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와 함께 했기에 행복했던 샤킬 오닐 - 2

Jason / 기사승인 : 2011-06-30 17: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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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 샤킬 오닐은 올랜도에서 4년의 생활을 마친 후 자유계약 자격을 얻어 할리우드로 입성하며 90년대 이후 LA 레이커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당시 레이커스에는 에디 존스, 닉 밴 엑셀, 엘든 캠벨, 세드릭 세발로스 그리고 코비 브라이언트가 있었다. 이들 중 오닐과 함께했던 두 번째 슈퍼스타는 바로 코비 브라이언트다.

브라이언트는 1996 드래프트에서 13순위로 샬럿 호네츠(현 뉴올리언스)에 지명되며 NBA에 발을 들였다. 게다가 고졸 출신이었기 때문에 장래성 하나만큼은 어느 누구보다 촉망받는 선수 중 하나였다. 당시 팀 단장이었던 제리 웨스트는 그를 알아봤고, 웨스트는 센터인 블라디 디박을 매물로 브라이언트를 데려오기에 이른다. 당시에는 모든 이들이 이 트레이드에 불만을 드러냈다.

오닐의 동료들과 함께 그의 커리어를 되짚어 보는 두 번째 시간. 오닐의 레이커스 시절을 살펴봤다.

with 코비 브라이언트 in LA 레이커스

오닐이 레이커스로 오면서 레이커스 프랜차이즈는 변화를 모색했다. 먼저 브라이언트를 데려오면서 백코트의 중심을 에디 존스에서 브라이언트로 이양했다. 사령탑도 바뀌었다. 레이커스는 시카고에서 두 번의 3연패를 지휘한 'Zen Master' 필 잭슨을 감독 자리에 앉히며 '다이내믹 듀오'를 이끌 새 감독을 영입했다.

잭슨은 시카고에서 슈퍼스타를 다루는 능력을 이미 입증한 인물. 잭슨 감독의 실력은 출중했지만, 개성이 강했던 오닐과 브라이언트를 잘 조율하며 레이커스를 전성시대로 이끌었다. 트라이앵글 오펜스도 빛을 발휘했다. 트라이앵글 오펜스에서 강력한 센터가 동반된다면,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위력을 더욱 배가 된다. 그랬던 만큼 오닐의 포스트에서의 존재감과 브라이언트가 결합되면서 레이커스는 '밀레니엄 왕조'를 건설했다.

‘밀레니엄 왕조’는 번성했다. 브라이언트는 오닐과 함께 최고의 '원투펀치'를 구축하며 팀 내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오닐이 경기를 지배했다면, 브라이언트는 승부처에서 어김없이 나섰다. 또한 오닐은 안에서, 브라이언트는 밖에서 활약하며 최고의 콤비네이션으로 자리 잡았다. 뿐만 아니라 두 선수 모두 도움수비를 끌어올 수 있는 선수들인지라 함부로 특정 선수에게 더블팀 디펜스를 가할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상부상조였던 셈이다.

오닐은 브라이언트와 함께 지난 1999-2000 시즌부터 2001-2002 시즌까지 팀을 3연패로 이끌며 명실공이 최고 선수 반열에 올라섰다. 오닐은 팀을 세 번 연속으로 우승으로 견인하면서 세 번 모두 파이널 MVP를 독식했다. 그야말로 오닐의 전성시대였다.

레이커스는 3연패를 달성할 동안 엄청난 포스를 뽐냈다. 밀레니엄 왕조의 시작을 알린 지난 1999-2000 시즌에는 무려 67승을 달성하며 정규시즌에서 그 위력을 실감케 했다. 특히나 레이커스는 당시 2월부터 엄청난 상승세를 자랑했다. 레이커스는 현지시각으로 2월 4일부터 4월 16일까지 치른 35경기에서 무려 33승을 챙겼다. 이 기간 동안 레이커스는 '19연승-1패-11연승-1패-3연승'으로 이어지는 어마어마한 승률을 기록했다.

2000-2001 시즌에도 레이커스의 기세는 엄청남 그 자체였다. 1999-2000 시즌이 정규시즌에서의 기세가 대단했다면, 2000-2001 시즌에는 플레이오프에서 그 맹위를 떨쳤다. 레이커스는 당해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파이널 진출해 단 1패도 허용하지 않았다. 파이널 1차전에서 앨런 아이버슨이 이끄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게 1차전을 내줬지만, 이후 내리 4연승을 거두며 플레이오프에서 전무후무한 승률을 올렸다.

비록 2001-2002 시즌에는 공격농구를 천명한 새크라멘토와 댈러스 매버릭스 그리고 꾸준하게 서부의 강자였던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고전했지만, 레이커스는 파이널에서 뉴저지 네츠를 손쉽게 정리하며 대망의 3연패를 달성했다. 특히나 레이커스는 1라운드부터 서부 결승까지 강호인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 샌안토니오, 새크라멘토를 연이어 만나며 힘든 레이스를 펼치기도 했다.

2001~2002 시즌 이후 오닐은 브라이언트와 팀 내 주도권을 놓고 다투기 시작했다. 물론 잭슨 감독이 있었기에 크게 문제시 되지는 않았지만, 이는 칼 말론과 게리 페이튼이 합류하며 명예의 전당 라인업을 꾸린 2003-2004 시즌에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급기야 이 팀이 파이널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턴스에게 패하며 둘의 관계는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오닐은 레이커스에게 자신이나 브라이언트 둘 중 선택을 할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결국 레이커스는 거액의 잔여계약이 남은 오닐 대신 브라이언트를 택했다.

결국, 오닐은 마이애미 히트로 트레이드되기에 이른다. 레이커스는 오닐을 마이애미로 보내는 대가로 브라이언 그랜트, 라마 오덤, 캐런 버틀러를 영입했다. 그리고 2006 드래프트 1라운드 티켓과 2007 드래프트 2라운드 티켓까지 받아내며 브라이언트 중심으로 팀을 개편하기 시작했다. ‘밀레니엄 왕조’는 그렇게 저물었다.

바스켓코리아 이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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