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2-13 NBA] ‘전설들의 퇴장’ 제이슨 키드 & 그랜트 힐 … 1)제이슨 키드

Jason / 기사승인 : 2013-07-12 1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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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이재승 기자] 이번 시즌을 끝으로 많은 NBA팬들은 또 다른 전설과 작별을 고해야만 했다.

그들은 제이슨 키드와 그랜트 힐. 이들 둘은 지난 1994 드래프트를 통해 나란히 NBA에 발을 들였다. 키드와 힐은 나란히 드래프트 2, 3순위로 지명되며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당시 1순위는 밀워키 벅스의 몫이었다. 밀워키는 글렌 로빈슨을 지명했다. 이어 댈러스 매버릭스와 디트로이트 피스턴스는 나란히 키드와 힐을 호명했다. 향후 약 20년간 NBA를 호령한 대형신인들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이들의 등장은 그야말로 많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키드는 댈러스에서 저말 매쉬번, 짐 잭슨과 하께 ‘3J'를 구성하며 댈러스를 서부 컨퍼런스의 강호로 이끌었다. 힐은 디트로이트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하며 ’포스트 조던‘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그 결과, 이들은 신인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NBA 역사상 몇 안 되는 공동 수상이었다.

공교롭게도 키드와 힐은 같은 해에 데뷔해서 같은 해에 은퇴하게 됐다. 키드와 힐은 공이 4팀에서 뛰며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특히나 마지막 팀에서는 단 1시즌만을 소화했다. 키드는 뉴욕 닉스와 계약당시 3년 계약을 맺었고, 힐의 계약기간은 2년이었다.

더욱이 아쉬운 것은 다가오는 시즌부터 이들의 플레이를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이에 키드와 힐이 달려온 19년간의 커리어를 간략하게나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1. ‘왕조 구축’ 2연패에 성공한 마이애미 히트
2. 샌안토니오의 멋지고 아름다웠던 패배
3. 부진한 전통의 명가들, 레이커스와 보스턴 … 플레이오프에서 해맨 덴버와 클리퍼스
4. ‘전설들의 퇴장’ 제이슨 키드 & 그랜트 힐
5. ‘새 시대는 우리의 무대’ 폴 조지 & 스테픈 커리
6. 유독 많았던 감독들의 교체
7. 수상자 정리

'Mr. Triple-Double' 제이슨 키드
존 스탁턴, 게리 페이튼의 뒤를 이은 포인트가드의 적통, 바로 키드다.

수상경력
올스타 10회(96, 98, 00, 01, 02, 03, 04, 07, 08, 10)
1994-1995 시즌, 신인상
이 달의 선수상 3회, 이 주의 선수상 17회
NBA 퍼스트팀 4회(99, 01, 02, 06)
NBA 세컨드팀 5회(00, 03, 04, 05, 07)
어시스트 타이틀 5회(99, 00, 01, 03, 04)
NBA 스포츠맨십 어워드 2회 (12, 13)
올림픽 챔피언 2회(2000, 2007) - 국제대회 무패기록

댈러스 13.6점 5.9리바운드 8.7어시스트
키드는 저말 매쉬번과 짐 잭슨이 포진하고 있는 댈러스에서 첫 발을 내디뎠다. 키드는 매쉬번, 잭슨과 함께 '3J를 구성했다. 이들 트리오가 펼치는 공격적인 농구는 그야말로 센세이션했다. 매쉬번과 잭슨은 당시 촉망받는 스윙맨이었다. 하지만 댈러스는 이들을 한데 엮을만한 가드가 부족했다.

그 적임자가 바로 키드였다. 키드를 영입한 효과는 바로 드러났다. 댈러스는 키드가 합류한 직후 무려 23승을 더했다. 댈러스는 전년도에 단 13승밖에 올리지 못했지만, 키드의 합류와 동시 36승을 일궈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매쉬번과 잭슨의 득점기록도 대폭 상승했다. 매쉬번과 잭슨은 키드합류 이후 무려 49.8점을 합작했다.

