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이항범 JBJ 대표, “농구는 너무 멋진 스포츠입니다”

손동환 기자 / 기사승인 : 2022-12-16 12:4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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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2년 11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인터뷰는 10월 12일 오후에 진행됐습니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68cm의 한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자신보다 한참 높은 림에 농구공을 던졌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저 농구공을 가지고 노는 게 좋았다.
농구공이 좋았던 소년은 프로농구선수가 됐다. 그러나 프로농구선수가 된 소년은 경쟁의 세계에서 보이지 않았다. 농구공 그리고 코트와 한없이 멀어졌다.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게 잘못된 선택임을 알았다. 누군가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도록, 그 소년은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농구의 진정한 의미를 알았다. JBJ(Jesus Baby Jordan) 대표 이항범의 이야기다.

한순간의 선택

168cm의 작은 신장. 하지만 신장만 작을 뿐이었다. 심장은 누구보다 컸다. 농구에 필요한 개인 기술 역시 뛰어났다. 공백기가 있었음에도, 프로 무대의 눈도장을 받았다.
그래서 ‘선수 이항범’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프로에서 볼 일은 없었다. 자신이 내린 결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결정을 뼈아프게 생각했다. 자신의 결정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프로 입성 전까지의 ‘선수 이항범’을 돌아봐주세요.
농구를 너무 좋아했습니다. 친구들과 길거리 농구를 많이 했죠. 그러다가 홍대부중에서 선수 제의를 해주셨습니다. 주변에서는 “농구를 하기엔 키가 너무 작다”고 만류하셨지만, 저는 그래도 엘리트 농구를 하고 싶었습니다. 농구를 향한 애정이 컸거든요.
홍대부중과 홍대부고를 거친 후, 성균관대로 입학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회의를 느꼈고, 그만뒀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교만했던 거였죠. 그만 둔 후에는 1년 정도 코트 밖에서 생활하다가, 군으로 입대했습니다. 아버지를 포함한 주변 분들께서 “일단 군대를 가는 게 좋겠다”고 권유해주셨거든요.
2004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4순위(전체 14순위)로 울산 모비스(현 울산 현대모비스)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한 KCC가 R.F 바셋을 받는 조건으로 양동근을 모비스로 보냈다. 모비스에 입단했던 이항범은 최승태와 함께 KCC로 트레이드됐다)
입대 초반만 해도, 농구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상병이 됐을 때, 주변 어르신들과 선배님들께서 “일반인 드래프트가 생겼으니 참가해봐라”고 권유하셨어요. 알아보니, 저에게도 참가할 자격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다만, 군대에서 어떻게 준비할지 막막했어요. 농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거든요. 그러다가 성균관대 시절에 했던 연습경기가 생각이 났어요. 기아 엔터프라이즈(현 울산 현대모비스)와 현대 걸리버스(현 전주 KCC)와 했던 연습경기를 떠올렸죠. 기라성 같은 멤버들(기아 : 허재-한기범-강동희 등, 현대 : 이상민-조성원-추승균-조니 맥도웰 등)을 상대했지만, 기술은 통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몸이었어요. 키가 작아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먼저 했어요.
2003년 7월에 제대했고, 2004년 2월에 열릴 드래프트까지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있었어요. 웨이트 트레이닝은 많이 했지만, 농구에 필요한 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모교에서 드래프트를 준비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고, 저는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 때문에 더 열심히 운동했어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아침(농구 운동)-점심(야외 코트)-저녁(웨이트) 모두 거르지 않았죠.
그렇지만 드래프트에서 뽑힐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말도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죠. 저는 그저 ‘수련 선수만 되도 좋겠다. 수련 선수로 1년만 열심히 한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정도의 계획만 세웠거든요.
하지만 당시 신선우 감독님(현 대구 한국가스공사 총감독)께서 저를 좋게 봐주셨어요. 예전에 치렀던 연습경기에서는 “졸업하면 (이)상민이 후배로 와”라고 해주셨어요. (이)상민이형(전 서울 삼성 감독)이 제 중고등학교 선배님이셨거든요. 드래프트에서도 저를 좋게 봐주셨어요. 제가 나중에 안 사실인데, 감독님께서 “(이)항범이는 군대도 다녀왔고, 몸도 이전보다 좋아졌다. 경기 감각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하셨더라고요.
저 역시 절실했습니다. 드래프트를 마지막 오디션이라고 생각했어요. 10~15분 남짓한 시간 동안 모든 걸 쏟아부었어요. 그런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운 좋게 지명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쁜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러나 프로 무대에 데뷔하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언론과 방송에서 저를 많이 주목해주셨습니다. 하지만 농구가 아닌 다른 면에 주목을 해주셔서, 부담이 컸습니다. 대인기피증이 생길 정도였죠. 그래서 그만두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저의 판단이 너무 잘못됐어요. 부담을 느껴서 그만둔 게 아니라, 피한 거였죠. 제 잘못된 판단 때문에, 코트를 벗어났다고 생각해요.
혼자 끙끙 앓은 것도 잘못된 판단이었어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혼자 생각하다 보면, 나처럼 좋지 못한 결과를 얻는다. 여러 사람들과 의논할 때, 더 지혜로운 결과가 나온다”고 이야기해요. 후배들만큼은 제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아요.
프로 무대를 벗어난 후에도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제가 프로에 처음 들어갔을 때도, 제가 프로선수를 그만뒀을 때도, 저는 뉴스에 나왔습니다. 인상도 특이하다 보니(웃음), 저를 기억하는 분들도 많으셨어요.
그래서 저 혼자 남들의 시선을 의식했어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비웃는다고 생각했죠. 저 사람은 그냥 나를 보는 거고, 저 사람은 나를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저 혼자 그런 생각을 했었죠. 한여름에도 더운 모자를 쓸 정도로, 의식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한동안 농구를 보지 못했을 것 같아요. 특히, 프로농구는요.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했던 행동이 뼈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너무 위험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저와 관련된 소식이 언론이나 방송에 나오면서, 제가 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알게 됐어요.
그래서 농구를 보기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농구 관련 일을 제의받기는 했지만, 쉽게 할 수 없었어요. 제가 농구를 그만둔 것 때문에, 상처 입은 분들이 생각났거든요. 그래서 농구를 보고 농구 관련 일을 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JBJ(Jesus Baby Jordan)
너무나 사랑했던 ‘농구’였다. 너무나 사랑했던 ‘코트’였다. 그러나 한순간의 선택으로 너무나 사랑했던 ‘농구’와 ‘코트’를 떠나보냈다. ‘농구’ 혹은 ‘코트’와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살았다.
이항범은 후회하고 후회했다. 후회의 결과는 ‘반성’이었다. 반성의 방법은 하나였다. 잘못을 남겼던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는 JBJ의 시작과 연관됐다.

