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지도자로 변신한 김종범, 후배들에게 ‘열정’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손동환 기자 / 기사승인 : 2024-07-10 10:44:27
  • -
  • +
  • 인쇄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4년 6월호에 게재됐다. 인터뷰는 5월 22일 오후에 진행됐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어느 선수든 어느 정도의 굴곡을 겪는다. 김종범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김종범은 굴곡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부족했던 의지와 열정 때문이었다.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종범은 현역 시절 부족했던 점들을 제자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농구에 가장 필요한 게, ‘열정’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슈터

낙생고는 2008년 좋은 전력을 보여줬다. 확실한 센터인 김종규(현 원주 DB)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종규를 돋보이게 한 이가 있었다. ‘슈터 김종범’이었다.
김종범은 내외곽을 넘나들 수 있는 슈터였다. 그래서 많은 기대 속에 동국대로 향했다. 실제로, 동국대에 입학하자마자, MBC배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 후에도 동국대의 주득점원으로 활약했다.
공격력을 인정받은 김종범은 2012년 10월에 열린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2순위로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에 지명됐다. 그러나 드래프트 직후 트레이드. 고양 오리온스(현 고양 소노)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김종범의 데뷔는 늦었다. 우선 김종범의 원 소속 팀이었던 전자랜드가 당시 선수 연봉 지원금을 KBL로부터 지원받았다. 그런 이유로, KBL 이사회가 전자랜드 소속이었던 김종범의 트레이드를 승인해야 했다. 그 과정이 늦어졌고, 김종범은 2012년 12월에야 오리온스에서 데뷔할 수 있었다. 데뷔 시즌에는 29경기 평균 17분 7초 동안 3.1점을 기록했다.

2012년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2순위로 인천 전자랜드에 지명됐습니다. 그렇지만 드래프트 직후 오리온스로 트레이드됐어요.
전자랜드 유니폼을 입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께서 저에게 오시더니, “유니폼을 벗어라”라고 하시더라고요. 영문을 모르고 있던 와중에, 오리온스 유니폼을 입게 됐어요. 아마 그때 2개 팀 소속으로 사진 촬영과 인터뷰를 한 사람은 저밖에 없었을 겁니다.(웃음)
트레이드로 인해, 데뷔전이 늦어졌습니다.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추일승 감독님(전 대한민국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찾아갔죠. “너무 답답하다. 너무 뛰고 싶다”는 말만 2달 가까이 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감독님께서 “나를 믿고 기다려달라”며 저를 독려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도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습니다. 형들과 열심히 훈련했어요. 코치님께서도 저의 그런 상황을 아셔서, 저를 많이 훈련시켜주셨어요. 그런 준비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데뷔전을 수월하게 치렀던 것 같아요.
데뷔전이 더 인상 깊게 다가왔겠어요.
(김종범은 2012년 12월 12일 창원 LG를 상대로 데뷔했다. 41분 12초 동안, 11점 4스틸 3리바운드로 준수한 기록을 남겼다)

정말 오래 뛰었습니다. 그렇게 오래 뛴 경기는 아마 없었을 거예요.(웃음)
어떤 생각으로 데뷔전을 치렀나요?
모든 신인 선수들이 그렇겠지만, 저도 아무 생각 없이 뛰었습니다. 다만, ‘몇 분이나 뛸 수 있을까?’라고 저를 테스트하려고 했고, 어떤 것부터 해야 할지 생각했습니다. 감독님께서 뺄 수 없는 선수로 성장하고 싶었거든요. 감독님께서도 저에게 기회를 많이 주셨고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무엇이었나요?
프로 선수들의 실력이 아마추어 선수들보다 뛰어나기도 하지만, 마음과 의지의 차이도 크다고 생각해요. ‘농구를 얼마나 소중한 마음으로 하느냐?’의 문제라고 봐요. 그렇기 때문에, 프로 선수들은 몸 관리부터 체계적으로 합니다. 그런 것부터 아마추어 선수와 차이를 일으킨다고 생각해요.

