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3년 9월호에 게재됐습니다. (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프로농구가 2000년대 중반에 처음으로 자유계약으로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기로 했다. 수준급 선수를 품은 많은 구단이 전력을 대폭 끌어올렸다. 부산 KTF(현 수원 KT)가 계약한 게이브 미나케도 단연 돋보이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미나케는 애런 맥기와 함께 KTF의 중흥을 이끌었다. 비록 감정 조절에 다소 취약한 모습을 노출하기도 했으나, 자유계약으로 문호가 개방된 프로농구에 단연 돋보이는 존재감을 발휘했다.
대학 시절 & KBL 이전
미나케는 미시건주 앤아버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는 휴스턴에 소재한 학교로 다녔다. 졸업 후, 그는 케빈 듀랜트(피닉스)의 모교로 잘 알려져 있는 텍사스대학교로 진학했다. 텍사스 롱혼스에서 이내 자리를 잡았다. 신입생 때부터 주전 파워포워드로 나서면서 입지를 다졌다. 이후 아이라 클라크(전 현대모비스 코치)가 편입해 미나케의 뒤를 받치기도 했다.
텍사스도 미나케의 활약에 힘입어 높은 곳으로 향할 수 있었다. 1997 전미 토너먼트에서 16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미나케는 새롭게 가세한 크리스 밈(이후 NBA 진출)과 함께 팀의 중심을 잘 잡았다. 텍사스는 빅12컨퍼런스에서 정규시즌 1위에 올랐다. 미나케는 대학 진학 후, 처음으로 컨퍼런스 퍼스트팀에 선정이 됐다. 하지만 컨퍼런스 토너먼트에서 일격을 당하면서 우승에 도전하지 못했다.
4학년 때 활약도 대단했다. 비록 개인 기록은 전년에 미치지 못했으나, 내외곽을 고루 넘나든 그는 변함없는 생산성을 자랑했다. 그러나 텍사스는 NCAA 토너먼트32강에서 패배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미나케는 4년 내내 꾸준히 활약했다. 그는 모교에서 누적 득점, 누적 리바운드 부문에서 각각 15위 이내에 이름을 올리고 있을 정도. 대학생이 되어서도 얼마나 꾸준한 활약을 펼쳤는지 알 수 있다.
대학 졸업 이후 NBA가 아닌 미국의 하부리그에 진출했다. 방성윤이 뛰기도 했던 로어노크 대즐에서 뛰었다. 이를 발판 삼아, NBA 서머리그에 명함을 내밀기도 했다. 밴쿠버 그리즐리스(현 멤피스)와 뉴올리언스 호네츠(현 펠리컨스) 소속으로 여름에 구슬땀을 흘렸다. 보장되지 않는 조건이긴 했으나 디트로이트 피스턴스, 휴스턴 로케츠, 샬럿 밥캐츠(현 호네츠), 유타 재즈의 부름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NBA에 입성하지 못했다.
이후 푸에르토리코를 시작으로 터키, 중국을 거쳤다. 터키에서는 시즌 평균 19점 9.5리바운드를 올리며 주가를 높였다. 이후 아르헨티나로 향했으며, 다시 NBDL(현 G-리그)에 한 시즌 머무르며 빅리그 도전에 나섰다. 당시 NBDL에서 네이트 존슨(전 삼성), 테런스 섀넌(전 SK)과 한 팀에 몸담기도 했다. 하부리그에서 적수가 없었던 그는 당시 리그 평균 득점 2위에 오르는 등 단연 발군의 실력을 뽐냈다. 이후 대서양을 건넌 그는 스페인 2부리그에서 뛰었다.
2002~2003 시즌을 앞두고 빅리그 구단들의 관심을 받았다. 디트로이트 피스턴스, 샬럿 호네츠, 휴스턴 로케츠, 유타 재즈의 트레이닝캠프에서 뛰었다. 그러나 끝내 NBA 선수가 되진 못했다. 중국에서 뛰면서 국내 구단의 관심을 받기도 했던 그는 당시 KTF의 추일승 감독(현 한국 대표팀 감독)의 눈에 띄었다. 이듬해에 KBL에 진출할 수 있었다.
부산에서
미나케가 가세하기 전, KTF는 부진했다. 외국인 선수 선발이 녹록치 않았고, 리그 8위로 시즌을 마치며 한계를 보였다.
부진했던 KTF는 2004~2005 시즌에 맥기와 미나케를 선택했다. 우려가 적지 않았다. 당시에는 외국 선수 두 명이 함께 뛸 수 있었다. 높이의 중요성이 컸다. 나머지 9개 팀이 모두 센터와 파워포워드를 각각 선택한 반면, 추 감독이 이끄는 KTF는 내외곽을 넘나들 수 있는 맥기와 미나케를 선발했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미나케와 맥기가 선보인 조합은 실로 대단했다. 국내 선수층이 두텁지 않은 KTF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코트를 종횡무진 누볐다. NBA 경력을 갖춘 선수들이 리그 적응과 한국 생활에 다소 녹아들지 못한 사이 미나케는 종횡무진 활약했다. 첫 경기부터 안팎을 넘나든 그는 3점슛 네 개를 포함해 23점을 퍼부었다. 부산에 신바람을 일으켰다.
