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N.com』의 마크 스타인 기자에 따르면, 메리언이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고 전했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서 한 시즌을 소화한 메리언은 이미 시즌 중반에 유니폼을 벗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메리언은 지난 1999 드래프트를 통해 NBA에 데뷔했다. 피닉스 선즈에 9순위로 호명됐고, 피닉스에서만 8시즌이 넘는 시간을 뛰었다. 피닉스의 프랜차이즈스타나 다름없었으며, 지난 2004년 여름에 스티브 내쉬가 피닉스에 입단하면서 메리언은 큰 날개를 달개 됐다.
지난 2002 드래프트를 통해 팀에 합류한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와 함께 2000년대 중반 피닉스의 전성시기를 이끌었으며, 4회나 올스타에 선정됐을 정도로 서부컨퍼런스를 대표하는 포워드로 자리매김했다. 본래의 포지션은 스몰포워드지만, 내쉬가 들어온 이후에는 줄곧 파워포워드 포지션을 소화, ‘20-10’을 기록한 적이 있을 정도로 코트 위에서의 영향력이 대단했다.
하지만 피닉스에서의 전성기를 뒤로 하고 메리언은 트레이드를 피하지 못했다. 당시 메리언의 트레이드를 단행한 인물은 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감독인 스티브 커다. 커는 당시 피닉스의 단장이었으며, 제리 콜란젤로 단장이 팀을 떠난 이후 변화를 모색했다. 이에 메리언을 마이애미 히트에 내주고, 샤킬 오닐을 영입하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메리언은 이후 마이애미와 토론토 랩터스에서 뛰었으며, 이후 댈러스 매버릭스에 새둥지를 틀었다. 댈러스에서 덕 노비츠키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때로는 노비츠키와 함께 때로는 노비츠키의 백업으로 역할을 다했다. 가드부터 포워드까지 두루 수비할 수 있는 능력은 전성기 시절부터 메리언이 내세울 수 있는 대표적인 장점이었다.
이와 같은 장점을 바탕으로 댈러스에서는 주로 상대 득점원들을 수비해왔으며, 결국 지난 2010-2011 시즌에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하는 감격을 누렸다. 메리언은 피닉스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제이슨 키드와 함께 챔피언의 영예를 안았다. 이후에도 메리언은 꾸준한 모습을 보였지만, 정작 팀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
지난 2014년 여름에도 댈러스에 잔류하고 싶은 의사를 강력하게 드러냈지만, 댈러스는 챈들러 파슨스와 알 파룩 아미누를 더했고, 메리언의 설자리는 없어지게 됐다. 이 때 클리블랜드의 데이비드 그리핀 단장이 손을 내밀었고, 메리언은 클리블랜드에서 마지막 우승 도전에 나섰다. 메리언은 클리블랜드에서 한 때 슈팅가드로 나서기도 했을 정도로 역할을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시즌이 진행되고, 트레이드를 통해 전력보강에 성공한 이후 메리언의 출장시간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블랫 감독은 메리언을 거의 내세우지 않았고, 메리언은 플레이오프에 오르고도 많은 시간을 뛰지 못했다. 심지어 파이널에서도 메리언이 코트 위에 있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메리언은 개인통산 두 번째 파이널에 올랐다. 하지만 메리언 본인은 정작 뛰지 못했고 팀은 공교롭게도 커 감독이 이끄는 골든스테이트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아쉽게 클리블랜드는 동부컨퍼런스 챔피언에 만족해야 했고, 메리언은 은퇴를 결정했다. 메리언은 코트와의 작별을 고했다. 그러나 그를 기억하는 팬들은 여전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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