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백인 빅맨의 대명사’ 크리스 랭의 추억

김영훈 기자 / 기사승인 : 2021-06-12 21:3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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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1년 5월호에 게재됐습니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2019-2020시즌이 종료된 뒤 열린 시상식. 서울 SK의 자밀 워니가 외국 선수상을 수상했다. SK에서 외국 선수상을 배출한 것은 15년 만이다. 이전 SK 출신 외국 선수상의 주인공은 크리스 랭이다. 백인 빅맨의 대명사인 랭의 이야기를 돌아봤다.

마이클 조던의 후배,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크리스 랭

마이클 조던은 농구의 대명사로 꼽히는 선수다. 그런 조던의 명성 덕분에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이하 UNC)는 조던의 모교로 알려져 있다. 크리스 랭 또한 이곳 UNC 출신이다.

고등학교 때 맥도날드 올 아메리칸에 선정될 정도로 유망했던 랭은 1998년 UNC에 입학했다. 1학년 때부터 선발로 출전한 그는 10.6점 5,4리바운드라는 준수한 활약으로 ACC 신입생 베스트5에 이름을 올렸다. 베스트5에는 버지니아 대학 출신의 故크리스 윌리엄스도 있었다. 당시 윌리엄스는 ACC 올해의 루키를 차지하며 랭보다 높은 레벨을 자랑했다.

성공적으로 대학 무대에 진입한 랭은 두 번째 시즌인 인상적인 기억을 남긴다. NCAA 전국 토너먼트 4강에 오른 것. UNC는 8시드를 받았지만, 1시드 스탠포드와 4시드 테네시를 꺾고 파이널 포에 진출했다. 하지만 4강에서 마이크 밀러와 우도니스 하슬렘, 맷 보너 등이 뛰던 플로리다를 만나 결승행은 좌절됐다.

팀의 중심은 보스턴 셀틱스 출신 조셉 포르테와 댈러스 매버릭스 출신 브랜든 헤이우드였지만, 랭도 6경기 모두 선발 출전해 팀을 뒷받침했다. 랭은 이후에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 헤이우드가 졸업한 뒤인 4학년 때는 주전 센터 자리를 책임지며 14.0득점 6.0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그러나 4년 내내 꾸준한 활약에도 크리스 랭을 불러주는 NBA 구단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랭은 폴란드 리그에서 1시즌을 보낸다. 해외 무대를 경험한 랭은 다시 NBA의 문을 두들겼다. 그는 NBDL(현 G리그)의 애쉬빌 알티튜드에서 뛰며 콜업을 기다렸다.

하지만 랭의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오랜 하부리그 생활에 지친 랭은 다시 해외로 눈을 돌렸고, 낯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올리게 됐다. 그것이 서울 SK와 랭의 만남이었다.


서울 SK에 둥지 튼 크리스 랭, 순조로웠던 출발

사실 SK가 먼저 점찍은 선수는 랭이 아니었다. SK는 당초 리 벤슨의 영입을 시도했고, 벤슨이 양지체육관에 짐을 풀기도 했다. 하지만 SK는 하루 만에 벤슨의 영입을 철회했다. 벤슨이 숙소 생활에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

갑작스러운 상황 속에 SK는 급히 한 선수와 계약을 맺었다. 그 선수가 랭이었다. 랭을 소개시켜준 이는 현재도 SK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며, 자밀 워니와 닉 미네라스를 연결시켜준 모리스 맥혼 전 샌안토니오 감독이었다.

04-05시즌 한 달 전 팀에 합류한 랭은 다행히 빠르게 녹아들었다. 이상윤 감독은 시간이 지난 후 인터뷰에서 “급하게 선택했지만, 랭은 인성적으로 매우 훌륭한 선수였다. 선수들과도 잘 지내 큰 걱정이 없었다”며 랭을 떠올렸다.

