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켓코리아 = 손동환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도쿄 올림픽이 1년 연기됐다. 하지만 한국의의 진출 여부는 변함없다. 12년 만에 올림픽에 입성한 여랑이들의 이전까지 올림픽 진출 역사를 살펴보았다(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3월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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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LA 올림픽,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성과
대한민국 여자농구 대표팀(이하 대표팀)의 올림픽 출전 시도는 1976년부터 시작됐다. 대표팀은 캐나다에서 예선전을 치렀다. 불가리아-쿠바-영국-이탈리아와 예선전에서 3승 1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전승을 기록한 불가리아에 밀렸다. 첫 올림픽의 꿈을 후일로 미뤄야 했다.
그리고 4년 후. 다시 한 번 올림픽 무대에 노크했다. 최강국이었던 미국(89-88)과 중국(61-59)까지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헝가리(71-87)와 체코(67-74), 유고슬라비아(69-70)으로 패했다. 6승 3패로 선전했지만, 또 한 번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했다.
다시 4년을 기다렸다. 스페인에서 열린 예선전에는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쿠바에서 다시 기회를 얻었다. 쿠바에서 5승 6패를 기록했지만, 대표팀은 드디어 올림픽 티켓을 얻었다. 예선 대회 4위인 헝가리와 5위인 쿠바가 불참을 선언하며, 대표팀한테 기회가 생겼기 때문.
급작스러운 기회. 그러나 대표팀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승승장구했다. 개최지인 미국전을 제외한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다. 풀 리그에서 4승 1패로 2위를 기록한 후, 결승 진출이라는 감격을 누렸다.
결승에서 다시 만난 미국. 미국의 벽은 너무 높았다. 대표팀은 미국에 완패했다. 하지만 웃을 수 있었다. 은메달이라는 기적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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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 LA 올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 여자농구 대표팀이 은메달을 획득한 후, 시상대에 올랐다. |
1988년 서울 올림픽, 안방의 기적을 기대했지만
LA에서 은메달의 기적을 만든 대표팀. 또 한 번 4년이 지났다. 이번 올림픽 개최지는 서울이었다. 대한민국 팬들은 또 한 번 기적을 원했다.
박찬숙-김화순-성정아-최경희 등 기적을 만든 멤버가 그대로 있었다. 시작도 좋았다. 첫 경기인 호주전에서 완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 예선 경기를 모두 패했다. 순위 결정전으로 밀렸다. 순위결정전에서 체코를 잡은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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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서울 올림픽 여자대표팀 |
8년 만의 감격, 1996 애틀란타 올림픽
대표팀은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도 원했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기 때문.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참가한다면, 3회 연속 올림픽 진출이라는 쾌거를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대표팀은 또 한 번 기다렸다. 기다린 끝에, 1996 애틀란타 올림픽에 나섰다.
정은순(현 KBS N SPORTS 해설위원)과 유영주(현 부산 BNK 썸 감독), 전주원(현 우리은행 코치)과 정선민 등 멤버가 화려했다. 황금 세대라고 불러도, 모자라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 무대의 벽을 또 한 번 실감했다. 예선에서 2승 3패를 거둔 후, 9-10위 결정전에서 중국에 패했다. 대표팀은 10위로 귀국했다. 하지만 이는 또 한 번의 기적을 위한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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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시드니 올림픽, 또 한 번의 기적
21세기가 됐다. 21세기 첫 올림픽은 시드니에서 열렸다. 그러나 대표팀은 티켓 획득마저 쉽지 않았다. 아시아에 배정된 올림픽 티켓은 단 1장이었기 때문. 아시아선수권 대회 우승만이 답이었다.
그러나 그것마저 쉽지 않았다. 대회가 일본에서 열린 데다가, 일본과 중국이라는 난적을 극복해야 했기 때문.
하지만 대표팀은 그 어려운 걸 해냈다. 예선을 힘겹게 통과한 후, 4강에서 중국을 80-79로 꺾었다. 결승 상대는 일본. 마지막까지 64-65로 밀렸다. 그러나 정은순이 해결 능력을 뽐냈고, 대표팀은 68-65로 역전승했다. 올림픽 티켓을 획득했다.
대표팀은 태릉선수촌에서 혹독한 훈련을 거친 후, 시드니로 떠났다. 미국과 쿠바, 폴란드와 러시아 등 각 대륙의 강호를 만났다. 그러나 예선에서 3승 2패를 거뒀다. LA 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결선 진출.
8강 상대는 프랑스였다. 양선애의 15점과 박정은(현 WKBL 경기운영부장)의 3점포를 묶어 이겼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4강 진출. 동메달 결정전에서도 브라질을 맞아,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를 펼쳤다. 주축 자원의 부상과 선수들의 연이은 5반칙 퇴장으로 패했지만, 대표팀은 또 한 번 기적을 만들었다. 세계 농구에 ‘한국 여자농구’의 위상을 다시 한 번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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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영식에 참가한 2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정은순 |
2004년의 아쉬움, 2008년의 성과
2000년에 기적을 만든 대표팀. 하지만 정은순과 정선민 등 핵심 자원이 대표팀에서 빠졌다. 자연스러운 세대 교체. 그리고 2004 아테네 올림픽은 과도기가 됐다. 올림픽에 나섰지만, 6전 전패로 올림픽을 허무하게 마쳤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세대 교체가 어느 정도 성공했다. 최윤아(현 부산 BNK 코치)와 하은주, 김정은(현 아산 우리은행) 등 젊은 선수들이 패기를 보여줬다. 대표팀은 8강에 진출했다. 미국에 완패했지만, 여자농구는 또 한 번 가능성을 보았다.
2020, 대표팀은 도쿄를 위해 뛴다
세대 교체가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만 놓고 보면 그랬다. 그러나 오히려 암흑기가 찾아왔다.
사실 예고된 암흑기였다. 여자농구의 저변 약화가 컸다. 농구를 하겠다는 여자 선수 자체가 적었다. 게다가 아마추어 지도자들은 ‘승리 지상주의’에 갇혔다. 물론, 여러 환경이 이러한 상황을 만든 것도 컸다.
대표팀은 2012 런던 올림픽 최종 예선전부터 그 격차를 확인했다. 특히, 일본전에서의 28점 차 완패. 아시아에서조차 경쟁력을 보이지 못했다는 뜻이다. 분명 충격이었다.
사진 제공 = 대한민국농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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