 많은 팬들도 가넷이 선수생활 막판에는 미네소타서 뛰길 바랐고, 그 현실이 이뤄졌다.
[복귀 첫 경기 소개] https://www.youtube.com/watch?v=riojqRjkkMo
[환영인사는 이렇게!] https://www.youtube.com/watch?v=6_tnQdHU7Vg
가넷이 오자마자 10년전 신나게 몸을 흔들던 팬도 나이가 들었다. 타겟센터(미네소타 홈)에 운집한 많은 관중들은 가넷의 첫 경기에서 그에게 숱한 환호를 보냈다. 그는 끝내 외면하다 음악에 몸을 맡기고 신나는 춤사위를 선보였다. 가넷도 전광판을 통해 이를 보고 팬에게 거수인사로 화답했다. 가넷은 비록 5경기를 뛴 이후 부상을 일찌감치 시즌을 접었지만, 미네소타가 케빈 (가넷)을 거쳐 또 다른 케빈 (러브)를 떠나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케빈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즌이었다. 선더스 사장은 오프시즌이 되자 가넷과 계약협상에 나섰다. 가넷은 계약기간이 만료될 때 은퇴를 시사하기도 했다.
선더스 사장은 가넷에게 2년 1,650만 달러의 계약을 안겼다. 프랜차이즈스타에 대한 예우임과 동시 선수 가넷이 지니는 역할과 위상에 대한 조처였다. 맥헤일 단장이 가넷과 장기계약을 맺을 당시 감독이었던 선더스 감독. 선더스 감독은 디트로이트 피스턴스와 워싱턴 위저즈에서 오랫동안 지휘봉을 잡은 이후 다시 미네소타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넷과 재회했다. 그리고 가넷에게 다년계약을 안겼다. 하지만 비보가 당도했다. 선더스 감독은 오프시즌 내내 호지킨 림프종으로 투병했고, 시즌에 맞춰 감독역할을 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던 찰나에 그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가넷은 모든 것을 다 잃은 마냥 침울해 했다. 가넷은 자신의 SNS에 “영원히 제 심장에..(Forever in my heart…)”라는 말을 남기여 고인을 애도했다.
가넷은 브루클린 시절부터 평균 득점이 한 자리 수로 내려왔다. 그간 숱하게 많은 득점을 책임지고 리바운드를 잡아낸 것도 모자라 어시스트, 스틸, 블록까지 두루 책임진 그는 어느덧 30대 후반이 됐다. 어릴 때부터 뛴 만큼 마일리지도 쌓일 데로 쌓였다. 보스턴에서 보낸 마지막 시즌(2012-2013)에 평균 14.2점을 올린 이후 가넷은 평균 득점은 이듬해 6.5점으로 크게 떨어졌다. 브루클린에 공격진이 많은 탓도 있었지만, 가넷이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경기력을 발휘할 수 없음에 대한 반증이기도 했다. 하물며 지난 시즌에는 38경기에 나서 평균 3.2점에 그쳤다. 누구보다 그 스스로가 이제 작별을 고할 때임을 인지하지 않았을까.
리그의 풍토를 바꾼 가넷
가넷은 고졸 신화를 쌓은 시초 격이라 할 수 있다. 이전에도 모지스 말론과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대학이 아닌 프로 진출을 일궈낸 선수들과 있다. 하지만 가넷이 데뷔한 이후를 시작으로 90년대 후반부터 고졸 선수들이 NBA 진출을 이어간 것을 감안하면 가넷이 고졸 선수들의 물꼬를 튼 셈이다. 브라이언트는 가넷이 NBA에 진출하기 이전에 스스로가 NBA에 곧바로 진출할 것이라 말해 왔지만, 실질적으로 최근에 뛰었던 선수들 중 가장 먼저 지명된 선수는 바로 가넷이다. 가넷 이후 브라이언트, 라샤드 루이스, 제임스, 하워드, 조쉬 스미스 등이 등장했고, 그 외 조나단 벤더를 필두로 실패한 사례들도 많았다.
동시에 가넷은 2007년 여름에 다시 한 번 NBA에 대격변을 예고했다. 보스턴으로 트레이드되면서 보스턴에서 BIG3를 구축하면서 리그의 판도는 뒤바뀌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프랜차이즈스타는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 큰 일이 있지 않고서는 팀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가넷은 달랐다. 가넷은 12시즌 동안 미네소타에 충분히 헌신했다.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끝내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끝내 가넷은 보스턴에서 우승을 거두면서 설움을 달랠 수 있었다.
