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Essay] 제임스 하든 그리고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Jason / 기사승인 : 2013-10-08 11: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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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다가오는 시즌, 휴스턴은 강력한 우승후보들 중 한 팀이다. 서부 컨퍼런스가 워낙 막강한 탓에 직접적인 우승후보로는 언급되고 있진 않지만, 휴스턴은 1년 사이에 제임스 하든과 드와이트 하워드를 차례로 영입하며 길었던 리빌딩에 마침표를 찍었다.

상황으로만 보면 지난 2004년 여름과 다름없는 셈. 문득 현재 휴스턴의 에이스인 하든과 이전 휴스턴의 에이스였던 트레이시 맥그레이디(은퇴)의 커리어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당장의 수치보다 이 선수들의 주변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커리어를 보냈음을 알 수 있었다. 포지션이 같고 휴스턴에서 몸담으면서 시대를 대표하는 가드이기도 한 이들 둘의 커리어를 직접 비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유독 두 선수의 희비를 엇갈리게 하는 부분이 바로 동료 복이다.

2000년대 중반, 휴스턴은 어땠나?
휴스턴은 이미 지난 2004-2005 시즌에 앞서 맥그레이디를 영입하며 전력상승을 꾀했다. 휴스턴은 지난 2004년 6월 30일(이하 한국시간) 스티브 프랜시스, 쿠티노 모블리, 켈빈 케이토를 내주는 대가로 맥그레이디와 주완 하워드, 타이런 루, 리스 게인스를 받아들이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동부 최고의 슈팅가드가 서부로 건너오는 순간이었다.

팀에는 야오 밍이라는 리그 최고 센터가 버티고 있었기에 맥그레이디의 합류는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였다. 2000년대 초반에는 LA 레이커스의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의 조합이 맹위를 떨쳤기에 야오 밍과 맥그레이디로 이어지는 원투펀치는 우승을 향하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였다.

게다가 휴스턴에는 루이스 스콜라, 쉐인 베티에, 번지 웰스, 브렌트 배리 등 비록 시즌은 같이 보내지 않았지만, 맥그레이디와 야오 밍의 뒤를 받칠 스타급 선수들이 즐비했다. 심지어 2008-2009 시즌에는 론 아테스트(현 메타 월드피스)까지 합류하기도 했다. 아테스트의 합류로 맥그레이디는 수비부담에서 벗어나게 됐다. 우승후보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의 꿈은 '부상'이라는 한 단어 앞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들 듀오는 교대로 부상자 명단을 들락날락하 기 일쑤였다. 야오 밍이 멀쩡하면 맥그레이디가 코트를 비웠고, 맥그레이디가 온전할 때는 야오 밍이 벤치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결과론적으로 맥그레이디는 순간순간의 몸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야오 밍은 잦은 국제대회 출전으로 말미암아 몸이 망가진 셈이다.

하물며 맥그레이디는 지난 2007-2008 시즌, 야오 밍이 부재했음에도 팀을 22연승으로 견인했다. 이는 지난 시즌 마이애미가 27연승을 기록하기 전까지 역대 2위에 해당될 정도로 긴 연승기록이었다. 하물며 맥그레이디의 명장면으로 모두가 기억하는 '티맥타임'을 만들어내며 포기하지 않는 승부사의 면모도 보여주기도 했다

문제는 이후부터다. 맥그레이디는 부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맥그레이디는 2006-2007 시즌부터 '71-66-35'로 출장경기 수가 급감했다. 무엇보다 2005-2006 시즌에도 47경기밖에 나서지 못했다. 출근일수보다 그렇지 않은 날들이 더 많았던 셈이다. 결국 휴스턴은 맥그레이디를 뉴욕으로 트레이드하기에 이른다.

클러치 시티의 신성으로

맥그레이디처럼 하든도 트레이드로 휴스턴에 새둥지를 틀었다. 하든은 지난 2012-2013 시즌 개막에 앞서 급하게 휴스턴으로 트레이드됐다. 오클라호마시티는 하든에게 연장계약을 제시했지만, 하든이 이를 거절하면서 트레이드는 급물살을 타게 됐다.

오클라호마시티는 당초 러셀 웨스트브룩은 물론 서지 이바카와 계약을 연장하며 샐러리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물론 하든을 적정계약에 잡을 여지는 있었다. 하지만 하든이 끝내 오클라호마시티가 제안한 계약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든이 트레이드 시장에 나오자 가장 발 빠르게 움직였던 팀이 휴스턴이다. 휴스턴은 오클라호마시티에 하든, 콜 알드리치, 데이퀀 쿡, 라자 헤이워드를 내주고 제러미 램, 케빈 마틴과 여러 장의 드래프트 티켓을 받아들이는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트레이드 직후 휴스턴은 하든에게 계약기간 5년(마지막 2017-2018 시즌엔 50% 부분보장)에 8,000만 달러에 달하는 맥시멈계약을 안기며, 하든과 연장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확실한 에이스카드를 확보한 휴스턴은 제러미 린과 오머 아식을 연거푸 영입하며 전력을 살찌우기 위한 초석을 마련했다. 급기야 지난 여름에는 현역 최고 센터인 하워드까지 품으며 단숨에 우승후보로 올라서게 됐다.

