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와 함께 했기에 행복했던 샤킬 오닐 - 1

Jason / 기사승인 : 2011-06-30 06: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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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 '공룡 센터'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니 그 이상으로 리그를 호령한 샤킬 오닐이 지난 2일(이하 한국시간) 은퇴를 선언했다. 오닐은 트위터를 이용하여 자신의 팬들에게 먼저 알리고 싶었다면서 자신의 은퇴에 관하여 언급했고, 정든 코트를 떠났다.

오닐은 19년 동안 정규시즌에서 23.7점, 10.9리바운드, 2.5어시스트, 2.3블록을 기록했고, 통산 4회 우승을 차지했다. 여기에 한 번의 정규시즌 MVP, 세 차례의 파이널 MVP를 수상했다. 이 밖에도 올 NBA팀에 15회나 이름을 올렸으며, 이 중 퍼스트팀에 8회나 선정되는 등 그야말로 최고의 선수생활을 보냈다. 오닐은 올스타전에서도 빛났다. 오닐은 특유의 입담과 춤 실력을 유감없이 드러내며 팬들을 즐겁게 했고, 올스타들의 공식 연습 때는 르브론 제임스, 드와이트 하워드와 댄스 배틀을 벌이며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오닐은 올스타전에 15회나 선발되었으며, 이 중 세 차례나 올스타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입담도 가히 최고였다. 오닐은 커리어 내내 재미난 입담으로 팬들을 즐겁게(?) 했다. 오닐은 앞도적인 실력을 뽐내고 있는 자신을 향해 'LCL(Last Center Left)', 'MDE(Most Dominent Ever)' 그리고 'Big Aristoteles'라며 자신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오닐은 빼어난 작명실력을 보이기도 했다. 오닐은 클러치 상황에 유독 강한 폴 피어스에 'The Truth'라는 닉네임을 만들어주었고, 돌파에 능한 팀 동료였던 드웨인 웨이드에게는 'The Flash'라는 닉네임을 지어주기도 했다. 이 밖에도 2002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상대팀이었던 새크라멘토 킹스를 말이 많다하여 '새크라멘토 퀸스'라 부르기도 하는 등 오닐의 입은 커리어 내내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오닐 혼자만의 공은 아니었다. 특히 우승을 논함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오닐은 자신의 앞도적인 실력만큼이나 그에 준하는 동료들과 함께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오닐은 마이클 조던이 은퇴한 이후 시대를 호령한 가드들과 호흡을 맞췄다. 오닐의 동료들은 특출한 기량을 앞세워 오닐과 함께 소속팀을 우승권으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페니 하더웨이를 필두로 코비 브라이언트, 드웨인 웨이드가 대표적. 세 선수는 오닐과 함께 파이널 무대를 직접 경험했고, 이들 중 브라이언트와 웨이드는 오닐과 함께 우승을 차지하는 등 그야말로 남부럽지 않은 커리어를 보내기도 했다.

비록 선수생활 말년에는 오닐이 전과 같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에 전과 같은 활약은 이어가지 못했지만, 동료들 복은 여전히 엄청났다. 피닉스 선즈에서는 스티브 내쉬,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서는 르브론 제임스. 끝으로 보스턴 셀틱스에서는 레이 앨런과 폴 피어스까지 오닐은 커리어 시작부터 은퇴 순간까지 특급 가드내지는 특급 스윙맨과 함께 했다.

이에 오닐의 은퇴를 맞아 늦었지만, 그의 동료와 함께 했던 그의 커리어를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그 첫 번째 순서로 오닐의 올랜도 시절을 살펴봤다.

with 페니 하더웨이 in 올랜도 매직
오닐과 함께했던 첫 슈퍼스타 메이트.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 페니 하더웨이다. 하더웨이의 본명은 앤퍼니 하더웨이.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Penny'로 잘 알려져 있다. 흔히 올랜도의 등번호 '1번'하면 트레이시 맥그레이디가 먼저 떠오르겠지만, 맥그레이디 이전에 올랜도의 '1번'은 페니였다. 하더웨이는 201cm의 큰 신장을 지닌 포인트가드로 오닐에게 적재적소에 엔트리패스를 넣어줄 수 있었다. 게다가 개인기까지 특출해 수비를 자신으로 몰 수 있는 기량을 지닌 불세출의 선수였다.

