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깐 반짝했던 시기가 있었다. 반짝했던 기억 때문에, 농구를 향한 간절함이 더 컸다. 비록 부상 때문에 간절함을 꽃피우지 못했지만, 농구를 향한 마음은 여전했다. 그 마음으로 농구 인생을 이어가고 있다. 광주고에서 학생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는 우승연의 이야기다.

전남제일고와 경희대를 졸업한 우승연은 2007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 나왔다. 공수 밸런스를 갖춘 준수한 포워드였지만, 우승연 앞에는 장애물이 가득했다. 김태술(현 SPOTV 해설위원)과 양희종(전 안양 KGC인삼공사), 정영삼(안양고 코치)과 박상오(현 쌍용고 코치) 등 황금세대로 불렸던 이들이 드래프트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승연은 전체 9순위로 서울 삼성에 입단했다. 황금 세대 사이에서도 ‘1라운더’라는 타이틀을 얻었기에, 우승연의 앞날은 더 긍정적이었다. 다만, 다른 동기들이 코트에 나설 때, 우승연은 벤치에 앉아있었다. 이는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2007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9순위로 프로에 입성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왔어요. 그래도 조금은 기대를 했어요. 1라운드 중위권에는 선발될 거라고 생각했죠. 그렇지만 6순위가 지나도, 제 이름은 나오지 않았어요. 실망감과 좌절감이 동시에 들었죠.
그런데 제 옆에 있던 고등학교 친구(홍성헌 성균관대 코치)가 저를 툭툭 치더라고요. 삼성에서 제 이름을 불러줬는데, 저는 몰랐던 거예요.(웃음) 그 정도로, 긴장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입단 팀이 삼성이었습니다. 첫 인상은 어떠셨나요?
대학교에서 삼성이랑 연습 경기를 몇 번 했어요. 그렇지만 그때마다 너무 못했어요. 그래서 삼성이 저를 뽑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또, 삼성은 대기업에 명문 팀이에요. (삼성에 입단했을 때) 너무 놀랐고, 너무 영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비시즌 훈련 때 연습체육관을 삼성트레이닝센터(STC)로 옮겼는데, 체육관과 웨이트 트레이닝장, 식당과 사우나 등 모든 시설이 최고였어요. ‘이제 운동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죠.
데뷔 시즌(2007~2008) 평균 출전 시간이 7분 13초에 불과했습니다.
2명의 외국 선수가 동시에 뛸 수 있었고, 당시의 삼성은 국가대표 선수들을 많이 보유한 팀이었습니다. 특히, 제 포지션에는 (이)규섭이형(현 SPOTV 해설위원)이 있었어요. 서동철 코치님(전 수원 KT 감독)께서 제 운동을 많이 봐주셨고 저도 노력했지만, 선배님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는 어려웠어요. 경쟁에서 살아남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웃음)

우승연의 데뷔 시즌은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선수 우승연’의 미래를 바꾼 사건이 발생했다. 울산 모비스(현 울산 현대모비스)가 삼성에 “우승연을 1시즌만 임대해달라”고 요청한 것. 요청을 받은 삼성은 ‘우승연의 임대 트레이드’를 결정했다.
우승연은 뜻하지 않게 모비스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수비를 중요하게 여기는 유재학 감독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데뷔 두 번째 시즌(2008~2009) 만에 정규리그 전 경기를 나섰다. 평균 출전 시간 또한 18분 45초로, 직전 시즌보다 2배 이상 뛰었다. 경기당 4.5점 1.7리바운드에 41.2%의 3점슛 성공률(경기당 0.9/2.1)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모비스 역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창출했다. 양동근(현 울산 현대모비스 수석코치) 없이도 정규리그 1위를 기록했다. 비록 플레이오프에서 무너졌지만, 모비스의 퍼포먼스는 놀라웠다. 우승연이 만든 ‘뜻하지 않은 신화’ 덕분에, 모비스는 강호의 면모를 유지할 수 있었다.
데뷔 시즌 후 모비스로 임대 트레이드됐습니다.
삼성에서 두 번째 비시즌을 맞았습니다. 근데 뭔가 이상했어요. 모든 선수들이 연봉 협상을 하러 사무국에 들어가는데, 저는 부름을 받지 못했거든요.
그러다가 매니저가 “단장실로 가봐”라고 했어요. 단장님과 안준호 감독님, 서동철 코치님께서 앉아계셨어요. 뭔가 쎄하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단장님께서 트레이드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처음 겪은 트레이드라,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렇지만 좋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뛸 수 있는 팀이라면, 어느 팀이든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죠.
모비스의 첫 인상은 어땠나요?
