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 2월에 첫 시즌을 시작한 KBL은 어느덧 30번째 시즌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이 KBL을 거쳤다. 동시에, KBL은 숱한 역사를 형성했다.
KBL의 시작과 현재를 함께 하고 있는 이도 있다. 바로 최준길 경기부장이다. 최준길 경기부장은 KBL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경기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1997년 2월에도 그랬고, 2024년 10월에도 마찬가지다.

프로농구가 시작된 후, 농구에 열정을 지닌 많은 사람들이 KBL의 문을 두드렸다. 자신이 좋아하는 농구를 현장에서 접할 수 있기에, KBL은 많은 농구인들에게 매력적인 곳이었다.
하지만 최준길 경기부장의 사례는 약간 다르다. 최준길 경기부장은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될 정도로 출중한 엘리트 선수였다. 그러나 건강 문제로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그러나 최준길 경기부장은 곧바로 새로운 인생을 찾았다. 그것도 한국 프로농구의 시작과 함께 말이다. 물론, KBL에 입성하기 전까지, 자신만의 내공을 쌓았다.
엘리트 농구를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 어머님께서 제 성적 때문에 과외를 붙여주셨어요. 그런데 오르라는 성적은 오르지 않았죠. 오히려 저는 AFKN(주한미군방송)에서 중계하는 NBA에 빠졌어요. 카림 압둘 자바 선수의 플레이를 보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리고 마침 키도 크고 있었고요.
그래서 농구를 시작하게 됐고, 배재중학교와 배재고등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1988년)는 주장도 했고, 지금은 없어진 동국대학교 총장배에서 우승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서울 올림픽이 있어서, 제가 농구장에서 자원봉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결승전도 직관했고, 데이비드 로빈슨도 눈앞에서 봤어요(웃음).
그렇지만 농구공을 놓아야 했는데요.
저는 동기 4명과 함께 성균관대학교로 입학했습니다. 실력을 꽤 인정 받았죠. 그렇지만 입학하자마자, 안과 질환이 발생했습니다. 100일 동안 꼼짝 없이 누워있었죠. 수술도 여러 차례 받았지만, 회복하지 못했어요. 사물을 바라보는 거리감 자체가 부족했거든요. 의사 선생님께서도 “농구는 이제 어렵다”는 진단을 저에게 내리셨어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저 스스로는 ‘농구를 그만둬야 한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앞서 말씀 드렸듯, 저는 동기 4명을 데리고 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감독님께서 “우리 학교에 1순위로 스카우트된 너가 이렇게 그만두는 건 좋지 않은 것 같다. 졸업할 때까지 운동을 하자”고 권유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농구와 학업을 병행할 수 있었죠. 물론, 실업 팀에는 못 갔고요.
그리고 KBL로 입사하셨습니다.
졸업 후 1년 정도 원 없이 놀았습니다(웃음). 여행도 다니고, 장애인 시설에서 자원봉사도 했죠. 그때 건강과 가정의 소중함을 많이 느꼈고, 제 삶을 감사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다가 (대한민국농구협회 소속이었던) 후배 아버님께서 저에게 “협회 경기부 일을 해보지 않을래?”라고 권유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코트 최일선에서 경기 진행 및 기록 관련 업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농구의 기본 요소들 역시 습득할 수 있었죠. 그때 농구의 매력을 더 느낀 것 같아요. 농구의 숨은 재미를 느꼈으니까요.
그렇게 경기 관련 업무를 배우다가, 1996년 9월에 KBL로 입사했습니다. KBL이 해당 시기에 설립준비위원회를 창설했거든요. 저는 설립준비위원회의 경기부 사원으로 입사했고요.

처음 사회 생활을 하는 이들은 그럴 듯한 이상을 꿈꾼다. 그렇지만 현실이라는 장애물이 사회 생활하는 이들의 이상을 하나씩 없앤다. 현실이라는 벽과 마주한 직장인들은 자신의 이상을 조금씩 내려놓는다.
최준길 경기부장은 더 그랬을 수 있다. 어린 시절 내내 코트 그리고 농구공과 함께 했지만, 성인으로 거듭난 후에는 사무실 그리고 컴퓨터와 오랜 시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준길 경기부장이 입사할 때, KBL도 초창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최준길 경기부장의 어려움은 더 클 것 같았다. KBL도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서였다.
입사 초기에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을 것 같아요.
맞습니다. 컴퓨터 사용부터 불편했어요. 그래서 3개월 정도 속성 교육을 받았고, 동료 여직원으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금방 늘더라고요. 그래서 저를 도와준 여직원에게 밥을 많이 샀습니다(웃음). 너무 고마워서요.
그러나 진짜 힘든 건 따로 있었습니다. KBL이 당시 출범 준비 중이라, 저희 부서가 경기원 모집과 교육, 경기 일정 수립 등 기본적인 것부터 새롭게 가다듬어야 했거든요. 저 같은 경우, 경기원 및 통계원 교육 자료도 작성하고, 지역별로 2박 3일씩 순회 교육을 다녔어요. 저는 당시에 부장님을 보조하기만 했는데도, 엄청 힘들더라고요. ‘내가 이걸 어떻게 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웃음).
어떤 업무가 가장 어려웠나요?
경기 일정 작성하는 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구단 간 형평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되, 주중-주말, 요일별 경기 수-주간별 경기 수, 방학 기간 경기 수 등의 세부적인 기준을 맞춰야 했거든요.
또, 작성을 완료했는데, 배정 원칙(최준길 부장은 ‘시즌 시작일’과 ‘휴식 기간’을 원칙 중 하나로 설명했다)이 조정되기도 합니다. 그때 저희는 일정을 다시 작성해야 해요. 그래서 밤샘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어떤 때는 3박 4일 동안 철야 작업을 했어요. 그렇지만 성취감이 너무 높았습니다. 제가 KBL 경기부에 있어서, 프로농구의 일정을 작성할 수 있었던 거니까요.
부장님께서 입사했을 때, KBL 역시 경험치를 많이 축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부장님의 어려움이 더 컸을 것 같아요.
물론, 경기 관련 업무를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저는 아는 게 별로 없는 사회 초년생이었습니다. 무서울 것도 없었고요. 그래서 더 편했던 것 같아요. 시키는 것만 열심히 하면 되니까요. 실제로, 위에서 시킨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웃음).
다만, 경력직 간부부터 신입 사원까지 동시에 구성되다 보니, 회사의 문화가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 회사 분위기가 어쩔 수 없이 어수선했죠. 그래서 저는 다른 팀원들과 화합하는 것에 더 신경 썼던 것 같아요. 동료 직원들도 저와 경기 관련 규정을 많이 소통했고요.

