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에 미치다, 人] 스킬 트레이너 안희욱, “문경은-이상민과 1대1, 영광이었다”(1편)

kahn05 / 기사승인 : 2014-04-28 07: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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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8 스킬 트레이너 안희욱

[바스켓코리아 = 손동환 기자] 2002년 어느 날, 3대3 농구대회가 열리던 올림픽공원. 그 곳에는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19세 소년이 있었다. 그는 길거리 농구 코트를 찾은 문경은(서울 SK 감독)과 이상민(서울 삼성 감독)을 상대로 화려한 드리블을 선보였다.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이 소년의 개인기에 감탄했다.

드리블 기량을 뽐낸 주인공은 현재 스킬 트레이너로 활약 중인 안희욱(30) 씨. 안희욱 씨는 매일 농구공과 함께 했다. 농구공을 끌어안고 잘 정도로, 그의 농구 사랑은 대단했다. 농구는 그의 인생이나 다름없었다. 무엇이 그를 농구에 미치도록 만들었을까? 안희욱 씨의 농구 입성기를 지금부터 살펴보자.

# 조던에 빠진 소년, 길거리의 별이 되다

안희욱 씨가 농구를 처음 접한 시기는 1993년.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샬럿 밥캐츠 구단주)의 플레이를 보고, 자연스럽게 농구의 매력에 빠졌다. TV만 틀면, 조던을 찾을 정도였다. 그는 “조던처럼 농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머니한테 졸라서, 농구공을 사달라고 했죠”라고 했다. 안희욱의 농구 인생은 그 때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2002년. KBL이 주최한 3 on 3 대회 결선에 참가했다. 장소는 올림픽공원. 안희욱 씨 앞에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찾아왔다. 당시, 한국 농구의 슈퍼스타였던 문경은과 이상민을 상대로, 1대1 시합을 한 것. 하지만 그는 주눅들지 않았다. 화려한 드리블과 빠른 스피드로, 관중의 탄성을 자아냈다.

그 당시 영상은 농구 팬 사이에서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안희욱 씨는 “저희 팀이 창원 LG 대표로, KBL 3대3 대회 결선까지 올라갔어요. 점심시간 때, 전주 KCC 관계자 분께서 이상민 감독님과 1대1을 해보라고 하셨죠. 너무 설레었고, 영광이었어요. 이제는 두 분 다 감독님이 되셨는데, 축하의 말을 꼭 전해드리고 싶어요”라며 슈퍼스타와 1대1 경기를 한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한 “1대1을 했던 영상이 많이 퍼졌어요.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많았죠. 엽기 사이트에도 올라간 기억이 나요.(웃음) 1대1을 한 이후에, 나이키와 여러 회사에서 행사를 많이 하게 됐죠”라며 슈퍼스타와 1대1이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길거리 농구에 스타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20140428 스킬 트레이너 안희욱

# 잊지 못할 농구 여행, 그리고 군 입대

화려한 드리블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안희욱 씨. 그는 ‘Hip Hoop(힙합과 농구의 합성어)’이라는 새로운 농구 장르를 선보였다. 그리고 2005년. 많은 이들과 농구로 교감하기 위해, ‘전국 Hip Hoop 투어’를 떠났다. 그는 “농구 관련 행사를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닐 기회가 있었어요. 전국에 퍼진 카페 회원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했죠”며 Hip Hoop 투어를 떠나게 된 계기를 말했다.

현실적으로 제약은 있었다. 학생 신분으로 비용을 마련하기 쉽지 않았던 것. 안희욱 씨는 비용 마련을 위해, 농구 게임 ‘프리스타일’을 발매에 앞둔 JC 엔터테인먼트를 찾아갔다. 그는 10장 정도의 투어 제안서를 작성했고, JC 엔터테인먼트는 안희욱에게 5천만원의 계약금을 지불했다. 예산에 대한 걱정을 던 것이다.

안희욱 씨는 “JC 엔터테인먼트가 프리스타일을 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죠. 회사 측에서도 게임 홍보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러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제안서를 작성했고,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죠”라며 제안서를 쓰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그렇게 꿈꿔왔던 농구 여행을 떠났고,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농구공을 잠시 놓아야 했다. 군 입대를 결정한 것. 그는 “농구공을 항상 손에 끼고 다니다가, 공이 손에 없으니 불안하기도 했어요. 조교 분들께서 저를 알아봐주시고, 농구를 가끔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운전병이 되면서, 농구를 거의 못했죠. 그러나 농구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렇게 환경에 적응하게 되더라고요”라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 농구 없는 인생? 미래를 위한 준비!

안희욱 씨는 약 2년을 군대에서 보낸 후, 사회로 돌아왔다. 그에 대한 기억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친구들은 그의 미래를 걱정했다. 그는 “친구들은 보통 여러 군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잖아요. 친구들이 저한테 ‘너는 아르바이트도 못 하고, 졸업할 것’이라는 말을 한 적 있어요. 저를 그렇게 판단한다는 게 거슬리기도 했어요. 농구 없는 인생을 살게 된 계기였죠”라며 제대 후 생활을 간략하게 언급했다.

그러나 생각해볼 것이 있다. 그는 군 입대 전에도 사회에 대한 준비를 항상 하고 있었다. 다만, 자신이 좋아하는 농구로 돈을 벌었다는 것이 남들과 다른 부분이었다. 그는 “제가 좋아하는 농구를 통해 아르바이트를 했고, 돈을 벌었죠. 농구 관련 회사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기도 했어요. 농구만 한다고 해서, 제가 무작정 놀러다닌 건 아니에요”라며 친구들의 걱정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안희욱 씨는 동아대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방송통신대에 입학했다. 미디어와 영상에 대한 공부를 결심한 것. 이는 농구와 관련된 영상을 제작하기 위한 준비 단계였다. 그리고 그는 KTH라는 미디어 회사에 취직했다. 그의 역할은 인터넷 방송 편성 PD. 그는 “우리 나라도 NBA처럼 영상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미디어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고, 미디어 관련 회사에 취직했죠”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또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 2편에서 계속

사진 제공 = SKILL TRAIN, 안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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