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살면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선택과 마주하곤 한다. 원만한 선택을 해도 환경이 뒷받쳐주지 않거나 결과가 나빠질 수도 있고, 최악의 선택을 해놓고도 갑작스런 변화로 천운을 거머쥐기는 이도 있다. 어떤 이는 순간의 선택으로 모든 이미지를 송두리째 날려버리는가 하면, 최상의 선택으로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선택하면 떠오르는 이가 있다.바로 ‘Melo’ 카멜로 앤써니(포워드, 203cm, 106.6kg). 앤써니는 지난 2003 드래프트를 통해 NBA에 진출한 이후 줄곧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덴버 너기츠에서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이어간 그는 자신의 고향인 뉴욕에서 선수생활 후반기를 보내고 있다.
남부럽지 않은 기량과 스타성을 갖춘 그도 NBA에서는 아직 우승은 고사하고 파이널 진출도 일궈내지 못했다.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 드웨인 웨이드(시카고), 크리스 보쉬(마이애미)가 모두 우승 경험을 갖추고 있는 가운데 앤써니는 아직도 우승 근처에 다가서지 못했다. 덴버에 있을 당시 서부컨퍼런스 파이널을 밟아 본 것이 유일한 경험이다. 제임스와 웨이드가 각각 3회씩 우승을 차지한 가운데 입단 당시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앤써니는 어느덧 이력 경쟁에서 이들에게 한참 뒤처져 있다.
이들이 NBA에 갓 데뷔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와 같은 결과가 벌어질 것이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비록 신인상을 타지 못했지만, 제임스와 함께 공동 신인상을 타도 이상하지 않은 첫 시즌을 보냈다. 역대 공동으로 신인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어렵지 않은 예상이다. 아쉽게도 앤써니는 신인상을 품지 못했다. 문제는 이후다. 앤써니는 제임스보다 먼저 플레이오프 맛을 봤다. 그러나 이후 둘의 격차는 너무나도 크게 벌어졌다. 제임스와 웨이드가 자신만의 여정을 쌓은 사이 앤써니는 뒷전으로 밀렸다.
뉴욕은 그간 하위권을 전전했다. 동부컨퍼런스 대서양지구에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 브루클린 네츠가 있었음에도 뉴욕의 성적은 보잘 것 없었다. 장기계약을 품은 앤써니도 팀을 끌어올리기엔 부족했다. 지난 2015 올스타전을 뛴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 그도 잔부상에 시달린 탓에 좋은 경기력을 꾸준히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뉴욕이 하위권에 머무르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제임스와 웨이드가 각자의 소속팀으로 돌아간 이후 동부의 판도에 균열이 일었지만, 앤써니는 이 틈에 들어갈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앤써니의 선수생활은 꼬일 대로 꼬여 있다. 자신이 직접 내린 결정도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상황도 존재했다. 안타깝게도 앤써니의 결단은 늘 구단의 성적과 어긋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일까? 앤써니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아주 간단하게 살펴봤다.
비운의 2003 드래프트!
2002-2003 NCAA에서 단연 돋보인 선수는 앤써니였다. 시라큐스 오렌지에서 한 시즌을 뛴 그는 전국에서 이미 알아주는 최고 유망주였다. 대학에서 1년을 보낸 그는 곧바로 NBA에 진출한다. 마침 고등학교를 마친 제임스도 대학이 아닌 프로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기로 결심했다. 이미 고교시절부터 유명했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제임스와 앤써니가 동시에 NBA 드래프트를 신청했다.
