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안양의 숨은 별’ 윤영필, ‘제2의 인생’을 즐거워하다

손동환 기자 / 기사승인 : 2020-10-02 13:2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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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그리운 사람이 있다.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농구 팬들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다. 특히, 현장에서 보기 힘든 농구인들은 팬들에게 그리움의 대상일 수 있다.

윤영필 역시 마찬가지다. 2010년 은퇴한 후, 10년 가까이 농구 현장을 떠났다. 누군가에게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이 됐다.

윤영필은 비록 농구 현장을 떠났지만, 제2의 인생을 보람차게 보내고 있다. 현장을 떠난 게 나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와 함께 한 인터뷰가 즐겁게 다가온 이유였다.

윤영필, 그는 어떤 선수였나?

윤영필은 휘문중학교 2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다. 농구를 늦게 시작했고, 193cm라는 작은 키로 페인트 존을 지켰다. 여러모로, 단점이 많았다.
그렇지만 탄력과 힘, 투지라는 무기로 단점을 상쇄했다. 서장훈(방송인)-현주엽(전 창원 LG 감독) 등과 함께 휘문고 전성시대를 주도했다.
제 역할을 묵묵히 했던 윤영필은 최부영 경희대 감독의 눈에 들었다. 최부영 감독의 적극적인 구애 끝에 경희대로 입학했고, 장창곤(상무 감독)-김성철(원주 DB 코치) 등과 함께 골밑에서 맹활약했다. 덕분에, 경희대는 고려대-연세대-중앙대 등 상위권 학교를 위협하는 팀이 됐다.
대학 무대에서 나름의 입지를 다졌던 윤영필은 1998년 졸업반이 됐다. KBL에서 처음으로 시행된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 나섰다. 현주엽에 이어 두 번째로 프로 무대에 입성했다. KBL 역대 최초 2순위로 선발된 신인 선수.
윤영필의 행선지는 안양 SBS(현 안양 KGC인삼공사). 윤영필과 안양의 인연은 그 때부터 시작됐다. 백업 멤버로서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키 큰 외국선수가 페인트 존에서 버티던 시기였지만, 윤영필은 자신만의 강점을 보여줬다. 수비와 리바운드 등 궂은 일로 팀에 보탬이 됐다.
상무에서도 뛰어난 선수들과 함께 좋은 추억을 남기기도 했다. 데뷔 후부터 2007~2008 시즌까지 8시즌을 안양에서 뛰었다. 그 후 마지막 두 시즌을 인천 전자랜드에서 뛰었다.
2009~2010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정들었던 농구 코트를 조용히 떠났다. 그 후, 윤영필의 소식을 알기 힘들었다. 그리고 2020년 7월 24일. 경기도 수원의 한 카페에서 윤영필을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우선 자기 소개부터 부탁 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1998년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 2순위로 안양 SBS에 선발된 윤영필입니다. 반갑습니다.(웃음)

인터뷰 제의를 받았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처음 선정한 카테고리명은 ‘잊혀진 인물들’이었다. 카테고리를 이야기했을 때, 실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위의 질문을 꺼냈다)
처음에는 ‘왜 저죠라고 생각했죠.(웃음) 저는 생각보다 잘한 선수였는데, 왜 ‘잊혀진 인물들’로 선정됐는지도 궁금했고요.(웃음)
물론, 제가 잊혀진 건 사실이에요. 프로 데뷔 후 초창기에는 잘했지만, 가면 갈수록 기량이 떨어졌으니까요. 적어도 ‘잊혀진’이라는 단어에는 맞겠다고 생각했죠. 다만, 저를 인터뷰하면 재미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윤영필 선수를 만나기 전에, ‘보고 싶은 사람들’로 기사 카테고리명을 확정했습니다. 그 카테고리로 인터뷰를 한다고 들었을 때는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난 보기 싫은데’라고 하는 팬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웃음)
농담이고요. 사실 저보다 잘했던, 그리고 저와 같은 세대를 함께 했던 선수들이 나왔으면 했죠. (서)장훈이형과 (현)주엽이 대표적이라고 생각해요. 언급된 선수들 외에도, 저와 비슷한 시대에 농구했던 선수들이 다뤄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죠. 저도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1996~1997 시즌 농구대잔치에서 앞니가 부러진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연세대와의 4강전이었어요. 김택훈한테 당했죠. 경기 시작 직후에 일어난 일로 기억해요. 김택훈이 레이업슛하고 내려오면서, 팔꿈치로 제 안면을 쳤죠. 고의성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강한 동작이 일어났고, 선수가 크게 다쳤어요. 그렇지만 심판진은 아무런 콜도 하지 않았어요. 최부영 감독님께서는 그런 상황을 엄청 항의하셨고, 저 역시도 많이 안타까웠죠. ‘그 때 안 다쳤으면, 경기가 어떻게 됐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해요.


제2의 인생, 윤영필이 말한 즐거움


윤영필은 2010년 은퇴 후 2년 동안 안양에 위치한 호계중학교에서 코치를 맡았다. 그러나 자기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수원 상촌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지금까지 교편을 놓지 않고 있다.
엘리트 선수들은 아니지만, 농구를 좋아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의미를 얻는 듯했다. 그 핵심 의미는 바로 ‘즐거움’이었다.

은퇴 후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2010년에 은퇴하고, 2년 정도 안양 호계중에서 코치를 했습니다. 그리고 수원에 위치한 상촌중학교에서 체육선생님을 하게 됐습니다. 안산에 위치한 상록중학교에도 있다가, 최근에 상촌중학교로 다시 왔고요. 비록 기간제 선생님이지만, 다른 선생님들처럼 업무를 똑같이 하고 싶습니다. 담임 선생님도 여러 번 해봤고요.