오닐은 페니 하더웨이와 함께 지난 1993-1994 시즌부터 1995-1996 시즌까지 세 시즌 동안 손발을 맞추며 올랜도를 전국구팀으로 만들었다. 특히나 오닐은 하더웨이와 함께 팀을 창단 처음으로 동부 컨퍼런스 우승트로피를 안겼으며, 파이널에 오르며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기도 했다.

오닐은 1992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올랜도 매직에 지명되며 화려한 NBA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때 당시 올랜도는 오닐의 원맨팀이나 다름없었다. 오닐은 루키시즌부터 평균 23.4점, 13.9리바운드, 3.5블록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지만 팀이 승리하기에는 오닐 혼자서 역부족이었다.

이러했던 올랜도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올랜도는 시즌 종료 후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하며 또 한 명의 대형신인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당시 1순위 후보로 꼽혔던 선수는 크리스 웨버. 그러나 올랜도에는 오닐이라는 빅맨이 있기 때문에 파워포워드인 웨버보다는 가드타입의 선수를 원했다. 결국 올랜도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트레이드로 낮은 지명권인 3번 픽을 가져왔고, 이 지명권으로 페니 하더웨이를 지명했다. 하더웨이는 드래프트 당시 최고의 가드였기 때문에 오닐의 단짝으로 안성맞춤이었다.

하더웨이는 데뷔 당시 82경기에 모두 출장하여 평균 16점, 5.4리바운드, 6.6어시스트, 2.3스틸을 기록하며 다재다능함을 과시했다. 오닐도 하더웨이라는 날개를 달자 골밑에서 본연의 플레이에 보다 충실할 수 있게 됐다. 올랜도는 오닐과 하더웨이의 활약을 앞세워 드디어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상대는 레지 밀러가 버티고 있는 난적 인디애나. 결국 올랜도는 인디애나에게 시리즈 스코어 3대 0으로 패하며 다음 시즌을 기약해야 했다.

하지만 이후 절치부심한 탓일까? 젊은 듀오인 오닐과 하더웨이는 팀 득점의 절반을 합작하며 팀을 이끌기 시작했다. 오닐과 하더웨이는 정규시즌에서 평균 50.2점, 15.8리바운드, 9.9어시스트를 합작하며 팀을 두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그러나 이 기세는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닐과 하더웨이를 앞세운 올랜도는 보스턴과의 1라운드를 어렵지 않게 치른 뒤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마이클 조던이 복귀한 시카고 불스를 맞이한다. 올랜도는 시카고와 접전 끝에 시리즈 스코어 4대 2로 시카고를 물리치고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다. 당시 시리즈가 끝난 뒤 조던은 오닐에게 "이제 너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동부 결승에서는 전 시즌에 자신들을 탈락시켰던 인디애나를 만나게 된다. 올랜도는 인디애나와 시리즈 최종전인 7차전까지 치르며 끈질긴 승부를 펼쳤고, 드디어 파이널에 오르며 올랜도의 전성시대를 예고했다. 비록 파이널에서는 하킴 올라주원과 클라이드 드렉슬러의 휴스턴 로케츠를 맞아 단 한 경기도 따내지 못했지만, 시즌 내내 오닐과 하더웨이가 보여준 플레이는 올랜도를 리그를 대표하는 팀으로 만들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건 듀오인 오닐과 하더웨이의 콤비는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했다. 오닐이 FA자격을 획득하며 LA 레이커스로의 이적을 택했기 때문. 오닐이 레이커스로 이적하면서 90년대 중반을 수놓았던 콤비플레이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무엇보다 비극적이었던 것은 하더웨이의 플레이를 볼 수도 없었다. 하더웨이는 데뷔 초의 강한 임팩트를 커리어 내내 이어가지 못했다. 그의 앞을 가로 막았던 것은 다름 아닌 부상. 하더웨이는 커리어 내내 무릎 부상에 신음해야 했고, 올랜도에서의 짧았던 시기를 끝으로 그의 화려한 플레이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바스켓코리아 이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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