저희 학교 근처에 모비스 연습체육관이 있었습니다. 연습 경기를 많이 했죠. 그래서 분위기나 시설이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유재학 감독님은 정말 무서운 분이다. 모비스는 운동을 정말 많이 한다’는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그런 것 때문에, 긴장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경희대 4년도 버텼는데, 여기서도 버틸 수 있어’라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웃음) 또, ‘내가 필요했기에, 모비스가 나를 부른 거다’라고도 생각했고요.
데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규리그 전 경기를 소화했고, 모비스 역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습니다.
김동우 선배님(현 창원 LG 코치)과 양동근 선배님(현 울산 현대모비스 코치)께서 빠졌습니다. 이창수 선배님(현 충주고 코치)과 우지원 선배님이 계셨지만, 젊은 선수들이 모비스의 주축이었어요. 게다가 모비스가 2007~2008시즌 최하위 팀이어서, 2008~2009시즌의 모비스도 많은 기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선수들끼리 “올해 사고 한 번 쳐보자”고 이야기했습니다. 간절함이 컸어요. 저 또한 그랬고요. 데뷔 시즌에 기회를 많이 뛰지 못했기 때문에, 코트에 서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거든요. 그래서 훈련 외적인 시간에도 개인 운동을 많이 했고, 그런 것 때문에 좋은 결과를 냈다고 생각합니다.

우승연은 모비스에서 1년을 보낸 후 원 소속 구단인 삼성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모비스 시절 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부상까지 겹쳤다. 기회를 얻지 못한 2013~2014시즌 중 서울 SK로 트레이드됐다.
SK로 간 후에도, 우승연의 자리는 벤치였다. 그리고 2013~2014시즌 종료 후 FA(자유계약)를 선언했다. 모험이었다. 보여준 게 없었기에, 우승연을 찾는 이들이 없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우승연은 백업 포워드를 필요로 했던 부산 KT(현 수원 KT)와 계약 기간 3년에 2014~2015시즌 보수 총액 7천만 원의 조건으로 계약을 맺았다. 그렇지만 허리 부상이 우승연을 괴롭혔다. 우승연은 결국 KT와의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했다. 2015~2016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했다.
임대 트레이드 후 삼성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지만 삼성에서 기회를 얻지 못했는데요.
2008~2009시즌 종료 후 상무에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탈락했어요. 그리고 삼성으로 돌아왔는데, “군 복무를 마치고 합류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군 입대를 위해 신체 검사를 받았고, 무릎 수술 경력 때문에 공익근무요원(현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시작했습니다. 불안하고 초조했어요. 상무에 있는 친구들은 매일 훈련하면서 경기 감각을 채우는 반면, 저는 팀 훈련을 할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개인 운동을 더 많이 했습니다. 남들한테 처지고 싶지 않아서요.
그렇지만 그게 오버 페이스가 됐고, 무릎이 더 악화됐습니다. 공익근무하는 동안 무릎 수술을 2번이나 받았어요. 소집 해제 후에도 재활을 해야 했죠. 당시 김상준 감독님(현 성균관대 감독)께서 저에게 시간과 여유를 주셨지만, 제 마음은 그렇지 못했어요. 완벽하지 않은 몸으로 복귀했고, 이는 부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어요.
2013~2014시즌 중 SK로 트레이드됐습니다.
삼성이 김동우 선배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착잡한 마음이 컸어요. 그리고 저는 프로 선수로서의 시작을 삼성에서 했습니다. 삼성의 선수라는 자부심도 컸죠. 게다가 이번에는 임대 트레이드가 아니었어요. 삼성을 완전히 떠나야 했어요. 그런 이유로,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하지만 SK가 많은 선수들 중에 저를 선택했습니다. 저를 조금이라도 필요로 한다고 생각했죠. 저 스스로 ‘SK에서는 날개를 펼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도 들었습니다.
2014~2015시즌부터 KT와 3년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렇지만 2015~2016시즌 종료 후 은퇴하셨어요.
그때 전창진 감독님(현 KCC 감독)과 김승기 코치님(현 고양 소노 감독), 손규완 코치님(현 고양 소노 수석코치)께서 KT에 계셨습니다. 저를 원했기 때문에, 저를 영입하신 것 같아요. 저도 감독님과 코치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어요. KT 합류 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간절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연습 경기 중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시즌 중후반에 복귀할 정도로, 회복이 오래 걸렸습니다. 너무 죄송했어요. 팀에 도움이 되지 못했고, 팀의 기대에 부응하지도 못했거든요.
