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0년 12월호에 실렸습니다. 인터뷰는 2020년 11월 16일부터 18일 사이에 이뤄졌습니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누구에게나 시작은 있다. 시작 없이 과정 없고, 과정 없이 결과는 없다. 시작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KBL에서 뛰는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KBL에서 뛰는 선수들은 프로농구선수로 불린다. 프로농구선수를 목표로 한 이들은 그 타이틀을 얻기 위해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프로농구선수들의 시작은 힘겨웠다. 프로농구선수들이 시작을 힘들게 한 이유. 그들 모두 ‘신인 드래프트’라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선수 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경쟁자들을 떨쳐냈고, 매년 경쟁을 펼쳐야 했다.
10개 구단 선수들 모두가 그랬다. 이들 모두 ‘신인 드래프트’라는 험난한 시작을 거쳤고, 매년 힘겨운 싸움에서 살아남았다. 그렇기 때문에, ‘신인 드래프트’는 이들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들의 ‘신인 드래프트 회상기’를 이번 커버 스토리에 담아봤다.

오용준은 2003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1R 10순위로 대구 동양 오리온스(현 고양 오리온)의 부름을 받았다. KBL 최고참이자 KBL 선수 중 가장 오래 전에 드래프트를 치른 선수이다. 그는 드래프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을까?
본인의 이름이 불릴 때까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모든 선수들이 마찬가지겠지만, 저도 긴장을 했어요. 내심 1라운드에 뽑혔으면 했는데, 순위가 점점 밀렸어요. 그러면서 1라운드에 못 뽑히는 게 아닌가라는 걱정을 했죠.
1라운드에는 뽑히는 걸로 예상을 했었군요.
막연하게는 그렇게 생각했죠.(웃음) 제가 대학교 4학년 때 부진했지만, 그래도 1라운드에는 뽑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거든요. 1라운드 9번째 순번까지 안 뽑혀서 걱정했는데, 김진 감독님께서 1라운드 마지막 순번에 저를 호명해주셨어요.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이름이 불렸을 때 기분은 어떠셨나요?
너무 오래 된 일이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요. 아마 ‘다행이다. 1라운드에 뽑히긴 했구나’라는 생각 정도 하지 않았을까요?(웃음)
선발된 팀에 처음 인사를 갔을 건데, 그 때도 많이 떨렸을 것 같아요.
인사를 드릴 때, 대선배님이신 (김)병철이형(김병철 고양 오리온 코치)과 농구를 제일 잘 한다는 (김)승현이형(김승현 전 SPOTV 해설위원)이 제 앞에 계셨어요. KBL에서 내로라하는 선배님들과 같은 팀에서 뛴다는 거 자체가 영광이었죠. 반면, 그런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도 했고요.(웃음)
그리고 지금 선수들은 드래프트 이후에 바로 뛸 수 있지만, 저희 때는 선발되고 나서 다음 시즌에 뛰었어요. 1군 경기를 따라다니기만 하고, 경기를 뛸 수 없는 상황이었죠.
대신 스프링리그를 뛰었던 걸로 기억해요. 신인 선수들과 경기에 많이 못 뛴 선수들이 경기하는 거였는데, 제가 그 때 나름 괜찮은 활약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비록 10번째 순번으로 입단했지만, 오리온에서 좋은 조건으로 저와 계약을 해줬죠. 감사한 마음이 컸어요.
본인이 겪었던 드래프트 풍경과 지금 드래프트 풍경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본인이 느끼기에도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드래프트 행사와 드래프트에 나온 선수들이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는 것 같아요. 저희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달라지지 않은 풍경도 있을까요?
드래프트에 나온 선수들 모두 평생을 농구만 해왔어요. 구단에 선발되면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지만, 안 뽑히면 다른 길로 가야 해요. 그 곳에서 선수들의 인생이 달라지게 되죠. 그게 달라지지 않은 풍경인 것 같아요. 물론, 뽑히지 않은 선수들이 다른 길을 갈 수 있겠지만, 뽑히지 않은 선수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커요.
사실 드래프트에 지명되는 건 시작점에 불과합니다. 베테랑으로서 지명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거든요. 나의 젊은 시절에 나의 모든 것을 걸고 도전해야 한다고 마음 먹어야 해요. 사실 그래도 될까 말까 하거든요. 지명된 선수들 모두 각오를 단단하게 다져야 해요.
