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Remembrance] 다시 뭉치게 된 'R&R' 앨런과 루이스

Jason / 기사승인 : 2012-07-16 07: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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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앨런과 라샤드 루이스가 디펜딩 챔피언인 마이애미에 합류했다.

두 선수는 이미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의 전신인 시애틀 슈퍼소닉스에서 한솥밥을 먹은 바 있다. 앨런과 루이스는 당시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 쌍포를 구축하며 팀을 일곱 시즌 만에 컨퍼런스 세미파이널로 이끌기도 했다.

앨런은 보스턴과의 2년 계약이 종료되면서 FA가 됐고, 본인의 행선지로 마이애미를 선택했다. 앨런이 마이애미로 향하자 많은 팬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앨런은 두 시즌 연속 보스턴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마이애미로 이적했기 때문. 심지어 보스턴이 제시한 조건이 마이애미보다 훨씬 나았음에도 불구하고 앨런은 자신의 커리어를 마무리하기 위해 남쪽바다로 향했다.

한편 루이스는 워싱턴 위저즈에서 뉴올리언스 호네츠로 트레이드된 후 사면룰에 의거하여 방출됐다. 루이스는 사면방출이 됐기 때문에 몸값에 큰 욕심이 없는 상태였고, 끝내 앨런이 있는 마이애미로 새둥지를 틀었다.

앨런과 루이스는 미국의 북서쪽인 시애틀에서 만난 뒤 6년여의 세월을 뒤로하고, 반대편인 남동쪽 마이애미서 재회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두 선수는 2009, 2010 플레이오프에서 연거푸 만나 자웅을 겨루기도 했다. 그리고 각각 한 번씩 팀을 시리즈 승리로 이끌었지만, 끝내 파이널에서 코비 브라이언트가 이끄는 LA 레이커스에 분패한 바 있다.

이처럼 앨런과 루이스는 다시 뭉치기까지 여러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앨런과 루이스의 길고 길었던 여정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시애틀에서의 잠 못 이루는 밤
팀에 먼저 들어온 것은 루이스였다. 루이스는 1998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32번에 지명되며 시애틀 선수로 거듭났다. 당시 루이스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유망주에 불과했다. 루이스는 데뷔시즌에 단 2.4점을 올리는데 그쳤다. 그러나 루이스의 성장은 계속됐다. 루이스는 2002-2003 시즌에는 무려 18.1점 6.5리바운드를 올리며 준수한 스몰포워드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그 때 앨런이 트레이드로 시애틀에 합류했다. 당시 시애틀은 프랜차이즈 스타인 게리 페이튼과 데스먼드 메이슨을 매물로 밀워키 벅스로부터 레이 앨런을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당시 시애틀은 팬들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아야했다. 팀의 전부나 다름없었던 페이튼을 내보냈기 때문. 하지만 앨런의 합류는 팀의 재도약을 알리는 청신호였다.

이로써 시애틀은 외곽에 최고 슈터 둘로 원투펀치를 꾸렸다. 시애틀은 이들과 함께 다시 승리를 향해 쾌속항진을 이어나갔다. 2004-2005 시즌에는 스티브 내쉬가 이끄는 피닉스 선즈와 함께 공격농구의 선봉에 서며 리그에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두 팀이 맞붙는 경기에서는 매번 110점이 넘는 고득점경기가 펼쳐져, 공격농구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다.

당해 시즌 시애틀은 앨런과 루이스는 올스타에 선정되는 경사를 누렸다. 앨런과 루이스의 활약으로 시애틀은 두 시즌만에 플레이오프에 오르며 시애틀에 잠 못 이루는 밤을 선사했다.

하지만 시애틀은 플레이오프에서는 한계를 드러냈다. 시애틀은 서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팀 던컨의 샌안토니오를 넘어서지 못했다. 던컨은 MVP 시즌을 보내고 있었고, 그의 곁에는 막 성장하기 시작한 마누 지노빌리와 토니 파커가 있었다. 시애틀은 다른 선수들은 제쳐두고라도 던컨을 상대해내지 못했다. 시애틀은 샌안토니오라는 벽에 막히며 아쉽게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이후 시애틀은 플레이오프에 나서지 못했다. 팀의 성적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급기야 2006-2007 시즌에는 31승을 더하는데 그쳤다. 그리고 시애틀은 2007 드래프트에서 2순위 지명권을 획득했다. 그리고 케빈 듀랜트를 선발했고, 듀랜트를 리빌딩의 기수로 삼았다.