하든은 전 소속팀인 오클라호마시티에서 당대 최고의 포워드인 케빈 듀랜트와 올스타가드로 성장한 러셀 웨스트브룩과 한솥밥을 먹었다. 그 결과 하든은 지난 2011-2012 시즌에 서부 컨퍼런스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며 NBA 파이널 무대를 밟기도 했다. 그리고 휴스턴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면서 젊고 유망한 동료들도 만났지만, 하워드라는 현역최고선수와 하모니를 이루게 됐다. 그야말로 인복은 타고 난 듯싶다.

20130828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올랜도에서 시작된 불운
맥그레이디의 인복도 하든에 뒤지지 않는다. 다만 핀트가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느낌이다. 맥그레이디는 토론토에서 빈스 카터와 조우하게 됐다. 하지만 당시 맥그레이디는 본인의 자리를 원했다. 카터와 포지션이 중첩되는 이유가 컸다. 물론 모든 선수들처럼 토론토에 머무르길 싫어하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본인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팀을 원했다.

맥그레이디는 올랜도 매직에 트레이드되기에 이른다. 맥그레이디는 올랜도에서 그랜트 힐과 함께 도약을 꿈꿨다. 그러나 힐은 부상으로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힐은 디트로이트 피스턴스에서 보여준 것과 달리 올랜도에서 부상에 신음하며 제대로 뛰지도 못했다. 이 부담은 고스란히 맥그레이디에게 넘어왔다. 맥그레이디는 그야말로 홀로 팀을 이끌었다.

무엇보다 지난 2000년에는 팀 던컨이 올랜도로의 합류가 기정사실화되기도 했다. 던컨은 제한적 자유계약선수로 이적시장으로 나왔고, 올랜도로의 이적을 결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는 이뤄지지 못했다. 당시 보도를 듣고 하와이에서 휴가를 보내던 데이비드 로빈슨과 그렉 포포비치 감독이 던컨을 끈질기게 설득한 것. 결국 던컨은 올랜도로의 '이적'이 아닌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잔류'하는 것을 택했다.

던컨 합류는 고사하고 힐이라도 멀쩡했더라면 맥그레이디의 커리어가 이렇게 꼬였을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가정에 불과하지만, 힐이 건강한 채 전성기의 맥그레이디와 합을 맞췄다면, '마이클 조던 - 스카티 피펜'과 '르브론 제임스 - 드웨인 웨이드' 사이에 불세출의 스윙맨 듀오가 탄생했을 터. 애석하게도 우리에게 이들을 지켜볼 행운은 주어지지 않았다.

맥그레이디는 올랜도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급기야 지난 2002-2003 시즌에는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끄는 기염을 토했다. 상대는 탑시드인 디트로이트. 하지만 맥그레이디가 이끄는 올랜도는 우승후보인 디트로이트를 상대로 시리즈 스코어 3대 1로 앞서며 2라운드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올랜도는 디트로이트를 상대로 무기력했다. 그 결과 남아있던 세 경기를 내리 내주고 말았다. 올랜도가 기적적인 업셋을 일궈낼 뻔했지만(1라운드가 7전제로 바뀐 후 8번번시드의 첫 업셋은 지난 2011년, 멤피스가 샌안토니오를 상대로 만들어냈다), 승자는 디트로이트였다. 이것이 유독 불운한 이유는 이때부터 플레이오프에서 1라운드가 기존의 5전제에서 7전제로 바뀐 첫 시즌이었기 때문이다. 맥그레이디의 지긋지긋한 1라운드 징크스의 시작이었다.

맥그레이디는 2004 드래프트에서 즉시전력감인 에메카 오카포(현 워싱턴)을 지명하길 원했다. 하지만 올랜도는 잠재성을 갖춘 하워드(현 휴스턴)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맥그레이디와 올랜도가 결국 갈라서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도 맥그레이디가 조금만 더 기다렸더라면, 하워드와 함께 우승도전을 해볼 수 있지는 않았을까?



하든에 앞서 휴스턴에서 우승을 꿈꿨던 남자
그의 불운은 휴스턴에서도 계속됐다. 맥그레이디는 2006-2007 시즌,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야오 밍은 부상으로 48경기밖에 나서지 못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제 몫을 다했다. 상대는 데런 윌리엄스가 이끄는 유타 재즈. 유타는 윌리엄스 외에도 안드레이 키릴렌코, 카를로스 부저, 메멧 오쿠어까지 탄탄한 주전라인업을 바탕으로 상위라운드 도약을 꿈꾸고 있었다.