트레이드 그리고 부상
김종범은 2013~2014시즌에도 오리온스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오리온스와 KT가 4대4 트레이드를 단행했고, 김종범은 트레이드 명단에 포함됐다. 그래서 KT 유니폼을 입어야 했다.
그렇지만 KT에서도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2014~2015시즌부터 원주 동부(현 원주 DB) 유니폼을 입은 것. 그리고 2015~2016시즌 종료 후 FA(자유계약) 자격을 취득했고, 그 후 KT로 돌아왔다.
하지만 김종범은 ‘부상’이라는 장애물과 마주했다. 왼쪽 무릎 연골 때문에 고생했고, 오른쪽 무릎 전방십자인대 파열로 큰 위기를 맞았다. 복귀를 계속 시도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김종범은 결국 선수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2013~2014시즌 중 처음으로 트레이드됐습니다. 그것도 대형 트레이드였는데요.
(오리온스는 당시 전태풍-랜스 골번-김승원-김종범을 KT로 보냈고, KT는 앤서니 리차드슨-김도수-장재석-임종일을 오리온스로 보냈다)

저는 임팩트 있는 선수도 아니었고, 트레이드의 핵심도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당시에 따르고 있던 (전)태풍이형과 함께 이적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영입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제가 롤 모델로 삼았던 (조)성민이형(현 안양 정관장 코치)도 계셨어요. 게다가 전창진 감독님(현 부산 KCC 감독)께서 저에게 성민이형을 막아보라고 지시하셨어요. 그런 경쟁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재미를 더 들였던 것 같아요.
2016~2017시즌에 커리어 하이를 찍었습니다.
(김종범은 당시 46경기에서 평균 21분 11초 동안 7.5점을 넣었다. 경기당 3점슛 성공 개수는 1.7개였다)

FA로 합류했지만, 이적 첫 날에 부상을 당했습니다. 오래 쉬어서, 몸 관리가 안 됐거든요. 하지만 당시 조동현 감독님(현 울산 현대모비스)께서 저에게 “몸 관리를 잘하고, 선수로서의 마음을 가다듬어라. 그렇게 한다면, 너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저 스스로 감독님의 조언을 생각하다 보니, 그 시즌에 잘 풀렸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 선수로서의 마음과 의지, 집중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태풍이형과 허훈이도 마찬가지였어요. 경기에 몰입하는 능력과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달랐어요. 두 선수에게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그렇지만 왼쪽 무릎 연골이 좋지 않았습니다. 2020~2021시즌 중에는 오른쪽 무릎 전방십자인대를 다쳤고요.
아쉽지는 않았어요. 제가 열심히 안 했고, 노력도 안 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성과를 원했습니다. 완전 도둑놈 심보였죠.(웃음)
결국 2022~2023시즌 중반에 선수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구단에 먼저 ‘은퇴’를 말씀드렸습니다. 은퇴 시기를 어느 정도 잡고 있었고, 사업 역시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구단에서는 “너무 이르지 않느냐? 조금 더 생각해봐라”며 권유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시즌 중에 은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는 저를 “바보 같다”라고 말했지만, 저는 ‘주어진 연봉을 포기해야, 사업에 더 진지하게 임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단장님에게도 “선수들의 연봉보다 더 많이 벌 수 있으니, 저를 보내주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선수 시절보다 돈을 많이 버셨나요?
얼추 비슷한 거 같습니다. 열심히 하고 있어요.(웃음)

터닝 포인트
프로 스포츠 선수는 누구나 새로운 인생과 마주한다. 선수만 평생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종범도 마찬가지였다.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선수 생활을 마쳤기 때문에, 새로운 포인트와 마주할 수 있었다. 은퇴 직후 고향인 춘천에 웨이브스포츠클럽을 열었다. 그 곳의 원장을 맡았다.
1년 넘는 시간 동안, 이전과 다른 환경에서 많은 걸 경험했다. 무엇보다 지도자로서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게 가장 큰 포인트였다.