프로에 왔다는 게 시작이라고 하지만, 사실 출발점에도 도달하지 않은 시기일 수 있어요.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선수들이 더 독하게 했으면 좋겠어요. 워낙 쟁쟁한 선배들이 뛰고 있기 때문에, 그 선수들과 경쟁해서 이기려면 지금 했던 것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해요.
말씀하셨듯이, 지금 신인들은 경기에 곧바로 투입됩니다. 본인이 그 상황이었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저희 때는 선발되고 나서 10개월 정도 공백기가 있었아요. 하지만 지금 선수들은 달라요. 뽑히고 나서 바로 프로 무대를 경험할 수 있잖아요. 실력이 되면 더 많이 뛸 수도 있고요. 오히려 더 좋았을 것 같아요. 긍정적이라고 봐요.
지금은 트라이아웃과 드래프트를 하기 전에, 운동 능력과 신체 조건을 측정하는 컴바인이 생겼잖아요. 오용준 선수가 드래프트에 나설 때, 컴바인이 생겼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저는 큰 이점이 없었을 것 같아요. 운동 신경이나 운동 능력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오히려 안 좋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웃음)

김동욱은 2005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2R 4순위(전체 14순위)로 서울 삼성의 부름을 받았다. 데뷔 시즌부터 2011~2012 시즌까지 삼성에서 뛰었고, 2011~2012 시즌부터 고양 오리온에서 활약했다. 그리고 2017~2018 시즌부터 친정 팀에서 뛰고 있다.
김동욱은 ‘포인트 포워드’의 정석으로 불리는 선수다. 다재다능함과 센스로 오랜 시간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드래프트라는 시작점은 김동욱에게 잊고 싶은 기억이었다. 그 이유를 들어봤다.
트라이아웃을 했을 때부터 프로에 간다는 실감을 했을 것 같아요.
너무 오래 된 일이라...(웃음)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드래프트를 크게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너무 우여곡절 끝에 삼성에 뽑혀서... 하지만 프로에 간다는 기대감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드래프트 전부터 발목이 안 좋다는 소문이 났어요. 그리고 삼성에 뽑히자마자 발목 수술을 받았고요. 다행히 좋은 구단에 뽑혀서 수술과 치료 잘 받았고, 그런 것 때문에 지금까지 뛰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드래프트를 앞두고 발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김동욱 선수가 더 긴장했을 것 같아요.
그래도 1라운드 안에는 뽑히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생각지도 못했던 선수들이 저보다 앞에 뽑히면서, 제 이름이 1라운드에는 불리지 않았어요. 그 때 ‘농구를 접어야 하나’라는 고민을 심각하게 했죠.
1라운드 지명이 끝난 후, 잠깐 쉬는 시간이 있었어요. 10~15분 정도로 기억하는데, 그게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어요.(웃음) ‘빨리 하고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본인의 이름이 불릴 때,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드는 생각은 ‘프로에 가는구나. 다행이다. 농구를 계속 할 수 있겠구나’였어요. 두 번째로는 저를 불러준 삼성 구단에 너무 고마웠고요.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나 안 뽑은 팀들? 두고 보자!’라는 오기도 생겼고요.(웃음) 여러 가지 마음이 많이 들었죠.
드래프트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표현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을까요?
대학교 때까지는 농구를 잘한다는 소리를 주위에서 많이 들었어요. 비록 대학교 3-4학년 때는 부상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래도 1라운드 안에는 뽑힐 수 있다고 자만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1라운드에 뽑히지 못했을 때,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도 저를 뽑아준 팀과 지금도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해요. 그런 걸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더라고요.(웃음)
본인이 겪었던 드래프트 풍경과 지금 드래프트 풍경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본인이 느끼기에도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후배들이 드래프트를 하는 걸 챙겨본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얼핏 보니까, 지명된 선수들이 자기 포부와 다짐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드래프트 때 안준호 감독님과 사진 찍고 무대로 다시 들어가기 바빴어요.(웃음) 당시 1라운드 선수들이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제가 프로에 가서 어떻게 하겠다라는 포부를 말씀 드리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달라지지 않은 풍경도 있을까요?
