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승 칼럼] 르브론 제임스가 보낸 마이애미에서의 4년을 돌아보며

Jason / 기사승인 : 2014-07-21 09: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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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Bron James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The King' 르브론 제임스가 본인의 행선지를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전했다. 제임스는 본인의 홈페이지에 '집으로 돌아간다'는 문구와 함께 클리블랜드로 복귀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제임스는 지난 2010년 7월 10일(이하 한국시간) 'The Decision'을 통해 마이애미 히트로 합류를 전한 이후 4년 만에 다시 클리블랜드로 돌아가게 됐다. 이에 제임스가 마이애미에서 보낸 파란만장했던 네 시즌을 되돌아 봤다.

목차

1. 프롤로그, 2010-2011 시즌

2. 2011-2012 시즌, 2012-2013 시즌

3. 2013-2014 시즌, 에필로그

Prologue

2009-2010 시즌의 화두는 바로 '이적시장'이었다. 시즌이 끝난 뒤 제임스를 위시로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 덕 노비츠키, 조 존슨, 폴 피어스 등 대어들이 즐비했기 때문. 오죽했으면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많은 팀들이 샐러리를 덜어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다가오는 여름, 대어들을 영입하고 위한 총알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던 것. 여러 팀들은 샐러리 덤프가 쉽사리 이뤄지지 않다보니 드래프트 티켓까지 얹어가며 캡스페이스를 확보하는데 주력했다.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관심사는 제임스였다. 특히 제임스가 2010 플레이오프에서 다시금 보스턴 셀틱스에 무릎을 꿇으면서 제임스의 행보는 더욱 주목을 받았다. 제임스는 결국 선수옵션을 사용, 옵트아웃을 해 이적시장으로 나왔다. 이에 많은 팀들이 제임스를 잡기 위해 열을 올렸다. 원소속팀이었던 클리블랜드는 물론이고 마이애미, 뉴욕 닉스, 시카고 불스, 뉴저지 네츠(현 브루클린), LA 클리퍼스 등 큰 시장을 끼고 많은 돈다발을 안길 팀들이 만발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 팀들이 제임스의 마케팅 대행사의 사옥을 찾아가 제임스를 알현하는 일까지 벌어졌을 정도. 구단주들은 물론이고 각 구단의 수뇌부들까지 직접 제임스에게 브리핑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첫 테이프는 뉴저지가 끊었다. 미하일 프로코로프 구단주를 비롯한 실무진이 직접 제임스를 찾아가 제임스에게 어필했다. 프로코로프 구단주는 당시 제임스에게 은퇴 이후 재정관리의 방향에 대해 알려주는 성의까지 보였다. 또한 크리스 보쉬까지 영입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뉴저지 구단 지분을 갖고 있는 제이 지도 제임스를 찾았다.

그 다음은 뉴욕이었다. 뉴욕은 짐 돌란 구단주를 포함 도니 월시 단장, 마이크 댄토니 감독과 은퇴한 선수인 앨런 휴스턴까지 대표단을 꾸려 제임스를 만났다. 뉴욕 대표단은 제임스에게 뉴욕에 왔을 경우 구단의 가치상승과 그에 따른 수입원 창출 그리고 광고 수익 및 우승했을 때의 프리미엄까지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러나 제임스의 반응이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우승 가능성에 있어서 신통치 않아했다는 후문. 제임스는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우승을 하고 싶어 했고, 뉴욕은 이 가능성을 제시하는데 실패했다.

마이애미는 '슈퍼팀' 구성을 언급했다. 제임스가 몸값을 깎아준다면, 웨이드는 물론이고 다른 스타급 선수를 합류시켜 우승권으로 발돋움시키겠다는 복안이었다. 당시 팻 라일리 사장은 마이클 비즐리를 트레이드시키면서까지 샐러리를 비울 것이라 언급했다. 심지어 여의치 않을 때는 라일리 사장이 직접 감독으로 부임하겠다는 말까지 했을 정도. 마이애미의 가능성은 현실성이 있었다. 웨이드만 남는다는 전제조건 하에 말이다.

