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3년 11월호에 게재됐습니다. (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2010년대 프로농구를 누빈 외국 선수 중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이가 여럿 있다. 애런 헤인즈와 로드 벤슨, 리카르도 포웰 등이 대표적이다.
찰스 로드도 빼놓을 수 없다. 로드는 지난 2010~2011시즌부터 2019~2020시즌까지 10시즌 중 9시즌 동안 한국프로농구와 함께 했다. 부산 KT(현 수원 KT)와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 안양 KGC인삼공사(현 안양 정관장)와 울산 모비스(현 울산 현대모비스), 전주 KCC(현 부산 KCC) 등을 두루 거쳤다.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선수였다.
안양에서
로드는
KT에서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시즌을 치를수록 전창진 감독(현 부산 KCC 감독)과
훨씬 돈독한 관계를 보여줬다. 그러나 KBL이 외국 선수
제도를 변경함으로 인해, 로드는 시장에 다시 나왔다.
KBL은 2015~2016시즌부터 단신 외국
선수 보유 규정을 내세웠다. 외국 선수 2명 중 1명을 193cm 이하의 선수로 선발하도록 했다. 가드로 나설 수 있는 선수를 뛰게 하려는 의도였다. 각 구단은 외국
선수 진영을 새로 꾸리기로 했고, KT도 당연히 동참했다.
그 사이 전창진
감독이 안양 KGC인삼공사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전
감독이 지휘봉을 잡지 않기로 했고, 그와 함께 이동했던 김승기 감독대행(현 고양 소노 감독)이 KGC인삼공사를
이끌었다. 처음으로 사령탑에 부임한 김승기 감독대행은 로드를 주축 외국 선수로 선택했다. 로드와 프랭크 로빈슨으로 전열을 정비했다.
로드는 자신과 함께 했던 코칭스태프와 다시
만났다. 시즌 내내 꾸준했다. 하지만 비보가 발생했다. 여동생이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며, 남동생도 위중했다. 로드는 경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미국으로 향해 가족들을 돌본 후,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로드의 경기력이 가라앉았다. 멘탈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고, 무리한 플레이를 일삼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프랭크 로빈슨의 대체 외국 선수였던 마리오 리틀이
로드보다 중용됐다.
하지만 로드는 평균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2015~2016 정규리그 50경기에서 평균 17.8점 8.5리바운드 1.9어시스트에 2.1개의 블록슛과 1.6개의 스틸을 기록했다. KGC에는 페인트존 수비와 리바운드 단속에 힘을 냈다. 지난 2011~2012시즌 이후 5년 만에 정규리그 누적 세 자릿수 블록슛도
해냈다.
KGC인삼공사는 로드의 활약에 힘입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 서울 삼성을 만나 3승 1패로 꺾었다. 그러나 4강
플레이오프에서 정규리그 1위를 달성한 KCC에 패했다. 로드와 KGC인삼공사의 동행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울산에서
2016년 여름. 로드는 다시 KBL 외국 선수 트라이아웃 및 드래프트에 나섰다. 로드는 울산 모비스의
부름을 받았다. 출발은 좋았다. 그러나 모비스는 흔들렸다. 팀의 심장이었던 양동근(현 현대모비스 코치)이 전자랜드와 개막 경기에서 큰 부상을 당한 것. 다른 누구도 아닌
양동근이 장기간 이탈하면서, 모비스의 계획도 크게 틀어졌다.
또한, 단신
외국 선수인 네이트 밀러가 힘을 내지 못했다. 양동근의 결장으로 백코트에 구멍이 생겼기에, 모비스의 아픔은 더 컸다. 게다가 부상까지 당했다. 이는 로드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반전은 있었다. 밀러를 대신해 일시 대체로 들어온 마커스 블레이클리가 팀에 잘 녹아든 것. 블레이클리는
다양한 지점에서 동료들에게 양질의 패스를 뿌렸다. 이로 인해, 로드의
기세 또한 살아났다. 로드는 블레이클리의 패스를 호쾌한 슬램덩크로 연결. 팀의 분위기도 끌어올렸다.
