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하다 농구(5)] 레이커스를 구한 기적의 불시착

연길 최 / 기사승인 : 2014-05-25 10: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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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kers baley

필자는 기적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주 동안은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습니다. 스포츠 역사에도 수많은 대형 사고가 있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뮌헨 참사, 오클라호마 주립대학 농구부 참사, 뮌헨 올림픽 테러 사건, 보스턴 마라톤 폭발 사고 등 많은 사건이 일어났죠. 오늘 소개할 사건도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죠.

1960년 1월18일(이하 현지시간) 새벽 1시경.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의 구단주 밥 쇼트의 집에 전화벨이 울렸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여보세요?”

“당신이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 구단주신가요?”

“그렇습니다만...”

“당신네 전용기가 실종되었습니다!”

쇼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 눈폭풍 속으로 떠나다

레이커스는 1960년 1월17일 일요일 오후에 열린 세인트루이스 호크스와 원정경기에서 119-135로 대패를 당했다. 엘진 베일러가 43득점, 20리바운드로 펄펄 날았지만 밥 페팃과 클리프 헤이건에게 34득점씩을 내주며 무너졌다. 4연패에 빠진 레이커스는 이날 저녁 곧바로 홈으로 돌아가 다음 경기를 준비하려 했다. 베일러를 비롯한 레이커스 선수들이 세인트루이스의 램버트 필드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30분경이었다. 당시 기상 상황은 좋지 못했다. 바람이 많이 불고 곧 눈이 내릴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당시 기장이던 번 울먼은 3시간 정도 기다리다 출발을 결심했다. 울먼은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美 해병 비행사로 참전했던 베터랑이었다.

저녁 늦게 짐 폴라드 감독을 비롯한 레이커스 선수단은 구단 전용기인 DC-3(맥도넬-더글라스 DC-3, 최대 32인승 쌍발 프로펠러기, 레이커스 구단을 매입한 쇼트는 2차 세계 대전에서 군용 수송기로 사용되었던 DC-3를 매입 후 개조해 레이커스 구단 전용기로 사용 중이었음)를 타고 세인트루이스의 램버트 필드 공항를 떠나 미니애폴리스를 향했다. 세인트루이스에서 미니애폴리스까지는 약 3~4시간 거리였다. 레이커스 선수들은 여느 때처럼 포커를 치거나 잠을 청했다.

당시 비행기에 탑승 중이던 핫 로드 헌들리(1957~1963,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 가드, 前 유타 재즈 캐스터)는 “세인트루이스에서 미니애폴리스까지는 3~4 시간 걸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느 때처럼 포커를 치기 위해 바닥에 담요를 깔고 카드를 돌렸죠. 당시 우리는 눈이 내리기 시작한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진 않았어요”라고 당시 상황을 덤덤히 회상했다. 한참 선수들이 포커에 열중하던 순간 갑자기 기내의 불이 모두 꺼졌다. 처음에는 선수들은 누가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이봐, 다시 불을 켜!”라고 외쳤다. 잠시 후 기장은 비행기 전원이 잠시 나갔다고 말했고 선수들은 포커를 접고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폴라드 감독은 조종석으로 향했다. 폴라드는 조종석 문을 열었을 때 부기장 해럴드 기포드가 손전등을 들고 계기판을 비추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당시 부기장이던 기포드는 훗날 인터뷰에서 “비행기에 탑재된 발전기 두 대가 나갔고 남은 전력도 모두 소진되었어요. 지상에서 이륙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고민하는 동안 시간을 소비하며 전력을 많이 쓴 탓에 발전기가 고장 나자 전력이 모두 나간 것이죠”라고 말했다.

- 5,000m 상공에서 미아가 되다

전기가 나가자 나침반을 제외한 모든 계기가 먹통이 되었고 이후 나침반도 쓸모없게 되었다. 난방도 되지 않았고 서리 제거장치도 작동하지 않았고 실내등도 나갔고 통신도 두절이었다. 다행히 동력은 살아있었다. 하지만 연료가 얼마나 남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램버트 필드 공항으로 돌아가는 것은 통신이 먹통에 다른 비행기들이 많아 불가능했고 미니애폴리스로 가는 것은 계기 고장으로 불가능했다. 게다가 눈폭풍으로 시계가 엉망이었다. 울먼 기장은 일단 고도를 높여 구름 위로 올라가 북극성을 찾아 방향을 가늠하기로 했다.

부기장 기포드는 “5000m까지 올라갔지만 여전히 구름 위로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고도가 높아지며 기내 산소가 떨어졌고 몇몇 어린아이들은 아프기 시작했죠. 그래서 어른들이 담요와 코트로 아이들을 덮어주었습니다”라고 당시 어려운 상황을 전했다.

당시 레이커스 소속으로 비행기에 탑승했던 슬릭 레너드(1956~1961,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 가드)는 “기장이 전력이 나갔다고 말했어요. 기장은 2차 세계 대전 때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조종사 출신이었어요. 그가 레이더도 먹통이라고 했고 폭설 때문에 앞도 볼 수 없어 항로를 잃었다고 했습니다. 제 옆자리에 있던 타미 호킨스가 ‘우리 죽는거냐? 너무 무서워서 머리가 삐쭉 섰다’라고 했어요. 잠시 후 기장이 곧 착륙하지 못하면 연료가 바닥 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며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회고했다.

