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류영환 SK 전력분석원의 소박한 바람, “팀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손동환 기자 / 기사승인 : 2022-01-12 06: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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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1년 12월호에 게재됐다. 본 기사를 위한 인터뷰는 2021년 11월 6일에 이뤄졌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만 30세도 되지 않는 프로농구선수가 있었다. 군에서 제대하고 나니, 그 선수에게 주어진 자리는 없었다. 선수로서 창창한 나이이기에, 그 선수가 느낀 실망감은 컸다.
그러나 구단은 그 선수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시했다. 그 선수는 생각지 못한 제시에 고민했다. 고민 끝에 새로운 일을 선택했다.
새로운 일을 선택한 이유. 새로운 인생을 빠르게 경험하고, 그 속에서 또 다른 길을 개척할 수 있다고 여겨서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라는 타이틀을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었다. 이는 모두 류영환 SK 전력분석원의 이야기다.

류영환의 농구 인생 Part 1 : 프로농구선수
양정고와 건국대를 졸업한 류영환은 대학 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파워포워드였다. 195cm가 안 되는 키였지만, 골밑 싸움과 리바운드, 속공 가담과 페인트 존 득점 등 빅맨으로서 해야 할 일을 잘 하는 선수였다.
2015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순위(전체 11순위)로 울산 모비스(현 울산 현대모비스)에 입단했다. 그러나 프로에서는 195cm 정도의 키로 파워포워드를 맡기 어려웠다. 모비스에 입단 후, 공수 활동 범위를 넓히는데 주력했다. 달라져야 했던 유영환은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2017~2018 시즌 개막 직후 서울 SK로 트레이드됐다. 포워드 왕국인 SK에서 살아남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SK로 트레이드된 직후에 우승 세레머니를 했고, 다음 시즌(2018~2019)에는 13경기 동안 평균 4분 35초를 코트에 있었다. 의미 있는 경험을 했다.

모비스가 첫 프로 팀이었습니다.
제 앞에 10명의 선수가 지명됐습니다. 1라운드가 지나도, 저는 뽑히지 않았죠. 긴장도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모비스가 저를 뽑아주셨어요. 모비스가 제 이름을 불렀을 때, 저는 너무 얼어있었어요. 진짜 아무 생각이 안날 정도로요. 올라가면서도 ‘내가 맞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었고, 유니폼을 입고 사진을 찍으면서도 벙벙했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이제 프로에 가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저를 선택해준 모비스에 너무 감사했죠.
입단 초기에는 거의 D리그만 뛰었습니다. 아쉬움이 컸을 것 같은데요.
물론, 아쉽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대학교에서는 파워포워드를 했지만, 프로에서는 제 키로 그 포지션을 소화할 수 없었어요. 대학교 때 했던 플레이를 프로에서는 할 수 없었고요.
외곽 수비 그리고 스몰포워드가 해야 할 것들을 배웠습니다. 달라져야 할 점들을 배우다 보니, 한 해가 지나갔어요.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현실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서울 SK로 이적했습니다.
2017~2018 시즌 개막 직후였을 겁니다. 아마 울산 홈 경기 전날이었을 거예요. 유재학 감독님께서 저를 찾으신다고 하셨어요. 갑자기 그러셔서 놀랐죠. 감독님께 인사를 드리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너가 SK로 트레이드됐다”고 하시더라고요.
말로만 듣고 보기만 했던 트레이드였는데, 제가 트레이드의 당사자가 됐습니다. 코칭스태프께서 여러 조언을 해주셨고, SK도 저를 원한다고 해주셨지만, 트레이드가 된 저는 너무 멍했어요.(웃음)
정든 팀을 떠난다는 게 쉽지 않으셨겠어요.
모비스는 처음 입단했던 팀입니다. 농구를 힘들게 배웠던 곳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팀원들과 돈독했습니다. (양)동근이형(현 울산 현대모비스 코치)을 포함한 고참 형들부터 막내까지 다 같이 잘 어울리는 팀이었죠. 장난도 많이 치고, 분위기도 좋았어요. 그런 추억들을 생각하니, 울컥하더라고요.(웃음) 제가 농구판을 떠나는 게 아닌데도, 너무 아쉬웠어요.
2018~2019 시즌에는 데뷔 후 가장 많은 정규리그 경기를 소화했습니다.
비시즌 때부터 선수들이 많이 없었습니다. 부상을 당한 선수들과 재활하는 선수들이 많았어요. 특히, 제 포지션에는 저 밖에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비시즌부터 많은 기회를 얻었죠. 얼떨결에 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던 거죠.
게다가 2018~2019 시즌 시작하기 전에, (최)준용이가 다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전보다 기회를 많이 얻었다고 생각해요. 기회를 받다 보니, 제가 가진 것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2018-2019 시즌 이후에는 군대를 갔습니다.
의무경찰로 갔습니다. 보통 거주지와 가까운 곳으로 근무지를 배정받는데, 저는 운 좋게 집 근처로 근무지를 배정받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3월에 제대했습니다.
상무로 가지 못했다는 건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군 생활은 힘들지 않았지만, 상무처럼 운동을 마음대로 하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코로나 19’로 인해 볼 운동을 하는 건 어려웠습니다. 근무지 근처에 있는 여의도공원에서 볼을 만질 수도 없었고, 일반 육군 부대처럼 농구할 수 있는 코트도 없었어요. 그래서 웨이트 트레이닝이 저에게는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SK로 돌아왔지만, 선수로 합류하지 못했습니다.
군 제대 후에도, 저에게 1년이라는 계약 기간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선수로서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몸은 너무 만족스러웠습니다. 이 때까지 운동해온 기간 중 제일 좋았죠. 기대를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은퇴를 하게 됐죠. 아쉬움이 컸습니다.

