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삼성에게 영광을 안긴 사나이, 네이트 존슨

손동환 기자 / 기사승인 : 2020-05-19 08: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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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 = 김영훈 기자] 2006년 4월 25일 잠실실내체육관. 이날은 경기는 삼성이 5년 만에 우승에 도전하는 날이었다.


상대는 울산 모비스였다. 어렵지 않았다. 시리즈 전적 4-0으로 모비스를 넘어서며 정상의 자리의 올랐다. 이 우승은 현재까지 삼성의 마지막 우승으로 남아있다.


당시 삼성에는 뛰어난 선수들이 즐비했다. 서장훈, 강혁, 이규섭 등 삼성의 레전드가 존재했다. 하지만 우승에 있어서 이 선수의 공이 컸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이는 없을 듯 하다.


바로 네이트 존슨. 올루미데 오예데지와 함께 활약한 네이트 존슨이다. <바스켓코리아>에서는 네이트 존슨의 이야기를 되짚어 보려고 한다.


네이트 존슨과 김진 감독의 첫 만남


2004년 8월 밀워키의 한 대학교. 대구 오리온스의 김진 감독은 학교 체육관에서 두 명의 외국 선수를 동시에 만났다. 그는 두 선수 조합이면 한국 농구에 적합할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한꺼번에 영입 도전에 나섰다.
김 감독은 “두 선수 모두 어느 정도 장단점이 있기에 상호보완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무조건 둘이 같이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혹시 몰라 만약을 대비해 처음 만날 때(삭제) 줄자도 챙겼다. 신장제한에 걸리지 않기 위함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두 선수는 바로 2004-2005 시즌 대구 동양에서 뛰었던 네이트 존슨과 로버트 잭슨이었다.
김진 감독은 김 전 감독은 존슨의 페넌트레이션과 좋은 어시스트 능력에 매료됐다. 슈팅 기반 득점은 물론이고, 코트 전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겸비했기에 영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다만, 존슨의 신장이 2m가 되지 않는 탓에 골밑 수비를 해줄 선수가 필요했다.
이 때문에 포스트 수비가 좋고, 미들슛도 가능한 로버트 잭슨을 함께 선택했다.
존슨의 영입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화제를 모았다. 미국 하부리그인 NBDL 득점왕 출신이며, 이탈리아와 터키 등 유럽 수준급 리그 경험이 그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존슨에 대한 기대는 헛되지 않았다. 시즌 개막 전 열렸던 시범경기부터 연일 득점포를 몰아쳤다. 득점포가 불을 뿜었다. 47점을 퍼부은 날도 있었으며, 32점 13리바운드 8어시스트로 트리플 더블급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존슨 활약에 힘입은 오리온스는 시범경기 1위를 차지했고, 우승권 전력으로 평가를 받았다.


존슨과 오리온스의 첫 걸음


정규 시즌에도 존슨의 활약은 계속됐다. 존슨의 득점포는 시범 경기와 다를 바 없었다. 오리온스에게 개막 3연승을 선사했다. 오리온스는 원주 TG와 함께 선두권을 형성했다.
그러던 중 변수가 발생했다. 평균 득점 1위를 달리던 존슨이 잠시 미국 행 의사를 전해온 것. 이유는 아내의 출산 때문이었다. 가족사이기에 오리온스도 존슨의 미국행을 허락해야 했다.
그런데, 존슨은 약속한 시간이 기한에 귀국하지 않았다. 되어도 존슨은 귀국을(삭제) 하지 않았다. 동생의 병세 탓에 며칠 더 있겠다는 통보를 해온 것. 결국 오리온스는 그 없이 3경기나 치러야 했다.
뒤늦게 돌아온 존슨은 속죄의 활약을 펼쳐 보였다. 이전보다 폭발력이 더해졌다. 20점 이상은 기본이고, 30점 이상 퍼붓는 경기도 다수 있었다. 심지어는 43점을 몰아친 적도 2경기나 있었다.
수준급 기술을 가진 존슨의 돌파를 누구도 막지 못했다. 존슨 수비를 위해 늘 두 명의 수비가 따라다녔고, 오리온스는 이를 활용해 보다 쉬운 공격을 만들 수 있었다.
존슨의 활약에도 오리온스는 선두권에서 멀어졌다. 골밑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며 존슨과 시너지를 냈던 잭슨이 당한 것이 잭슨의 부상이 원인이었다. 에드먼드 사운더스, 엠씨 매지크, 크리스 포터 등을 데려왔으나 등으로 대체하려 했지만, 모두가 기량 미달이었다. 확실히 잭슨이 있을 때와 오리온스 경기력의 차이가 컸다.
심지어 시즌 막판에는 존슨도 발목 부상을 당했다. 루크 화이트헤드를 대체 선수로 공수해왔으나 1승 5패를 당하면서 플레이오프도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했다. 다행히 존슨이 시즌 후반부에 돌아와 팀에게 승리를 안겼다. 오리온스는 간신히 6위로 봄 농구를 할 수 있었다(26승 28패).
오리온스를 기다리고 있던 상대는 안양 SBS. 단테 존스 합류로 시즌 막판 15연승을 달렸던 돌풍의 팀이었다. 결국 오리온스는 SBS에게 2연패를 당하면서 한 시즌을 마무리해야 했다.
팀에게는 아쉬움이 남았으나 남았지만, 존슨 자신은 확실히 이름을 알린 한 해가 되었다. 시즌 내내 맹활약을 펼친 존슨은 28.7점 8.9리바운드 2.6어시스트 1.6블록슛 1.3스틸을 올렸다. 득점은 1위였고, 야투율은 55.4%에 달했다.


