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키가 커서 농구를 시작한 이승구, 경희대의 기둥으로 성장하다

박종호 기자 / 기사승인 : 2023-09-20 20: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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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인터뷰는 7월 20일에 진행했으며,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3년 8월호에 게재됐습니다. (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이승구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슷한 이유로 농구를 시작했다. 키가 또래들보다 컸기 때문. 초등학교 졸업 당시, 이승구의 키는 이미 180cm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농구는 이승구에게 어려운 운동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승구의 키는 크지 않았다. 센터에서 포워드로, 포워드에서 슈터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이승구는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제는 경희대를 이끄는 든든한 기둥이 됐다. 지금은 경희대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2023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본인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

농구는 언제 시작하셨나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작했어요.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키가 워낙 컸어요. 초등학교 졸업할 때 이미 180cm이었으니까요.(웃음)

농구가 쉬우셨겠어요.
네, 그때는 힘든 것도 없었어요. 워낙 키가 커서, 제 마음대로 다 됐거든요. 과장 좀 더해서, 골밑에 있으면 한 골이었어요. 그때는 ‘이대로 하면, 최고의 센터가 될 거다’고 생각했죠.(웃음) 하지만 키가 생각보다 안 컸어요.

처음부터 많이 뛰셨나요?
5학년 때는 기본기가 없었어요. 그래서 기본기를 익혔죠. 기본기를 어느 정도 갖춘 6학년 때부터 많이 뛴 것 같아요.

중학교는 어디를 나오셨나요?
원래 지방에 있다가 서울에서 농구 하고 싶어서, 서울로 왔어요. 휘문중에서 지방에 사는 선수들을 위해 숙소를 만들어 주셨고, 학교의 배려 덕분에 잠자리 문제를 해결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정말 재밌었어요.

어떤 게 재밌으셨나요?
특별한 것은 없었고, 그냥 숙소에서 형들이랑 같이 지내는 게 재밌었어요. 밥도 같이 먹고, 놀 때도 같이 놀고, 운동도 같이 하고... 특별한 것을 안 해도,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즐거웠어요. 그냥 친가족이었어요.

생활이 재밌으셨으면 ,농구도 잘 버티셨겠어요.
그건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웃음) 그래도 형들과 친구들이 힘이 된 것은 사실이이에요. 힘든 훈련 후 형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보낸 것은 정말 큰 낙이었죠. 다만, 그때 안 좋은 것을 너무 많이 먹고 늦게 자서, 키가 생각보다 안 자란 것 같아요.(웃음) 아무튼 그때는 너무 재밌었어요.

농구적으로는 어떠셨나요?
중학교 입학 이후 첫 동계훈련이 정말 힘들었어요. 첫 동계훈련여서 평소보다 무리한 것도 있지만, 운동 분위기도 초등학교랑 다르더라고요. 무섭기도 했고, 운동량도 훨씬 많았거든요. 그래도 형들과 친구들이랑 같이 했기 때문에, 쉽게 극복한 것 같아요.

기회는 많이 받으셨나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기회를 받았어요. 리바운드도 잘 잡고 포스트 플레이도 잘해서, 코치님께서 기회를 많이 주셨어요. 2학년 때부터는 시합을 많이 뛰게 해주셨어요. 경기를 많이 뛰니, 경기 감각과 경험이 쌓였어요. 그러다 보니, 농구가 많이 늘었어요. 경기에 나서서 어떻게 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이해했던 것 같고요.