가넷이 보스턴으로 둥지를 튼 이후 2010년에는 제임스가 마이애미로 둥지를 틀었다. 심지어 웨이드, 보쉬와 함께하면서 보스턴에 맞서기 위한 진영을 꾸렸다. 마이애미의 팻 라일리 사장의 운영까지 잘 버무려지면서 마이애미는 단번에 보스턴을 제압할 수 있는 팀이 됐다. 제임스가 이끄는 마이애미는 그 해 첫 플레이오프에서 곧바로 보스턴을 꺾었고, 이후에도 보스턴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우승으로 다가설 수 있었다.
더한 일은 이번 여름에 일어났다. 케빈 듀랜트(골든스테이트)마저 팀을 옮겼다. 흡사 제임스가 선례를 남긴 마냥 듀랜트도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를 떠나 최강팀에 들어갔다. 제임스는 듀랜트의 이적과 자신의 이적이 성격이 다르다고 이야기하지만, 대동소이하다. 제임스는 드래프트 동기들과 의기투합했고, 듀랜트는 말 그대로 갖춰진 팀(이전 시즌 73승)에 쏙 들어간 것이다. 듀랜트가 이번에 이적을 감행한 것도 다름 아닌 우승이다. 제임스가 첫 우승을 다른 곳에서 달성했고, 가넷 또한 그랬듯이 듀랜트 또한 팀을 떠나 자신의 선수생활을 이어가기로 했다. 듀랜트가 가넷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듀랜트가 제임스, 제임스가 가넷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07년이 팀을 옮긴 가넷의 나비효과가 2010년을 경유한 이후 2016년까지 오게 됐다. 가넷이 팀을 옮긴 나비효과는 실로 거대했다. 다가오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독보적인 우승후보로 손꼽히고 있으며, 이전 세 시즌 동안의 MVP를 모두 보유하게 됐다. 셀틱스의 BIG3, 히트의 BIG3를 거쳐 워리어스의 Fantastic4(혹은 5?)까지 오는 그 시발절음 가넷이 만든 셈이다. 90년대와 2000년대 중반까지 고졸 선수들의 NBA 진출의 선두주자였던, 공교롭게도 프랜차이즈를 떠나 다른 곳에서 막강한 전력을 구축해 우승을 일궈내는 일(절대 감동이 없다거나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까지 만들었다. 이처럼 가넷은 엄청난 대유행을 창시한 인물이다.
가넷하면 떠오르는 것들!
가넷하면 승부욕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경기 시작 전 림 아래에서 자신만의 주문을 외우며 유니폼 끈을 묶는 그는 이후 돌아서 가슴팍을 세차게 두드리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경기 준비에 나섰다. 보스턴에서 더 도드라진 모습은 가넷이 경기 전 어떤 자세로 임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다. 자신의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는 진짜 프로로서의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게 전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코트 위에서 모든 것을 책임지는 그지만, 동료가 코트에 넘어지면 가장 먼저 찾아가 손을 내민다. 뿐만 아니라 몸싸움이 격해져 시비가 붙었을 때도 그가 가장 전면에 나선다. 그러면서 동료를 두둔한다. 필요치 않은 충돌이 일어날 때 이를 말리는 이도 가만히 보면 가넷이었다.
동시에 가넷은 못 말리는 트래쉬토커였다. 그를 향해 존경을 마다하지 않았던 하워드(애틀랜타)와 조아킴 노아(뉴욕)는 어린 시절부터 가넷을 가장 닮고 싶은 선수이자 롤모델로 꼽아왔다. 하지만 이들이 각각 올랜도와 시카고에 몸담았을 당시 가넷과 자주 충돌했고, 이후 가넷에 대한 어떤 존경심도 표하지 않았다. 오히려 싫어졌다고. 이유인 즉슨 가넷이 지나칠 정도로 신경에 거슬리게 하는 말을 내뱉는다는 것이었다. 가넷이 상대를 도발하는 말을 많이 했고 하워드와 노아는 이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카멜로 앤써니(뉴욕)과 찰리 빌라누에바에게도 부적절한 언사로 보는 이들을 찌푸리게 했다. 로빈슨과의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2010 파이널 직후 로빈슨에 대노한 것은 익히 유명한 사례다. 그만큼 가넷은 승부의 세계에서 승리에 대한 열망을 어느 누구보다 강하게 표출한 선수였다.