제임스와 앤써니는 상위지명이 유력한 선수였다. 각종 모의지명에서 제임스와 앤써니가 나란히 이름을 채웠다. 1순위 지명권을 가진 팀이 제임스를 데려가는 것은 당연했다. 로터리픽 추첨결과 1순위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갖게 됐다. 이후 디트로이트 피스턴스, 덴버 너기츠가 차례로 2순위와 3순위 티켓을 갖게 됐다. 이윽고 다가온 2003 드래프트, 클리블랜드는 지체하지 않고 제임스를 지명했다. 오하이오주 애크런 출신인 그는 자신의 연고지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뒤이어 디트로이트의 선택에 많은 이들이 주목했다. 앤써니가 유력했다. 하지만 디트로이트는 앤써니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웨이드나 보쉬도 아니었다. 디트로이트는 예상 밖 지명을 한 것. 디트로이트는 다르코 밀리시치를 호명했다. 당시 래리 브라운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었던 디트로이트는 밀리시치의 장래성에 기대를 걸었다. 릭 칼라일 감독(댈러스)이 팀을 도약시켰고, 이후 래리 브라운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디트로이트는 당장의 전력감보다는 유망주를 택한 것이다.
이윽고 덴버가 앤써니를 불렀다. 앤써니는 덴버에 지명되면서 서부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덴버는 앤써니를 확실한 팀의 기수로 삼았다. 지난 2003-2004 시즌 여러 경기들 중 클리블랜드와 덴버의 첫 맞대결은 여러모로 많은 관심을 불러 모았다. 제임스와 앤써니의 첫 대결에 많은 팬들의 시선이 모였다. 결과는 앤써니의 승리. 제임스와의 두 차례 맞대결에서 모두 웃었다. 덴버의 전력이 클리블랜드보다 더 좋았다.
덴버는 플레이오프에도 진출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비록 1라운드에서 케빈 가넷, 라트렐 스프리웰, 샘 커셀이 이끄는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 4대 1로 패했지만, 앤써니는 데뷔시즌부터 플레이오프에 오르면서 엘리트코스를 밟아나갔다. 신인상은 제임스에게 뺏겼지만, 첫 시즌부터 큰 경기 경험을 하면서 향후 기대하게 만들었다. 덴버가 좀 더 안정된 팀으로 자리를 잡을 것으로 여겨졌다. 반면 당시 클리블랜드의 전력은 형편없었다.
2004 플레이오프에서 마지막까지 웃은 팀은 앤써니에에 참교육을 선사한 가넷과 스프리웰의 미네소타가 아니었다. 미네소타는 서부컨퍼런스에서 1위자리를 꿰차며 우승가능성을 높였다. 1라운드에서 덴버를 손쉽게 제압했다. 서부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는 크리스 웨버와 페이아 스토야코비치가 이끄는 새크라멘토 킹스를 맞아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다. 아직도 명승부로 회자되는 시리즈에서 미네소타가 승전보를 울렸다.
미네소타는 서부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가 이끄는 LA 레이커스와 마주했다. 레이커스는 지난 2004년 여름에 칼 말론과 게리 페이튼을 영입하며 유력한 우승후보로 평가받았다. 서부 우승은 레이커스의 몫이었다. 하지만 레이커스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파이널에서 브라운 감독이 이끄는 디트로이트가 레이커스를 5차전 만에 잡아냈다. 디트로이트가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디트로이트는 지난 2003 드래프트에서 앤써니를 외면한 팀. 디트로이트에는 테이션 프린스가 버티고있었다. 프린스는 플레이오프에 내내 상대 주득점원을 잘 막았다. 브라이언트도 프린스의 긴팔을 피해가지 못했다. 결과론적이지만, 앤써니가 디트로이트에 지명됐다면 어땠을까. 천시 빌럽스-리처드 해밀턴-라쉬드 월러스-벤 월러스가 포진한 가운데 앤써니가 들어갔다면, 앤써니도 데뷔시즌에 우승반지를 끼는 천운을 마련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물며 디트로이트가 2004년을 시작으로 무려 6년 연속 동부 결승에 진출한 것을 감안할 때, 결과는 더욱 극명하게 갈린다.