프로농구를 떠난 직후에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아버지가 방송인(이항범의 아버지는 탤런트였던 故 이병철 씨였다)이기는 하셨지만, 저는 제 벌이를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코트를 나오고 보니,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지하철 택배와 이삿짐, 막노동 등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다 했던 것 같아요.
후회는 없으셨나요?
어느 날 저 스스로 너무 한심하다고 느꼈어요. ‘내 꿈이었던 프로농구선수가 현실이 됐는데... 내가 좋아하는 농구로 팬들의 관심과 사랑, 돈과 명예도 얻을 수 있는데... 농구가 주는 큰 선물을 받기만 하면 되는 건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은 제 잘못된 결정이 모든 걸 걷어찼습니다. 저 스스로 저를 죽인 거죠. 제가 정말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너무 괴로웠어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식은땀이 나요.
말씀하신 대로, 코트를 오랜 시간 떠났습니다. 코트가 그립진 않던가요?
제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는 분들도 많으셨어요. 제 상황을 알던 어르신들은 “너의 재능을 인정하는 농구인들이 많다. 너의 재능이 이대로 사라지는 게 아깝다. 아이들이라도 가르쳐보는 게 어떻겠냐?”고 진심으로 권유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망설였어요. 농구 때문에 많은 분들에게 상처를 줬거든요. 그래서 농구공을 다시 잡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잘했던 것만 비춰지고 싶고, 실패했던 걸 숨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생각을 달리하게 됐어요.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농구를 알려주고, 농구를 좋아하거나 저를 기억해주는 분들에게 농구를 가르쳐주는 것도 소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저 같은 후배들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감추고 싶었던 저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농구 선배로서 ‘적어도 후배들은 나처럼 살면 안 된다’는 마음이 컸거든요.
JBJ는 어떻게 만드신 건가요?
2017년에 사업자등록을 했고, 2018년부터 공식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JBJ 유소년 농구대회’도 올해로 5년차를 맞았고요.
JBJ는 어떤 의미인가요?
앞에 있는 ‘J’는 ‘Jejus’의 약자입니다. 농구로서 복음을 전하자는 의미가 있죠. 뒤에 있는 ‘BJ’는 제 별명이자 공식 팬 카페 이름입니다. ‘Baby Jordan’의 약자예요. 제가 마이클 조던을 보고 농구 선수의 꿈을 꿨거든요. 키가 작은데도 선수 시절 내내 23번을 하고, 신발도 마이클 조던 모델을 많이 신었죠.(웃음)
지금은 학생들을 많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전과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요?
처음에는 기술을 많이 알려줬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농구를 통해 얻은 삶의 교훈도 전달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농구를 통해 얻은 지혜와 배려를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또, “넘어지는 시간도 있겠지만, 일어설 기회도 올 거야”라는 말도 해줬습니다. 폭넓은 의미의 농구를 전해주고 싶었어요. 감히 말씀드린다면, ‘교육’이라는 의미를 덧붙이고 싶었어요.
학생들도 처음에는 ‘운동이나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농구를 멋진 스포츠로 보더라고요. 농구에 관심을 가지지 않던 친구들이 농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농구공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더 공부하고, 더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을 더 바르게 먹다 보니, 학생들과 더 깊이 소통하게 됐습니다.
농구를 접하는 가치관도 달랐을 것 같습니다.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예전의 저는 이기적이었습니다. 개인 플레이를 많이 했고, 제 위주의 농구를 했습니다. 교만도 자만도 있었죠. 그렇지만 저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였기에, 지금의 제 인생이 있다고 생각해요. ‘팀워크’의 진정한 의미도 알게 됐고요. 지금 하고 있는 농구와 지금 알고 있는 농구가 저에겐 진짜 농구라고 생각해요.