체육 선생님을 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예전부터 체육선생님을 하고 싶었어요. 코치보다 체육선생님이 꿈이었죠. 그런데 요즘 선생님되는 게 너무 힘들잖아요. 사립 학교도 시험을 봐야 하는데, 시험을 봐야 하는 건 당시 상황상 저한테 너무 힘든 일이었어요. 그래서 방법을 찾게 됐고, 기간제 선생님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교편을 쥐신 학교에서도 농구를 가르치고 계신가요?
유소년 농구교실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농구를 가르치고 싶다고 생각했고, 학교로 오면서 농구를 가르칠 기회를 얻었죠. 농구를 재미있게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기회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농구를 가르칠 때의 감정이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지금 학생들은 엘리트 선수들이 아니에요. 농구의 재미를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기들이 좋아하는 걸 제대로 알려주고 싶어요. 패스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패스를, 슛을 좋아하는 애들에게는 슛을 확실히 알려주고 싶어요.
그런데 그 시간이 너무 짧아요. 1주일에 3번 수업을 할 수 있죠. 한 번당 수업 시간은 45분이고요. 그 시간 동안 기본기를 완벽히 다지는 건 쉽지 않아요.
농구를 좋아하는 아이들도 그걸 알아요. 그래서 방과 후 수업이나 동아리 활동을 통해 추가적으로 배워요.
아이들이 오후 3시에 수업을 마쳐요. 저는 퇴근 시간인 오후 5시까지 학교에 있어요. 그러면 아이들이 그 시간 동안 코트를 사용할 수 있고, 저에게 가르쳐달라고 하는 거죠. 저도 그 시간에 애들을 추가적으로 봐줄 수 있는 거고요.

엘리트 학생 선수들과 일반 학생들을 모두 가르쳐보셨습니다. 그 차이는 사뭇 클 것 같은데요.
사실 호계중에서는 실수를 했어요. 잘못된 마인드로 접근했죠. 그래서 실패했다고 봐요. 프로 은퇴 후 바로 중학생들을 가르치다보니, 제 눈높이가 너무 높았어요. 그걸 낮추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중학생이어도 엘리트 선수이기 때문에, ‘이 정도는 하겠지’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아요.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생각을 다르게 먹었어요.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좋아하는 걸 즐길 수 있게 하는 거죠. 예를 들면, 드리블을 좋아하는 애가 있고, 슛 좋아하는 애가 있잖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기본기를 완벽하게 습득할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해요. 농구를 좋아해야 그 감정을 끝까지 유지하는 거고, 농구를 좋아해야 프로농구 현장도 갈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혹시 지금 가르치는 학생들이 ‘선수 윤영필’을 알고 있나요?
아이들은 몰라요. 학부모님들이 아시죠. 애들이 ‘우리 학교 선생님 성함이 윤영필이고, 키도 크신 분이다’고 학부모님한테 말씀드리면, 그 부모님이 ‘그 선생님이 예전에 프로농구 선수였다. 나는 그 선생님의 팬이었다’고 전해줘요. 학생들이 그런 말을 대신 전해주죠.(웃음)

말씀을 듣고 나니, 현장을 크게 그리워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렇죠. 저는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재미있고, 보람도 많이 느껴요.

문득 궁금하게 생겼습니다. 본인은 어떤 농구 선수였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농구 선수였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했다)그 평가는 제가 하는 게 아니라, 저를 지켜본 사람이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웃음)
다만, 저 스스로 어떤 선수였냐고 돌이켜본다면, ‘팀에서 준 역할을 열심히 하려고 했던 선수’라고 생각해요. 팀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수비나 리바운드 등 궂은 일을 열심히 하고 승부에 열정적으로 임한 선수였다고 생각해요.

‘농구’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여전히 소중해요. 농구선수를 했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자격증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자격증이죠. 제가 농구를 했기에, 아이들을 즐겁게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농구를 배운 게 애들과 즐겁게 농구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봐요.

후배 선수들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도 있을 것 같습니다.
프로 생활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제 동기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죠. 그게 아니라, 선수 생활 이후를 한 번 고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고등학교 코치와 프로 코칭스태프는 하늘에 별따기잖아요. 농구 이외의 길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죠.
만약에 음식점을 차리게 되면, 음식점에 관한 경영 노하우를 배워야 해요. 그 외에도, 내가 선택한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알려고 노력해야 해요.
농구장에서의 영광은 농구장에서 끝이고, 농구장 밖으로 나오면 그 영광을 버려야 한다고 봐요. 그걸 못 버리면, 밖에 나와서 엄청 힘들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후배 선수들이 알아서 잘할 거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제가 비록 농구 현장을 떠났지만, 아직까지 저를 기억해주신다고 하시는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주어진 저의 자리에서 더 열심히 할 테니, 많은 응원 부탁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P.S. 윤영필의 제언, “국내 선수로만 시즌을 치르자!”

예전에도 그랬듯, 외국선수들의 비중이 너무 높은 것 같아요. 그래서 프로농구가 재미없다고 하는 분들을 많이 봤어요.
저 역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1990년대 중후반에 외국선수 없이 했던 대회들을 재미있다고 느낀 이유와 연관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국내 선수끼리만 뛰는 시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국내 선수들끼리 시즌을 치른다면, 빠르고 아기자기한 농구가 나올 거라고 봐요. 그렇게 되면, KBL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예전보다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한국 농구도 이전의 명성을 찾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진 = KBL 제공, 손동환 기자

바스켓코리아 / 손동환 기자 sdh2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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