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브론이 마이애미를 택한 이유는 뻔했다. 바로 우승에 목이 말랐기 때문. 르브론보다 먼저 마이애미에 둥지를 틀은 보쉬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르브론-웨이드-보쉬는 지난 2006년 WBC 때부터 같은 팀에서 뭉치자는 의기투합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세 선수는 2003 드래프트 동기로 절친한 친구 사이다. 이에 당시 같은 FA였던 웨이드는 가장 먼저 마이애미와 재계약을 맺었고, 그 다음으로 보쉬와 르브론을 만났다. 그리고 뚜껑을 연 BIG 3의 위력은 실로 엄청났다.
올 시즌 마이애미는 지난 시즌 대비 11승을 더 거두며 동부지구 2위에 올랐다. 플레이오프에 들어서도 승승장구 했다. 1라운드에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4-1로 제압한 것은 물론, 보스턴 셀틱스, 시카고 불스도 연이어 격파하며 BIG 3 결성 첫 시즌만에 NBA 파이널에 진출했다. 마이애미는 정규시즌 리그 상위권 팀들과의 성적이 좋지 않아 플레이오프 전망이 그리 밝진 않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매 경기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하며 경쟁 팀들을 무너뜨린 것이다. 2007년 NBA 준우승 이후 단 한 차례도 파이널 무대를 밟지 못했던 르브론, 2006년 우승을 마지막으로 역시 챔피언과는 거리가 멀었던 웨이드, 통산 플레이오프 2회 진출에 불과했던 보쉬까지, 우승을 누구보다도 갈망할 법한 세 선수는 이렇게 파이널 무대까지 올랐다.
과연 그들은 래리 오브라이언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을까? 우승을 위해 달려온 마이애미 BIG 3의 족적을 되돌아봤다
# 르브론 제임스 - 2007년 NBA 파이널의 아픈 기억과 연이은 추락
르브론은 비교적 일찍 파이널 무대를 밟았다. 지난 2003 드래프트에서 고졸 출신으로는 2번째로 1순위 지명을 받았던 르브론은, 고교시절 명성 그대로 데뷔 시즌에 신인왕을 차지하며 농구 팬들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데뷔 시즌을 기점으로 르브론은 발전을 거듭했다. 소포모어 시즌과 3번째 시즌에는 각각 올-NBA 세컨드팀, 올-NBA 퍼스트팀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또한 르브론의 고속 성장에 발맞춰 클리블랜드의 성적 역시 상승 곡선을 그렸다. 마침내 르브론은 4년차에 접어들었던 2007년, 대망의 NBA 파이널에 진출했다. 상대는 다름 아닌 샌안토니오 스퍼스. 2000년대 들어 2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강팀이었다. 팀 던컨의 존재도 무시무시했다.
경험의 차이였을까? 클리블랜드는 샌안토니오와의 파이널에서, 스윕을 당하며 예상외로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무엇보다 르브론의 부진이 뼈아팠다. 르브론은 당시 최고의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던 브루스 보웬과 샌안토니오의 협력수비에 막혀, 시리즈 평균 22.0득점에 그쳤다. 야투 성공률은 35.5%에 불과했고, 실책도 무려 5.7개에 달했다. 거의 완패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의 앞날은 창창했다. 이제 막 르브론을 중심으로 한 전력이 빛을 발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르브론에게도 NBA 파이널 패배는 자양분이 될 것이 분명했다. 팬들 역시 클리블랜드의 행보에 많은 기대를 나타냈다. 많은 이의 예상대로 클리블랜드는 리그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자리잡았다. 비록 파이널 진출 후 첫 시즌에는 45승 37패로 부진했지만, 2008-09시즌과 2009-10시즌에는 연이어 리그 1위에 오르며 맹위를 떨쳤고, 르브론도 2년 연속 MVP를 수상하는 등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클리블랜드는 정작 플레이오프만 올라가면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특히 리그 1위에 올랐던 2008-09시즌, 2009-10시즌에는 차례로 올랜도 매직(동부지구 파이널), 보스턴 셀틱스(동부지구 세미파이널)에 무릎을 꿇으며 기대 이하의 성적을 올렸다. 클리블랜드는 2008년 플레이오프 동부지구 세미파이널에서 보스턴에 3승 4패로 무너진 이후 르브론 혼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 모 윌리엄스, 벤 월라스, 샤킬 오닐, 앤트완 재이미슨 등 굵직한 선수들을 영입했지만, 여전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 가운데 보스턴은 2008년과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2번이나 클리블랜드를 꺾으며, 르브론을 더욱 좌절케 만들었다.