인성만 훌륭한 게 아니었다. 실력도 좋았다. 랭은 시즌 초반부터 연일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골밑을 책임졌다. 전희철과 조상현 콤비도 날아다닌 SK는 개막 5경기에서 4승 1패를 기록했다. 전 시즌 7위 팀의 반란이었다.

외국 선수 잔혹사, 크리스 랭의 수난 시대
하지만 잘 나가던 SK는 갑자기 무너졌다. 발단은 또 다른 외국 선수인 레너드 화이트의 퇴출이었다. 그는 부상을 이유로 태업을 했고, SK는 7경기 만에 화이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외국 선수 잔혹사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화이트가 떠난 SK는 NBA 출신 세드릭 헨더슨을 영입했다. 하지만 헨더슨은 NBA라는 간판이 무색할 만큼 아쉬운 기량을 보여줬다. 이후 케빈 프리맨이 영입되었으나 경기 도중 기억상실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교체 없이 시즌을 치른 프리맨 또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동료 외국 선수의 분전에 랭의 수난 시대가 펼쳐졌다. 그는 꾸준히 20점 10리바운드를 기록했지만, 팀은 랭의 활약과 별개로 패할 때가 많았다. 동료 외국 선수가 기량이 떨어지거나 자리를 비운 것이 패배의 주원인이었다.

외국 선수 한 명이 미덥지 않으니 랭이 40분 모두 코트에 있어야 했다. 그는 54경기 중 24경기에서 40분 이상 출전했다. 3경기 연속 풀타임 출전은 기본이었으며, 4번 연속 풀타임, 심지어 5경기 연속 풀타임 출전한 적도 있었다.

강도 높은 근무에도 랭은 훅슛과 점퍼 등 다양한 공격 능력을 선보였다. 그중 발군은 뛰어난 보드장악력이었다. 그는 리바운드와 더불어 엄청난 블록슛을 능력을 뽐냈다. 2015년 2월 18일 열린 울산 모비스전에서는 28점 16리바운드 10블록으로 트리플더블을 작성하기도 했다.

랭은 한 시즌 평균 22.9점 11.6리바운드 2.3블록슛을 기록했다. 득점은 9위, 리바운드는 5위였지만, 블록은 리그 1위였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랭은 팀 성적 8위에도 외국 선수상을 수상했다.


재계약 불발, 그리고 그 후...

뛰어난 기량에 성실함도 갖춘 랭. SK는 당연히 랭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랭을 품기에 KBL은 너무 작은 곳이었다. 그는 스페인에서 뛰며 잠시 미뤄뒀던 NBA를 향한 도전을 다시 시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7년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며 방출되고 말았다.

이후 랭은 다시 해외 무대를 전전했다. 터키, 이탈리아를 거쳐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도미니카 공화국 등 중남미 지역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는 2018년 프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SNS를 통해 기자와 최근 연락된 바에 따르면 랭은 현재 샬럿에 거주하며 후배 양성에 시간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 크리스 랭과 한중 올스타전

랭의 가장 강렬했던 기억은 바로 이 행사일 것이다.

2005년, KBL은 독특한 이벤트를 계획했다. 한중 올스타전이었다. KBL 올스타와 CBA의 올스타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한 번씩 경기를 치르는 것이다. 한국은 김승현, 문경은, 양희승, 김주성 등이 참가했으며, 중국은 류웨이, 주팡위, 이지엔리엔, 올루미데 오예데지 등이 출전했다.

랭도 KBL 올스타에 꼽혀 경기를 치렀다. 그는 김승현과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연신 덩크를 찍었다. 자밀 왓킨스와 함께 골밑을 책임진 랭(17점)은 1차전 KBL의 85-82, 승리를 이끌었다. 팀은 패했지만, 2차전에도 19점 8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랭은 한중 올스타전에서도 많은 호감을 얻었다. 그는 이벤트 경기에서도 열심히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중국을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국내 선수들의 투지와 다르지 않았다. 덕분에 랭은 한중 올스타전에서도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

사진 제공 = KBL

바스켓코리아 / 김영훈 기자 kim95yh@baske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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