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2-13 NBA] ‘전설들의 퇴장’ 제이슨 키드 & 그랜트 힐 … 2) 그랜트 힐

Jason / 기사승인 : 2013-07-16 12: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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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이재승 기자] 2012-13 시즌을 끝으로 많은 NBA팬들은 또 하나의 전설과 작별을 고해야만 했다.

그들은 제이슨 키드와 그랜트 힐. 이들 둘은 지난 1994 드래프트를 통해 나란히 NBA에 발을 들였다. 키드와 힐은 나란히 드래프트 2, 3순위로 지명되며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당시 1순위는 밀워키 벅스의 몫이었다. 밀워키는 글렌 로빈슨을 지명했다. 이어 댈러스 매버릭스와 디트로이트 피스턴스는 나란히 키드와 힐을 호명했다. 향후 약 20년간 NBA를 호령한 대형신인들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이들의 등장은 그야말로 많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키드는 댈러스에서 저말 매쉬번, 짐 잭슨과 하께 ‘3J'를 구성하며 댈러스를 서부 컨퍼런스의 강호로 이끌었다. 힐은 디트로이트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하며 ’포스트 조던‘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그 결과, 이들은 신인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NBA 역사상 몇 안 되는 공동 수상이었다.

공교롭게도 키드와 힐은 같은 해에 데뷔해서 같은 해에 은퇴하게 됐다. 키드와 힐은 공이 4팀에서 뛰며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특히나 마지막 팀에서는 단 1시즌만을 소화했다. 키드는 뉴욕 닉스와 계약당시 3년 계약을 맺었고, 힐의 계약기간은 2년이었다.

더욱이 아쉬운 것은 다가오는 시즌부터 이들의 플레이를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이에 키드와 힐이 달려온 19년간의 커리어를 간략하게나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1. ‘왕조 구축’ 2연패에 성공한 마이애미 히트
2. 샌안토니오의 멋지고 아름다웠던 패배
3. 부진한 전통의 명가들, 레이커스와 보스턴 … 플레이오프에서 해맨 덴버와 클리퍼스
4. ‘전설들의 퇴장’ 제이슨 키드 & 그랜트 힐
5. ‘새 시대는 우리의 무대’ 폴 조지 & 스테픈 커리
6. 유독 많았던 감독들의 교체
7. 수상자 정리

‘The Gentle’ 그랜트 힐
데뷔 당시만 하더라도 '포스트 마이클 조던'의 선두주자였던 힐. 하지만 그는 불의의 부상으로 많은 시간을 코트 밖에서 보내야 했다. 이후 전성기 때의 기량을 볼 수 없었지만, 그는 다시금 일어섰다. 그랬기에 더욱 많은 박수를 보낸다.

수상경력
NCAA 우승 2회(91, 92)
올스타 7회(95, 96, 97, 98, 00, 01, 05)
1994-1995 시즌, 신인상
이 주의 선수상 6회, 이 달의 선수상 1회
NBA 퍼스트팀 1회(97)
NBA 세컨드팀 4회(96, 98, 99, 00)
NBA 스포츠맨십 어워드 3회(05, 08, 10)
올림픽 챔피언 1회(96)

디트로이트 21.6점 7.9리바운드 6.3어시스트
듀크 블루데블스(NCAA 듀크대학 팀명)를 이끈 장본인이 드디어 디트로이트에서 프로생활의 첫 포문을 열었다. 듀크에서 힐은 팀을 3번이나 파이널 포 결승(91, 92, 91)으로 이끌었다. 그 중에서 2차례 우승(91, 92)을 거머쥐었다. 말 그대로 엘리트였다.

엘리트 포워드의 모터 시티(디트로이트의 별칭) 행은 디트로이트에게 세대교체의 희망이었다. 디트로이트는 아이재아 토마스 이후 팀을 이끌 적임자가 필요했다. 그 선수가 바로 힐이었다. 힐은 데뷔와 함께 팀의 득점을 리드했다. 게다가 루키임에도 올스타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미 4대 메이저 스포츠 역사상 전무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힐은 키드와 함께 신인상을 차지하면서 화려하게 비상했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라는 절로 튀어나올 정도였다. 그만큼 힐의 존재감은 더욱 빛났다. 갓 프로유니폼을 입은 신인임에도 말이다.