결국 르브론은 용단을 내렸다. 지난여름 르브론은 FA 자격을 행사하며 웨이드와 보쉬가 있는 마이애미로 이적, 미련 없이 클리블랜드를 떠났다. 르브론은 이 과정에서 클리블랜드 팬들의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올 시즌 보란 듯이 통산 2번째 파이널에 진출해 자신이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클리블랜드에서 수차례 실패를 겪었던 르브론. 과연 마이애미에서 첫 우승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의 마지막 도전이 이제 곧 시작된다.
# 드웨인 웨이드 - 통산 두 번째 우승을 향해
웨이드의 프로 초창기는 화려했다. 르브론이 데뷔 후 3시즌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것에 비하면, 웨이드는 데뷔 시즌에 플레이오프 무대에 올랐을 정도로 힘찬 첫 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2시즌은 그야말로 평탄했다. 마이애미가 2004-05시즌을 앞두고 당대 최고의 센터였던 샤킬 오닐을 영입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마이애미는 오닐의 영입으로 중위권 팀에서 단숨에 우승후보로 떠올랐고, 웨이드-오닐이라는 가공할 만한 원-투 펀치를 결성하며 강력한 전력을 구축했다.
실제 그 시너지 효과는 엄청났다. 웨이드와 오닐은 평균 47.0득점을 합작하며 마이애미를 동부지구 1위로 이끌었다. 성적도 59승 23패로 훌륭했다. 이는 해당 전 시즌 대비 17승이나 더 많은 수치였다. 비록 플레이오프에서는 동부지구 파이널에서 만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 3승 4패로 아깝게 패했지만, 오닐이 온 첫 시즌임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그 후 이어진 2005-06시즌에 마이애미가 드디어 일을 내고야 말았다. 그토록 바라던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오닐은 마이애미로 이적한 직후 “최소 2년 안에 팀을 우승으로 이끌겠다”고 공언한 바 있는데, 실제로 그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마이애미의 우승에 가장 크게 공헌을 한 선수는 웨이드였다. 특히 댈러스 매버릭스와의 NBA 파이널에서 펼친 웨이드의 퍼포먼스는 실로 대단했다.
사실 마이애미는 NBA 파이널 1, 2차전에서 내리 패하며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여기에 홈코트 어드밴티지까지 댈러스가 갖고 있어 패색이 짙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이애미엔 웨이드가 있었다. 웨이드는 3차전에서 42득점을 퍼부은 데 이어, 6차전까지 매 경기 35득점 이상을 기록하며 마이애미의 역스윕을 이끌었다. 특히 5, 6차전에서는 모두 20개 이상의 자유투를 얻어내는 등 댈러스의 수비진을 무력화했다.
결국 마이애미는 웨이드의 활약에 힘입어 창단 첫 우승을 맛봤고, 웨이드 역시 파이널 MVP를 수상하며 자신의 가치를 한껏 드높였다.
하지만 마이애미의 중흥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마이애미는 2연패를 노리던 2006-07시즌에 전 시즌 대비 8승이나 적은 44승을 올리는데 그쳤고, 플레이오프에서는 1라운드에서 맞붙은 시카고 불스에 충격의 스윕패를 당하며 디펜딩챔피언의 체면을 구겼다. 이은 2007-08시즌에도 추락은 계속되었다. 리빌딩 시기를 놓친 마이애미는 15승 67패로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고, 플레이오프에도 4시즌만에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웨이드 역시 우승 이후 첫 2시즌에서, 잦은 부상으로 도합 102경기 출장에 그치는 등 아쉬움을 많이 남겼다.