긴장감이지 않을까요?(웃음) ‘어느 선수가 1라운드 혹은 1순위로 유력하다’는 말은 있겠지만, 드래프트가 시작될 때까지는 알 수 없잖아요. 그래서 모든 선수들이 긴장하는 거고요. 그런 긴장감은 드래프트가 시작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사실 드래프트에 지명되는 건 시작점에 불과합니다. 베테랑으로서 지명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 것 같아요.
프로에 오래 있으면서 여러 선수들을 봤어요.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재다능한 것도 중요하겠지만, 한 가지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게 먼저라고 봐요.
예를 들어, 수비와 슛, 패스 등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 하나를 잘해서 5~10분을 뛰어요. 5~10분을 매 경기 뛰다 보면, 경기 감각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다 보면, 농구가 분명 늘어요. 선수는 결국 시합을 뛰어야 농구가 늘거든요. 경기를 뛰지 않고 농구거 느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려면, 자기 무기를 하나 만들어야 해요. 어린 선수들이 자기 강점을 장착해서 선수 생활을 잘 했으면 좋겠어요.(웃음)
한 가지 특출난 무기를 장착하라고 하셨지만, 김동욱 선수는 다재다능한 선수입니다. 그런 김동욱 선수도 신인 때는 한 가지 강점을 어필하려고 하셨나요?
저는 어릴 때 득점 많이 하는 선수였어요. 그렇지만 프로에 오면서, 공격을 잘하시는 분이 워낙 많았어요. 제가 득점하고 싶어도, 프로의 벽이 워낙 높았죠. 기량과 경험, 피지컬 등 모든 게 부족했어요. 연습 때나 실전 때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한 이유였죠.
그래서 선수 초창기에는 수비를 많이 생각했어요. 수비를 먼저 생각하고, 경기에 들어갔죠. 예를 들어, 현대모비스랑 하면 함지훈을 막는데 주력했고, SK랑 하면 방성윤을 막는데 집중했죠. 그러다가 슛 찬스가 나면, 1-2개 정도 던졌고요.
수비를 하다 보니, 출전 시간이 조금씩 늘었어요. 경기 감각을 쌓으면서 선배님들의 플레이를 연습하고 따라하려고 했어요. 어쨌든 그렇게 시합을 뛰면서, 농구에 눈을 뜬 것 같아요. 그 때는 지금처럼 2대2나 경기 조율을 할 능력도 안 됐고, 그 때나 지금이나 다재다능한 것 같지도 않아요.(웃음)
지금 신인들은 드래프트 직후 경기에 곧바로 투입될 수 있습니다. 본인이 그 상황이었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그 때는 매년 1~2월에 드래프트를 했고, 신인 선수들이 경기에 나서려면 다음 시즌까지 기다려야 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뽑혀오자마자 바로 수술대에 올라갔고요.(웃음)
하지만 시즌 중에 뽑힌 신인 선수들이 경기를 뛴다면, 그게 또 하나의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트라이아웃과 드래프트를 하기 전에, 운동 능력과 신체 조건을 측정하는 컴바인이 생겼잖아요. 김동욱 선수가 드래프트에 나설 때, 컴바인이 생겼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저는 다 꽝이었을 것 같아요.(웃음) 발목이 아팠기 때문에, 뛰는 거 자체를 못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의미는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이전보다 선수들의 신체 조건과 운동 능력을 세밀하게 측정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점프가 좋은 선수들 혹은 순발력이 좋은 선수들이 테스트 과정에서 나올 건데, 그런 컴바인이 피지컬이나 운동 능력이 좋은 선수들한테는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현민은 2006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창원 LG의 부름을 받았다. 키는 작지만, 패스 센스와 영리한 플레이로 작은 키를 커버했다.
2006~2007 신인왕을 시작으로, 다양한 팀에서 제 역할을 했다. 2015~2016 시즌에는 고양 오리온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경쟁력 있는 포인트가드로 활약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드래프트 같은 시작점이 있었다.
오래된 일이지만, 드래프트에서의 기억은 선명할 것 같습니다.
그렇죠. 그래도 주위에서 언질을 줘서, 제가 프로에 갈 거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주변에서 갈 거라고 말을 해줘도, 제가 호명되어야 프로에 가는 거잖아요.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엄청 긴장했던 것 같아요.