대학 시절부터 안팎을 고루 오갈 수 있는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다양한 기술까지 섭렵하고 있어 상대 외국인 선수를 손쉽게 요리했다. 기술을 떠나 상대 선수보다 기민한 움직임과 빠른 슛터치를 선보이며 KTF의 주포로 거듭났다. 첫 시즌에 경기당 24.7점 8.1리바운드를 올리면서 맹활약했다.
'맥기-미나케-현주엽'으로 이어지는 빅포워드의 활약에 힘입어 KTF는 시즌 초반에 본격적인 연승을 내달릴 수 있었다. KTF는 2라운드 진입과 함께 시즌 최다인 7연승을 질주했고, 시즌 초반 리그 선두에 올랐다. KTF가 힘을 내면서 선두 경쟁도 치열했다. 원주 TG삼보(현 DB), 전주 KCC와 선두를 다퉜다.
그러나 KTF는 정규리그 초반의 기세를 막판까지 이어가기 어려웠다. DB와 KCC에 비해 선수층이 두텁지 않았기 때문. KTF는 누구보다 막강한 삼각편대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다른 선수들의 활약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했던 만큼, 맥기나 미나케가 이따금씩 주춤할 때면 KTF도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미나케의 기복(?)도 한 몫 했다. 누구보다 꾸준했지만 다른 이보다 유달리 다혈질이었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테크니컬파울을 적립했다. 상대 선수와의 기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반칙을 쌓았고, 판정에 불만을 드러내는 빈도도 많아졌기 때문. 당시 기준으로 한 시즌 테크니컬파울 누적 기록을 갈아치웠고, 한 경기에서 두 개의 테크니컬파울을 받으면서 퇴장을 당하기도 했다.
KTF는 기대보다 많은 승수를 쌓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시즌 막판에 단테 존스를 영입한 안양 SBS(현 안양 정관장)가 무려 15연승을 질주하며 상위권 판도가 크게 엇갈렸다. 여러 악재재가 겹친 KTF는 4위로 밀려나고 말았다.
KTF는 결단을 내렸다. 정규리그가 끝난 이후 외국인 선수를 교체하기로 한 것. KTF는 에이스나 다름이 없었던 미나케를 교체하기로 했다. 미나케의 감정 기복도 컸지만, 그가 높이가 강한 팀에 약했기 때문.
KTF는 크니엘 딕킨스를 영입했다. 그러나 그의 활약이 저조했다. KTF는 서울 삼성과의 6강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에서 22점을 올리면서 활약했지만, 팀을 끌고 가기에 모자랐다.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합류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2차전에는 더 부진했고, KTF는 삼성을 넘어서지 못했다.
서울에서 & KBL 이후
그는 서울 SK의 부름을 받았다. SK의 김태환 감독은 미나케의 공격력을 높이 샀기 때문. 공격을 주도할 수 있는 그가 있다면, 전희철(SK 감독), 조상현(LG 감독), 임재현(LG 수석코치) 등 역량이 뛰어난 국내 선수들이 보다 살아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미나케의 활약과 두터운 선수층을 토대로 SK는 힘을 냈다. 미나케는 시즌 첫 5경기에서 경기당 27.2점 8.2리바운드를 올리면서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창원 LG와의 경기에서 큰 부상을 당했다. 무릎 부상을 입은 그는 이후 돌아오지 못했다. SK는 하는 수 없이 새로운 외국인 선수를 찾아야 했고, 미나케와 함께 할 수 없었다.
국내 무대를 떠나야 했던 그는 부상에서 돌아온 후 푸에르토리코, 중국, 이란, D-리그(현 G-리그)를 거쳤다. 스페인리그 1부에도 뛰는 등 굵직한 이력을 쌓았다. 지난 2007~2008 시즌에는 스페인 1부인 사스키 바스코니아에 합류했다. 당시 사스키 바스코니아에서 뛸 때, 피트 마이클(전 오리온스), 티아고 스플리터(전 샌안토니오), 제임스 싱글턴(전 SK)과 호흡을 맞췄다.
그는 소속팀을 리그 정상으로 이끌었고, 유로리그 준결승에 올렸다. 이후 그는 중국으로 향했다. 리그 최고 외국인 선수로 군림하기도 했다. 이어 프랑스를 거친 후, 유타에서 NBA 진출에 재도전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30대 초반인 지난 2009년에 농구공을 내려놓았다.
대표팀에서
그는 미국 태생이지만 부모님이 나이지리아에서 건너온 이민자였다. 나이지리아 대표로 국제 대회에 나섰다. 지난 2003 아프로바스켓에서 올루미데 오예데지(전 삼성)과 함께 팀의 기둥으로 활약했다. 결승에서 숙적인 앙골라에 패해 아쉽게 2004 올림픽에 나서지 못했다.
2005년에 한 번 더 오예데지와 의기투합했다. 그러나 준결승에서 앙골라에 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패자전에서 이긴 나이지리아는 2006 농구 월드컵 진출했다. 16강에 진출하는 기쁨을 맛봤다.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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