당시 동부도 디트로이트를 견제할만한 마땅한 팀이 없었다. 가넷이 보스턴 셀틱스로 트레이드된 이후에도 디트로이트는 굳건했다. 적어도 앤써니와 같은 탁월한 득점력을 지니고 있는 선수가 있었다면, 디트로이트가 좀 더 우승에 도전해 볼 수 있는 여력을 가졌을 것으로 짐작될 정도다. 디트로이트는 이듬해에도 동부를 제패하고 파이널에 올랐다. 팀 던컨이 이끄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7차전 접전 끝에 무릎을 꿇었다. 해당 시리즈도 명시리즈로 기억에 남아 있다. 만약 디트로이트가 앤써니를 지명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수도 있다.
앨런 아이버슨, 천시 빌럽스와의 만남!
드래프트에서 앤써니는 팀의 선택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덴버의 간판으로 떠오르면서 앤써니도 구단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덴버는 지난 2006-2007 시즌 초반에 필라델피아와 트레이드를 단행한다. 덴버는 현역선수 2명과 향후 1라운드 티켓 2장을 건네는 조건으로 앨런 아이버슨을 영입했다. 덴버는 아이버슨을 데려오면서 전력증강을 도모했다. 덴버는 앤써니와 아이버슨으로 이어지는 엄청난 화력을 지닌 원투펀치를 구성했다. 덴버는 아이버슨을 데려오는 조건으로 안드레 밀러를 포기해야 했다. 안정적인 경기운영이 돋보인 그였지만 트레이드를 피하지 못했다.
# 앨런 아이버슨 트레이드
덴버너기츠 get 앨런 아이버슨, 아이반 맥파린
필라델피아 get 안드레 밀러, 조 스미스, 2007 1라운드 티켓 2장
- 추후 데이퀀 쿡, 패트리 코포넨 지명
앤써니와 아이버슨이 이끄는 덴버는 신명나는 농구를 펼쳤다. 공격력만큼은 단연 최고였다. 앤써니도 경험이 많은 아이버슨에게 때로는 기댈 수 있었다. 앤써니와 아이버슨은 동시에 올스타에 선정됐다. 봄나들이에도 나섰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아이버슨은 여전히 수비에서 적잖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앤써니의 책임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서부에 속한 팀들의 면면이 만만치 않았다. 덴버가 플레이오프에서 힘을 쓰지도 못했다. 앤써니는 아이버슨과 함께 플레이오프에 나섰지만, 모두 1라운드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2008-2009 시즌 초반, 덴버발 트레이드 소식이 또 나왔다. 덴버는 아이버슨 대신 빌럽스를 택했다. 디트로이트도 변화를 모색했고, 양 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덴버는 아이버슨을 보낸 대신 빌럽스와 안토니오 맥다이스를 받았다(맥다이스는 덴버와의 계약해지 후 다시 디트로이트로 향했다. 이후 트레이드된 선수가 원소속팀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1달 이상 시간이 필요한 규정이 신설됐다). 덴버는 빌럽스를 통해 공수 짜임새를 더했다. 덴버는 빌럽스 영입과 함께 승승장구했고, 24년 만에 컨퍼런스 파이널에 오를 수 있었다.
# 천시 빌럽스 트레이드
덴버너기츠 get 천시 빌럽스, 안토니오 맥다이스, 칙 샘
디트로이트 get 앨런 아이버슨
- 트레이드 후, 맥다이스는 다시 디트로이트행
덴버는 브라이언트와 파우 가솔의 레이커스에 속수무책이었다. 당시 레이커스에는 브라이언트와 가솔 외에 라마 오덤, (멀쩡할 때의) 앤드류 바이넘, 트레버 아리자(휴스턴)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덴버가 맞서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앤써니는 결국 결승 진출을 목전에 두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후 빌럽스와 함께 좋은 호흡을 과시했지만, 서부의 높은 벽을 넘어서기에 덴버의 전력상 한계는 명확했다. 애석하게도 이후 덴버와 앤써니는 3라운드 문턱에도 다가서지 못했다.