이듬해인 1995-1996 시즌에도 힐의 활약은 변함이 없었다. 힐은 정규시즌 80경기 평균 20.2점 9.8리바운드 6.9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전천후 활약을 펼쳤다. 힐은 앨런 휴스턴과 함께 디트로이트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가뜩이나 힐은 중장거리슛이 취약했다. 하지만 휴스턴의 존재로 이러한 단점 또한 상쇄되기 시작했다.

데뷔시즌 팀내 득점과 출장시간을 리드했던 힐은 2년차 들어서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출장시간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올스타 투표에서도 2년 연속 최다득표를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다. 심지어 1차 복귀한 마이클 조던이 버티고 있었음에도 힐은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이어 오프시즌에는 자국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미 대표팀에 금메달을 안겼다.

힐의 성장은 계속됐다. 힐은 조 듀마스(현 디트로이트 단장)와 함께 디트로이트를 54승으로 견인했다. 힐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퍼스트팀에 선정되며 이름값을 떨쳤다. 그러나 정작 팀은 플레이오프에서 고배를 마셨다. 골밑이 다소 취약했기 때문.

결국 디트로이트는 디켐베 무톰보가 이끄는 애틀랜타 호크스에 시리즈 스코어 2대 3으로 패하고 만다. 1998-1999 시즌, 힐의 애틀랜타 징크스는 계속됐다. 힐의 디트로이트는 애틀랜타에 무너졌다. 제리 스택하우스가 합류했음에도 애틀랜타를 넘어서진 못했다.

1999-2000 시즌, 힐에겐 악몽과 같은 시즌이 펼쳐졌다. 힐은 플레이오프에서 다시금 1라운드를 넘어서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심지어 발목통증을 안고 있었음에도 출장을 강행했다. 이 사건은 힐의 커리어에 가장 큰 전환점이 됐다. 그리고 디트로이트와 힐이 갈라서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힐의 발목상태는 심각했다. 뛸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힐은 시즌이 끝난 후 수술대에 올랐다.

올랜도 16.4점 5.0리바운드 3.1어시스트
힐은 올랜도 매직으로 트레이드 됐다. 디트로이트는 힐과 사인 후 올랜도로 보냈다. 트레이드 매물은 벤 월라스와 처키 애킨스였다(트레이드 직후 듀마스 단장은 많은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월라스는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언드래프트 출신이다).

원래 올랜도의 의도는 자유계약시장에 나온 팀 던컨(현 샌안토니오)과 힐을 동시에 영입하는 것이었다. 당시 올랜도 감독이었던 닥 리버스(현 클리퍼스 감독)은 변변찮은 선수가 없이도 팀을 잘 이끌며 '올 해의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리버스 감독은 던컨과 힐을 동시에 품고자 했다.

실제로 던컨의 의중은 올랜도로 기우는 듯 했다. 오죽했으면 휴가 중이었던 데이비드 로빈슨과 그렉 포포비치까지 나서 던컨을 설득하기에 이른다. 이들의 정성에 감명을 받은 던컨은 샌안토니오에 잔류를 선택했다. 계획이 틀어진 올랜도는 토론토 랩터스와의 딜로 트레이시 맥그레이디를 영입하기에 이른다. 비록 던컨을 영입하진 못했지만, 1990년대의 '마이클 조던-스카티 피펜'에 버금가는 듀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기대는 보기 좋게 빚나갔다. 이유는 바로 힐의 부상이었다. 힐은 올랜도에서 대부분 경기를 부상으로 결장해야만 했다. 우수한 실력에 빼어난 성품까지 갖춘 힐이었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많은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몸값은 높은데 정작 활약상이 전혀 없었던 탓이 컸다.