하위권을 전전했던 모비스는 블레이클리의
가세와 함께 상승했다. 5할 승률을 회복했고, 플레이오프
진출까지 엿봤다. 그러나 블레이클리는 일시 대체로 가세한 선수였다. 그래서
기존 부상 선수의 회복 시, 블레이클리는 다른 구단의 영입 제안을 받을 수 있었다. 모비스에 남길 원했으나, KGC인삼공사의 요청으로 팀을 옮겨야 했다.
다시 돌아온 밀러는 여전히 부진했다. 하지만 로드의 활약은 나쁘지 않았다. 서울 SK전에서 생애 최다인 47점을
퍼부었다. 뿐만 아니라 17리바운드에 7블록슛을 곁들였다. 선수층 얇아진 기대 이상의 경기력을 펼쳤다. 페인트 존에서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감을 뽐냈다. 그야말로 팀을 먹여
살렸다. 2016~2017 정규리그 33경기에서 경기당 23.8점 11.2리바운드 1.5어시스트에 1.9개의 블록슛을 기록했다.
그러나 모비스는 외국 선수를 교체하기로
했다. 밀러가 교체 대상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모비스는 로드를
내보냈다. 단신 빅맨인 에릭 와이즈를 데려왔다. 개인 기록이
돋보였던 로드이지만, 로드는 살아남지 못했다. 방출을 피하지
못한 로드는 이후 필리핀리그를 거쳤다. 필리핀에서 프로 진출 이후 첫 우승을 차지했고, 올해의 외국인 선수에도 뽑혔다.
전주에서
필리핀리그를 거친 로드는 KCC의 부름을 받았다. 안드레 에밋이 핵심 전력으로 자리했고, 로드는 에밋의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
에밋이 있어, 로드는 벤치를 오랜 시간 지켰다. 그러나 외국 선수 2명이 동시에 나설 수 있었던 만큼, 로드도 평균 20분 이상을 꾸준히 뛸 수 있었다. 그리고 하승진이 있었기에, 수비 부담이 줄었다. 그래서 자신의 강점인 공격력을 극대화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로드가 KCC에서 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에밋의 볼 소유
시간이 길었고, 하승진과 전태풍까지 포진했기 때문. 하지만
로드는 벤치에서 나섬에도 큰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 또, 하승진이
쉴 때, 로드가 제공권 싸움을 잘했다. KCC가 경기 내내
높이의 위력을 보여줬던 이유.
로드는
2017~2018시즌 정규리그 전 경기(54경기)에
나섰다. 2013~2014시즌 이후 4년 만에 기록. KBL 입성 후 3번째 기록이기도 했다. 또, 2옵션 외국 선수였음에도, 경기당 18.2점 8.7리바운드 1.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수비 역량과 기록 감소를 비켜가지
못했다. 특히, 블록슛 수치가 줄었다. 또, KCC는 4강 플레이오프에서 SK를 넘어서지 못했다. 1승 3패로
시즌을 마쳤다.
다시 인천에서
로드는
2018~2019시즌에도 머피 할로웨이의 대체 외국 선수가 됐다. 시즌 중에 가세했음에도, 2018~2019시즌 개인 첫 경기에서 17점을 기록했다.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2019년 1월 초에 부상을 당하기도 했으나, 이내 돌아왔다. 로드가 복귀하자,
전자랜드는 힘을 내기 시작했다. 두 번의 4연승과
시즌 최다인 6연승도 기록했다. 이에 힘입어, 4강 플레이오프 직행을 확정했다.
로드는 플레이오프에서도 활약했다. 전자랜드의 구단 역사상 첫 챔피언 결정전 진출에 기여했다. 그리고
로드는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서도 31점 14리바운드로 엄청난 퍼포먼스를 펼쳤다. 하지만 로드의 분투에도, 전자랜드는 챔피언 결정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했다.
다시 전주에서
로드는
2019~2020시즌 중 전창진 감독과 다시 조우했다. KCC에 입단한 로드는 라건아의
뒤를 받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드는 출전 시간 동안
힘을 내지 못했다. 몸 상태가 온전치 않았기 때문.
게다가 라건아가 시즌 중 무릎 부상을 당했다. KCC의 고민이 컸다. 그러나 다른 외국 선수를 데려오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로드와 KBL의 인연은 끝났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프로농구가 사상 최초로 시즌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사진_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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