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농구 열정은 최고’ 리틀썬더스 이현후, 진지한 도전을 시작하다

김영훈 기자 / 기사승인 : 2020-09-26 18: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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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인터뷰는 7월 23일에 진행됐으며, 바스켓코리아 웹 매거진 8월호에 게재됐습니다. (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독 링크)


2008년생, 13세의 아이는 벌써 농구공을 잡은 지 7년이 되었다. 짧은 인생 절반 이상을 농구공과 함께 산 것이다. 이제 그는 농구를 취미가 아닌 자신의 미래라고 생각하며 엘리트 무대에 도전하려 한다.

리틀썬더스 이현후(160cm, 슈팅 가드)의 이야기다. 농구를 향해 본격적인 꿈을 펼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농구 사랑은 부전자전?
어쩌면 이현후가 농구와 연을 맺게 된 것은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아버지는 학창 시절부터 엄청난 농구광이었다. 덕분에 이현후는 매우 빠른 시기부터 농구를 알게 되었고, 주말이면 아버지와 함께 야외 코트에 가서 공을 만졌다.

“아마 6살이었던 거 같아요. 아빠랑 같이 밖으로 나가 공을 던졌어요. 계속 하다 보니 재미가 있었어요. 그래서 8살 때 농구를 배워보고 싶다 했더니 부모님이 시켜주셨어요.” 이것이 이현후가 기억하는 농구의 시작 시점이다.

아버지는 그가 농구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적극 찬성했고, 어머니 또한 말리지 않았다.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이현후는 삼성 리틀썬더스 유소년 농구교실(이하 리틀썬더스)에서 시작하게 됐다.

제대로 농구를 하게 된 이현후는 일주일 중에 농구를 할 수 있는 일요일과 월요일만 기다렸다. 그는 “한국사, 수학, 미술, 피아노, 수영 등 학원을 정말 많이 다녀봤는데, 그중 농구가 가장 재밌고 행복했어요.”며 농구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현후가 농구 하는 날만 바라본 것은 금정환 감독의 존재도 컸다. 리틀썬더스의 총책임자를 맡고 있는 금 감독은 어린 나이에도 엄청난 농구 열정을 지닌 이현후에게 많은 것을 알려줬다. 기술적인 것은 물론이고 힘들어할 때면 멘탈 코치도 되어줬다.

“감독님은 코트에서 무서운 분이예요(웃음). 그런데 밖에서는 너무 잘해주셨어요. 배고플 때는 맛있는 것도 사주고는 해주세요. 기분이 별로일 때는 좋은 말씀도 해주셨어요. 삼촌 같은 분이에요”라며 금 감독에 대한 솔직한 느낌을 털어놨다.

가르침에 보답하기 위해 이현후 역시 많은 노력을 쏟았다. 아버지와 시간 날 때마다 농구를 연습했다. 특훈 덕분일까. 이현후의 실력은 나날이 성장했고, 클럽 대표팀에도 선발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유소년 클럽인 삼성에서 말이다.

그 팀에 주축으로 성장한 이현후는 우승을 여러 차례 경험했고, 점점 농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농구판 맹모삼천지교
앞서 언급했듯이 리틀썬더스는 가장 유명한 유소년 클럽이다. 전국대회 규모에서 상위권은 물론이고, 우승도 수차례 가져간 경험이 있다. 몇몇 대회에서는 리틀썬더스 두 팀이 결승에서 맞붙는 장면도 나오고는 한다.

이런 팀에서 5년 연속 대표팀을 한 이현후는 점차 큰 무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농구선수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이현후는 이러한 꿈을 부모님에게 털어놨다. 어렸을 적 농구선수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던 아버지는 당연히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어머니 역시 아이의 꿈을 응원해주기로 했다.

이현후 군의 어머니인 김정은(42)씨는 “현후가 농구를 할 때 즐거워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모습이 아니더라. 힘든 길인 것을 알고 아이한테도 설명을 하지만, 현후가 원하니 응원해줄 뿐이다”며 아들의 든든한 후원자를 자처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현후를 위해 용인에서 강남으로 이사도 했다. 김 씨는 “현후가 농구를 하기 위해서는 서울이 더 좋을 거 같았다. 그래서 이사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아직 미래가 보장되지도 않은 아들의 꿈을 위해 이사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다. 하지만 맹자의 어머니가 교육을 위해 이사를 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처럼 이현후의 가족도 농구를 위해 거처를 옮겼다.

물론,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음에도 부모님의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들이 또래에 비해 월등하게 신장이 크지 않은 것이 마음에 좀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걱정과 다르게 이현후는 이러한 것을 극복할 자신이 있다. 그는 “저는 슛과 드리블이 장점이예요. 키가 매우 크지 않기 때문에 슛과 드리블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열심히 연습할 겁니다.”며 당찬 포부를 드러냈다.

그렇다면 이현후의 꿈은 무엇일까. 그는 “두경민, 김선형 선수처럼 KBL에서 가장 잘하는 가드가 되고 싶어요. 우리나라를 빛내는 선수 말이에요. 열심히 연습해서 꼭 될 거예요”라며 자신의 미래를 약속했다.

농구공을 만진 지 어언 7년. 이현후는 진지한 도전을 선언했다. 누구보다 농구에 있어 열정이 넘치는 이현후가 해피엔딩을 그려낼 수 있을까. 그의 꿈을 조심스럽게 응원해본다.  

 

사진 = 김영훈 기자

바스켓코리아 / 김영훈 기자 kim95yh@baske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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