최준길 경기부장은 입사 직후부터 경기와 관련된 업무를 했다. 오랜 시간 경기인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했다. KBL에서도 오랜 시간 함께 했다.
베테랑으로 거듭난 최준길 경기부장은 현재 KBL의 경기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시설 그리고 규정 등 경기 진행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최준길 경기부장이 갖고 있는 책임감은 크다.
경기부장은 어떤 업무를 하는 자리인가요?
경기본부장님을 보좌하는 자리로서, 심판 분들을 제외한 경기 진행 인력(최준길 부장은 ‘경기감독관-판독관-분석관-기록판정관-경기원-전산통계원’ 등을 경기 진행 인력으로 언급했다)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기를 안전하고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경기 시설-경기 용품-경기장 안전 지침 등을 구단과 공조하고 있습니다. 이에 수반되는 각종 규정을 수립하고, 심판부-연맹 사무국-구단 사무국과도 소통을 많이 해야 합니다.
부장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저의 현재 위치는 ‘관리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제가 지녀야 할 최고의 덕목은 ‘결정’이라고 봐요. 물론, 관리자가 방향을 잘못 잡을 수 있지만, 관리자는 결정을 빠르게 해야 합니다. 또, 본인의 의지를 명확히 보여줘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밑에 있는 직원들이 일을 편하게 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저희 부서에 속한 직원들이 자기 의견을 진실 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저는 관리자로서 소통을 잘해야 합니다. 하나의 조직이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내려면, 관리자의 그런 역량이 중요하다고 봐요.
2024~2025시즌이 개막해, 부장님의 하루 일과도 바쁘게 흘러갈 것 같습니다.
출근 후에는 전날 경기들을 돌아봅니다. 경기 진행 요원이 경기를 잘 운영했는지, 제가 체크를 하죠. 그 후에는 구단으로부터 받은 질의사항들을 구단과 소통합니다. 그리고 경기 중에는 경기 운영 관련 내용들을 실시간으로 체크합니다. 체크한 내용을 토대로, 경기 진행하는 분들에게 피드백을 해요.
어떤 내용들을 주로 체크하시나요?
경기 시간과 공격 제한 시간이 잘 흘러갔는지, 경기 진행 요원들의 문제 발생 시 대처 능력 등입니다. 그리고 감독관과 진행 요원들에게 “심판 분들께서 판정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경기 진행하시는 분들이 잘 운영해달라”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최준길 경기부장은 KBL을 대표하는 베테랑이다. 베테랑으로서 밑에 있는 직원들을 독려하되,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해야 한다. 또, 개선해야 할 점들을 윗선에 보고해야 한다.
많은 일을 해야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 ‘농구’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다. 그래서 최준길 경기부장은 인터뷰 말미에 “체력이 되는 한, 코트와 가까이 있고 싶다”며 바람을 전했다.
KBL에 있는 시간 동안 어떤 것들을 얻으셨나요?
제가 좋아하는 일들을 함과 동시에,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 사이, 가정도 이뤘고요. 그런 과정을 통해, 일상의 즐거움을 알게 됐습니다. 행복함 또한 커졌고요.
KBL에서의 목표는 어떻게 되시나요?
음... 목표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 것 같아요. 다만, 은퇴를 하더라도, 농구와 근접하게 지내고 싶어요. KBL에도 기여하고 싶고요. 체력이 되는 한, 코트와 가까이 있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농구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이번 시즌에 새롭게 부임하신 유재학 경기본부장님을 필두로, 심판진 모두 판정 기준 정상화를 위해 땀 흘렸습니다. 심판 분들에게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물론, 달라진 판정 기준으로 인해, ‘농구가 너무 거칠어지지 않느냐?’라고 걱정하는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그렇지만 일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발생하는 시행착오를 잘 극복한다면, 저희는 더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농구를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러스트 = 락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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