아쉬운 덴버와의 연장계약
신인계약 마지막 해를 앞두고는 보통 각 팀에 중요한 선수들은 연장계약을 맺는다. 보통 1라운더들이 4년 계약을 맺고, 4년차 시즌에 앞서 연장계약을 체결한다. 앤써니도 마찬가지. 앤써니를 포함한 2003 드래프트를 통해 NBA에 진출한 선수들은 지난 2006-2007 시즌을 앞두고 연장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11월 1일(이하 한국시간)이 마감시한이다. 앤써니도 당연히 연장계약을 맺었다. 제임스와 웨이드 그리고 보쉬도 연장계약 대열에 당연히 합류했다. 앤써니(당시 덴버), 제임스, 웨이드(당시 마이애미), 보쉬(당시 토론토) 모두 팀을 대표하는 선수들인 만큼 구단들은 곧바로 연장계약을 맺어 이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하지만 앤써니와의 계약내용만 달랐다. 제임스, 웨이드, 보쉬가 4년 연장계약을 맺은데 반해 앤써니만 5년짜리 계약을 체결한 것. 네 선수 모두 계약 마지막 해를 앞두고 선수옵션을 집어넣었지만, 앤써니는 위의 선수들에 비해 1년 뒤에 이적시장에 나올 수 있었다. 앤써니만 5년 계약을 맺은 만큼 덴버가 그만큼 앤써니를 대우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제임스와 웨이드 그리고 보쉬는 연장계약 3년이 끝난 지난 2010년 여름에 비제한적 자유계약선수가 됐다.
지난 2010년 여름은 올 해와 버금갈 정도의 역대 최고의 이적시장이 열린 해다. 제임스, 웨이드, 보쉬 외에도 조 존슨(당시 애틀랜타), 덕 노비츠키(댈러스),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당시 피닉스)까지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모두 이적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이들 중 단연 화두는 제임스의 거취였다. 존슨과 노비츠키가 잔류를 택했고, 스타더마이어가 뉴욕으로 이적했다. 지난 2010년 7월 9일에 웨이드와 보쉬가 마이애미에 안착했고, 하루 뒤에 제임스가 ‘The Decision’이라는 방송을 통해 마이애미로 이적했다. 이미 BIG3를 갖춘 보스턴에 대항하기 위한 제임스의 결정이었다. 제임스는 웨이드, 보쉬와 한솥밥을 먹게 됐다. 이후 마이애미는 두 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이들이 마이애미에서 규합하는 동안 앤써니는 덴버에 머물러 있었다. 아직 잔여계약이 남았기 때문이다. 연장계약 마지막 해인 2011년 여름에야 이적시장에 나올 수 있었다. BIG3가 만들어진 이후에야 앤써니는 움직일 수 있었다. 시즌 내내 앤써니의 행보를 두고 설왕설래가 많았다. 하지만 앤써니는 이미 늦었다. 만약, 앤써니도 4년 연장계약을 체결했다면, 적어도 제임스나 웨이드와 함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장기계약을 맺은 것이 앤써니와 나머지 선수들의 길을 엇갈리게 만들었다.
멜로드라마의 비극적 결말
2010-2011 시즌, 앤써니가 어디로 안착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뉴욕과 뉴저지 네츠(현 브루클린)는 너나할 것 없이 경쟁을 부추겼다. LA 레이커스도 빠지지 않았다. 덴버는 뉴욕과 뉴저지의 제안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덴버가 오히려 앤써니의 가치를 올리기 시작했다. 뉴저지의 조건이 흘러나왔다가 이내 뉴욕이 카드를 맞추고 있다는 소식도 나왔다. 이는 덴버가 중간에서 정보를 흘리면서 많은 것을 받아내기 위한 연막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앤써니가 팀을 떠난다면, 이왕이면 좋은 조건에 보내는 것이 덴버에 이득이었기 때문.
뉴저지가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뉴저지는 덴버에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당시 『ESPN.com』의 보도에 따르면, 뉴저지가 앤써니와 빌럽스를 포함해 쉘든 윌리엄스, 레날도 벌크만, 멜빈 일라이를 데려온다. 덴버는 뉴저지로부터 데빈 해리스, 데릭 페이버스, 트로이 머피, 벤 우조와 함께 무려 향후 1라운드 티켓 4장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를 거절했다. 덴버는 뉴저지가 보내는 1라운드 티켓의 값어치를 낮게 책정했다.