2014~2015시즌이 끝난 후, 조동현 감독님(현 울산 현대모비스 감독)께서 처음 부임하셨습니다. 열심히 준비했지만, 기회를 많이 받지 못했어요. 몸도 좋지 않았고, 조동현 감독님께서 추구하시는 농구를 해내지 못했어요.
그리고 2015~2016시즌 종료 후 비시즌 훈련에 돌입했습니다. 휴가를 다녀왔는데도, 무릎과 허리가 좋지 않았어요. 재활에 매진했지만, 예전 같지 않았죠. 마음은 저만큼 앞서있는데, 몸이 안 따라주더라고요. 비시즌 훈련을 감당하지 못할 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고민 끝에 은퇴를 결정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프로 스포츠 선수는 누구나 새로운 인생과 마주한다. 선수만 평생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승연도 마찬가지였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모교인 경희대에서 코치를 맡았고, 2021년부터 광주고 농구부에서 학생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다. 자신의 노하우를 농구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지도자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2017년부터 경희대 코치를 맡았습니다.
은퇴 직후 KT로부터 전력분석원 제의를 받았습니다. 너무 감사했어요. 전력분석원이 된 저는 대학교 경기와 프로 경기를 보러 다녔습니다. 특히, 대학 경기를 많이 봤고, 모교에 계신 김현국 감독님도 자주 찾아뵀어요.
내심 선수들을 어떻게 지도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경희대를 몇 번 찾아갔어요. 그리고 마침 경희대 코치가 공석이었습니다. 김현국 감독님께서도 “코치 한 번 해볼래?”라고 제의해주셨어요.
고민이 많았습니다. 새로운 길을 가고 싶긴 했지만, 기존에 하던 일이 있었으니까요. 조동현 감독님에게 면담을 신청했고, 감독님께서는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흔쾌히 지지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경희대 코치로 갈 수 있었습니다.
2021년부터 광주고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김현국 감독님께서 MBC배 후에 저를 부르셨습니다. “광주고가 대회를 나가야 하는데, 코치가 없다고 하더라. 광주고가 너에게 코치를 제안했는데, 너의 생각은 어때?”라고 하시더라고요. 마침 저도 메인 코치를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고민 없이 광주고로 향했습니다.
6년 동안 학생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떤 걸 강조하고 계신가요?
경희대학교에서는 김현국 감독님을 보좌했습니다. 김현국 감독님께서 선수들을 가르칠 때, 제가 옆에서 보조 역할만 했죠.
그렇지만 광주고에서는 달랐습니다. 제가 주도적으로 학생 선수를 가르쳐야 해요. 기본기도 기본기지만, 마인드를 많이 강조했습니다. “연습과 훈련을 시합처럼 열심히 하고, 코트에서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했죠.
자신감을 강조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스포츠의 반은 자신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직 학생이에요. 부딪혀보고 깨져보고, 넘어지기도 해야 해요. 그렇게 해야, 다시 일어설 수 있어요. 그래서 “안 되더라도 해보자”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학생 농구의 현실도 많이 인지하셨을 것 같아요.
지방 팀 대부분이 선수 수급 때문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좋은 유망주들이 나와도, 수도권이나 성적 좋은 학교로 가는 일이 많아요. 스카우트도 많이 받고요.
또, 제가 학생일 때는 운동에 전념했다면, 지금의 학생 선수들은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운동했을 때와 비교하면, 운동 시간이 많이 부족해요. 하지만 저는 짧은 운동 시간 속에서 학생 선수들의 실력을 올려야 해요.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지도 방식을 정립해야 해요.

‘뭐하고 지내세요?’의 마지막 주제는 자신의 농구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다. 우승연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다시 태어나도 농구를 하겠냐?”고 말이다.
우승연은 “힘들기도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농구를 다시 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농구 인생이 험난했음에도, 농구공을 선택한 것. “농구를 선택한 내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농구’는 어떤 의미인가요?
농구 외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정도로, 농구 밖에 몰랐습니다. 은퇴한 지 7년 정도 지났는데도, 코트에서 뛰는 꿈을 꿀 정도로요.(웃음) 그만큼 농구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 삶의 전부이기도 했고요.
‘우승연의 농구 인생’을 한 번 돌아봐주세요.
희로애락이 다 있었지만, 농구를 선택한 제 삶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선수 생활하는 동안 최선을 다했거든요. 그리고 농구 덕분에,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습니다. 선수들을 가르치면서 얻는 즐거움도 생겼고요.
다시 태어나도 농구를 하실 건가요?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정말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그때를 생각한다면, 고민할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농구를 다시 할 것 같아요. 농구라는 스포츠가 제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거든요.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
사진 제공 = KBL(본문 2~5번째 사진), 우승연(본문 마지막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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