본인의 이름이 불릴 때,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제 이름을 불렀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제 이름이 딱 들렸던 것 같아요. 정확한 감정이 기억은 안 나지만, 기쁘면서 멍했던 것 같아요. 멍한 상태에서 ‘이제 됐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때의 드래프트 분위기와 지금의 드래프트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던 것 같아요. 제가 드래프트를 할 때만 해도 더 긴장된 분위기였거든요. 지금도 긴장된 분위기겠지만, 그 때가 더 심각한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또, 요즘 애들은 드래프트에서 긴장도 안 하고 당찬 면이 있는데, 저는 엄청 떨렸던 것 같아요.(웃음)
본인이 뽑힌 것 외에도, 드래프트에서 기억 나는 일이 있었나요?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거를 기억하기엔 너무 오래된 일인 것 같아서…(웃음)
하지만 하나 기억나는 게 있어요. 저랑 참가한 경희대 4학년 선수가 3명이 있었는데, 제가 먼저 뽑히고 남은 선수들도 얼른 지명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친구들의 이름이 안 나올 때, 뭔가 미안한 감정이 있었어요.
그래도 한 명(김종훈)은 3라운드에 부름(당시 원주 동부에 지명됐다)을 받았지만, 다른 한 명(한재규)은 안 된 걸로 기억해요.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던 것 같아요.
LG에 입단한 후 처음으로 팀원과 인사를 했을 건데, 그 때를 돌아본다면 어떠셨나요?
대학교를 처음 갔을 때의 느낌 같아요. 대학교에 처음 가서 정말 어리바리했거든요. 그 때 느낌이었어요.(웃음)
입단하고 나서, 다른 지인의 결혼식장에서 (박)지현이형을 만났어요. 제가 지현이형의 상황(박지현은 당시 트레이드로 LG에 합류했다)을 알고 먼저 인사 드렸어요. 그런데 크게 반응이 없으셨어요. ‘무섭다’고 생각했죠. 대학교에 처음 가서도 선배들을 보면 무섭다는 느낌이었는데, 지현이형과 처음 인사할 때도 그런 인상을 받았죠.
그래서 지현이형이 되게 무서운 줄 알았어요. 과묵한 이미지도 많았고요. 그런데 지현이형 원래 스타일이 그렇더라고요. 같이 있으니, 되게 잘해주고 츤데레 같은 느낌이었어요. 친해지면서 이전에 가졌던 선입견도 없어졌고요.
그리고 입단 후에 (현)주엽이형을 화장실에서 마주쳤어요. 그런데 주엽이형은 제가 누군지도 모르셨어요.(웃음) 주엽이형이 저한테 ‘누구냐?’고 물어봐서, 제가 ‘이번에 뽑힌 신인입니다’고 대답했죠.
사실 주엽이형은 어릴 때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선수잖아요. 그래서 ‘너가 하면 얼마나 하겠냐’고 생각하셨을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제가 운동을 잘 따라하니까, 주엽이형이 잘해주시더라고요.(웃음)
본인이 겪었던 드래프트 풍경과 지금 드래프트 풍경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본인이 느끼기에도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정말 많이 달라졌죠. 예전에는 못 사는 애들이 운동을 많이 했어요. 드래프트 때 표정부터 어두웠고, 간절함이 더 보였던 것 같아요.
요즘에는 잘 사는 친구들이 운동을 많이 한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요즘 선수들은 간절함이 덜할 거라는 선입견을 가졌죠. 그런데 요즘 선수들은 간절함보다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뽑힐 거야’라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지니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예전 선수들에 비해 간절함을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긍정적인 마인드를 표정에서 보여주는 것 같아요.
또, 인터뷰하는 게 달라진 것 같아요. 저희 때는 당시 분위기와 당시 문화 때문에, 인터뷰를 정해진 틀에서 했었거든요. 하지만 요즘 선수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는 것 같아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요. 그런 게 달라진 점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달라지지 않은 풍경도 있을까요?
부모님의 간절한 모습이죠. 자식을 위해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풍경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요.
사실 드래프트에 지명되는 건 시작점에 불과합니다. 베테랑으로서 지명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 것 같아요.
운동 선수는 은퇴할 때까지 안주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이제 됐다’가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는 마음을 먹어야 해요. 오늘도 발전할 수 있고, 내일도 발전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노력해야 하고요.