당시 뉴저지는 2011 드래프트에서 다수의 1라운드 티켓을 확보하고 있었다. 원래 뉴저지 것과 샤샤 부야치치를 레이커스로 보내면서 받은 것 그리고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것이었다. 지금은 믿기 힘들겠지만, 당시 레이커스는 강팀이었다. 레이커스의 지명권 가치는 당연히 낮을 수밖에 없다. 골든스테이트도 플레이오프를 노리고 있었던 만큼 로터리픽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뉴저지가 제안한 지명권뭉치가 3장 이상 로터리픽이 되길 바랐던 것일까, 덴버는 뉴저지와의 트레이드를 진행하지 않았다.
결국 앤써니의 최종 행선지는 빅애플이 됐다. 덴버는 미네소타까지 끌어들여 다자간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앤써니와 빌럽스가 뉴욕으로 향했고, 뉴욕은 다닐로 갈리나리, 윌슨 챈들러(이상 덴버), 티모피 모즈고프(레이커스), 레이먼드 펠튼, 2014 1라운드 티켓을 보냈다. 덴버는 이 트레이드를 통해 뉴욕의 가산을 모두 털어냈다. 공교롭게도 앤써니와 빌럽스가 향한 뉴욕은 황무지였다. 자신을 데려오느라 뉴욕이 너무 많은 것을 소진했다. 그나마 뉴욕은 스타더마이어와 함께 나름 막강한 트리오를 구축했다.
# 다시 보는 멜로드라마!
뉴욕 닉스
in 카멜로 앤써니, 천시 빌럽스, 코리 브루어, 레날도 벌크만, 앤써니 카터, 쉘든 윌리엄스
out 다닐로 갈리나리, 윌슨 챈들러, 티모피 모즈고프, 레이먼드 펠튼, 에디 커리, 앤써니 랜돌프, 현금, 2012 2라운드 티켓, 2013 2라운드 티켓, 2014 1라운드 티켓
덴버 너기츠
in 쿠스타 쿠포스, 다닐로 갈리나리, 윌슨 챈들러, 티모피 모즈고프, 레이먼드 펠튼, 2012 2라운드 티켓, 2013 2라운드 티켓, 2014 1라운드 티켓
out 카멜로 앤써니, 천시 빌럽스, 레날도 벌크만, 앤써니 카터, 쉘든 윌리엄스, 2015 2라운드 티켓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in 에디 커리, 앤써니 랜돌프, 현금, 2015 2라운드 티켓
out 쿠스타 쿠포스, 코리 브루어
뉴욕은 앤써니와 스타더마이어라는 원투펀치를 갖췄다. 플레이오프에는 진출했다. 마이애미와 1라운드에서 격돌할지 관심을 모았지만 불발됐다. 뉴욕은 오랜 만에 플레이오프에 나섰다. 하지만 이번에도 1라운드에서 고배를 마셨다. 2라운드에 진출했다면, 마이애미와의 대결할 수 있었지만, 동부에서 하위시드를 받은 뉴욕의 한계는 명확했다. 앤써니를 데려오는데 너무나도 많은 출혈이 뒤따랐다. 선수층이 현격하게 얇아졌다. 문제는 이후다. 스타더마이어는 첫 시즌을 제외하고 사실상 드러누웠다. 부상의 늪에서 나오지 못했다. 뉴욕은 돌연 빌럽스를 사면방출했다.
졸지에 앤써니 혼자 남았다. 뉴욕은 앤써니를 데려오느라 재산을 탕진했다. 이래서 도박이 무서운 거다. 앤써니의 합류로 장밋빛 미래를 그렸을 터. 하지만 스타더마이어가 이전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고 뉴욕은 앤써니의 원맨팀으로 전락했다. 문제는 향후 성장이 유력한 유망주들은 물론 신인지명권까지 내다팔았다. 미래는 더욱 어두웠다. 앤써니와 함께 3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나섰지만 성에 차지 않는 결과였다. 결국 뉴욕은 지난 2013-2014 시즌부터 플레이오프는 고사하고 동부에서도 최하위권을 전전하고 있다.