류영환의 농구 인생 Part 2 : 서울 SK 전력분석원
선수라면 누구나 은퇴를 한다. 그러나 은퇴 후 일상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프로 팀에서 감독이나 코치를 맡는 농구인도 있고, 아마추어 팀에서 지도자를 하는 농구인도 있다. 농구와는 다른 일을 하는 이들도 있다.
류영환 역시 마찬가지다. 30세도 되지 않는 젊은 나이에 은퇴했지만, 서울 SK의 전력분석원이라는 직함을 얻었다.
전력분석원은 말 그대로 KBL 10개 구단의 전력을 분석하는 스태프다. 나아가, 영입할만한 외국 선수와 팀의 미래가 될 아마추어 선수들의 역량도 분석해야 한다.
전력분석원과 선수의 차이는 크다. 농구를 접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전력분석원은 선수들보다 농구를 훨씬 많이 봐야 한다. 영상 편집과 보고서 작성 등 컴퓨터도 많이 활용해야 한다. 10개 구단의 전체 전력과 디테일한 전술도 파악해야 한다.
선수였던 류영환도 그런 차이점에 어려움을 겪었다. 전력분석원으로서는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배움 그 자체를 즐거워했다. 무엇보다 제2의 인생을 빠르게 시작했다는 걸 고무적으로 여겼다. 그래서 전력분석원을 제안한 전희철 SK 감독에게 감사함을 표시했다.

