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이정석 용산중 A코치, “농구 외에는...”

손동환 기자 / 기사승인 : 2023-12-11 09:33:38
  • -
  • +
  • 인쇄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3년 11워호에 게재됐다. 인터뷰는 10월 18일 오후에 진행됐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엘리트 농구 지도자와 엘리트 농구 선수 대부분이 농구 하나만 바라보고 산다. 용산중 A코치로 재직하고 있는 이정석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정석은 “농구 외에는 생각 나는 게 없다”는 말과 미소로 자신의 농구 인생을 돌아봤다.

“선발된 것만 해도...”

이정석은 일명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이다. 용산중과 용산고를 거쳐 연세대에 입학했고, 연세대 시절 공격력을 지닌 가드로 명성을 떨쳤다.
명성을 떨치던 이정석은 동기들보다 1년 일찍 프로 무대를 선택했다. 2004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 나섰고, KBL 레전드로 남아있는 양동근(현 울산 현대모비스 수석코치)과 1순위 경쟁을 펼쳤다.
하지만 양동근이 1순위의 주인공이 됐고, 이정석은 양동근 다음으로 프로 무대를 밟았다. 이정석이 데뷔한 팀은 안양 SBS(현 안양 정관장). 이정석은 데뷔 시즌(2004~2005)부터 주축 포인트가드를 맡았고, 정규리그 45경기 출전에 평균 29분 14초 동안 6.7점 5.1어시스트 3.6리바운드(공격 1.1)에 1.4개의 스틸로 맹활약했다.

2004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프로에 입성했습니다.
3학년 때 나와서 그런지, 긴장되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안 뽑히더라도, 1년 더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져.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여유로웠던 것 같아요.(웃음)
또, 그때 드래프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게다가 저희 연세대에 잘하는 선수들이 워낙 많았어요.(방성윤과 김태술, 양희종과 이광재 등을 언급했다) 저 한 명 빠진다고, 타격을 입을 팀이 아니었죠. 오히려 제가 빠져야, 1~2학년들이 많이 뛸 거라고 생각했어요. 학교에서도 저를 선뜻 보내주더라고요.(웃음)
양동근 코치님과 1순위 경쟁을 펼쳤지만, 2순위가 됐습니다. 아쉽지는 않으셨나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저는 동기들보다 1년 일찍 드래프트에 나섰습니다. 프로 팀에 뽑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어요. 그리고 동기들과 같이 나왔더라도, 저는 1순위를 차지하지 못했을 거예요. 강력한 1순위가 있었거든요.(웃음)
(이정석이 언급한 강력한 1순위는 방성윤이었다)
SBS의 첫 인상은 어떠셨나요?
저를 너무 좋아해주셨어요. 당시 SBS에 가드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시범경기에서 손가락을 다쳤어요. 수술을 받았고, 1라운드를 못 뛰었죠.
손가락을 다쳤지만, 데뷔 시즌부터 뛰어난 활약을 했습니다.
신인이라 어리바리하기도 했지만, 부상 이후 뛴 거라 더 정신없었어요.(웃음) 부상 없이 나섰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트레이드요? 돌아보면 좋았습니다”
이정석은 데뷔 1년 만에 팀의 미래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정석은 어쩔 수 없이 방향을 틀었다. 주희정(현 고려대 감독)과 트레이드로 서울 삼성 유니폼을 입었기 때문.
상심이 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정석은 더 소중한 걸 획득했다. 삼성 이적 첫 시즌 만에 우승 반지를 거머쥔 것. 트레이드 덕분에(?),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정석의 가치도 여전했다. 이상민(현 부산 KCC 코치)-강혁(현 대구 한국가스공사 감독대행)-이시준(현 인천 신한은행 코치) 등 다양한 가드들과 삼성의 가드 왕국을 조성했다. 2010년에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대한민국 남자농구 국가대표팀의 은메달에도 기여했다.

