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별 리뷰] 전주 KCC 이지스, ‘기대’와 ‘실망’만 가득했던 시즌

sportsguy / 기사승인 : 2015-03-06 19:3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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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2 전주 KCC 허재 감독

[바스켓코리아 = 김우석 기자] 시즌 전 평가는 조심스러운 ‘우승후보’였다.

주인공은 전주 KCC 이지스. 5개의 챔피언 반지를 거머쥔 KCC는 KBL 19년 역사를 대표하는 팀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번 시즌 아쉽게 9위에 머무르며 체면을 구겼다. 오프 시즌 김민구의 전열 이탈을 시작으로 부상과 부조화가 팀을 맴돌았고, 결과로 최하위에서 한 계단 위에 머무는 아쉬움을 맛봐야 했던 것이다.

김민구의 이탈, FA를 통해 야심차게 영입한 김태술의 부진, 그리고 하승진 사건과 부상으로 인한 결장 등 연이은 악재가 터졌고, 허재 감독까지 퇴진하는 등 사건으로 점철되었던, 아쉬움 가득했던 KCC의 한 시즌이었다.

KCC의 최종 성적은 12승 42패. 2012-13시즌 경험했던 13승 41패보다 승리가 한 게임 모자란 성적으로 9위에 머물렀다. 10위를 기록한 서울 삼성(11승 43패)에게 겨우 한 게임을 앞서며 최하위를 모면했다. 기록에서도 아쉬운 성적은 잘 나타나 있다. 70.6점이라는 평균 득점은 전체 9위에, 하승진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리바운드도 평균 35.6개로 5위에 머물렀다. 어시스트 숫자는 12.6개로 순위표 최하단에 머물렀다. 또, 스틸 7위(6.8개), 블록슛 7위(2.4개), 2점슛 성공율 9위(47.37%), 3점슛 성공율 8위(31.31%)에 머무는 등 어떤 지표도 5위를 넘어선 숫자가 없을 정도다.

김민구

▲ 김태술의 ‘영입’, 김민구의 ‘사건’

오프 시즌 KCC는 야심찬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안양 KGC인삼공사 소속의 국가대표 포인트 가드 김태술을 FA를 통해 영입했고, 토종 에이스 역할을 하던 슛팅 가드 강병현과 미래가 기대되었던 장민국을 KGC로 보내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KBL 역사에 남을 만한 트레이드였다.

일각에서는 ‘기우는 트레이드’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KCC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구비 브라이언트’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 슛팅 가드 김민구가 존재했기 때문. 김민구는 2013년 필리핀에서 열렸던 아시아선수권 대회에 국가대표로 참가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대학생 신분으로 국가대표에 발탁된 김민구는 그저 ‘한국 농구의 미래’라는 기대 정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민구는 예선전을 통해 득점포를 조율했고, 4강전에서 만난 필리핀 전에서 대활약하며 스타 탄생을 알렸다. 2013년 8월 10일 필리핀 몰 오브 아레나에서 펼쳐진 필리핀과 4강전에서 김민구는 무려 23점(3점슛 6개)을 쓸어 담았다. 당시 김민구 활약이 없었다면 대표팀은 대패를 경험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A 대표팀으로 국제 대회 첫 출전에서 베스트 파이브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다.

당시 활약을 통해 대한민국 남자농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매김한 김민구는 2014년 신인 드래프트 2순위로 KCC에 입단했고, 기대에 부응하며 KCC의 부동의 슛팅 가드로 자리 잡았다. 평균 14.1점, 5.1리바운드, 4.6어시스트라는 놀라운 기록과 함께.

이런 김민구 존재로 KCC는 강병현과 장민국을 한 꺼번에 트레이드하는 모험 아닌 모험을 단행할 수 있었고, 6번째 우승을 위한 퍼즐을 맞춰갔다. 하지만 김민구는 거기까지였다. 2014년 6월 7일 오전, 진천 대표팀에서 소집 훈련 후 외박을 나왔던 김민구는 선수 생명에 지장이 생길 정도의 큰 교통 사고를 당하며 선수 생활 및 시즌 아웃이라는 비보를 팀과 팬들에게 알렸다. 안타까운 순간이었고, KCC에 시작된 첫 번째 시련이었다.
20150116 전주 KCC 김태술

▲ AG 금메달, 그리고 ‘부진한’ 김태술

김민구 사건이 있었지만, KCC는 하승진이 오랜 군 생활을 끝내고 팀으로 복귀했고, 울산 모비스 양동근과 함께 KBL 최고 포인트 가드 중 한 명인 김태술의 존재로 조심스레 ‘우승후보’로 거론되었다. 외국인 선수 중 수준급 스코어러로 평가받는 타일러 윌커슨이 존재했고, 신인 드래프트로 선발한 고려대 출신 김지후 역시 3점슛에는 일가견이 있는 선수였다는 이유가 존재했다. 김지후는 앞 순위 선발이 가능했던 ‘다이나믹’ 허웅(원주 동부)을 버리고 야심차게 선발한 카드였다.