맥그레이디와 야오밍은 최선을 다했다. 맥그레이디는 시리즈 평균 25.3점 5.9리바운드 7.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종횡무진으로 활약했다. 야오 밍도 25.1점 10.3리바운드를 보태는 등 전혀 손색이 없는 기량을 펼쳤다. 심지어 시리즈도 앞서고 있었다(스코어 3대 2). 하지만 휴스턴은 6차전을 패한데 이어 홈에서 열린 7차전마저 내주며 2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당시 휴스턴은 52승으로 5번시드를 받았고, 유타는 51승으로 4번시드를 차지했다. 유타가 지구우승팀으로 상위시드를 차지했고, 이어 휴스턴이 남은 팀들 중 최고승률로 5위에 위치했다. 그러나 승률로는 휴스턴이 앞섰기에 홈코트 어드밴티지는 자연스레 휴스턴의 것이 됐다. 그랬음에도 휴스턴은 유타에 한 끗 차이로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맥그레이디도 본인이 이와 같은 커리어를 이어갈 지 예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불운하게도 맥그레이디의 선수생활은 꼬일 데로 꼬여버렸다. 어쩌고 보면 맥그레이디도 코비 브라이언트급의 커리어를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이상을 꿈꿨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기량을 갖춘 선수였다. 2000년대 초중반, '서 코비 동 티맥'으로 불리던 시절에도 "공격력만큼은 맥그레이디가 한 수 위"라는 의견이 있었을 정도니 맥그레이디의 기량은 실로 대단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부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꼬꾸라지고 말았다. 디트로이트와 애틀랜타 호크스에서 식스맨으로 나서며 녹슬지 않은 센스를 과시했지만, 나이도 먹으면서 그의 스피드와 운동능력은 더 이상 NBA에서 커리어를 이어가기엔 한계가 뚜렷했다.

하든과 맥그레이디 그리고
맥그레이디는 웬만한 산전수전은 다 겪었다. 불운도 많이 겪었다. 자기관리를 조금만 더 잘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 이전에 분명 그 순간에는 분명 그도 최선을 다했을 터인데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한 그의 커리어를 보며 사뭇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럴 만도 하다. 그의 첫 파이널 진출이 지난 2012-2013 시즌이었으니 말이다.

하든이 데뷔 세 시즌만에 파이널에 데뷔한 것과는 엄청난 차이다. 하든은 휴스턴으로 합류하자마자 올스타에 뽑히기도 했고, 올 NBA팀(써드팀)에도 이름을 올리면서 최고슈팅가드 반열에 올랐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야말로 엘리트코스가 따로 없다. 무엇보다 하든은 건강한 올스타들과 함께 했다. 듀랜트와 웨스트브룩은 웬만하면 다치지 않는 선수이고(공교롭게도 현재 웨스트브룩은 부상중이지만), 하워드도 큰 부상을 뒤로하고 다시금 제 기량을 펼칠 준비를 마쳤다.

이에 반해 맥그레이디가 만난 대표적인 동료는 힐과 야오 밍이다. 두 선수 모두 클래스만큼은 손색이 없는 선수들이지만, 정작 부상에 시달리며 많은 시간을 코트에서 보내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은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토론토를 떠나지 않는 게 좋은 결정이었을 수도 있다"며 이후 이어진 선택들에 대해 아쉬움이 가득 담긴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혹자들은 맥그레이디를 '1라운드를 넘지 못한 선수'나 '2000년대를 풍미했던 가드'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혹은 그의 몸관리가 성실하지 않았음을 꼬집을 수도 있다. 근데 우리들이라고 제 분야에서 맥그레이디처럼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이 세상에 한 명 뿐이다. 누구나 각기 분야에서 브라이언트와 같은 커리어(혹은 인생)를 꿈꾸고 있다.

브라이언트는 제쳐두고라도 하든처럼 살고 있는 것도 대단한 것이다. 초고속은 아니지만, 나름의 능력을 인정받아 직장을 옮기면서 모든 부와 명예를 갖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인복까지 좋아 그의 곁에는 멋진 동료들이 가득하다. 또한 어린 나이에 큰 무대를 경험하고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기도 했으니 실로 대단하다.

모두가 하든처럼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혹자들은 본인들은 잘 하고 있지만 정작 조직의 뜻과 부합하지 않아 기량을 채 발휘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맥그레이디가 보였던 불운의 전처를 밟아 본 경험을 갖춘 사람들도 즐비할 것이다. 맥그레이디도 후회는 되겠지만, 절대 무시를 받을 만한 커리어를 보낸 선수가 아님에는 분명하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조금은 불안하고, 때로는 갑작스레 일어난 상황으로 말미암아 한 끗 차이로 뒤로 물러서며 아쉬움의 눈물을 삼키기도 한다. 그렇다고 다른 누군가에게 무시를 받을 이유는 전혀 없다. 그게 좋고 싫고, 잘 되고 잘 되지 않고를 떠나 우리가 직접 겪었고 보낸 삶이기에 어느 누구도 감히 재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끝으로 맥그레이디에게 깊은 박수를 전한다.

사진 NBA Mediacentral, basketwallpaper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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