2002-2003 시즌, 올랜도는 맥그레이디를 앞세워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상대는 힐의 친정, 디트로이트. 디트로이트는 탑시드를 거머쥐었고, 이때부터 동부의 강자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다. 올랜도는 맥그레이디를 앞세워 디트로이트를 상대로 선전을 펼쳤다. 올랜도는 시리즈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시리즈 스코어에서 3대 1로 앞섰다. 하지만 올랜도는 리드를 지킬 여력이 없었다. 힐의 도움이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맥그레이디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공교롭게도 힐의 트레이드 매물이었던 월라스는 리그 최고의 수비형 빅맨으로 거듭났다. 연거푸 '올 해의 수비수'에 선정되는가 하면 올스타와 디펜시브팀에도 뽑히는 영예까지 안게 된다. 이에 반해 힐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포스트 조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심지어 2003-2004 시즌에는 단 1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2004-2005 시즌, 힐은 다시금 일어섰다. 맥그레이디는 트레이드로 휴스턴 로케츠로 떠났지만, 힐은 67경기에 나서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힐의 인기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했다. 힐은 빈스 카터와 함께 동부 컨퍼런스 주전 포워드에 선정되며 팬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았다. 스포츠맨십상을 수상하기까지 한다. 그야말로 성공적인 재기였다.

올랜도는 2005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고졸 출신 빅맨인 드와이트 하워드를 지명한다. 올랜도는 서서히 하워드 위주로 팀을 재편하기에 이른다. 올랜도는 전 시즌 팀내 득점 1위였던 스티브 프랜시스를 뉴욕 닉스로 과감히 보내며, 리빌딩에 들어섰다. 이에 올랜도는 힐이 베테랑으로 팀을 끌어주길 바랐을 터. 하지만 힐은 다시금 발목수술을 받게 된다.

피닉스 12.1점 4.7리바운드 3.5어시스트
2007년 여름, 힐은 피닉스 선즈에 새로이 둥지를 틀었다. 무엇보다 피닉스의 의료진이 힐을 어떻게 일으켜 세울지 많은 관심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힐은 피닉스에서 살아나기 시작했다. 전성기의 기량은 없었지만, 대부분의 경기에 출장하며 팀에 힘을 보탰다. 당해 시즌 힐은 스티브 내쉬(현 레이커스), 아마레 스타더마이어(현 뉴욕), 샤킬 오닐(은퇴)과 함께 플레이오프에 나선다.

2008-2009 시즌에는 생애 첫 전경기 출장에 성공했다. 비록 팀은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했지만, 힐의 활약은 꾸준했다. 이어진 2009-2010 시즌에는 커리어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1라운드를 뚫어냈다. 당시 피닉스는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오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 LA 레이커스. 피닉스는 레이커스를 상대로 2승을 따냈지만, 더 이상의 승수를 추가하지 못했다.

이후 피닉스의 행보는 적어도 힐에겐 실망스러웠다. 힐은 계약이 끝난 후 보스턴 셀틱스와 뉴욕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지만, 피닉스와 재계약을 선택했지만 팀은 졸전을 면치 못했다. 2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스타더마이어가 팀을 떠난데 이어 내쉬마저 레이커스로 이적하기에 이른다.

클리퍼스 3.2점 1.7리바운드 0.9어시스트
힐이 클리퍼스에 남긴 활약은 극히 적었다. 애석하게도 힐은 여느 피닉스 출신 동료들처럼 피닉스를 떠나자마자 부상에 신음해야 했다. 그 여파로 힐은 29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클리퍼스가 가파른 연승을 달릴 때도 힐은 정장차림으로 벤치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클리퍼스는 연승에 힘입어 한 때 서부 1위를 질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클리퍼스는 이내 동력을 잃은 비행기처럼 제 페이스를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클리퍼스는 4번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1라운드 상대는 전년도에 만났던 멤피스 그리즐리스. 클리퍼스는 시리즈 첫 2경기를 잡아내며 보기 좋게 치고 나갔다.

확률 상 클리퍼스가 서부 컨퍼런스 준결승에 오를 것이 유력했다. 하지만 클리퍼스는 이후 내리 4경기를 내주며 탈락하고 말았다. 블레이크 그리핀이 부상에 신음한 탓에 골밑전력에서 열세를 띠었다. 힐은 시리즈 마지막 경기였던 6차전에서 4점 4리바운드 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 경기를 끝으로 힐은 NBA 19년 커리어에 종지부를 찍었다.

Good bye, Grant Henry Hill

사진 = NBA Mediacent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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