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2월 23일(이하 한국시간) NBA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보통 2월 하순이면 트레이드가 활발하게 이뤄질 시기다. 시즌마다 대동소이하겠지만, 트레이드 데드라인이 2월 말에 있기 때문. 이는 지난 2000-2001 시즌에도 마찬가지.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여러 팀들이 전력 보강이나 향후 설계를 위해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이는 15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산사나이의 필라델피아 입성!
이 때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가 애틀랜타 호크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The Mountain' 디켐베 무톰보(센터, 218cm, 118kg)를 영입했다. 필라델피아는 애틀랜타로부터 디켐베 무톰보와 로션 맥러드를 데려왔다. 반대로 필라델피아는 애틀랜타에 토니 쿠코치, 나지 모하메드, 디오 라틀리프를 보냈다. 2대 3 트레이드가 전격 타결되면서 필라델피아는 전력보강에 성공했다.
당시 필라델피아는 'The Answer' 앨런 아이버슨이 있었다. 당시 아이버슨은 필라델피아를 이끄는 에이스였다. 71경기에 나서 경기당 42분을 소화하며 평균 31.1점(.420 .320 .814) 3.8리바운드 4.6어시스트 2.5스틸을 기록했다. 아이버슨 외에도 에릭 스노우, 조지 린치, 애런 맥키 등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 외 NCAA 코네티컷 허스키스의 감독은 케빈 올리와 로드니 뷰포드와 같은 선수들도 있었다. 라자 벨이도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다. 무엇보다 이들을 이끄는 수장이 래리 브라운 감독이었다. 당시 필라델피아는 아이버슨을 중심으로 동부컨퍼런스를 휘어잡고 있었다. 브라운 감독의 지도력이 빛을 발휘하면서 동부의 강자로 부상했다.
필라델피아의 전반기 성적은 41승 14패였다. 당시 대서양지구 1위였던 필라델피아는 2위인 올랜도 매직보다 13승을 더 거두고 있었다. 중부지구 1위인 밀워키 벅스(32승 20패)보다도 월등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지금 3개의 지역대가 포진하고 있는 것과 달리 2개의 지역대가 자리하고 있었지만, 컨퍼런스 1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이런 필라델피아도 골밑 전력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라틀리프가 있었지만 세기 면에서는 많이 모자랐다. 결국 필라델피아는 애틀랜타에 3명의 선수를 건네는 대신 무톰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당시 무톰보는 30대 중반의 백전노장이었지만 여전히 동부의 대표 센터로 손색이 없었다.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동부를 주름잡기에 충분했다.
무톰보는 지난 2000-2001 시즌 애틀랜타에서 49경기에 나서 평균 35분 동안 9.1점 14.1리바운드 2.8블락을 기록하고 있었다. 필라델피아로서도 무톰보에 군침을 흘리는 것이 당연했다. 무톰보의 영입은 대성공이었다. 무톰보는 필라델피아에서도 골밑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수비에서의 존재가 단연 빛났다.
필라델피아에서의 데뷔전도 무난하게 치렀다. 디트로이트 피스턴스와 원정경기에서 합류한 그는 36분을 뛰며 17점 13리바운드 5블락을 곁들이며 팀이 승전보를 울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아이버슨은 40분을 뛰며 양 팀 최다인 40점에다 10리바운드 4어시스트로 경기를 지배했다. 무톰보가 수비에서 큰 기여를 하면서 필라델피아도 나아지기 시작했다.
디트로이트를 잡은 이후 샬럿 호네츠와 밀워키 벅스에 내리 패했지만 이후 6연승을 질주하면서 상승세를 뽐냈다. 6연승 이후 방심한 탓인지 서부원정 고비를 넘어서지 못하면서 내리 5연패 했다. 이전까지 필라델피아는 시즌 중 한 번도 3연패를 당하지 않았지만,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남은 13경기에서 8승 5패를 거두면서 무난하게 시즌을 마쳤다.
당시 동부 판도는?
정규시즌이 끝나면서 동부에서는 총 세 팀이 50승 이상을 기록했다. 필라델피아가 전반기에만 41승을 거두면서 승승장구했지만, 정작 후반기 성적은 좋지 않았따. 무톰보를 데려온 이후였기에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성적이었다. 하지만 필라델피아는 56승 26패로 밀워키를 따돌리고 탑시드를 차지했다. 필라델피아 뒤로 밀워키와 마이애미 히트가 뒤따랐다.
