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보여준 것보다 보여줄 게 더 많은 용산고 신주영

김영훈 기자 / 기사승인 : 2021-03-18 03:3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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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1년 2월호에 게재되었으며, 인터뷰는 1월 말에 진행되었습니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최근 발표된 국가대표 엔트리에 용산고 여준석이 포함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당연히 여준석이 속한 용산고는 2021년 최강팀으로 꼽히고 있다.

용산고가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데에는 여준석의 존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옆에는 비슷한 신장을 갖춘 포워드 겸 센터인 신주영(200cm)도 존재한다. 여준석에 가려졌지만, 한번 쯤은 짚고 넘어가야할 신주영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시작이 늦었던 신주영, 1년 동안 농구를 알아가다
앞의 장황한 소개에 비해 신주영은 아직 아마추어 무대에서 보여준 것이 많지 않다. 농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인 15세에 본격적인 농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제 키가 188cm 정도였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양주에서 학교다니던 일반 학생이었죠. 그런데 아시는 삼촌 분이 정종선 코치님(전 연암중)이었다. 그래서 삼촌의 소개로화봉중에 테스트를 봤죠. 그렇게 농구를 하게 되었어요.”

사실 신주영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농구에 잠시 발을 담군 적이 있었다. 삼광초에서 테스트를 본 뒤 들어갔던 그는 3주 만에 학교를 나오게 됐다. 고된 훈련이 원인이었다. 그리고 6년 뒤 신주영은 다시 농구에 도전장을 던졌다.

6년이 지난 만큼 성숙해졌던 신주영은 농구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동계훈련 때 팀에 들어갔어요. 겨울에 울산 바다 모래사장에서 하는 훈련을 해보고 깜짝 놀랐죠. 그런데 또 힘든 것만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이번에는 이왕 들어온 것 버텨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처음 농구를 하게 되었을 때를 떠올렸다.

야심차게 농구를 시작한 신주영이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로 그가 지낼 곳이 없었다. 당시 그가 살던 곳은 경기도 양주. 하지만 화봉중은 울산에 있다. 새로운 거주지는 생각보다 쉽게 구해졌다. 동기생이었던 김휴범의 부모님께서 흔쾌히 하숙을 허락해주신 것.

이제 남은 것은 남들에 비해 현저히 늦은 입문시기였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유급을 선택했다.

“김현수 코치님과 하루에 5번씩 운동하면서 1년을 보냈어요. 새벽, 오전, 오후, 야간이 끝나면 무룡고에 가서 보충 훈련을 했어요. 보충 훈련을 매일 한 건 아니지만, 5탕까지 뛰고 오면 11시가 다 돼요. 솔직히 힘들건 사실이었어요. 그래도 백지 상태에서 뭘 그려나가는 게 재밌었습니다. 백지여서 그런지 배우는 속도도 빨랐던 것 같고요.”

농구에 재미를 알게 된 신주영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년의 시간을 끝냈다. 이후 그는 갈고닦은 기량을 펼쳐보이기 위해 전국대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중학교 무대 무서운 신예의 등장

1년의 시간 동안 농구에만 매진한 신주영은 자신의 기량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를 만났다. 2018년 4월 열린 협회장기 대회. 신주영이 속한 화봉중은 호계중에 막혀 아쉬운 준우승을 거뒀다.

신주영은 이 대회에서 7경기 평균 18점 18.6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 준우승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그것도 첫 공식 대회에서 말이다.

신주영은 “우리 팀 멤버가 좋았어요. 김휴범(무룡고3), 문유현(무룡고2)이 중심이었죠. 저도 득점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휴범이가 만들어준게 많았어요. 같이 살면서 매일 붙어다니니까 호흡이 좋을 수밖에 없었죠”라며 첫 대회의 기억을 떠올렸다.

화봉중은 이어 열린 연맹회장기 대회에서도 준우승을 거머쥐었다. 당시 결승 상대는 공교롭게도 또 호계중이었다. 지난 대회에 이어 한 번 더 호계중에 패해 눈물을 삼켜야했다. 이때도 신주영은 평균 더블더블을 기록하며 첫 대회 때 보여준 모습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우승에 한이 맺힌 화봉중은 시즌 마지막 대회인 추계연맹전에서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상위권 팀들이 나오지 않는 대회이기는 해도 기쁨은 같았다. 신주영은 이 대회에서도 6경기 평균 23.3점 13.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신주영의 중학교 생활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농구 시작 1년 만에 그는 두 번의 준우승, 한 번의 우승을 남겼다. 첫 번째 커리어가 매우 성공적이었다.