선수 대신 전력분석원을 제안받았습니다.
군 생활을 상무에서 하지 못했습니다. 복귀 후에 겪어야 할 치열한 경쟁에 스트레스를 더 받았죠. 준비가 부족하다 보니, 고민과 생각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6월이었을 거예요. 전희철 감독님께서 저를 부르셨어요. 4년 전 경험이 있기에(웃음), ‘트레이드인가?’는 생각을 했습니다. 걱정을 안은 채로 감독님한테 갔죠.
감독님께서 “트레이드는 아니야”라고 웃으며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전력분석원을 해보지 않겠냐?”고 하셨죠.
그 때도 멍했습니다.(웃음) 감독님께서도 “생각해보고 이야기해줘”라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 감독님한테 그 이야기를 듣고 여러 방향으로 조언을 구했죠. 결론 끝에, 전력분석원을 선택했습니다. 선수 생활을 마쳐야 했지만,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거든요.
생각보다 아쉽지 않았어요. 오히려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어요. 제2의 인생을 빨리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컸죠. 이런 기회가 흔치 않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래서 전희철 감독님과 구단 사무국에 더욱 감사했어요.
지금은 어떤 업무를 맡고 계신가요?
업무를 맡고 나서, 영상 작업하는 것부터 배웠습니다. 대학 선수 위주로 영상 편집을 했죠. 그리고 10개 구단 전력의 큰 틀을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류영환은 “문형준 SK 전력분석팀장이 디테일한 점을 분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족한 것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습니다. 우리 팀에서 어떤 자료를 요구하는지, 다른 팀을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지부터 배우는 중입니다.
선수 시절 때는 농구공을 잡았지만, 지금은 컴퓨터와 친해져야 합니다.
컴퓨터에 익숙하지도 않고 업무 시스템에도 적응을 해야 하다 보니, 상황 판단이 잘 안 됐어요. ‘이건 이렇게 해야 하고, 저건 저렇게 해야 해’가 안 되더라고요. 그래도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됐고, 컴퓨터를 활용한 업무에는 큰 어려움이 없는 것 같아요.
다른 애로사항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운동 선수였을 때에는 ‘오전 운동-점심 식사-휴식-오후 운동-저녁 식사-퇴근’이 루틴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는 습관이 있었죠.
하지만 전력분석원의 루틴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선수 시절 때의 낮잠 자던 루틴을 없애는 게 힘들었습니다. 영상을 보고 편집을 해야 하다 보니, 늦게까지 일을 하기도 했고요. 그런 게 처음에는 힘들었습니다.
가장 뿌듯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기쁩니다. 기대감도 컸고요. 다른 역할로 팀을 도울 수 있다는 기쁨도 컸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제 역할은 상대 팀의 주요 패턴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제가 분석한 자료를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에게 보여주고,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상대 팀의 패턴을 인지합니다. 그리고 선수들이 실전에서 대처를 잘할 때, 뿌듯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류영환의 농구 인생 Part 3 : 가야 할 길
문경은 SK 기술고문과 전희철 SK 감독 모두 선수 은퇴 후 ‘전력분석원’을 경험했다. ‘전력분석원’의 경험을 토대로, 감독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전력분석원은 지도자 경험에 좋은 밑거름으로 작용할 수 있다.
류영환이라고 다르지 않다. 지금의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고, 지금의 경험을 미래로 이어줘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의 부족함을 완벽히 메워야 한다. 류영환 역시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경험’과 ‘공부’를 미래의 키워드로 생각했다.

지금 SK가 단독 선두(인터뷰일 기준 성적 : 10승 4패)를 질주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몫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제 몫이 0.1%는 있지 않을까요?(웃음) 어쨌든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어서,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사실 선수 때는 팀 성적이 좋아도, 제가 뛰지 못하면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스태프가 되고 보니, 다른 것 같아요. 제가 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팀을 돕지만, 팀이 좋은 성적을 보일 때 뿌듯함이 더 큰 것 같아요.
선수 시절과는 다른 관점으로 농구를 보고 있습니다.
선수 시절에도 많은 걸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영상을 많이 보다 보니, 더 확고해진 게 있습니다. ‘이건 하면 안 된다’라는 게 더 명확히 보이는 것 같아요.
그리고 ‘상대 수비는 이 때 이렇게 하는구나. 우리 팀과 상대 팀의 장단점은 이거구나. 우리가 이렇게 하면, 상대는 이렇게 하는구나’라는 걸 더 잘 알게 됐어요. 또, 코칭스태프께서도 조언을 많이 해주셔서, 그런 점들이 선수 때보다 더 잘 보이는 것 같아요.
문경은 기술고문과 전희철 감독 모두 SK에서 전력분석원을 했습니다. 류영환 전력분석원 역시 지도자를 꿈꿀 것 같은데요.
지도자의 길을 가고 싶은 건 맞습니다. 그렇지만 아직은 꿈일 뿐입니다. 전력분석원을 하면서,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먼저 느꼈습니다. 모르는 게 너무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너무 많아요. 우선 공부해야 할 것들부터 집중하려고 합니다.
어떤 걸 더 배워야 할까요?
전력분석팀이 생각한 게 있을 때, 코칭스태프 앞에서 명확하게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게 조율이 잘 된다면, 더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감독님 역시 그런 걸 원하고 계시고요.
주장을 하려면,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듯, ‘상대가 우리를 어떻게 공략하는가?’의 문제도 있지만, ‘A팀이 B팀을 상대할 때는 이렇게 하네. 우리도 이런 전략을 해볼까?’ 같은 걸 순간적으로 캐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새로운 전략을 사용하는 방법도 연구해야 하고요. 그래서 선수 시절보다 농구를 더 많이 공부해야 합니다.
전력분석원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업무를 완벽하게 배워서 팀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팀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뒤에서 많은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그게 전부입니다.

 

사진 제공 = KBL, 류영환 SK 전력분석원(본문 3~4번째 사진)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본문 첫 번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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