2004~2005시즌 종료 후 삼성으로 트레이드됐습니다.
SBS에서 “많이 기대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SBS 입단 1년 만에 트레이드됐어요. 처음에는 너무 서운했어요. 하지만 돌아보면, 너무 좋았어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삼성은 워낙 명문 구단이고, 삼성 멤버도 그때 너무 좋았거든요. 선수 지원도 차원이 달랐고요.
트레이드 후 첫 시즌에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서)장훈이형이 전성기였고, 강혁 감독님과 (이)규섭이형(현 SPOTV 해설위원), 네이트 존슨과 올루미데 오예데지가 있었습니다. 화려한 멤버였어요. 그렇지만 고민이 생겼습니다. 다들 자기한테 볼을 달라고 했거든요.(웃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너무 어려웠죠.
코치님의 대처법은 무엇이었나요?
균등한 볼 배분은 불가능했어요. 어느 정도는 무시해야 했죠. 컨디션 좋은 사람에게 밀어주든지, 더 좋은 찬스가 생긴 사람한테 볼을 줬어요. 볼을 못 주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렇게 적응하다 보니, 조금씩 나아진 것 같아요.
이상민 코치-강혁 감독대행-이시준 코치 등과 ‘가드 왕국’을 구축했습니다. 그때의 삼성은 어땠나요?
팀의 기둥이었던 (서)장훈이형이 빠졌어요. 그렇지만 가드들이 많아, 더 빠른 농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빨라지다 보니, 공격 횟수가 증가했어요. 그래서 더 재미있었습니다. 다만, 결과는 아쉬웠어요. 준우승만 2번(2007~2008, 2008~2009) 했거든요.(웃음)
반대로, 경쟁도 심했을 것 같습니다.
로테이션이 어느 정도 필요했지만, (서로 간의 경쟁 의식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또, 평균 30분 가까이 뛰었어요. 그래서 출전 시간을 걱정하지는 않았어요.
코치님만이 갖고 있는 강점이 있었기에, 많은 출전 시간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먼저 수비를 잘하려고 했습니다. 공격 잘하는 선수들이 많았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남들보다 조금은 빠르다고 생각했어요. 노 마크 슛도 꽤 정확했어요. 3점슛 성공률 1위를 했던 시즌도 있었습니다.(2010~2011시즌 : 44.5%-57/128, 한 시즌에 50개 이상의 3점슛을 성공한 이가 3점슛 성공률 순위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문)태종이형과 경쟁이 붙었는데, 태종이형이 후반부에 난사를 하는 바람에...(웃음)

“선수는 안 다쳐야 합니다”
이정석은 2011년 10월 18일 안양 KGC인삼공사(현 안양 정관장)과 경기에서 왼쪽 무릎 십자인대 부상을 당했다. 2012~2013시즌에야 돌아올 정도로, 이정석의 부상은 컸다.
돌아오기는 했지만, 이정석의 퍼포먼스는 예전 같지 않았다. 이정석 특유의 힘과 스피드를 동반한 돌파가 나오지 않았다. 수비와 패스 등 여러 동작에서도 과감하지 못했다. 경쟁력을 점점 잃은 이정석은 2017~2018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2011년 10월 18일이 아직도 기억날 것 같습니다.
하...(씁쓸한 미소와 한숨이 동시에 나왔다) 부상 전만 해도, 프로 생활을 잘 하고 있었어요. 4년 정도 국가대표팀 일정을 소화하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대표팀과 소속 팀을 오가느라, 피로가 누적된 것 같아요. 쉬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어요. 그래서...
2012~2013시즌에 복귀했습니다. 코트에서 받는 느낌이 예전과는 달랐을 것 같아요.
무릎이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불안하더라고요. 그런 느낌이 한동안 지속돼더라고요. 조심스럽게 플레이하다 보니, 예전 스피드의 7~80% 밖에 안 나왔어요. 그렇다고 해서 무리하면, 무릎에 물이 차더라고요. 선수는 안 다쳐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2014~2015시즌에는 정규리그 전 경기에 나섰지만, 그 후에는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속상함이 크셨을 것 같은데요.
몇 년 동안은 그래도 괜찮았어요. 그렇지만 선수 시절 후반부가 어려웠습니다. 수술한 무릎은 물론, 반대편 무릎도 아팠거든요. 양쪽 다 안 좋으니,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웃음)
2017~2018시즌 종료 후 은퇴하셨습니다.
연습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릎에 물이 자주 찼습니다. 연습을 소화한 후에도, 물이 차기도 했고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어요.