지금 신인들은 드래프트 직후 경기에 곧바로 투입될 수 있습니다. 본인이 그 상황이었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저 때는 드래프트 이후 10개월 정도의 공백기를 거쳤어요. 게임을 뛰기 위해서 연습을 하는 건데, 게임을 하지 못하면 동기 부여도 힘들잖아요. 돌이켜보면, 최근에 ‘코로나 19’로 시즌 재개 여부를 알 수 없었을 때랑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실전을 해야, 제 실력을 파악할 수 있어요. 제가 어떤 걸 보완하고, 제 강점이 어떤 건지를 알 수 있죠. 여러모로, 뛸 수 있을 때 바로 뛰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상황이 신인들에게는 좋다고 봐요.
지금은 트라이아웃과 드래프트를 하기 전에, 운동 능력과 신체 조건을 측정하는 컴바인이 생겼잖아요. 이현민 선수가 드래프트에 나설 때, 컴바인이 생겼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별로 저한테는 안 좋았을 것 같아요.(웃음) 저는 신체 조건이나 운동 능력으로 농구하는 선수가 아니었거든요.

조성민(창원 LG)은 ‘조선의 슈터’로 불리는 선수다. 하지만 드래프트부터 높은 순번을 받은 선수는 아니었다. 2006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8순위로 부산 KTF(현 부산 kt)에 입단했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드래프트를 크게 추억하고 싶지 않을 듯했다. 그러나 드래프트는 조성민에게 큰 기억으로 남은 이벤트였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조성민이 드래프트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유였다.
드래프트에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실 것 같습니다.
원래 드래프트를 앞두고, ‘A 선수는 몇 순위로 갈 거다, B 선수가 1순위일 거다’ 등 소문이 무성하잖아요. 저도 ‘너는 높은 순번에 지명될 거다’는 이야기를 들었고요.
그런데 들었던 이야기보다 순위가 밀렸어요. 그러면서 이마랑 등줄기에 땀이…(웃음) 한 번 밀리기 시작하니, 겉잡을 수 없더라고요. 뒤에 부모님도 보고 계셨는데…
돌이켜보면, 상위 픽 후보 선수들은 그래도 웃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지 못한 선수나 일반인 참가자들은 웃지 못하고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트라이아웃에서 연습 경기를 할 때, 농구 선수를 그만두고 일반인 자격으로 참가하는 선수들이 저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어요. 트라이아웃에서 잘 보여야 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 기억들이 있어요.
본인의 이름이 불릴 때,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이제 됐다.(웃음) 그리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부모님께서 너무 기뻐하셨어요. 부모님께서 좋아하셨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나요.
본인이 뽑힌 것 외에도, 드래프트에서 기억 나는 일이 있었나요?
요즘에는 순위 지명권 추첨을 먼저 하고, 1주일 후에 드래프트를 하잖아요. 그런데 저 때는 그렇지 않았어요. 구단도 선수도 이전보다 더 정해진 게 없었죠.
그래서 특별한 기억이 더 없는 것 같아요. 트라이아웃을 하고 밥 먹고, 씻고 옷 갈아입고, 기다리기 바빴던 것 같아요.
주변에서 들었던 이야기보다 낮은 순위로 지명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드래프트에서 더 떨었던 요인일 것 같은데요.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좀 더 높은 순번에 지명 받을 줄 알았어요. 8번째로 밀리면서, 당황한 면이 있었죠. 하지만 뽑혀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훨씬 컸다. 더 밀렸으면 끔찍했을 거에요.(웃음) 생각하기도 싫었을 것 같고요.(웃음)
또, 돈이 관련된 문제잖아요. 지명 순번에 따른 계약금이 다르고, 앞에 뽑힐수록 받을 수 있는 목돈이 컸거든요. 그래서 그런 생각도 없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프로에 지명을 받은 후 처음으로 팀원과 인사를 했을 건데, 그 때를 돌아본다면 어떠셨나요?
당시 추일승 감독님과 지금 kt 단장님이신 최현준 팀장님께서 너무 잘 해주셨어요. 엄~~청 잘해주셨어요. 부모님한테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조)성민이를 좋은 선수로 키워보겠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만큼 배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너무 감사했죠.
그리고 프로 팀에 가니까 너무 좋았어요. 회사 사람들이 오셔서 선물도 주시고, 용돈도 주셨어요. 무엇보다 프로 선수로서 마음을 잡을 수 있도록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셨죠.