은퇴 후 웨이브스포츠클럽을 열었습니다.
선수를 하고 있을 때, ‘은퇴 후 어떤 일을 해야 할까?’라고 고민했습니다. 고민 끝에 제 소유의 체육관을 갖는 걸로 결정했습니다. 제가 벌었던 돈에 아버님의 지원을 받았죠.
처음에는 수원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려고 했습니다. KT에서도 많이 도와주려고 했고요. 그렇지만 이왕 하는 거, 고향인 춘천에서 후배들을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그게 고향 선배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처음에는 막막했습니다. ‘내가 이럴려고 춘천에 온 게 아닌데...’라고 생각할 정도로요.(웃음) 그렇지만 지금은 운동 분위기부터 많이 좋아졌습니다. 운동 시작 1시간 전부터 운동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제가 그런 것들을 제자들에게 주입시키고 있거든요.(웃음) 그리고 지금은 엘리트 고등학교와 엘리트 중학교에서도 훈련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조금 더 바빠졌어요.(웃음)
제자들에게는 어떤 것들을 가르쳐주고 있나요?
제가 가르치고 있는 엘리트 선수들이 프로 선수를 목표로 삼을 경우, 저는 우선 엘리트 농구부 지도자의 성향을 제자들에게 알려줍니다. 또, ‘이걸 왜 해야 하지? 이걸 어떻게 해야 잘하지?’를 이해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에 몸 관리와 식습관 등 선수 때 안했던 것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웃음) 2가지 모두 선수의 성장에 중요한 거니까요. 그리고 제자들이 시합에 나갈 때, 제가 경기 2~3일 전에 비디오 미팅을 따로 합니다. 나중에는 안 할 거지만, 지금은 일부러 하고 있어요. 비디오를 통한 전력 분석도 선수에게는 꼭 필요하거든요.
지도자로서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제 열정을 선수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그렇게 해야, 선수들이 따라올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사실 선수들이 좋아하는 지도자는 아마 없을 겁니다. 대신, 선수들에게 임팩트 있는 지도자로 남고 싶어요.
무엇보다 제자들에게 진심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 번에 4~5명만 가르치고 있어요. 그렇게 해야, 디테일하게 지도할 수 있고, 열정을 쏟을 수 있거든요. 사설업체 원장이라고는 하나, 학교 선생님들처럼 가르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해서, 제자들을 좋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로 보내고 싶어요. 나아가, 프로 무대까지 보내주고 싶어요.
지도자로서 공부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기보다, 가르치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대신, 많은 지도 선생님들에게 조언을 듣고 있어요. 그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모든 지도자 선생님들을 존경하게 됐습니다.(웃음)

“제 인생이었고, 제 인생일 거니까요”
‘뭐하고 지내세요?’의 마지막 주제는 자신의 농구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다. 김종범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농구 인생을 돌아봐달라”고 말이다.
김종범은 20년 넘게 농구공과 함께 하고 있다. 코트에 있는 시간 동안, 숱한 일들을 겪었다. 그리고 코트 안에서 여러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 ‘농구’를 ‘인생’에 비유했다.

‘농구’는 어떤 의미인가요?
은퇴 후에는 농구를 안 하고 싶었어요. 농구를 엄청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요.(웃음) 그렇지만 농구를 놓는 건 어려웠습니다. 농구는 제 인생이었고, 제 인생일 거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고 다짐했습니다. 또, ‘어떻게 하면, 농구 환경이 더 좋아질까? 어떻게 하면, 농구를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를 많은 사람들과 고민하고 있습니다. 공부도 많이 하고 있고요.
‘김종범의 농구 인생’을 한 번 돌아봐주세요.
프로 초창기에는 기회를 많이 받았습니다. 운도 좋았어요. 그렇지만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게 부상으로 나타났습니다.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오히려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또, 짧은 커리어가 사업에 좋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지도자 커리어를 앞으로 잘 쌓아서, 제2의 농구 인생 또한 잘 살고 싶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농구를 하실 건가요?
안 하죠.(웃음) 다만, 지금 같은 인생을 살 수 있다면, 농구를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요.

일러스트 = 락
사진 제공 = KBL(본문 2~4번째 사진), 김종범(본문 5번째 사진)

[저작권자ⓒ 바스켓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HEADLINE

더보기

PHOTO NEWS

더보기

베스트 클릭

인터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