# 2000-2001 시즌 동부컨퍼런스 순위
1. 56승 26패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2. 52승 30패 밀워키 벅스
3. 50승 32패 마이애미 히트
4. 48승 34패 뉴욕 닉스
5. 47승 35패 토론토 랩터스
6. 46승 36패 샬럿 호네츠
7. 43승 39패 올랜도 매직
8. 41승 41패 인디애나 페이서스
필라델피아는 1번시드를 거머쥐면서 플레이오프에 오른 팀들 중 가장 성적이 좋지 않은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마주했다. 인디애나는 지난 1999-2000 시즌 동부를 제패하고 파이널에 진출했다. 비록 파이널에서는 LA 레이커스에 무릎을 꿇었다. 레지 밀러가 30대 중반이 됐고, 제일린 로즈와 저메인 오닐이 있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었다.
필라델피아는 인디애나와의 1차전에서 1점차 석패를 당했다. 당시에는 5전 3선승제였기에 1차전의 결과는 더욱 중요했다. 게다가 79-78로 무릎을 꿇은 것. 이후 절치부심했을까 필라델피아는 2차전에서 116점을 퍼부으며 필라델피아 18점차 대승을 거뒀따. 2차전을 잡아낸 필라델피아는 이후 내리 3연승을 거뒀다.
그러나 인디애나를 따돌리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3차전에서 5점차로 승리했지만 4차전에서도 박빙의 양상이 펼쳐졌다. 필라델피아는 4차전에서 가까스로 인디애나에 88-85로 승리를 거두면서 동부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 오를 수 있었다. 밀러를 위시로 한 인디애나의 근성은 대단했다.
이후 필라델피아는 빈스 카터의 토론토 랩터스와 마주했다. 토론토는 1라운드에서 뉴욕을 맞아 시리즈 승리를 거뒀다. 이 시리즈는 아이버슨과 카터의 쇼다운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토론토가 1차전과 3차전을 가져가면서 우위에 섰다. 필라델피아는 4차전에서 진땀승을 거뒀고 5차전에서 슈팅 호조 속에 121-88로 대승을 거뒀다.
필라델피아가 5차전을 잡으면서 시리즈 리드를 잡았다. 1차전에서 단 3점차로 패한 것은 충분히 희석됐다. 그러나 토론토는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다. 6차전에서 필라델피아가 흔들렸다. 주득점원인 아이버슨은 24개의 슛을 시도해 단 6개를 집어넣는데 그쳤다. 25%의 성공률로 20점밖에 책임지지 못하면서 필라델피아가 대패를 당했다.
필라델피아는 마지막에 웃을 수 있었다. 노스캐럴라이나 대학을 나온 카터가 졸업식에 참석하기로 한 것. 이는 카터에게 두고두고 남을 후회로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프로 선수가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이해하긴 더욱 힘들다. 카터는 많은 시간 동안 이동을 해야했다. 카터는 필라델피아에 도착했다.
하지만 결과는 천지차이였다. 공교롭게도 카터는 이날 슛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좋을 리가 없었다. 장시간 이동으로 몸이 지치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카터는 이날 20점 7리바운드 9어시스트 3스틸을 기록했다. 득점이 아쉬웠다. 아이버슨이 여전히 좋지 않은 가운데 21점을 보태는데 그친 점을 감안하면 토론토가 컨퍼런스 파이널에 오를 수도 있었다.
결국 주인공은 토론토가 아닌 필라델피아였다. 카터가 아닌 아이버슨이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게 됐다. 7차전까지 가는 혈전을 치렀고, 최종전인 7차전에서 1점차 승부가 나왔다. 아이버슨은 이날 풀타임 뛰면서 21점 4리바운드 16어시스트를 올렸다. 자신의 슛감이 양호하진 않은 점을 틈타 동료들의 득점을 도왔다.
무톰보는 10점 1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특히나 공격리바운드를 무려 9개나 잡아내는 기염을 토해냈다. 이후 무톰보가 골밑에서 기대 이상의 경기력을 선보였다. 1, 2라운드에서 무톰보는 평균 10.8점 13.3리바운드를 기록했지만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평균 16.6점 15.6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이전보다 확실히 나아진 모습을 보인 것.
무톰보가 가운데를 지키는 와중에 아이버슨은 여전히 공격에 나섰다. 밀워키에는 레이 앨런을 필두로 샘 커셀과 글렌 로빈슨으로 이어지는 삼각편대가 위력을 과시했다. 조지 칼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당시 밀워키는 공격농구로 동부를 호령했다. 필라델피아와 밀워키의 시리즈도 7차전까지 치렀을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됐다.