“2020년에 못한 전관왕, 2021년에 하면 돼죠.”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게 된 신주영. 그는 화봉중의 연계학교인 무룡고가 아니라 ‘전통의 명문’ 용산고를 택했다.

이유가 있었다. “중학교 때 무릎이 조금 안 좋았어요. 치료를 받으려면 서울에 올라와야 했거든요. 울산에서 서울을 주말마다 왔다가는 게 정말 피곤했어요. 또, 언제까지 휴범이네에서 살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서울 학교를 가고 싶었죠.”

그렇다면 왜 용산고였을까. “무룡고와 용산고가 붙을 때였습니다. 용산고 이세범 코치님을 봤는데, 너무 좋으신분 같더라고요. 그래서 용산고를 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무룡고 코치님이 안 좋았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서울에 가기를 원했고, 그중 이세범 코치님께 배워보고 싶었던 겁니다.” 신주영의 설명이다.

중고농구연맹은 전학을 간 선수에게 1년의 대회 출전 정지 징계를 내린다. 신주영 역시 이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 기간을 자기개발을 위한 시간으로 바꿨다. 농구를 제대로 시작한 게 2년밖에 되지 않았기에 부족했던 기본기와 계속 말썽을 일으켰던 무릎을 완벽히 치료하는 시간으로 생각했다.

1년 동안 발전의 시간을 보낸 신주영은 2020년에도 또 한 번 쉬어가게 되었다. 코로나19로 모든 대회가 취소되었기 때문. 아직 보여줄 게 더 많은 신주영에게는 아쉬움 가득한 시간이었다.

신주영은 “동계훈련을 통해 몸이 올라왔다는 걸 느꼈어요. 대학교 형들과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저희의 목표는 무조건 우승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회가 열리지 않으니...”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신주영은 “사실 건방지게 생각할 수 있지만, (여)준석이가 돌아오면서 전관왕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어요. 목표를 크게 잡았기에 더 아쉬웠죠. 그래도 괜찮아요. 올해 하면 돼요”라며 다부진 목표를 내놨다.

올해 역시 용산고의 전력은 매우 좋다. 여준석과 신주영을 필두로 휘문중 출신의 김윤성도 있다. 3명 모두 2m가 넘는 선수들이다. 여기에 나머지 두 자리는 박정환과 삼선중 출신 이채형이 포진한다. 신주영의 자신감의 근거이다.


신주영이 꿈꾸는 미래는?

시야를 바로 앞이 아닌 조금 더 멀리 내다보기로 했다. 신주영의 첫째 목표는 단연 프로 선수다. 이제 5년도 남지 않은 프로 무대를 위해 신주영은 센터가 아닌 포워드라는 꿈을 꾸고 있었다.

“프로에는 외국 선수가 있어서 5번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요새 트렌드에 맞는 3,4번으로 커야 할 것 같습니다. 모두 말하겠지만, 저 역시도 송교창, 양홍석 형 같은 선수처럼 크고 싶어요.”

신주영은 포워드로 성장하기 위해 최근에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3점을 연습하고, 실전 경기에도 시도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원 드리블 점퍼 같은 무빙슛들도 연마 중이다. 체지방도 몸무게도 91kg에 달하는 그는 체지방을 6%까지 줄이며 잘 뛸 수 있는 몸을 만들었다. 이제는 잘 뛰어다닐 일만 남은 신주영이다.

앞서 송교창과 양홍석을 언급했지만, 사실 신주영의 롤모델은 따로 있다. “고려대의 (문)정현이형이요. 제가 처음 농구 배울 때 가르쳐줬던 형이예요. 패스도 잘하고, 포워드임에도 경기를 조립하는 모습이 멋있어요. 잘 뛰면서 영리한 농구를 하는 게 제가 하고 싶은 농구입니다.”

끝으로 신주영은 인터뷰를 마치며 솔직한 목표를 남겼다. “국가대표 그리고 FA 대박.”

사진 = 엠반스 스튜디오, 이주한 포토그래퍼

바스켓코리아 / 김영훈 기자 kim95yh@baske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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