초반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리그 시작 후 5경기에서 2승 3패로 순조롭게 출발한 KCC는 이후 5경기에서 1승 4패로 부진했다. 슬럼프의 시작이었고, 시즌 중반을 넘어서 10연패까지 경험하며 점점 순위표 하단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부진의 출발은 김태술이었다. 김태술은 하승진을 중심으로 한 세트 오펜스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다. KGC 시절 김태술은 박찬희와 이정현, 그리고 양희종과 오세근이라는 업템포 바스켓이 가능한 멤버와 너무 긴 시간 동안 호흡을 맞춰봤다는 이유가 존재했다. 김태술은 앞에 언급한 라인업으로 2011-12 시즌 당시 정규리그 최다승 신기록(44승 10패)을 세웠던 원주 동부를 넘어서 챔피언 트로피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빠른 농구에 익숙했던 김태술은 KCC의 세트 오펜스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다. 오프 시즌 국가대표에 합류해 9월에 있었던 아시안 게임에 참여해야 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존재했다. 김태술은 자신의 부진에 대해 “아시안 게임 참가로 인해 팀 훈련을 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적응이 되어 있던 스타일과 달라 적응에 애를 먹었다”라고 고충을 토로했을 정도다.

그렇게 오프 시즌 김민구의 전열 이탈 이후 기대했던 김태술마저 부진했던 KCC는 시즌 출발 이후 계속 내리막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20150102 전주 KCC 하승진

▲ ‘부상과 사건’ 하승진, 충격적인 ‘농구 대통령’ 허재의 사퇴

계속해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KCC에 부상이라는 악재는 당연히 존재했다. 김태술의 잔 부상을 시작으로 선수들이 하나 둘씩 부상을 이유로 전열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부상의 화룡 정점을 찍은 건 ‘KCC의 기둥’ 하승진이었다.

11월 중순 하승진은 구단과 팬들에게 부상 소식을 알렸다. KCC가 걸었던 마지막 희망이 지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하승진은 한달 가까운 시간 동안 코트를 비웠다. 그 기간 동안 KCC는 박경상과 정민수 등이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부상’이라는 키워드가 완전히 KCC를 뒤엎는 시간이었다.

한 달이 지났을까? 하승진은 서울 삼성 전을 통해 코트에 복귀했다. 하지만 4쿼터 중반 ‘부상과 사건’이 한꺼번에 발생했다. 상대 외국인 선수인 리오 라이온스를 수비하는 과정에서 하승진은 코뼈를 강타당했고, 피를 철철 흘리며 코트를 벗어나는 도중 한 관중의 비아냥에 ‘욱’하고 말았다. 사건은 온라인 등을 통해 일파만파로 퍼졌다. 선수가 관중에게 ‘도발’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 하승진의 상황은 ‘변명’이 되기에 충분했고, 곧 잠잠해졌다. 그러나 KCC는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을 지나야 했다.

이후 KCC는 분위기를 추스리는 듯 했다. 연패를 끊었고, 선수단에 ‘해보자’라는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그러나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연패를 끊은 이후 아쉬운 패배를 거듭하던 시즌 후반, 지난 9년 간 KCC를 지켰던 ‘농구대통령’ 허재 감독이 자진사퇴를 알렸다. 농구계와 팬들은 충격에 빠졌다.

시즌 종료를 한달 즘 남겨두었던 2월 초, KCC는 ‘허재 감독 사퇴’라는 제목의 보도 자료를 돌렸다.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모든 언론에서 일제히 기사를 쏟아냈다. 허재 감독이 사퇴를 할 것이라는 관측은 있었지만, 구단과 관계상 설득력이 거의 없던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허재 감독은 사퇴를 했고, 특유의 카리마스 넘치는 웃음을 남기고 지난 40년 동안 숨가쁘게 달려왔던 농구 인생에 휴식을 주는 결단을 세상에 알렸다. 이후 KCC는 추승균 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선임하며 빠르게 분위기를 수습하려 했다.

하지만 남은 10경기에서 단 1승에 그치면서 KCC는 시즌 최저승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과 함께 2014-15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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