본인이 겪었던 드래프트 풍경과 지금 드래프트 풍경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본인이 느끼기에도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요즘에는 지명된 선수들이 입단 소감을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리고 드래프트가 이전보다 더 화려해진 것 같아요. KBL에서 시대에 맞게 재미있게 준비해주시는 것 같아요.
사실 저희 때는 큰 게 없었던 것 같아요. 각 구단의 지명 순위가 나오거나 선수들이 뽑힐 때, 주위의 탄성만 있었어요.(웃음) 그리고 드래프트가 끝나자마자, 회사 분들과 만나서 식사했던 것? 그 정도로 기억이 나요.
그렇다면 달라지지 않은 풍경도 있을까요?
달라지지 않은 풍경이요? (한참을 생각한 후) 사실 전체적인 틀이나 순서는 지금이나 그 때나 비슷한 것 같아요.
선수들이 드래프트에서 느끼는 압박감이나 긴장감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요. 순번이 정해지지 않은 선수나 지명이 확실하지 않은 선수들은 더 그럴 거고요.
사실 드래프트에 지명되는 건 시작점에 불과합니다. 베테랑으로서 지명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 것 같아요.
사회 초년생으로 프로에 오는 거잖아요. ‘대학 때 내가 이 정도의 선수였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프로에 적응하기 힘들 것 같아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해요. 그런 마음을 가져야 프로 선수로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어릴 때는 ‘내가 이 정도의 선수였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겸손하고 노력하는 낮은 자세를 갖춰야 해요. 프로에 올 정도면 다들 능력을 검증받은 선수들이니, 겸손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겸비한다면 더 잘 될 거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지금 신인들은 드래프트 직후 경기에 곧바로 투입될 수 있습니다. 본인이 그 상황이었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저는 적응을 못했을 것 같아요. 진짜 어려웠을 것 같아요. 저 때는 대학 팀들이 프로 팀과 연습 경기를 자주 하지도 않았고, 저 때 대학 선수들의 신체 조건이 지금 대학 선수들 같지도 않았거든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어린 선수들의 피지컬이 좋아졌고, 대학 선수들이 프로 팀과 연습 경기도 자주 해요. 이전보다는 분명 적응하는 게 쉬울 거에요.
그런데 생각해야 될 건 있어요. 실전은 또 다르다는 거에요. 그래서 신인 선수들 모두 많은 벽에 부딪힐 건데, 그 벽을 깨고 나가야 해요. 처음에는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멋 모르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은 트라이아웃과 드래프트를 하기 전에, 운동 능력과 신체 조건을 측정하는 컴바인이 생겼잖아요. 조성민 선수가 드래프트에 나설 때, 컴바인이 생겼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저요? 안 했을 것 같기도 해요.(웃음) 저희 때 선수들이 컴바인을 했다면 지금 선수들과 차이가 엄청 날 거에요. 힘이나 운동 능력, 피지컬이 타고난 선수가 아닌 이상은요.
그 때는 웨이트 트레이닝의 중요성이 그렇게 크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즘 선수들은 스킬 트레이닝도 받고 웨이트 트레이닝의 중요성도 알고 있더라고요. 그런 이유에서 분명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김태술(원주 DB)은 2007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서울 SK에 입단했다. 양희종(안양 KGC인삼공사)-정영삼(인천 전자랜드)-이광재(상무 코치)-김영환(부산 kt)-함지훈(울산 현대모비스)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과 황금 세대 중에서도 전체 1순위. 그런 김태술에게 드래프트는 어떤 기억이었을까?
트라이아웃을 할 때부터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대학교 때 해야 할 경기를 다 치렀고, 2월 드래프트를 기다렸어요. 그리고 다음 시즌부터 경기에 나올 수 있어서, 경기 출전까지 긴 시간이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코트에 빨리 나가 저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많은 걸 이루고 싶다고 생각했고요.
저희 때는 양재에 위치한 교육문화회관에서 트라이아웃과 드래프트가 있었어요. 전날 저녁에 (양)희종이랑 애들이랑 방을 잡고, 다음 날을 기다렸죠. 그런데 자다가 배가 너무 고파서, 새벽 4시쯤에 혼자 나가서 삼각김밥을 사먹고 왔어요. 긴장이 됐는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고프더라고요. 삼각김밥을 먹고 온 기억이 아직도 나요.(웃음)
삼각김밥 1개로는 배고픔이 안 채워졌을 것 같은데요.