키드는 2년차부터 확실한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키드는 그 해 올스타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비록 팀 성적은 매쉬번의 결장빈도가 높아지면서 떨어졌지만, 키드의 가치는 점차 치솟았다.

그러나 활화산과 같은 공격력을 내뿜었던 '3J'는 이듬해 해체수순을 밟았다. 이유는 바로 여자문제. 키드와 잭슨은 토니 블랙스턴과 삼각관계에 빠졌고, 이는 팀의 분위기를 헤치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결국, 댈러스는 이들을 조율하지 못했고, 끝내 차례로 트레이드하며 '3J'와 작별을 고했다.

피닉스 14.4점 6.4리바운드 9.7어시스트
'3J'의 해체로 키드가 향한 곳은 피닉스 선즈였다. 댈러스는 키드를 피닉스로 트레이드했다. 피닉스의 키드 영입은 대성공이었다. 당시 피닉스는 찰스 바클리의 시대를 종식하고, 새로운 팀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기존의 케빈 존슨에 키드가 더해지면서, 피닉스는 빠른 농구를 펼치며 팬들을 불러 모았다(이 때 이들의 백업가드가 스티브 내쉬였다).

피닉스는 키드의 합류이후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키드에게 플레이오프의 벽은 높았다. 키드는 페이튼이 이끄는 시애틀을 맞아 상당히 고전했다. 키드는 해당 시리즈에서 평균 12점, 9.8어시스트, 6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분전했지만 페이튼의 벽은 높았다. 페이튼은 평균 25.4점, 9어시스트 5.4리바운드를 올리며 한 수 위의 기량을 선보였다.

이후 키드는 피닉스를 이끌 새로운 태양으로 자리를 잡았다. 존슨이 부상으로 코트를 오가는 사이 키드의 존재감은 더욱 빛이 났다. 새로이 합류한 안토니오 맥다이스, 클리포드 로빈슨 등과 함께 팀을 잘 이끌었다. 피닉스는 당해 시즌 56승을 거두는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이때부터 키드의 '빅맨 징크스'는 시작됐다. 키드가 이끄는 피닉스는 트윈타워를 구축한 샌안토니오에 아쉽게 패하고 말았다. 피닉스는 데이비드 로빈슨과 팀 던컨에게 골밑을 내줬고, 피닉스는 이 격차를 전혀 좁히지 못했다.

키드의 올스타 빅맨 징크스
1997-1998 샌안토니오 - 데이비드 로빈슨 & 팀 던컨
1998-1999 포틀랜드 - 라쉬드 월라스
1999-2000 레이커스 - 샤킬 오닐
2000-2001 새크라멘토 - 크리스 웨버
2001-2002 레이커스 - 샤킬 오닐 (파이널)
2002-2003 샌안토니오 - 팀 던컨 (파이널)
2003-2004 디트로이트 - R & B 월라스
2009-2010 샌안토니오 - 팀 던컨


이듬해인 1998-1999 시즌, 키드는 경기당 10.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키드의 생애 첫 어시스트 타이틀이었다. 게다가 NBA 퍼스트팀과 디펜시브 퍼스트팀에도 입성하며 키드의 전성시대를 예고케 했다. 이어 1999-2000 시즌에도 평균 10개가 넘는 어시스트를 보태며 2시즌 연속 어시스트왕에 등극했다.

그러나 피닉스는 플레이오프에선 번번이 미끄러졌다. 피닉스는 '스타 군단'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를 맞아 시리즈 스코어 3대 1로 패했다. 공교롭게도 이 때 당시 포틀랜드의 식스맨은 짐 잭슨이었다.

피닉스는 급기야 앤퍼니 하더웨이를 영입했다. 그 유명한 '백코트 2000'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키드와 하더웨이는 보는 이들을 즐겁게 만드는 농구를 펼쳤다. 하지만 부상이 결정적이었다. 그럼에도 키드의 피닉스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샌안토니오를 넘어서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그 다음 상대였다. 상대는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가 이끄는 LA 레이커스(당시 우승팀)였다. 키드는 또 한 번 빅맨 징크스에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당시 오닐은 시리즈 평균 30.2점 16.2리바운드를 올리며 피닉스의 인사이드를 무자비하게 유린했다.