이륙한 지 5시간이 지나서야 전용기는 눈폭풍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항로를 이탈했고 여전히 계기판은 먹통이었다. 울먼 기장은 비상착륙할 곳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울먼과 기포드는 비행기 고도를 낮췄고 71번 고속도로를 발견하고 고속도로를 따라 비행했다. 잠시 후 기장과 승객들은 우연히 지상 물탱크에 쓰인 글자의 일부를 읽고 자신들이 아이오와州 캐롤 부근에 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캐롤은 아이오와州 주도인 디모인에서 북서쪽으로 120km에 위치한 인구 7,000명의 시골마을이었다.

기장은 캐롤 주변을 돌며 비행기가 착륙할 곳이 있는지를 찾았다. 당시 캐롤의 소방대원이던 헨리 로스는 비행기가 낮은 고도로 마을 주변을 수차례 왕복하는 것을 보고 위기를 감지했다. 비행기 소리에 마을사람들도 잠에서 깨어 집에 불을 켰고 이는 비행기가 착륙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울먼의 아내였고 비행기에도 탑승 중이었던 에바 올로프슨은 훗날 당시 캐롤 주민들이 보낸 편지에서 “경찰이 비행기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 기장이 마을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불을 모두 켜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마을의 불빛으로 고도와 위치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된 울먼은 비행기가 착륙할 수 있는 평평하고 넓은 곳을 찾았다.

헌들리는 “부기장이 나와 ‘전력과 통신이 먹통이고 눈폭풍 속에 있습니다. 연료는 30분가량 남았습니다. 우리는 현재 아이오와州 캐롤 상공에 있습니다. 그리고 옥수수밭이 보입니다. 자,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하나는 어디 있을지 모르는 공항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옥수수밭에 비상착륙하는 것입니다’라고 했죠. 사람들은 ‘당장 내려갑시다’라고 외쳤죠”라고 당시를 기억했다.

- 기적의 불시착

울먼 기장과 기포드 부기장은 고속도로를 따라 비행하며 착륙이 가능한 곳을 수색하다 마을 북쪽에서 거대한 옥수수밭을 발견했다. 두 사람 모두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옥수수밭은 돌이나 걸림돌이 될 만한 장애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새벽 1시40분 경 노련한 베터랑 기장 울먼은 눈이 덮힌 옥수수밭에 불시착을 시도했다. 캐롤 마을의 경찰과 소방대원들 그리고 주민들은 옥수수밭으로 비행기가 내릴 것을 알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비행기가 처음 불시착을 시도할 때 다행히 앞쪽에 자동차가 불빛을 내면서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다. 그 덕에 울먼은 앞에 언덕이 있음을 알고 고도를 높여 언덕과 자동차와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헌들리는 당시 ‘80, 70, 60... 다시 올라가! 다시 올라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80, 70, 60’ 카운트소리가 들였고 비행기는 불시착에 성공했다. 당시 탑승 중이던 베일러는 “내가 타본 비행기 중 가장 부드러운 착륙이었어요. 옥수수밭 위에 눈이 8~10cm가량 덮여 있어 담요 위에 착륙한 느낌이었죠”라고 불시착 상황을 기억했다. 헌들리도 “완벽한 착륙이었습니다. 비행기가 멈추자 한동안 침묵이 흘렀죠. 손과 이마에는 공포 때문에 땀이 흥건했고 이내 추위 때문에 떨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옥수수밭을 800m 정도 미끄러진 비행기는 옥수수밭 철조망 덕에 멈출 수 있었다. 울먼 기장은 “철조망 덕에 항공모함에 착륙하는 효과를 얻었죠”라고 말했다.

잠시 후 소방대원이 비행기 문을 두드렸고 비행기 안은 살았다는 안도감에 환호성이 터졌다. 경찰과 소방대원, 마을사람들은 승객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도왔고 마을에 있는 호텔로 승객들을 안내했다. 호텔에 들어간 선수들은 곧바로 술과 음료, 도너츠를 먹으며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했다.

폴라드 감독은 “비행기가 상공에 있을 때 그리고 착륙할 때 두려웠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비행기 자국을 보며 우리가 얼마나 위험했는지 알 수 있었어요. 몇 분 동안 미끄러졌으니까요”라며 착륙 후 심경을 밝혔다.

다음날 레이커스 선수단은 버스를 타고 미니애폴리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후 쇼트 구단주는 장비를 사서 비행기를 꺼냈고 캐롤에 정비사를 보내 비행기를 수리한 후 미니애폴리스로 돌아왔다. 몇 주 후 레이커스는 L.A.에서 트라이아웃 경기가 있었다. 레이커스 선수들은 다시 그 비행기를 타는 것이 꺼려졌다. 하지만 민항기를 타고 이동할 경우 비용은 20,000달러 이상이나 들었고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다시 그 비행기에 몸을 맡겨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레이커스 선수들은 각자 20달러씩을 모아 트로피를 제작해 홈경기 하프타임 때 당시 기장들을 불러 트로피를 전달하며 기적을 추억했다.

글 = 최연길(MBC 농구 해설위원), 일러스트 = ‘光氣’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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