앤써니가 뉴욕을 그토록 원했다면, FA를 통해 이동했어야 했다. 앤써니의 조급함이 부른 참사였다. 앤써니가 트레이드를 통해 가는 바람에 모든 실익은 중매자인 덴버가 챙겼다. 덴버는 앤써니를 버리고 유망주를 수혈하면서 새로운 팀으로 변모했다. 플레이오프에도 자주 나섰다. 조지 칼 감독이 플래툰 시스템을 통해 여러 선수들을 폭넓게 활용했다. 덴버도 이내 한계를 드러냈지만, 재건사업의 표본을 가장 확실하게 제시했다.
만약 앤써니가 이적시장을거쳐 뉴욕 유니폼을 입었다면, 뉴욕의 전력에 고스란히 앤써니가 들어가게 된다. 샐러리캡을 감안해 몇 몇 선수들이 트레이드됐겠지만, 그래도 당시 뉴욕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혹은 뉴욕이 갖고 있는 자원을 활용해 다른 트레이드를 통해 전력상승을 도모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앤써니가 오히려 서둘렀던 것이 화근이 됐다.
이후 뉴욕은 안드레아 바르냐니를 데려오는 조건으로 2016 1라운드 티켓을 토론토 랩터스에 넘겼다. 지난 2000년대 초반에 있었던 거래에서 2012 드래프트 티켓을 넘긴 것 또한 문제가 됐다. 뉴욕은 하위권을 맴도는 동안 질 좋은 신인도 확보하지 못했다. 도니 월시 단장이 부임하면서 그나마 전임 단장(프랭크 레이든, 아이제아 토마스)들이 벌여놓은 것들을 조금씩 만회해 나갔다. 이후 필 잭슨 사장이 부임하면서 수습하기에 나섰고, 이제야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뉴욕 잔류가 낳은 여파
2014년 여름, 앤써니는 뉴욕과의 계약이 만료됐다. 덴버에서 뉴욕으로 트레이드된 이후 곧바로 연장계약을 통해 뉴욕에 눌러앉은 그는 2014년 여름에 FA가 됐다. 시간대는 나쁘지 않았다. 마침 마이애미 BIG3도 모두 FA가 됐다. 당시 6년 계약을 체결한 이들은 4번째 시즌과 5번째 시즌이 끝난 이후 자유계약선수가 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제임스가 이적시장에 나오면서 웨이드와 보쉬도 뒤따랐다. 2010년에 댈러스에 눌러앉았던 노비츠키도 나왔다. 2010년에 이어 또 한 번 판이 마련됐다.
2014년 여름의 화두는 레이커스였다. 제임스와 앤써니를 동시에 포섭하겠다는 (말 같지도 않은)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브라이언트와 함께 했던 드와이트 하워드가 팀을 나간 이후 레이커스는 슈퍼스타 영입에서 좀체 힘을 쓰지 못했다. 여러 팀들이 계산기를 두드렸다. 제임스는 결국 클리블랜드로 돌아갔다. 웨이드와 보쉬는 마이애미에 눌러앉았다. 당초 마이애미는 보쉬와 웨이드에게 각각 1,800만 달러 수준의 연봉에 다년 계약을 맺고자 했다. 하지만 휴스턴이 달려들면서 보쉬의 몸값이 급증했다. 마이애미는 하는 수 없이 휴스턴이 건네 조건과 비슷한 계약을 제시해야 했다.
웨이드와 보쉬가 눌러앉은 가운데 앤써니는 시카고와 LA로 FA투어에 나섰다. 뉴욕까지 포함해 대표적인 3팀이 앤써니를 영입하기 위해 모든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그는 뉴욕에 남기로 했다. 앤써니는 5년 1억 2,400만 달러의 엄청난 계약을 품었다. 잭슨 사장의 계획이 꾀나 구체적이었다는 것이 앤써니 측의 답변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앤써니가 ‘우승’보다 ‘돈’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레이커스행을 결정하는 순간 우승과 담쌓을 것이 유력했다. 시카고로 향하려면 몸값을 크게 줄여야 했다. 결국 그는 5년 최고 대우를 제시할 수 있는 원래 팀인 뉴욕에 남기로 했다.