각자의 길로 떠난 뒤 외나무다리에서의 조우
앨런과 루이스는 보스턴 BIG3가 결성되던 그 해 여름 각 자의 길을 가게 됐다. 시애틀은 전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플레이오프에 나서지도 못했다. 결국 시애틀은 샌안토니오 스퍼스 프런트 출신인 샘 프레스티를 단장직에 앉히며 리빌딩을 선언했다. 시애틀은 07 드래프트에서 텍사스 대학 출신의 듀랜트를 지명했다. 자연스레 'R&R 쌍포'가 해체되는 수순을 걸었다.

먼저 앨런이 팀을 떠났다. 앨런은 보스턴으로 트레이드되며 폴 피어스와 함께 한솥밥을 먹게 됐다. 당시 시애틀은 앨런을 보내는 대가로 제프 그린(현 보스턴), 월리 저비악, 딜런테 웨스트(현 댈러스)를 받아들였다. 이후 보스턴은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로부터 케빈 가넷을 트레이드해오며 BIG3를 구축했다.

앨런은 보스턴에서 주전 슈팅가드 자리를 굳건히 하며 케빈 가넷, 폴 피어스와 함께 첫 우승반지를 손에 넣었다. 이후에도 앨런은 꾸준히 셀틱스의 일원으로 팀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앨런은 보스턴에서 통산 3점슛 기록을 갈아치우기도 했다. 당시 TD가든에 운집했던 보스턴의 팬들은 앨런의 대기록 작성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앨런의 도전은 계속됐다. 앨런은 BIG3의 일원인 가넷, 피어스와는 물론이고 플레이오프에서 물오른 기량을 선보인 레존 론도와 함께 또 한 번 반지사냥에 나섰다. 앨런은 2009 플레이오프 14경기에 나서 평균 18.3점을 올리며 피어스와 함께 팀을 잘 이끌었다. 가넷이 부상으로 빠진 상황이었지만, 앨런은 이에 개의치 않고 연일 맹활약을 펼쳤다.

앨런의 활약상은 셀틱스의 일원과 함께 2010 플레이오프에서도 계속됐다. 당시 보스턴은 드웨인 웨이드의 마이애미, 르브런 제임스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드와이트 하워드의 올랜도를 연거푸 격파하며 팀을 두 시즌 만에 파이널 무대에 올려놨다. 하지만 코비 브라이언트의 LA 레이커스를 넘어서는데 실패하며 안타깝게 우승에 실패했다.

이에 반해 루이스는 앨런과 달리 FA자격을 취득하며 팀을 떠났다. 루이스는 올랜도와 무려 1억 달러가 넘는 대형계약을 체결하며 플로리다로 건너갔다. 공식적으로는 앨런의 트레이드가 먼저 일어났지만, 당시 루이스가 팀을 떠날 것이라는 중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루이스가 먼저 팀을 떠났다고 표현하는 것도 틀리진 않아 보인다.

루이스의 올랜도에서의 행보는 순탄했다. 골밑에는 하워드가 있었고, 그와 함께 포워드 포지션을 책임진 히도 터컬루도 포진하고 있었다. 루이스는 이적 첫 해 전경기에 나서 평균 18.2점 5.4리바운드 2.4어시스트를 기록했다. 3점슛 성공률도 40%를 넘기며 하워드에게 몰린 수비를 분산시키는데 크게 공헌했다.

단연 하이라이트는 2008-2009 시즌이었다. 당시 올랜도는 동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앨런이 속한 보스턴과 마주쳤다. 비록 가넷이 부상으로 결장한 보스턴이었지만, 보스턴은 끈질겼다. 앨런은 시리즈 내내 피어스와 분전하며 열세인 전력에도 시리즈를 최종전까지 모는 저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올랜도는 이 때 동부 컨퍼런스 챔피언에 오르며 파이널에 올랐지만, 브라이언트의 레이커스에게 패해 최종우승에는 실패했다.

루이스와 앨런은 이듬해 플레이오프에서 또 만났다. 두 선수가 속한 올랜도와 보스턴은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재회하며 질긴 인연(?)임을 과시했다. 하지만 당시 보스턴의 활화산과 같은 기세를 올랜도가 당해낼 순 없었다. 루이스는 그해 플레이오프에서 평균 12.9점에 그치며 존재감을 잃어갔다.

마이애미에서의 재회
앨런은 보스턴에서의 화려했던 다섯 시즌을 정리하며, 마이애미에 합류했다. 앨런은 2009-2010 시즌이 끝난 후 보스턴과 계약기간 2년에 2,0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으며 보스턴에서 케빈 가넷, 폴 피어스와 커리어를 이어가기로 했다. 팀은 여전히 동부에서 경쟁력이 있었고, 첫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린 동료들과 함께 또 하나의 멋진 드라마를 연출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보스턴 구단은 앨런의 뜻과는 달랐다. 무엇보다 지난 2011-2012 시즌을 기점으로 앨런의 팀내 입지가 많이 줄어들었다. 앨런이 부상으로 코트를 비운 사이 수비가 좋은 에이브리 브래들리가 앨런의 빈자리를 파고들었다. 론도의 큰 성장도 앨런에겐 좋지 않았다. 공공연하게 앨런과 론도는 코트 밖에서 충돌을 일으킨 바 있다. 보스턴 코칭스탭도 이를 중재하려 했지만, 앨런에겐 적잖은 앙금으로 남았다.