결국 승자는 필라델피아였다. 7차전에서 밀워키는 BIG3가 20점 이상씩 득점하면서 팀 득점의 2/3 이상을 합작했다. 그러나 나머지 선수들의 지원이 부족했다. 반면 필라델피아는 무톰보가 47분 동안 23점 19리바운드 7블락을 기록하며 골밑을 휘어잡았고, 애런 맥키가 46분을 뛰며 10점 6리바운드 13어시스트 4스틸을 고루 보탰다.
그러는 사이 아이버슨도 44분 동안 밀워키의 림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아이버슨은 이날도 양 팀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렸다. 아이버슨은 아이버슨이 홀로 44점을 책임지는 괴력을 발휘했다. 결국 필라델피아가 아이버슨과 무톰보를 내세워 강적이면서 난적인 밀워키를 제압할 수 있었다.
필라델피아는 그렇게 파이널에 올랐다. 당대 최고의 가드인 아이버슨은 라운드를 거듭하면서 동부의 내로라하는 가드들을 상대로 도장 깨기에 나섰다. 밀러를 시작으로 카터와 앨런까지. 그도 모자라 파이널에서는 드래프트 동기인 코비 브라이언트와 마주해야 했다. 아이버슨으로서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LA 레이커스에는 샤킬 오닐이 있었다.
파이널에 나섰던 무톰보 그리고
필라델피아도 레이커스를 상대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당시 레이커스는 역사상 처음으로 파이널까지 오르는데 단 1패도 당하지 않았다. 서부컨퍼런스 전체를 싹쓸어버렸다(모든 시리즈 스윕). 레이커스가 파이널 진출을 확정짓는 순간 우승은 이미 정해진 것처럼 평가받았다. 아이버슨도, 무톰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무톰보는 파이널 시리즈에서 5경기 동안 평균 16.8점 12.2리바운드 2.2블락을 곁들였다. 그러나 문제는 수비였다. 오닐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오닐은 백다운으로 드리블을 치며 림으로 다가오면 막을 방도가 없었다. 무톰보가 여전히 리그 최고의 수비수였지만 오닐에게는 시리즈 평균 33점을 내줬다.
지난 2001 파이널에서 오닐은 경기당 45분을 뛰며 33점 15.8리바운드 4.8어시스트 3.4블락을 기록했다. 브라이언트도 46.8분을 누비면서 평균 24.6점 7.8리바운드 5.8어시스트 1.4스틸 1.4블락을 두루 더했다. 필라델피아도 이들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아이버슨의 활약으로 시리즈 첫 경기를 잡았지만, 내리 4연패를 당했다.
# 2001 파이널 주요선수 기록
샤크 5경기 평균 45.0분 33.0점 15.8리바운드 4.8어시스트 3.4블락
코비 5경기 평균 46.8분 24.6점 7.8리바운드 5.8어시스트 1.4스틸 1.4블락
앤서 5경기 평균 47.4분 35.6점 5.6리바운드 3.8어시스트 1.8스틸
무톰보는 아쉽게 처음으로 접한 파이널에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후 무톰보는 뉴저지 네츠에서 한 번 더 파이널에 오르지만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상대로는 역부족이었다. 플레이오프에서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던 점도 발목을 잡았다. 이후 무톰보는 휴스턴에서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야오 밍과 함께 우승을 노렸지만, 휴스턴은 정작 1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했다.
무톰보는 지난 1999-2000 시즌과 2000-2001 시즌에 걸쳐 2회 연속 리바운드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지난 2000-2001 시즌에는 생애 처음으로 올-NBA 세컨드팀에 이름을 올렸으며, 이듬해 서드팀에도 자리를 잡으면서 노익장을 과시했다. 이밖에도 디펜시브팀에 6번이나 선정됐으며 블락 1위도 3번이나 차지했다.
그가 애틀랜타에서 달았던 55번은 현재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센터임에도 불구하고 42세까지 선수생활을 지속하는 등 꾸준한 몸관리를 바탕으로 팀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됐다. 은퇴 이후에는 조국인 콩고민주공화국의 어린이들을 위해 사회공헌활동에 매진하고 있으며, 그의 이름을 딴 병원이 설립되어 있다.
사진 = Wikipedia.org Cap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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