이어 시카고는 '조던의 후계자'라는 타이틀과 함께 시카고에서 누릴 수 있는 여러 조건들에 대해 설명했고, 전력구성에 있어 다른 슈퍼스타를 포섭할 가능성에 대해 역설했다. 당시 단장이었던 크리스 그랜트는 사인 & 트레이드로 보쉬를 영입하면서 전력상승을 꾀할 것을 줄곧 강조했다. 클리블랜드는 그간 지내 온 과정과 함께 새로 부임한 바이런 스캇 감독 그리고 지역내 팬들의 성원을 전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보쉬를 사인 & 트레이드로 합류시킬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정도로 당시 제임스를 영입해가기 위한 열기는 실로 엄청났다. 그리고 2010년 7월 9일 마이애미에서 소식이 터졌다. 웨이드가 잔류하면서 보쉬가 마이애미로 이적했다는 계약이 보도됐다. 마이애미는 졸지에 우승후보로 떠올랐고, 다음 날 발표될 제임스의 결정에 많은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다. The Decision이란 방송이 시작되었고, 드디어 제임스가 입을 열었다. "내 재능을 남쪽바다로 가져가겠다. 나는 마이애미 히트에 합류한다"고 밝혔다.

2010-2011, 불안했던 출발을 뒤로하고 리그 최강자로 떠올라

공은 둥글다고 했던가? 제임스를 비롯하여 엄청난 슈퍼스타들이 뭉쳤음에도 마이애미의 첫 출발은 신통치 않았다. 개막전에서 BIG3가 이끄는 보스턴 셀틱스에 패한 마이애미는 이후 약체들을 만나 4연승을 내달렸다. 하지만 이후 12경기에서 5승 7패에 그치는 부진의 늪에 빠졌다. 시즌 첫 17경기에서 9승 8패. 마이애미가 예상과 달리 흔들리자 마이애미는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제임스는 이 와중에 에릭 스포엘스트라 감독과 어깨가 부딪히는 해프닝까지 겪으면서 최악의 시간을 보냈다.

시즌 개막전 BIG3 콘서트에서 우승횟수까지 거론하며 자신 있는 모습을 내비친 제임스였다. 웨이드도 "3연패 이상은 없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마이애미의 시즌 초반은 이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전개됐다. 일각에서는 웨이드를 벤치로 보내야 한다는 말부터 감독교체를 해야 한다는 말도 서슴지 않게 나왔을 정도로 당시 마이애미는 상당히 심각했다.

BIG3가 구성될 당시 팻 라일리 사장은 제임스가 매직 존슨, 웨이드가 코비 브라이언트, 보쉬가 케빈 가넷과 같은 역할을 해 줄 것이라며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역할 구분과 볼을 배분하는데 있어 다소 혼선을 겪는 듯 보였다. 제임스는 공격 시에 주저하기 일쑤였고 보쉬는 제대로 위치를 잡지 못하는 느낌이 강했다. 심지어 돌파를 주무기로 하고 있는 제임스와 웨이드의 동선이 겹치는 모습까지 노출했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국이 따로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즌 초반의 성적은 기우에 불과한 것이었다. 마이애미는 이후 12연승과 9연승을 연거푸 내달리며 첫 17경기 이후 22경기에서 무려 21승을 쓸어 담는 엄청난 저력을 선보였다. BIG3를 백업해줄 밀러와 해슬럼이 부상으로 장기간 결장했음에도 만들어낸 결과였다. 마이애미가 연파한 팀들 대부분이 5할 승률 이하의 팀이었지만, 불꽃처럼 타오른 기세는 좀체 사그라지지 않았다. 12연승과 9연승의 길목에서 유일하게 패를 안긴 팀은 다름 아닌 댈러스 매버릭스였다.