“기본기가 중요하더라고요”
프로 스포츠 선수는 누구나 새로운 인생과 마주한다. 선수만 평생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정석도 그랬다. 2017~2018시즌 종료 후 은퇴한 이정석은 모교인 연세대로 갔다. 연세대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2019년 7월부터 또 다른 모교인 용산중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를 맡았다.
프로에서만 14년을 보낸 이정석이다. 그런 그가 아마추어에서 4년 넘게 생활하고 있다. 기초부터 알려줘야 하는 중학교 코치이기에, 많은 걸 느꼈을 수 있다. 그가 가장 많이 느낀 건 ‘기본기’였다.

은퇴 후 연세대에서 코치 수업을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학생 선수들과의 나이 차가 어느 정도 있지만, 다들 성인이었습니다. 또, 저는 지켜보는 입장이라, 대학생 선수들과 재미있게 보내려고 했습니다. 친하게 지내려고 했고요. 다만, 프로 선수들과의 마인드 차이가 있었습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저희 때와 다르다고 느꼈어요.
어떤 게 달랐나요?
저 역시 체력 훈련과 수비 훈련 등 힘든 운동을 싫어했습니다. 그렇지만 안할 수 없는 운동이기에, 참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접한 연세대 선수들은 인내심이 부족해보였습니다. 운동을 조금만 힘들게 시켜도, 하기 싫어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재미있는 운동만 원했고, 경기만 뛰고 싶어하더라고요.
2019년 7월에 용산중학교 어시스턴트 코치로 부임하셨는데요.
선배님들께서 제안해주셨습니다. 그래서 편한 마음으로 왔는데, 지금까지 있네요.(웃음)
프로 선수들을 오랜 시간 보다가, 아마추어 선수들을 접하셨습니다. 차이점이 많았을 건데요.
아무래도 프로 선수들보다 부족한 게 많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는 기본기를 가다듬어야 합니다. 다만, 초등학교 때부터 농구한 친구들도 기본기 운동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재미없는 운동을 안 하려고 하니, 초등학교에서도 재미 위주로 가르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 가르쳤던 애들 중에는 패스 못하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기본기를 조금 가르치다 보면, 이 친구들이 졸업하더라고요.(웃음) 그게 중학교에서 느낀 어려운 점이었습니다.
느끼는 게 더 많으실 것 같아요.
기본기가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중학생 선수들의 성장 속도는 확실히 빨라요. 그런 걸 보면, 뿌듯합니다. 재미있기도 하고요.

“농구 외에는 생각나는 게...”
‘뭐하고 지내세요?’의 마지막 주제는 자신의 농구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다. 이정석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농구 인생을 돌아봐달라”고 말이다.
이정석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30년 정도 농구와 함께 하고 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농구와 함께 했다. 그래서 “농구 외에 제 인생에서 생각나는 게 거의 없어요(웃음)”라며 미소 지었다.

‘농구’는 어떤 의미인가요?
지금까지 30년 정도 한 것 같아요. 인생의 반 이상을 농구와 함께 했죠. 그래서 농구 외에 제 인생에서 생각나는 게 거의 없어요.(웃음)
‘이정석의 농구 인생’을 한 번 돌아봐주세요.
고등학교 1학년 때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는 구타가 심했고, 저는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었어요. 그러다 보니, 많이 맞았어요. 아마 평생 맞을 걸 다 맞은 것 같아요.(웃음) 그렇지만 그 후에는 다른 선수들보다 평탄하게 농구한 것 같아요.
다시 태어나도 농구를 하실 건가요?
고등학교 1학년만 빼면요.(웃음) 고등학교 2학년부터로 돌아간다면, 괜찮을 것 같아요.(웃음)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본문 첫 번째 사진)
사진 제공 = KBL(본문 2~5번째 사진), 이정석(본문 마지막 사진)

[저작권자ⓒ 바스켓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HEADLINE

더보기

PHOTO NEWS

더보기

베스트 클릭

인터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