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켓코리아 = 김영훈 기자] 2019년 마지막 열린 대회인 우수학교 초청대회.
대부분의 학교들이 3학년들을 모두 빼고 임했기에 2020년의 중학교 대회 판도를 알아 볼 수 있었다. 5일간의 치열한 대회 끝에 우승한 팀은 휘문중. 최종훈 코치의 지도 아래 최준, 김승우 등이 일궈낸 결과였다.
그 중 김준하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었다. 180m의 슈팅가드로 공수에서 본인의 몫을 다했다. <바스켓코리아>에서는 2020년 중학교 농구의 판도를 이끌 선수 중 한 명인 김준하를 만났다.
* 본 기사는 2019년 12월 말에 작성되어, 바스켓코리아 웹진 1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업로드가 늦어진 점, 독자들께는 양해의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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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밝은 미래를 확인하다
2019년 11월 어느 늦은 저녁. 김준하를 만나기 위해 찾은 곳은 휘문중이 아닌 삼일상고의 체육관이었다. 우승을 한 다음 날이라 쉴 법도 하지만, 휘문중은 동계 훈련을 들어가기 전에 연습경기를 통해 몸을 만들고 있었다.
6쿼터로 진행된 연습게임. 스타팅으로 나간 김준하는 공수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격에서는 스크린을 받은 뒤 돌파도 좋았고, 치고 들어가다 던지는 풀업 점퍼도 성공률이 나쁘지 않았다. 수비도 준수함 이상이었다. 대인방어와 2대2 수비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경기를 마친 김준하는 “슛이 너무 안 들어갔다”며 아쉬움을 토했다.
이후 한숨을 돌린 김준하는 전날 경험한 2019 우수학교 초청대회 우승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먼저 “대회 나가기 전부터 우리 팀이 우승 후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방심했던 거 같다. 예선에서 너무 힘들게 올라갔다. 공격만 하려 했지 수비와 궂은일을 전혀 안 했다”며 반성부터 했다.
김준하가 예선 2경기에서 올린 점수는 도합 12점. 평소답지 않은 부진이었다. 다행히 팀원들의 활약에 힘입어 휘문중은 호계중과 침산중을 꺾을 수 있었다.
결선 들어 정신을 차린 김준하는 드디어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다. 전반에만 홀로 10점을 넣으며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후반에도 3점을 더한 김준하는 휘문중의 결승행에 일조했다.
몸이 풀린 그는 결승전 역시도 날아다녔다. 전반만 3점슛 2방 포함 14점을 퍼부었다. 이에 힘입은 휘문중은 42-23으로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었다. 끝까지 20점차를 유지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4월 이후 7개월 만에 든 우승컵이었다.
내년의 전초전으로 불리는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기에 휘문중의 2020년의 희망도 밝아졌다. 김준하도 “기대가 안 되면 거짓말이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는 이어 “물론 아직은 호흡을 더 맞춰야 한다. 수비도 더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공격 비중이 커졌기에 더 노력해야 한다. 지난 시즌에는 수비하고 기다려서 슛만 쐈는데, 이제는 1대1도 하고, 슛, 돌파 등 여러 가지를 하기 위해 흥분한 연습을 하겠다”며 방심을 늦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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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붕’에서 우승까지
김준하의 농구 시작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찾은 전자랜드 클럽 농구 교실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농구를 처음 배우고 꿈을 키웠다.
농구 선수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때는 초등학교 5학년 말. 그는 일반 학생들이 배우는 반이 아닌 선수반에 들었다. 여기서도 두각을 나타낸 김준하는 결국 그의 재능을 본격적으로 농구에 담구기로 한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휘문중이었다.
대개 클럽 농구 선수들은 엘리트 학교 농구부로 갔을 때 겪는 ‘멘붕’의 시기가 있다. 자신보다 체격이 큰 형들도 많고, 분위기도 무서우니 적응에 힘들어한다. 김준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클럽 때는 내가 키가 큰 편이었는데, 여기 오니 나보다 큰 사람이 너무 많았다. 심지어는 그 형들이 몸도 좋았고, 스피드도 빨랐고, 기술도 좋았다. 그리고 운동도 매일 하니 힘들었다.”
이처럼 김준하도 일반적인 케이스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노력으로 이를 이겨냈다. “아침에 다들 8시 20분에 등교를 한다. 그래서 나는 6시 50분에 가서 먼저 1시간 동안 슛을 쐈다. 주말이면 스킬 트레이닝도 했고, 혼자 학교 와서 개인 운동도 했다”며 김준하는 그간의 노력을 공개했다.
열심히 하는 자에게 복이 온다고 했던가. 2019년 4월 영광에서 열린 협회장기 때부터 휘문중의 로테이션에 들었다. 2학년이었지만 3학년들과 함께 코트를 누비게 된 것이다.
김준하는 “첫 경기가 침산중과 붙는 것이었다. 상대 가드가 슛이 좋아 우리 팀이 박스 앤드 원(4명이 지역방어를 하고 한 명이 맨투맨을 하는 수비)을 썼다. 내가 상대 에이스를 따라다니는 역할이었는데, 귀찮아하는 것을 보니 재밌었다”며 당시를 기억했다.
휘문중은 이 대회에서 우승도 차지했다. 김준하는 로테이션에 든 첫 공식 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것이다. 그는 “중학교 올라오고 나서 첫 우승이어서 기뻤다. 공격이 아니라 수비에서 잘하는 형들 막으면서 팀에 보탬이 된 거 같아 좋았다”며 뿌듯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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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수비 센스, 타고난 DNA
앞서도 계속해서 언급했듯이 김준하는 수비의 센스나 움직임이 좋다. 2학년이고 첫 출전이었던 선수에게 에이스 수비를 맡긴 것만 해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런 그가 수비가 좋은 이유는 바로 남다른 DNA 덕분이다. 김준하의 부친은 과거 연세대와 대우 제우스에서 활약한 김성헌이다. 91학번으로 연세대의 황금기를 함께한 그는 화려했던 농구대잔치 멤버들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당시에 궂은일로 팀에 꼭 필요한 존재였다.
“아버지가 수비 팁을 잘 알려주신다. 예전부터 아버지가 상대 에이스들을 많이 막았다. 그 노하우를 많이 알려주시곤 한다. 코치님도 많이 가르쳐 주시지만 아버지가 알려주는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농구 관련 고민도 쉽게 해결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며 아버지께 고마워했다.
김준하는 든든한 후원자를 등에 업고 더 큰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래에 정영삼 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전성기 때 드라이브 인도 잘했고, 슛도 좋았잖아요. 제가 어려서 잘 몰랐지만 하이라이트 보면서 많이 감탄했어요. 아직 부족하지만 더 노력해서 꼭 미래의 정영삼이 되려고요.” 한국 농구의 미래를 짊어질 소년의 당찬 포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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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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