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켓코리아 = 편집부] 춘천 우리은행 한새가 정규리그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위성우 감독을 필두로 전주원, 박성배 라는 새로운 코칭 스텝 체제를 가동했던 2012-13 시즌, 모든 전문가들과 팬들의 예상을 뒤엎고 통합 우승을 차지했던 우리은행은 지난 시즌 통합 우승에 이어 2014-15 시즌도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통합 3연패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들의 과거를 돌아보며 새롭게 농구 명가로 자리매김 중인 우리은행을 돌아본다.(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여자농구 최초의 실업 팀 ‘상업은행’
우리은행의 시작이었던 상업은행은 여자농구 실업 시대를 알렸던 팀이다. 상업은행은 1958년 여자농구단을 창단했다. 창단 당시 “여자 선수들이 기량이 언제나 고교 수준에 머물 순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들의 의욕을 갖고 농구에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여자농구단을 창단한 상업은행이었다. 창단 후 1년 동안 부침을 겪은 상업은행은 ‘여자농구의 전설’이 된 박신자, 그리고 팀의 버팀목이 되었던 김영자를 영입한 후 전성기를 시작한다. 1959년 10월 전국체전에서 당시 가장 강력한 팀이었던 한국은행에 44-38로 승리하며 차지한 우승은 이후 ‘위대한 역사’의 전주곡에 불과했을 정도이다.
그리고 1960년대를 맞이한 상업은행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박신자를 필두로 강력한 라인업을 구축한 상업은행은 국내 대회를 휩쓸었고, 1963년 2월 20일 당시 일간스포츠가 창간 기념으로 주최했던 ‘박정희 장군배 쟁탈 동남아여자농구대회’에 참가, 1차 대회에서 숙적 일본에게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5회 대회까지 쭉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렇게 1960년부터 시작된 상업은행 전성시대는 ‘세계’로 뻗어갔다. 1994년 4월 페루에서 열린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 단일팀으로 참가한 상업은행은 5승 2패라는 기적과도 같은 성적을 만들었다. 베스트 파이브에 이름을 올린 박신자를 비롯해 김영자와 신항대 트리오가 만든 극적인 드라마였다. 세계가 놀랐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대로 박신자가 심판들이 선정하는 베스트 파이브에 오르는 기쁨도 함께 했다.
이후에도 상업은행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1967년까지 국내 모든 대회를 석권하며 전성기를 열었다. 박신자, 김영자, 신항대 트리오에 김추자가 가세한 상업은행을 이길 팀은 전무했다.
‘천하무적’ 상업은행, 그리고 최초의 국제경기 ‘은메달’
그렇게 국내무대에서 ‘천하무적’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된 상업은행은 1967년 제 5회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한다. 그리고 은메달이라는 믿기 힘든 성적표를 받아들고 귀국한다. 체코전에서 김추자의 극적인 레이업으로 67-66으로 승리한 상업은행은 이탈리아에 75-56으로 낙승을 거두었고, 유고슬라비아에 78-71로 승리했다. 그리고 은메달이라는 값진 결과물을 얻어냈다. 상업은행, 아니 대한민국 여자농구가 국제대회에서 처음 건 ‘메달’이었다. 그리고 이 은메달은 2년이 지난 1999년 한국일보가 20세기 한국스포츠 20대 사건 중 하나로 선정했다. 사건이고 기적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 박신자는 대회 기자단 투표에서 총 56표를 얻어 베스트 파이브 중 단연 으뜸인 1위에 올랐다.
하지만 박신자는 이듬해(1967년) 12월 2일 한국전력과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자신을 만천하에 알렸던 ‘농구’와의 인연을 마무리했다. 이전부터 은퇴를 맘에 두고 있었던 박신자는 주변의 만류로 은퇴를 할 수 없었지만, 한국전력과의 경기를 끝으로 정들었던 코트와 이별을 고한 것이다. 그리고 상업은행은 침묵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박신자의 은퇴, 그리고 20년간의 ‘암흑기’
1967년 박신자를 은퇴시킨 상업은행은 전성기를 마감했고, 이후 20년 가까이 어둠의 시기를 지나게 된다. 상업은행 독주 등을 이유로 대한농구협회가 실시한 드래프트 제도 등과 맞물려 선수 수급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 제도로 인해 여자금융 팀은 선수들 사이에 ‘되도록 피하고 싶은’ 팀으로 인식되었다. 그 결과 박찬숙의 태평양화학과 김영희의 한국화장품이 여자농구를 이끌었고, 상업은행은 중위권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1970년대에는 72년 제10회 춘계여자실업리그 우승이 유일한 우승의 경험이었다. 결국 상업은행은 안타까운 10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1980년대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농구계는 1983년 겨울스포츠 정착을 위해 농구대잔치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선수층에서 다른 팀과 여실히 달랐던 탓에 성적이 신통치 못했다. 중위권을 맴도는 정도였다. 당시 태평양화학과 한국화장품은 여전히 ‘잘나가던’ 팀들이었다. 상업은행은 최애영이라는 걸출한 가드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높이와 기술 등을 갖춘 상위팀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10년 동안 1위를 차지한 대회는 최애영이 무릎 부상을 무릅쓰고 뛰었던 1985년 제 66회 전국체전이 전부일 정도였다. 그렇게 상업은행은 1960년대 최전성기를 지난 이후 20년 동안 암흑기를 벗어나지 못한 채 역사를 써갔다.