21승 1패 이후 5경기에서 4연패를 당하기도 했고, 시즌 중후반에는 이를 넘어서는 5연패의 수렁에 빠지면서 '반지원정대'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그러나 시즌 막판 18경기에서 15승을 솎아내면서 마이애미는 플레이오프에 들어설 채비를 마쳤다. 시즌 성적에서는 시카고에 밀려 아쉽게 탑시드를 거머쥐진 못했지만, 지난 2006-2007 시즌 이후 오랜 만에 지구우승을 차지하는 기쁨을 누렸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마이애미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이애미는 파이널에 진출하기까지 고작 3패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1라운드에서 만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2라운드에서 상대한 보스턴 셀틱스 그리고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격돌한 시카고까지. 마이애미는 매시리즈에서 상대에게 단 1경기만 내주면서 엄청난 기세로 동부 컨퍼런스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특히 동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마주친 보스턴과의 일전은 제임스에게 중요한 일전이었다. 제임스는 클리블랜드에서 BIG3가 이끄는 보스턴에 늘 가로막혀야 했다. 2000년대 중반에는 디트로이트 피스턴스였다면 2000년대 후반에는 보스턴과의 승부를 피할 수 없었다. 그랬던 제임스가 마이애미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보스턴을 넘어설 수 있었다. 시리즈가 끝난 후 제임스와 웨이드는 포옹을 하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지난 2010 플레이오프에서 각자의 팀을 이끌고 보스턴과의 대결에서 좌절했던 만큼 이번 승리는 두 선수에게 사뭇 남달랐다.

제임스가 이끄는 마이애미는 마이클 조던이 팀을 떠난 이후 다시금 대권에 도전하는 시카고였다. 시카고는 새로 부임한 탐 티버도 감독의 물오른 지도력과 생애 첫 MVP를 수상한 데릭 로즈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조아킴 노아, 카를로스 부저(현 레이커스), 테즈 깁슨, 오머 아식(현 뉴올리언스)이 버티고 있는 인사이드가 강점인 팀이었다. 루얼 뎅까지 자리하고 있어 시카고의 전력은 전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시즌 전적에서 마이애미에 2승 1패로 앞서 있었다.

그렇지만 결과는 의외로 쉽게 갈렸다. 마이애미는 1차전에서 103-82로 대패하며 체면을 구겼지만, 이후 내리 4연승을 거두면서 예상보다 이른 시각에 시카고를 제압했다. 5차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두 자리 수 점수 차를 가져갔을 정도로 마이애미는 도리어 시카고를 압도했다. 4쿼터 막판에는 BIG3와 함께 밀러와 해슬럼이 함께 뛰면서, 마이애미 특유의 강력함을 잘 유지했다.

파이널 상대는 지난 2006 파이널에서 물리친 댈러스였다. 당시 마이애미는 첫 2경기를 내주었지만, 불타오른 웨이드를 중심으로 내리 4경기를 잡아내며 역전우승을 일궈냈다. 게다가 당시 댈러스는 덕 노비츠키가 지키는 원맨팀 느낌이 강했다. 앞으로 보나 옆으로 보나 마이애미의 우위가 당연하게 점쳐졌을 정도였다. 심지어 출발도 순조로웠다. 2차전을 아쉽게 내줬지만 3차전에서 멋진 작전으로 2점차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마이애미는 3차전 승리직후 연달아 모두 패했다. 제임스는 5차전에서 17점 10리바운드 10어시스트를 기록했지만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웨이드만이 주득점원으로서 제 역할을 했지만, 제임스는 다소 확신이 없는 듯한 플레이로 일관하며 팀을 패배의 위기에서 구해내지 못했다. 결국 마이애미는 댈러스의 흐름을 끊어내지 못하면서 우승에 실패했다. 단 2승을 남겨둔 상황에서 마이애미는 노비츠키를 막지 못했고 끝내 무릎을 꿇었다.

무엇보다 마이애미가 패한 것은 코트 밖에서의 매너였다. 당시 노비츠키는 독감에 시달려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도 평균을 상회하는 기록으로 팀을 잘 이끌었고, 끝내 우승을 시킨 것. 하지만 시리즈 도중 제임스와 웨이드는 노비츠키의 증상을 비꼬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로 말미암아 제임스와 웨이드는 세간의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가뜩이나 '악역'으로 거듭난 마이애미였기에 이들의 행동은 어떤 말로도 정당화되지 못했다.

제임스는 한 술 더 떴다. 시즌을 마친 뒤 인터뷰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팬들을 향해 "현실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 말한 것. 프로선수로서 입에 담는 것은 고사하고 이런 생각조차 하는 것이 부끄러워야 당연한 말을 NBA의 아이콘으로 여겨졌던 선수가 직접 내뱉었다. 가뜩이나 제임스에게 여론이 좋지 않게 형성된 와중에(이러니 당연히 안 좋을 수밖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사진 = Basketwallpap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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