다른 편이 되면 골치 아프고, 같은 편이 되면 정말 편한. 피어스도 가넷의 이와 같은 모습 때문에 그가 중상을 당한 이후에도 양복을 입고서라도 벤치를 지켜주길 바랐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벤치에서 누구보다 먼저 동료의 멋진 플레이에 환호하고, 박수치며 손을 번쩍 들어올린다. 작전시간에는 가장 먼저 선수들을 찾아간다. 이만하면 탁월한 대장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미네소타 시절에 누구보다 많이 져본 만큼 승부에 대한 욕구는 더욱 남달랐을 터. 이 모든 것이 보스턴에서 잘 묻어났다. 미네소타는 물론 보스턴에서도 경기장에서 가넷의 심기를 건드리는 이는 없었다. 가넷은 그만큼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집중했고, 코트 위에서 온 몸을 불살랐다.
가넷은 앨런과 1996년이 아닌 2006년에 다시 만났다. 이후 마이애미로 떠나면서 관계를 끊을 것처럼 으르렁댔다. 실제로 앨런이 처음으로 TD가든을 찾았을 때 가넷은 일어나 앨런에게 인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시했다. 하지만 가넷은 코트 위에서 다시 만난 앨런과 반갑게 인사했다. 많은 시간을 보낸 동료에 대한 진심은 반갑게 인사하고, 상대편이지만, 하이파이브를 하며 인정하고 예우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속정도 깊은 사람이 가넷이다. 리버스 감독(클리퍼스 감독 겸 사장)과의 의리도 여전하다. 가넷은 브루클린에 있을 당시 만약 트레이드 된다면, 클리퍼스를 중요한 행선지로 거론하기도 했다. 리버스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기 때문. 클리퍼스도 한 때 가넷을 영입하려 들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성사되진 않았다.
브라이언트와의 이야기도 꺼내보자. 브라이언트도 2000년대 중반, 레이커스에 트레이드를 요청한 적이 있다. 당시에 가넷이 브라이언트에게 전화를 했고, 자신의 레이커스행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브라이언트는 시카고로 갈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가넷과 브라이언트는 한솥밥을 먹지 못했다. 만약 두 선수가 같은 팀에서 뛰었다면, 이들 둘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 바짝 군기가 오른 이등병처럼 플레이하지 않았다면 크게 혼이 나지 않았을까? 하프타임 때 스마트폰을 만진다거나, 경기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상상은 여러분들에게 맡긴다.
가넷이 미네소타로 돌아왔을 때, 가장 긴장한 선수는 바로 잭 라빈이었다. 가넷의 새로운 라커가 라빈의 옆에 배정됐기 때문. 라빈도 적잖이 긴장됐을 터. 엄청난 대선배가 자신의 옆 사물함을 쓰는 것도 모자라 그 선수가 가넷이었기 때문. 우스갯소리로 글쓴이는 지난 시즌을 앞두고 ‘최상-최하 시나리오’에서 ‘가넷이 화를 낸다. 가넷이 집합을 자주시킨다. 가넷의 옆 라커를 쓰는 잭 라빈이 무서운 나머지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서술하기도 했다. 지난 여름에 선더스 감독이 고인이 됐을 때, 가넷은 누구보다 슬퍼했다. 그와 많은 시간 함께 한 지도자임과 동시 동반자를 잃은 것에 대해 크게 상심했다.
[레이커스가 마련한 시간] https://www.youtube.com/watch?v=MwyCxP5XF8k
가넷이 쌓은 엄청난 이정표!