존슨과 삼성의 영광의 순간


오리온스는 존슨과 손을 잡지 않았다. 이는 아직까지도 구단 내부 사정으로 알려졌다.
무적 신분이 된 존슨에게 손을 내민 팀은 서울 삼성이었다. 동시에 올루미데 오예데지를 영입했다. 이전 시즌 오리온스가 보여줬던 ‘공격력’의 존슨과 강력한 골밑 수비 조합을 삼성이 그대로 차용한 느낌이었다.
이로써 삼성은 강혁-존슨-이규섭-서장훈-오예데지라는 라인업을 완성했다(선발 라인업으로는 이규섭 대신 이정석이 나왔던 경기가 많았다). 우승권에 가까운 전력으로 평가 받았다.
안준호 감독 역시 강력히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삼성은 막강했다. 삼성은 기록적인 연승은 아니었지만, 차근차근 승리를 쌓았다. 정규시즌 울산 모비스에 이은 2위를 기록했다.
존슨의 활약도 계속됐다. 존슨은 ‘역시’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활약을 남겼다. 시즌 평균 기록은 23.0점 6.5리바운드 3.4어시스트 1.2스틸. 이전 시즌에 비해 기록은 떨어졌지만, 그가 보여준 꾸준함은 여전했다. 다재다능함은 덤이었다.
존슨의 진가는 플레이오프에서 나타났다. 3경기에서 평균 33점을 몰아쳤다. 이에 힘입은 삼성은 3대0으로 오리온스를 누르고 챔프전에 진출했다.
챔프전 매치업은 정규리그 2위 삼성과 1위 모비스의 맞대결. 모비스에는 크리스 윌리엄스와 양동근이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리그 순위와 별개로 단기전의 삼성은 다른 팀이었다. 존슨-오예데지-이규섭-강혁-서장훈이 맹활약을 펼쳤다. 모비스는 양동근과 윌리엄스가 분전했으나 다른 선수들의 지원사격이 부족했다. 이로 인해 삼성은 적지에서 2승을 챙겼다.
적지에서 2승을 올린 삼성은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3차전에서도 강혁-서장훈-존슨-오예데지가 77점을 기록했다. 윌리엄스의 32점 맹활약도 빛이 바랬다.
4차전도 마찬가지. 윌리엄스가 40점을 퍼부었으나 오예데지-이규섭-존슨의 활약에 묻혔다. 결국 승리는 삼성에게 돌아가면서 차지했다. 챔프전 전적은 4-0. 삼성의 완승이었다. 삼성은 5년 만에 다시 정상의 자리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다.


왼쪽부터 올루미데 오예데지-서장훈-네이트 존슨

우승 이후...


존슨은 다음 시즌에도 삼성과 함께했다. 하지만 플레이 스타일이 간파된 탓인지 활약이 줄어들었다. 팀도 서장훈의 부상 등의 변수까지 더해지며 성적이 하락했다.
삼성은 5위로 플레이오프에는 올랐으나, 피트 마이클과 김승현이 버틴 오리온스에 패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이후 존슨은 한국 대신 중동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레바논, 요르단, 사우디 등을 오가던 존슨은 2010년 여름 트라이아웃에 신청서를 내 화제가 됐다. 하지만 곧바로 신청을 철회했다. 이것이 존슨이 KBL에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다.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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