이어진 2000-2001 시즌, 키드에겐 너무나도 가혹한 시즌이었다. 하더웨이는 부상의 악령에 시달리며 단 4경기밖에 나서지 못했다. 1999 드래프트를 통해 팀에 합류한 2년차 포워드 션 메리언이 있었지만, 한계는 뚜렷했다. 피닉스는 또 한 번 플레이오프에서 주저앉았다. 피닉스는 크리스 웨버가 이끄는 새크라멘토 킹스에 패하고 말았다. 키드는 시즌이 끝난 후 뉴저지 네츠로 트레이드되기에 이른다.

뉴저지 14.6점 7.2리바운드 9.1어시스트
키드의 뉴저지(현 브루클린) 행은 다소 급작스러웠다. 이유는 키드의 사생활 탓이었다. 키드는 아내인 주마나 키드를 폭행한 혐의로 입건됐다. 이를 이유로 피닉스는 키드를 과감히(?) 트레이드한 것이다. 뉴저지는 스테판 마버리를 피닉스로 보내고 키드를 영입했다.

키드가 합류한 뉴저지는 한 순간에 업그레이드 됐다. 뉴저지는 키드가 합류한 2001-2002 시즌에 무려 52승을 거뒀다(전년도 26승). 키드는 다시 NBA 퍼스트팀은 물론 디펜시브 퍼스트팀에 자리매김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승승장구했다. 서부를 벗어난 탓이었을까? 키드는 팀을 동부 컨퍼런스 챔피언으로 견인하며, 팀을 사상 첫 파이널로 인도했다.

그러나 파이널에서의 일전은 쉽지 않았다. 당시에는 ‘서부 우승=NBA 우승’이란 공식이 있었을 정도로 동서 간 전력 차가 현격했다. 키드도 이를 극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키드는 생애 첫 파이널에서 평균 20.9점, 9.7어시스트, 7.2리바운드로 트리플더블급 활약을 펼쳤지만, 레이커스 앞에선 역부족이었다. 뉴저지는 첫 파이널에서 스윕으로 물러나며, 레이커스 3연패의 희생양이 됐다.

파이널에서의 패배로 뉴저지는 골밑 보강에 열을 올린다. 뉴저지는 키스 밴 혼을 내주며, 디켐베 무톰보를 영입했다. 리처드 제퍼슨의 성장도 한 몫 했다. 뉴저지는 다시금 파이널 무대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상대는 던컨의 샌안토니오. 키드는 2시즌 연속 파이널에서 전천후 활약을 펼쳤지만, 다소 역부족이었다. 샌안토니오를 상대로 2승은 따냈지만, 그 이상의 승리는 없었다.

2003년 여름, 키드는 FA 자격을 얻는다. 많은 팀들이 키드를 노렸는데, 그 중에는 원소속팀은 뉴저지를 필두로 샌안토니오, 댈러스 등 서부의 강호들도 있었다. 키드의 선택은 잔류였다. 뉴저지는 키드의 지휘를 받은 마틴과 제퍼슨을 앞세워 동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 올랐다. 상대는 ‘배드보이스Ⅱ’로 잘 알려져 있는 디트로이트 피스턴스(당해 시즌 우승팀). 뉴저지는 최종전인 7차전까지 치르는 접전 끝에 아쉽게 패했다.