가넷은 21시즌 동안 정규시즌에서 1,462경기에 나서 50,418분을 뛰며 26,071점 14,662리바운드 5,445어시스트 1,859스틸 2,037블록을 기록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143경기에서 5,283분 동안 2,601점 1,534리바운드 471어시스트 178스틸 186블록을 올렸다. NBA 역사상 정규시즌에서 25,000점 10,000리바운드 5,000어시스트를 기록한 선수는 단 셋뿐이다. 카림 압둘-자바, 칼 말론 그리고 가넷이 전부다. 그는 여태껏 15회 올스타에 선정됐다. 가넷보다 많이 올스타로 뽑힌 선수는 압둘-자바와 브라이언트 밖에 없으며, 올-NBA팀(9회), 올-디펜시브팀(12회)에 이름을 올렸으며, 역대 9회 올-디펜시브 퍼스트팀에 선정된 것은 역대 최고 기록과 동률이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는 4년 연속 리바운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한 구단에서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누적기록에서 모두 1위에 올라 있는 선수는 마이클 조던(시카고)과 가넷(미네소타)가 전부다. 여기에 가넷은 스틸과 블록 부문에서도 1위에 올라 있다. 조던은 누적 스틸에서도 시카고 누적 기록(1위)을 갖고 있다. 하지만 블록 부문은 아티스 길모어에 이어 2위에 위치하고 있다(가드인데도 2위라는 점..). 즉,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 전 부문에 걸쳐 구단 기록(1위)을 갖고 있는 선수는 가넷이 유일하다. 동시에 가넷은 출장경기수, 출장시간 부문에서도 1위에 올라 있다. 한 구단에서 이처럼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선수는 가넷이 유일무이하다.
이는 팀버울브스 프랜차이즈가 오래되지 않은 탓도 크다. 그러나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 정도로 미네소타에서 가넷이 끼친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는 점이다. 미네소타는 지난 시즌까지 28시즌을 보냈다. 이중 가넷과 함께한 시즌이 14시즌으로 구단 역사의 절반에 해당한다. 만약 가넷이 보스턴과 브루클린으로 이어지는 동부 여행을 보내지 않았다면, 미네소타의 각종 누적기록은 실로 어마어마하게 쌓였을 것으로 점쳐진다.
그는 미네소타에서 영구결번은 확실하며 심지어 보스턴에서 영구결번을 부여받을 수도 있다. 근래에 뛴 선수들 중 복수의 구단에서 영구결번을 받은 선수는 없다. 가넷의 등번호 21번(미네소타)과 5번(보스턴)에서 공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보스턴에서 단 6시즌 밖에 뛰지 않았지만, 그가 뛰는 동안 보스턴이 긴 암흑기를 이겨내고 다시 일어섰다는 점과 동시에 팀에 우승을 안겼다. 당장 우승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팀을 이끌었고, 보스턴만의 문화를 구축한 점 또한 돋보인다. 보스턴은 가넷을 브루클린으로 트레이드한 이후 그가 처음으로 보스턴을 방문하자 TD가든에 운집한 보스턴팬들은 그에게도 피어스 못지않은 박수갈채를 선사했다. 근래에 뛴 선수들 중 복수의 구단에서 환호를 진심어린 환호를 받는 이는 가넷만이 갖고 있는 유일하면서 독보적인 이력이다.
[이적 후 미네소타 첫 방문] https://www.youtube.com/watch?v=hm3D4wKe8fY
[이적 후 보스턴 첫 방문] https://www.youtube.com/watch?v=1oNJU-SX57M
가넷은 정규시즌 MVP(2003-2004)와 올스타전 MVP(2003)를 수상했지만 아쉽게도 파이널 MVP는 추가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MVP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올 해의 수비수’에 선정되며 대표적인 공수 겸장으로 자리매김했다. NBA 역사상 정규시즌 MVP와 올 해의 수비수를 동시에 수상한 선수들은 단 넷이 전부. 조던, 데이비드 로빈슨, 하킬 올라주원 그리고 가넷이다. 가넷을 끝으로 MVP와 수비수상을 동시에 품은 선수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케빈 가넷. 그가 코트를 떠났다.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으며,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진정한 장인정신을 갖추고 있는 그. 승부욕의 화신이기도 했던 그를 이제 코트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 만하다. 던컨처럼 수차례 우승을 하며 진정한 지배자가 되진 못했지만, 그는 던컨과는 다른 방식으로 팀의 중심이었고, 문화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그의 발자취는 곧 리그의 큰 유행이 됐고, 급기야 판도까지 바꿔놓았다. 그가 왜 ‘The Big Ticket’이라 불리는지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코트 위에서 빛났고,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에 대한 가치를 아는 선수였다. 경기 시작 전 코트엠블럼에 입을 맞추고, 수비를 위해 자세를 한껏 낮추며 끝까지 승부의 세계에 자신의 의지를 고취시켜온 그. 등장할 때 손을 높이 치켜들고 그 주위로 선수를 모았던 가넷.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내며 포효했던 그가 걸었던 21시즌에 대해 모든 것을 다해 진정으로 박수를 보낸다.
사진 = NBA Mediacent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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