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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 = 김영훈 기자] 포워드의 한국어 풀이는 공격수다.
농구의 포워드 역시 공격을 담당하는 선수다. 농구의 트렌드가 센터 중심에서 가드 중심으로 바뀌고 있으나, 포워드가 득점을 해줘야 하는 것은 변함없다. 점수가 높아야 승리하는 경기이기에 포워드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최근 한국 농구도 젊은 포워드들의 등장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아직은 어리지만 용산고에도 전도유망한 포워드가 있다. 3학년에 진학하는 김동현(191cm). 한국 농구의 차세대 득점 머신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선수이다.
<바스켓코리아>에서는 김동현을 직접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12월호 웹진에 게재된 글입니다.
2020년은 나의 무대!
지난 11월 18일 열린 강원도 인제에서 열린 2019 우수 초·중·고교 초청 농구대회. 용산고는 결승에서 청주신흥고를 81-74로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대회는 1,2학년들이 주축으로 나서는 대회로 2020년 시즌의 판도를 알아볼 수 있다. 용산고도 김태완이 뛴 것을 제외하면 다음 해 주축으로 나설 선수들이 출전했다. 그런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기에 내년 용산고의 기대도 한껏 커졌다.
이번 대회 용산고의 주축은 당연히 김동현이었다. 팀의 에이스인 탓에 상대 수비의 집중견제를 받았으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탁월한 슛 능력으로 본인의 진가를 입증했다. 뿐만 아니라 돌파로도 점수를 만들며 용산고를 이끌었다.
김동현은 이미 올해부터 김태완, 유기상과 함께 삼각편대로 이름을 날렸다. 아직 2학년이기에 3학년이 되는 2020년은 김동현의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 가능성을 2019년 겨울부터 증명한 것이었다.
하지만 김동현은 냉정했다. “아직 완벽하지 않다. 좋지 않은 점도 많이 보여줬다. 고쳐야 할 부분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점수로 치면 50점짜리 경기력이었다. 더 노력해야 한다”며 자신에게 질책을 가했다.
모두가 인정하지만 자신에게는 냉철했던 김동현. 충분히 대성할 자질을 갖추고 있는 모습이었다.
농구 인생의 변화를 가져다 준 ‘미국 뉴저지’
김동현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농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본인의 표현대로라면 그는 일반적인 선수였다.
평범했던 그의 인생을 한 단계 올려놓은 것은 미국 유학. 중학교 1학년 시절 1년간 김동현은 미국 뉴저지로 농구 유학을 떠났다. 이는 김동현을 달라지게 했다.
김동현은 “정말 하루 종일 농구 했다. 오전에는 개인 트레이너와 오후에는 단체 훈련을 했다. 미국 가니 잘하는 선수들이 많더라. 그들이 공격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하다 보니 농구가 늘었다. 개인기도 좋아서 많이 배우려고 했다”며 미국 생활을 떠올렸다.
김동현이 슛에서 특별한 능력을 보인 것도 당시였다. 그는 매일 엄청난 양의 슛을 던지면서 장기를 개발했고, 이는 김동현의 농구 인생에 변화를 안겨준다.
어린 나이에도 1년간의 타지생활 이후 김동현은 한국에 돌아왔다.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그는 한국 농구계에 조금씩 이름을 알린다. 당시 용산중에는 2m 중학생으로 유명했던 여준석이 있었다.
그와 김동현이 합쳐지자 용산중은 전국을 제패했다. 상주에서 펼쳐진 72회 종별농구선수권대회에서 압도적인 전력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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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이 가득했던 2019년
용산고로 넘어온 김동현은 1학년 때는 경기에 많이 나서지 못했다. 고등학교 농구 특성상 저학년이 출전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김동현의 부친인 김승기 안양 KGC인삼공사 감독은 저학년임에도 남다른 기량으로 선배들을 제치고 경기를 소화했다. 그런 아버지를 두고 있기에 김동현도 조급했을 터.
김동현은 “아버지가 오히려 괜찮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쉼 없이 뛰셔서 무릎이 좋지 않으셨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셨던 거 같다”고 말했다.
1년간 적응을 마친 김동현은 2019년부터 용산고의 핵심으로 성장했다. 김태완-유기상과 함께 용산고의 주축 3인방으로 1년을 보냈다.
하지만 결과는 아쉬운 무관. 열심히 노력했으나 휘문고 홍대부고, 무룡고 등에 밀려 결승은 물론 4강도 꿈꾸기 힘들었다.
가장 아쉬웠던 대회는 5월 열린 협회장기. 용산고는 중위권이라는 평가와 다르게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제물포고와의 결승전에서 무릎을 꿇었다. 김동현은 이에 대한 패배를 자신의 잘못으로 생각했다.
“내가 조금만 더 뛰었으면 이길 수 있는 경기였다. 주위에서 근성이 없다고 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 너무 많이 아쉬웠고, 스스로도 많이 자책했다. 계속 후회한 경기였다.”는 김동현의 말이다.
그러나 아쉬움은 빨리 털어버릴수록 좋은 법이다. 김동현의 2020시즌 첫 출발은 순조로웠다. 그에게는 밝은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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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그림자를 지우겠다!
앞서도 말했듯이 김동현의 아버지는 김승기 감독이다. 선수 시절 유명한 가드였던 김 감독의 그림자는 항상 김동현의 뒤에 따라다닌다. 그렇기에 그는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닌 김동현이라는 이름으로 각인을 받고 싶어 했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항상 너무 많이 들었다. 아버지의 명성에 누가 되면 안 된다는 부담도 많았다.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 아닌 김동현이 되었으면 한다. 아버지 덕분에 도움을 받은 것도 많았으나 앞으로는 홀로 인정받으려고 노력하겠다.”
이처럼 김동현은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가 많았던 거 같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농구로 인정받은 선수이자 감독에게 가장 가까이서 지도받을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다.
김동현은 “하체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아버지와 같이 하체는 탄탄하게 태어나서 감사하다(웃음). 그런데 끈기나 투지는 안 닮은 거 같다. 그래서 항상 지적을 받는다. 항상 주위에서 수비를 너무 안 한다고 한다. 아버지 역시 같은 점을 지적하신다. 농구로써는 아버지의 만족도를 100% 채우기 힘들지만 최대한 늘려가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아버지와의 관계를 설명했다.
김승기 감독은 김동현의 이야기만 하면 밝은 웃음을 짓는다. KGC가 이겼을 때보다 몇 배 환한 웃음이다. 매번 “아직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지만 김동현에 대한 애정은 주위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김동현도 익히 들어 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들, 그리고 농구 선수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최근 농구계에는 허재 전 감독의 아들인 허웅, 허훈 형제가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어쩌면 몇 년 뒤 우리는 지휘봉을 잡고 있는 김승기 감독과 김동현이 같은 리그에서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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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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