앨런은 보스턴에서 마지막 2년 동안 45%에 육박하는 고감도의 3점슛을 연일 꽂았음에도 불구하고 설자리를 잃어갔다. 심지어 이번 플레이오프에서는 발목에 뼛조각이 돌아다니는 부상을 안고 있음에도 묵묵히 코트 위에서 본인의 역할을 다해냈다. 하지만 팀은 끝내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마이애미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FA가 됐다.

결국, 앨런은 보스턴이 제안한 조건을 뿌리치고 마이애미로 향해 '히트 BIG3'의 후원자가 됐다. 제임스는 SNS로 꾸준히 앨런이 히트로 오길 피력했고, 웨이드도 이에 동참했다. 궁극적으로 마이애미의 팻 라일리 사장이 앨런과의 미팅에서 제시한 청사진이 앨런에게 어필이 되면서 앨런은 자신의 사실상 마지막팀으로 마이애미를 선택했다.

반면 루이스는 반짝였던 올랜도 시절을 뒤로하고 지난 2010년 12월, 워싱턴으로 트레이드됐다. 당시 올랜도는 루이스를, 워싱턴은 길버트 아레나스라는 고액계약자를 안고 있었다. 결국 두 팀은 개편을 위해 두 선수를 맞바꾸었다. 그러나 이 트레이드는 양 팀 모두에게 실패작으로 기억되고 있다. 루이스와 아레나스 모두 쇠퇴기를 걷고 있는 선수였고, 팀에 보탬이 되지도 못했다.

루이스의 워싱턴에서 시즌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루이스는 단 28경기밖에 나서지 못했다. 기록도 처참했다. 루이스는 평균 7.8점 3.9리바운드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게다가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결장하면서 팀내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끝내 워싱턴은 루이스를 트레이드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루이스는 트레이드된 지 만 2년이 되지 않아 다시 트레이드됐다. 워싱턴은 에메카 오카포와 트레버 아리자를 받는 조건으로 뉴올리언스로 루이스를 보냈다. 이후 루이스는 트레이드된 지 열흘 만에 방출됐다. 뉴올리언스는 지난 2012 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권을 행사해 앤써니 데이비스를 선발하며 리빌딩의 시작에 있는 팀. 루이스가 뉴올리언스에서 어울릴 수가 없었다.

이후 루이스는 얼마 전 앨런이 합류한 마이애미로 합류했다. 루이스의 고교시절 코치였던 제럴 하트필드는 "레이 앨런과 가깝기 때문에, 그가 히트행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말했다. 또한 앨런의 모친과 루이스의 모친이 친분이 다분해 이 또한 간접적으로 영향이 미쳤을 수도 있다.

히트에서 이들의 역할은?
마이애미에서 두 선수의 위치는 시애틀에서의 위치와 많이 다르다. 앨런이 꾸준히 올스타 클래스를 유지해온 반면 루이스는 그러지 못했다. 물론 두 선수의 역할은 똑같다. BIG3에게 모이는 수비를 이용해 외곽에서 양질의 3점슛을 터트려 주기만하면 된다. 앨런과 루이스 모두 벤치에서 BIG3의 뒤를 잘 받혀야 하기 때문이다.

앨런은 웨이드의 백업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 웨이드와 함께 코트 위에 있으며 제임스의 패스를 받아먹을 것으로 여겨진다. 앨런의 3점슛은 여전히 가치가 큰데다 앨런이 코트 위에 있는 것만으로 상대는 제임스에게 협력수비를 가하는데 주저하게 만들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반해 루이스는 올랜도 시절처럼 주로 파워포워드 포지션에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앨런처럼 다수의 시간동안 코트 위에 있진 못하겠지만, 루이스가 건강하기만하다면 그래도 공격에서는 본연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마이애미는 디펜딩 챔피언의 전력에다 앨런이라는 최고 슈터를 더하면서 전력을 더욱 업그레이드시켰다. 마이애미는 3점슛이 약점인 팀. 즉, 앨런이 들어오면서 팀은 큰 시너지를 얻을 전망. 가뜩이나 밀러의 건강상태를 염려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앨런의 가세가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시간과 사연을 안고 오랜 만에 조우한 앨런과 루이스가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 갈 지 기대된다.

이재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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