계속되는 부진, ‘부활’의 신호탄
1990년대에도 상업은행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상업은행의 부진과 함께 여자농구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농구대잔치에서는 남자 게임의 오프닝 게임으로 열릴 정도였다. 그리고 IMF를 맞으면서 해체도 잇따랐다. 신용보증기금과 SK증권 등이 해체를 결정했다. 여자농구의 위기였다. 여자농구계는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결과물은 1998년 시작된 여자프로농구(WKBL)였다.
상업은행은 당시 한일은행과 합병하면서 한빛은행으로 재탄생했다. 그리고 지난 28년간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는 신호탄을 쏘았다. 1999년 한빛은행배 99년 여자프로농구에서 베이징 수도강철을 물리치며 결승전에 오른 것. 1985년 전국체전 이후 15년 만에 우승에 도전하는 상업은행, 아니 한빛은행이었다. 하지만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다. 당시 정선민(현 부천 하나외환 코치)을 앞세운 신세계에게 0대2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하지만 15년 만에 만들어낸 준우승이라는 성적은 무엇보다 값진 결과물이었고, 이후 농구명가로 재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드디어 정상, 그리고 ‘우리은행’
1999년 준우승이라는 의미 있는 성적을 만든 한빛은행, 아니 우리은행은 ‘우리금융그룹배 2003년 WKBL 겨울리그’에서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플레이오프까지 우승을 차지했다. 무려 18년 만에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는 우리은행이었다. 2002년 팀명을 우리은행으로 바꾼 이후 1년이 조금 지난 시점에 만든 새로운 역사였다. 이후 우리은행은 승승장구했다. 2003년 여름리그, 2005년 겨울리그, 2006년 겨울리그에서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모두 승리하며 WKBL에서 총 4번의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1960년대 전성기 이후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한 우리은행이었다.
이후 우리은행은 잠시 어두운 과거를 경험해야 했다. 제 2의 전성기를 만들어낸 멤버들이 하나 둘씩 이탈하며 전력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2006년 여름리그에서 3위(8승 7패)를 기록했던 우리은행은 2007년 겨울리그에서 14승 6패로 2위를 기록했지만, 이후 5시즌 동안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한 채 농구 명가로서 자존심을 구겨야 했다.
단일리그가 시작된 2007-08 시즌 10승 25패로 5위로 떨어진 우리은행은 이후 4시즌 동안 순위표 최하단인 6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박명수 사건으로 인한 선수단의 균열 등이 이유가 되면서 4년 동안 6위에 머물러야 했던 우리은행이었다. 그 동안 우리은행은 선수단 체질 개선을 위해 여자농구에 잔뼈가 굵은 정태균, 박건연 감독을 영입했다. 하지만 흐트러진 분위기는 쉽게 수습되지 않았고, 변화를 위해 인성여고 전성기를 열었던 김광은을 감독으로 영입했다. 이 부분으로도 우리은행 분위기를 바꾸지 못했고, 6위를 벗어날 수 없었던 우리은행이었다.
우리은행은 다시 프로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당시 안산 신한은행(현 인천 신한은행) 통합 6연패의 조연을 맡았던 위성우, 전주원 코치를 각각 감독과 코치로 임명하는 모험(?)을 단행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새로운 코칭 스텝의 지휘 아래 2010년대 여자농구 중반을 관통하는 유행어가 된 ‘개가 부러웠다’라는 지옥 훈련을 받은 우리은행 전사들은 2013-14 시즌 WKBL 코트에 파란을 일으키며 승승장구했고,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를 단번에 집어삼켰다. 이변 중의 이변이었다. 이전 시즌 7승 33패로 최하위에 머물렀던 우리은행이 정규리그에서 24승 11패를 기록하며 동률을 이루었던 신한은행에 상대 전적에서 앞서며 정규리그 우승을,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생명(현 삼성)을 3-0으로 물리치며 2006년 겨울리그 이후 7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되찾았다. 그리고 지난 시즌과 이번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제 통합 3연패라는 새로운 역사에 플레이오프만 남겨두고 있는 우리은행이다. 많은 팬들과 전문가들은 “우리은행의 통합우승이 유력하다”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렇게 우리은행은 WKBL을 대표하는 농구명가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글 = 김우석 기자, 사진 이솔 기자
[이 기사는 농구 전문 잡지로 2015년 1월 새롭게 창간한 더 바스켓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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