“다시 태어나도, 농구는 무조건입니다”
이항범과 인터뷰를 하기 하루 전. 이항범은 SNS에 게시물 하나를 업로드했다. 미국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다큐멘터리인 ‘THE REDEEM TEAM’의 영상과 함께, “농구를 다시 배우다. 농구가 정말 멋진 팀 스포츠란 걸. 내 농구 인생의 선택은 행운X감사 is HAPPY!!”라는 글귀를 함께 올렸다.
‘THE REDEEM TEAM’을 시청한 이항범은 ‘농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이전보다 ‘농구’를 더 소중하게 여겼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도 무조건 농구를 하겠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이항범의 어조가 가장 밝게 드러난 멘트이기도 했다.

‘농구’는 어떤 의미인가요?
예전에는 기쁨과 즐거움만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생각하는 대로 기분 좋게 플레이를 했거든요. 그러다가 슬픔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농구는 저에게 ‘희로애락’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한 번의 수업에도 희로애락을 담으려고 합니다. 단순히 농구를 알려주는 게 아니라, 기쁨과 슬픔을 아이들과 함께 느끼려고 합니다. 어떤 기쁨이든 어떤 슬픔이든, 멋진 팀워크가 함께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이항범의 농구 인생’을 한 번 돌아봐주세요.
파란만장했습니다.(웃음)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습니다. 제 농구 인생은 ‘ING’라는 점입니다. 4Q뿐만 아니라, 연장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직도 흥미로워요.
물론, 제 농구 인생의 1~2쿼터는 정말 처참했습니다. 멘탈이 무너졌죠. 그렇지만 그 때의 저로 끝이 났다면, 저는 그저 안타까운 선수로 남았을 거예요. 제가 농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몰랐을 거고, 농구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과도 소통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에게 하나의 바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 농구 인생을 지금 시점으로 판단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무엇보다 제 인생의 마지막에도 ‘감동’과 ‘승리’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농구를 하실 건가요?
넷플릭스에 있는 ‘THE REDEEM TEAM’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봤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농구를 다시 배우다. 농구가 정말 멋진 팀 스포츠란 걸. 내 농구 인생의 선택은 행운X감사 is HAPPY!!”는 글귀를 올렸습니다.
농구라는 스포츠를 한 게 저에게는 행운이었습니다. 너무 감사했어요. 농구가 멋진 운동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알게 됐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조화를 이뤄서 팀 플레이를 해낼 때의 그림은 저에게 너무나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도, 무조건! 농구를 하고 싶어요.
저는 농구와 관련된 많은 스토리를 안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에게 농구를 전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또, 농구를 좋아하는 많은 분들과 더 많은 추억을 나누고 싶어요. 그렇게 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더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인터뷰도 저의 스토리 중 하나가 될 거고요.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
사진 제공 = KBL(본문 첫 번째 사진), 이항범(본문 2~4번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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