이처럼 마이애미의 영광은 짧았지만, 침체기 또한 그리 길진 않았다. 마이애미는 2008-09시즌에 전력을 재정비하며 단 한 시즌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2009-10시즌에도 47승을 기록하며 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하지만 역시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이애미는 2시즌 모두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탈락하며 우승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무엇보다 웨이드를 받쳐줄 수 있는 선수가 부족했다. 이에 마이애미는 지난 여름 선수 보강에 열을 올렸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마이애미는 웨이드에 버금가는 보쉬와 르브론을 연이어 영입하며 물 샐 틈 없는 전력을 자랑했다. 이 같은 구성에 웨이드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들을 동료로 맞았기 때문이다.
결국 올 시즌 웨이드는 보쉬, 르브론과 함께 마이애미를 NBA 파이널로 이끌었다. 웨이드에겐 통산 2번째 NBA 파이널이다. 앞서 말했듯 웨이드는, 자신의 첫 번째 NBA 파이널에서 ‘파이널 MVP’를 수상한 바 있다.
과연 웨이드가 이번 NBA 파이널에서도 그때의 활약을 재현할 수 있을지 지켜보자.
# 크리스 보쉬 - 생애 첫 NBA 파이널 무대를 밟다
보쉬는 2003 드래프트에서 4순위로 토론토 랩터스의 지명을 받았다. 보쉬는 루키 시즌에 평균 11.5득점 7.4리바운드 1.4블록슛을 기록하며 인상적인 신고식을 치렀다. 이어진 소포모어 시즌에도 보쉬는 한층 발전된 기량을 자랑했다. 평균 16.8득점 8.9리바운드 1.9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주축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이어진 3번째 시즌, 보쉬는 팀의 확실한 에이스로 떠올랐다. 통산 처음으로 평균 20득점을 넘긴 것은 물론, 출장시간도 무려 39.3분을 기록하며 팀의 높은 신임을 받았다. 토론토 역시 2004-05시즌 중반에 줄곧 팀에 불만을 표출했던 빈스 카터를 뉴저지 네츠로 트레이드하는 등, 일찌감치 보쉬를 밀어주기 위한 움직임을 감행했다.
하지만 보쉬는 첫 3시즌 동안 단 한 차례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다. 워낙 팀 분위기가 어수선한 시기에 데뷔한 탓이 주된 원인. 결국 보쉬는 완연한 에이스로 자리잡았던 2006-07시즌에서야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결과는 1라운드 탈락이었다. 토론토는 전 시즌 대비 20승이나 더 거두며 다크호스로 주목을 받았지만, 악연으로 끝났던 카터의 뉴저지에 2승 4패로 무릎을 꿇었다.
2007-08시즌, 토론토는 다시 한 번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당시 상대는 드와이트 하워드가 버티고 있던 올랜도 매직이었다. 결과는 역시 1라운드 탈락이었다. 토론토는 현격한 전력차를 나타내며 1승 4패로 처참히 무너졌다. 이후 보쉬는 올 시즌 마이애미에 오기까지 단 한 번도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했다. 무엇보다 토론토의 저메인 오닐, 히도 터컬루의 영입이 연이어 실패로 돌아간 것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결국 보쉬는 토론토의 연이은 성적 부진으로 큰 절망에 빠졌고, 지난 여름 FA를 선언하며 마이애미로 이적해 웨이드, 르브론과 손을 맞잡았다.
보쉬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성공이었다. 올 시즌 보쉬는 3년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것은 물론, 통산 처음으로 NBA 파이널에도 올랐다. 보쉬는 플레이오프에 들어서도 평균 18.6득점 8.9리바운드 야투 성공률 50.0%를 기록하며, 르브론과 웨이드를 잘 뒷받침하고 있다. 보장된 에이스 자리를 마다하고 조력자로 나선 보쉬는, 현재 그 역할에 잘 적응하고 있다.
옛말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있다 여러 사람이 자기 뜻대로 배를 몰려고 하면, 전혀 엉뚱한 곳으로 간다는 뜻이다. 하지만 마이애미는 우승에 욕심이 있을법한 세 스타선수를 보유했음에도, 오히려 그 위력을 배가시키며 우승에 한 발짝 다가섰다. 그리고 마이애미가 추억속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BIG3’의 손에 달렸다.
과연 마이매미와 BIG3가 함께 우승에 한을 풀 수 있을 것인지 지켜보자.
바스켓코리아 조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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