뉴욕에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지난 2015년 여름에야 애런 아프랄로(새크라멘토)와 로빈 로페즈(시카고)를 영입하며 선수단을 살찌웠고, 10일 계약을 통해 NBA에 들어온 랭스턴 겔러웨이(뉴올리언스)가 전력의 전부였다. 오프시즌에 쏠쏠한 보강을 통해 전력을 다졌다. 그러나 뉴욕은 시즌 도중 데릭 피셔 감독을 해고했다. 자신의 말에 항명했다는 이유. 삼각형을 꾸준히도 고집한 잭슨 사장에 한 번 맞섰다가 피셔 감독은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했다. 이후 뉴욕은 커트 램비스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팀을 맡았다.
문제는 시즌이 끝난 이후다. 뉴욕은 정식 감독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시즌 막판부터 잭슨 사장은 램비스 감독대행을 끝까지 신임했다. 자신과 오랫동안 함께했다는 이유로. 여러 명장들이 계약이 끝나거나 저마다의 사정으로 새로운 팀을 찾고 있는 가운데 잭슨 사장은 꾸준히도 램비스 감독대행을 사령탑으로 앉히고 싶어 했다. 잭슨 사장의 지나친 삼각형 고집은 뉴욕의 갈길은 막는 원흉 중의 하나였다. 최종적으로 지난 시즌 도중 피닉스 선즈에서 다소 억울하게 경질된 제프 호너섹 감독에게 선수들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이 또한 앤써니의 업보일까. 지난 시즌에 제임스는 끝내 클리블랜드도 우승시켰다. 제임스도 이제 웨이드와 같은 3회 우승 대열에 합류했다. 제임스와 웨이드가 우승횟수를 적립한 동안 앤써니는 지갑을 두둑이 했다. 결과론적으로 우승에 자신이 없다면, 돈이라도 챙긴 것은 아주 현명한 결단이다. 연봉까지 삭감했는데 우승마저 놓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돈도 우승도 모두 잡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앤써니는 적어도 하나는 확실하다 못해 차고 넘칠 정도의 큰돈을 손에 넣었다. 그러는 사이 우승기회는 저 멀리 달아났다.
다행인 점은 뉴욕이 이번에 괜찮은 감독을 데려왔고, 오프시즌에서 적극적인 행보로 전력을 보태는데 열을 올렸다는 점이다. 트레이드를 통해 데릭 로즈를 영입했고, 이적시장에서 조아킴 노아(4년 7,200만 달러)와 계약했다. 2010년대 초반 시카고 불스의 전성시기를 열어젖힌 핵심재원을 포섭한 것. 하지만 이들 둘은 이제 전성기적 경기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 둘 모두 그간 부상에 신음했다. 뉴욕이 로즈와 노아를 데려오고서도 확실한 우승후보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하물며 외곽슛이 약한 가드인 로즈가 호너섹 감독과 어떤 궁합을 자랑할지도 아직 미지수다.
그 외 코트니 리(4년 4,800만 달러), 랜스 토마스(4년 2,730만 달러), 브랜든 제닝스(1년약 500만 달러)를 데려오면서 착실하게 선수단을 채웠다. 리와 토마스는 당장 앤써니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선수들이다. 이번 오프시즌 성적만 보면 근 몇 년 중 가장 돋보이는 여름을 보냈다. 이제 이 선수들과 함께 이번야말로 앤써니가 떠오를 수 있을까? 그간 자의반 타의반으로 참 많이도 돌아온 그의 선수생활을 보면,요소요소에 택할 수 있는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알 수있다. 앤써니의 잔여계약은 최소 2년 남았다(마지막 해 선수옵션).
사진 = NBA Mediacent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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