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7 NBA 역사 속 오늘] '독일의 전설' 데틀레프 슈렘프 데뷔!

Jason / 기사승인 : 2015-10-27 11: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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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2 NBA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10월 27일(이하 한국시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지난 1962년에는 ‘The Big Dipper' 윌트 체임벌린(센터, 216cm, 125kg)이 (사뿐하게) 50점을 득점한 날이다. 체임벌린은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현 골든스테이트) 소속으로 디트로이트 피스턴스와 마주했고, 이날 양 팀에서 가장 많은 50점을 득점했다. 이날 경기는 많은 득점이 나온 경기였고, 연장전으로 향했다. 체임벌린의 활약 덕에 이날 샌프란시스코는 디트로이트에 132-131로 승리를 거뒀다.

이어 지난 1985년에는 ‘독일의 전설’ 데틀레프 슈렘프(포워드, 206cm, 107kg)가 데뷔한 날이다. 슈렘프는 지난 1985 드래프트를 통해 NBA에 데뷔했다. 당시 1순위는 뉴욕 닉스의 것이었다. 뉴욕은 패트릭 유잉을 지명했다. 이 때는 많은 스타들이 데뷔했다. 크리스 멀린(골든스테이트), 찰스 오클리(클리블랜드), 칼 말론(유타)과 조 듀마스(디트로이트)가 지명된 드래프트였다. 명예의 전당 헌액자만 다수를 배출했다.

슈렘프는 덕 노비츠키에 앞서 독일 출신으로 NBA를 수놓은 선수였다. 공교롭게도 슈렘프는 현재 노비츠키의 팀인 댈러스에 지명됐다. 슈렘프는 1라운드 8순위로 댈러스의 부름을 받았다. 당시 지명권은 원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것이었다. 댈러스는 지난 1980-1981 시즌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트레이드를 통해 1라운드 티켓을 얻었고, 슈렘프를 데려올 수 있었다.

댈러스에서 데뷔한 그는 이후 인디애나 페이서스, 시애틀 슈퍼소닉스(현 오클라호마시티)와 포틀랜드 트레이블레이저스를 거쳤다. 탄탄한 내구성을 자랑했던 그는 지난 2000-2001 시즌까지 코트를 누볐다. 스몰포워드와 파워포워드를 넘나들었고, 한 팀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해 마무리하진 않았지만, 각기 다른 네 팀에서도 오랜 시간 뛰면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그만큼 쓰임새가 요긴했다는 뜻이다.

댈러스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후 트레이드를 통해 인디애나에 새둥지를 틀었다. 인디애나에서 자신의 기량을 꽃 피운 그는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 발돋움했다. 지난 1993년에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올스타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이후 슈렘프는 지난 1995, 1997년에도 올스타에 뽑히면서 올스타 포워드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1990-1991 시즌과 1991-1992 시즌 들어서는 2회 연속 올해의 식스맨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1995년에는 NBA 서드팀에 뽑혔다.

슈렘프는 지난 1996년에 처음으로 파이널 무대를 밟았다. 당시 시애틀에는 게리 페이튼과 션 켐프가 주축인 팀이었다. 켐프와 페이튼 그리고 슈렘프 외에도 허지 호킨스와 샘 퍼킨스까지 우승전력으로 손색이 없는 팀이었다. 서부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존 스탁턴과 칼 말론의 유타 재즈를 물리치고 서부컨퍼런스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파이널에서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에 가로 막혀 우승에 실패했다.

1996년 이전에도 슈렘프는 플레이오프에 나섰다. 그러나 주로 1라운드에서 탈락하기 일쑤였다. 데뷔 시즌과 3년차 시즌에 1라운드를 뚫어낸 바 있지만, 이 두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1라운드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후 긴 가뭄을 끊어내고 1996년에 우승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조던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이후 슈렘프는 시애틀에서 꾸준히 서부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 올랐지만 우승과는 연을 맺지 못했다.

결국 슈렘프는 시애틀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지난 1998-1999 시즌에 플레이오프에 나서지 못했다. 슈렘프는 시애틀과의 계약이 만료됐고, 포틀랜드에 새둥지를 틀었다. 당시 포틀랜드에는 라쉬드 월러스와 스카티 피펜을 중심으로 스티브 스미스와 데이먼 스타더마이어가 있었다. 슈렘프와 함께 유럽 출신이었던 아비다스 사보니스가 포진하고 있었다. 그 밖에도 번지 웰스와 브라이언 그랜트 그리고 저메인 오닐까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당시 포틀랜드는 유력한 우승후보였다. 포틀랜드는 서부컨퍼런스 파이널에 올랐다. 상대는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이 LA 레이커스였다. 그러나 포틀랜드는 간발의 차로 레이커스를 넘어서지 못했다. 포틀랜드는 레이커스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다. 포틀랜드는 7차전에서 89-84로 주저앉았다. 슈렘프는 뚜렷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숱한 경험을 두루 갖춘 만큼 노장으로서 팀에 힘을 실었다.

결국 그는 지난 2000-2001 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지난 1983년부터 1985년까지는 서독 대표팀으로 국제대회에 나섰다. 유로바스켓 1983과 유로바스켓 1985에 나섰고, 지난 1984년에는 올림픽에도 출전했다. 당시 유로바스켓은 12개국이 참가했고, 6팀씩 2개조로 나눠 본선을 펼쳤다. 결선 토너먼트에는 각 조 2위까지 오를 수 있었다. 독일은 유로바스켓 1983에서 B조 3위에 머물렀다. 조 2위인 네덜란드와 동률이었지만, 네덜란드에 패했기 때문에 아쉽게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지난 1985년 대회부터는 토너먼트에 오르는 팀이 기존 4개국에서 8개국으로 늘어났다. 서독은 첫 경기에서 네덜란드에 설욕하면서 기분 좋게 출발했다. 서독은 본선에서 4승 1패로 조 2위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 패하면서 조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8강에서는 스페인과 마주했다. 하지만 스페인을 넘어서지 못했고 대회를 마감해야 했다. 84년에 열렸던 올림픽에서도 서독은 8강에 진출했지만, 8강에서 미국을 상대했다.

사진 = NBA L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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