성적은 어떠셨나요?
1학년 때는 성적을 크게 못 냈어요. 하지만 2학년 때는 준우승을 기록했어요. 3학년 때는 최고참이자 마지막 중학교 생활이니, 좋은 성적을 내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기대만큼 풀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후 고등학교로 가셨습니다.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센터와 포워드를 봤어요. 하지만 키가 작아서, 포지션을 바꿔야 했어요. 당시 코치님께서도 “슈팅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으니, 슈터로 역할을 바꿔보자”고 말해주셨어요.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워낙 섬세하게 알려주셨어요. 슈터의 움직임과 마음가짐 등을 배웠어요. 처음 하는 것이어서 그런지, 흥미로웠어요. 감사하게도 슈터로서의 역할을 빨리 익힌 것 같아요.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때를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기회는 많이 받으셨나요?
고1 주말리그 때, 위에 형들이 너무 많이 다쳤어요. 저한테 기회가 왔죠. 원래 1학년은 거의 못 뛰는 거여서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고, 리바운드 역시 정말 많이 잡았어요.
하지만 형들이 돌아오고부터는, 다시 벤치를 지켰어요. 그래도 형들이 워낙 잘해서, 응원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1학년 때는 종별선수권을 우승했는데, 처음 우승한 거라 동기 부여가 많이 된 것 같아요.

이후에는 어떠셨나요?
2학년 때 (이)두원이가 합류하면서, 팀이 정말 강해졌어요. 처음에는 잘 안 풀렸지만, 주말리그 왕중왕전에서 우승을 차지했죠. 최선을 다했고, 정신 무장이 잘 됐던 것 같아요. 또, 당시에는 어느 팀이랑 붙어도, 질 거란 생각이 안 들었어요.(웃음) 하지만 3학년 때는 홍대부고한테 계속 막혔어요. 몇 번을 붙었는데도, 한 번도 이기지 못했죠.

이후 경희대로 가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경희대에서 저를 스카우트 해주셨어요. 제 슈팅 능력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부터 경희대 갈 생각밖에 없었어요.

대학 생활은 어떠셨나요?
동계 훈련을 엄청 열심히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쭉 쉬었어요. 계속 쉬니 몸 상태도 다시 떨어지고, 동기 부여도 안 됐어요. 이후 대회가 있다고 했는데, 그 대회마저 없어져서 허무했어요. 그래도 열심히 하려고 했어요. 출전 시간이 얼마든 간에, 제 것을 보여주려고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요.

2학년 때 부상을 당하셨습니다.
첫 대회 끝나고 다음 대회를 준비하다가, 손목 부상으로 반년을 쉬었어요. 기량이 올라오던 중이었기에 더 아쉬웠어요. 당시 성적도 좋고 경기력도 좋아서, 상실감이 더 컸어요. 특히, 감독님께서 플레이오프 때 저를 믿어주셨는데, 제가 감독님의 기대에 보답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3학년 때도 온전치 못한 손목 때문에, 슈팅 폼도 바꿨어요.

지금 손목 상태는 어떠십니까?
지금은 좋아졌어요. 슈팅 밸런스도 찾아가는 중이고요. 다만, 이번 시즌 초반에는 손목 부상 후유증과 부담감 때문에, 제 장점을 다 못 보여드린 것 같아요. 그래도 명지대전 때 수비와 리바운드에 최선을 다하려고 했고, 수비를 해내니 마음의 부담을 줄였던 것 같아요.

이제 대학 생활 마지막을 앞두고 계십니다.
시즌 초반과 후반만 해도, 분위기가 좋지 않았어요. 아쉬운 패배가 너무 많았거든요. 그래도 시즌 중반에 연승을 기록해서, 플레이오프에 나간 것 같아요. 남은 대회에서는 시즌 중반 같은 경기력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남은 시즌을 어떻게 보내고 싶으세요?
이제는 최고참으로서 이를 악물고 뛰어야 해요. 팀이 승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거예요. 비록 빅맨이 팀에 없지만, 제가 희생하며 빅맨의 빈자리를 메우고 싶어요. 그리고 제 장점인 슈팅도 증명하고 싶어요. 많이 던지지는 않겠지만, 기회가 오면 확실하게 처리하고 싶어요.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는 시기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의 저를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려고 해요. 그러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진 = 한국대학농구연맹(KUBF) 제공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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