뉴저지는 또 한 번의 변화를 모색한다. 마틴의 덴버 이적으로 골밑에 구멍이 생겼지만, 빈스 카터를 영입하며 새로운 트리오를 구성했다. 공격력은 단연 압권이었다. 문제는 성적이 따라주지 않았다. 뉴저지는 호성적을 거뒀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연일 미끄러졌다. 드웨인 웨이드가 이끄는 마이애미 히트, 르브론 제임스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게 패하며 동부 강자로의 이미지도 퇴색됐다(한편 키드는 사생활에도 큰 문제를 드러냈는데, 문란한 개인사가 다시금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댈러스 8.7점 5.3리바운드 8.2어시스트
키드는 뉴저지 생활에 지쳐 있었다. 결국 자발적으로 트레이드를 요구했고, 키드의 행선지는 친정인 댈러스였다. 트레이드가 터졌을 당시만 하더라도 댈러스가 루즈딜을 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기존의 틀을 깨버리고, 팀의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베테랑가드를 영입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댈러스의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키드가 이전에 보여줬던, ‘키드 효과’는 없었다. 그만큼 그의 전성기도 지났음을 의미했다. 2009-2010 시즌, 키드는 여전한 노익장을 과시했다. 댈러스는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워싱턴 위저즈와의 트레이드로 캐런 버틀러와 브랜든 헤이우드를 데려오며 약점인 포지션을 보강했다. 그 결과 2번시드를 차지하며 플레이오프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상대는 던컨이 이끄는 샌안토니오. 키드가 동으로 가든 서로 가든 항상 키드의 앞을 가로 막는 느낌이었다. 정규시즌 성적으로는 댈러스가 이길 확률이 커 보였다. 그러나 댈러스는 패했다. 키드가 다시금 던컨과 샌안토니오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 무릎을 꿇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기회는 이내 찾아왔다. 대망의 2010-2011 시즌, 키드는 노비츠키와 함께 감격의 첫 우승에 성공했다. 댈러스는 플레이오프 진입 당시만 하더라도 탈락이 유력한 팀으로 꼽혔지만, 노비츠키와 동료들의 활약으로 서부의 내로라하는 강호들을 연파해 나갔다. 1라운드에서 포틀랜드, 2라운드에서 레이커스, 3라운드에서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그리고 파이널에서는 BIG3의 마이애미까지 물리쳤다.

당초 파이널에서는 마이애미의 우승을 점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댈러스가 매치업에서 너무나도 불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댈러스는 노비츠키의 꾸준한 활약과 제임스의 부진(?)으로 말미암아 프랜차이즈 첫 우승배너를 걸었다. 심지어 한 때 시리즈 스코어에서 2대 1로 뒤져있었지만, 이후 내리 3연승을 거두며 우승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키드의 17년 커리어에 가장 큰 감동이었다.

(댈러스는 2006년에 파이널에 올라 마이애미에 패한 바 있다. 당시 댈러스의 주축은 노비츠키, 조쉬 하워드, 데빈 해리스였다. 댈러스는 시리즈 첫 2경기를 잡으며 우승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그러나 이후 4연패하며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즉, 댈러스의 주축이 건장했기 때문에, 키드의 댈러스 행에 비관적인 시선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뉴 욕 6.0점 4.3리바운드 3.3어시스트
키드는 지난 2012년 여름, 급작스레 뉴욕 닉스로 떠났다. 댈러스에서 은퇴를 했더라면, 영구결번과 모든 명예를 가져갔겠지만, 키드의 선택은 ‘빅 애플(Big Apple)’이었다.

키드의 뉴욕행은 사뭇 의외였다. 마크 큐반 댈러스 구단주는 키드의 잔류를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당시 큐반 구단주는 휴가 중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때 키드에게 뉴욕의 오퍼가 들어왔다. 키드는 뉴욕행을 뿌리치지 못했다. 댈러스가 다소 짧은 계약기간을 제시한데 비해 뉴욕은 무려 3년 계약을 제시했다. 선수생활을 지속하고 싶었던 키드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모른다(키드는 코치 자리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뉴욕행에 앞서 뉴욕에 집을 구입해 놓았다는 후문).

키드는 뉴욕에서 주전 슈팅가드로 나섰다. 2011년 우승 때 함께했던 타이슨 챈들러는 물론 카멜로 앤써니까지 있었다. 얼핏 보면 챔피언 댈러스와 다를 바가 없었다. 키드는 시즌 초중반까지 뉴욕의 돌풍을 이끌었다. 하지만 키드는 시즌이 진행될수록 체력적인 문제를 호소했다. 그리고 은퇴를 선언했다.

Good bye, Jason Frederick Kidd.

사진 = NBA Mediacent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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