새벽 4시였고, 근처에 뭐 먹을 곳도 없었거든요.(웃음)
그리고 드래프트에 나갔습니다. 호명될 때까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 때 가고 싶었던 팀이 SK였어요. SK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운 좋게 SK로 갔어요. 굉장히 기뻤어요.
김태술 선수를 포함한 동기들이 황금 세대로 불렸습니다. 그 중에서 1순위로 선발됐습니다. 원하는 팀에도 갔고요. 그래서 더 기뻤을 것 같아요.
사실 저 말고도 잘하는 선수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1순위가 되는 건 크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것보다 제가 많이 뛸 수 있는 팀에 갔으면 했어요. 그게 SK에서 뛰고 싶다고 말한 이유에요. 물론, 임재현 선배님께서 그때 계셨지만, 저도 SK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SK가 저를 뽑겠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을 때, 제가 더 기쁘고 설렜어요.
입단 후 처음으로 팀원과 인사를 했을 건데, 그 때를 돌아본다면 어떠셨나요?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교 때는 형들과는 아무리 나이 차이가 나야 3살 정도에요. 그런데 프로에 가니, 띠동갑 이상으로 차이나는 선배님들도 계시더라고요.(웃음)
정신 없이 인사만 했고, 정신 없이 하루가 지나간 것 같아요.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죠. 하지만 선배님들께서 다 잘 대해주셔서, 제가 빠르게 적응했던 것 같아요.
본인이 겪었던 드래프트와 지금의 드래프트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본인이 느낀 가장 큰 차이는 어떤 게 있을까요?
매년 드래프트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는 모르지만, 선수들의 마음은 매년 똑같을 거라고 생각해요. 대학 관계자들과 부모님들 모두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도 비슷할 거에요.
달라지지 않은 것에 더 주목하시는 느낌입니다. 위에 말씀하신 것 외에도 달라지지 않은 것들이 있을까요?
(잠시 생각한 후) 표정 관리?(웃음) 그 때나 지금이나 표정 관리 못하는 친구들이 간혹 있더라고요. 본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빠른 순위에 안 뽑혔거나 원하는 팀에 못 갔을 때, 숨길 수 없는 표정들이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김태술 선수는 드래프트 때 표정 관리를 잘 하셨나요?
저는 1순위이기도 했고 원하는 팀에 갔잖아요.(웃음) 표정 관리를 할 필요가 없었죠.
사실 드래프트에 지명되는 건 프로 선수에게 시작이잖아요. 베테랑 선수로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프로 선수를 10년 넘게 하면서 느낀 건데, 드래프트 순위는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앞에 뽑히는 게 기분 좋긴 하겠죠. 하지만 팀에 가서 자기 역량을 발휘하고 빨리 적응하는 게 중요해요. 그렇게 해서 시합에 많이 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사실 드래프트는 순위를 매길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선수들 모두 순위에 너무 연연하지 않았으면 해요. 자기 강점을 더 발전시키고, 어떻게 하면 감독님 마음에 들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해요.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 하면 1분이라도 더 뛸지를 고민하는 거에요. 어떻게 하면 내 실력을 뽐낼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한다면, 선수들에게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드래프트에서 성공하느냐가 아니라, 프로 선수로서 성공하는 걸 생각하는 게 맞다고 봐요.
지금 신인들은 드래프트 후 경기에 곧바로 투입될 수 있습니다. 반면, 김태술 선수는 선발된 후 적응기를 거치고 뛰었고요. 만약 김태술 선수가 지금 같은 상황에 선발됐다면 어땠을 것 같나요?
실수투성이였을 것 같아요. 시즌 준비를 어느 정도하고 뛸 때도 그랬으니까요.
신인 시절의 저를 지금 상황에 대입해서 후배들에게 이야기한다면, 기본에 충실하라고 하고 싶어요. 잘하려고 하는 것보다 감독님께서 어떤 걸 원하시는지 빨리 캐치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그리고 대학 때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프로는 분명 달라요. 기본부터 중요하게 여긴다면, 프로에서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본인 스스로 ‘실수투성이였다’고 표현했지만, 해당 시즌에 신인왕을 차지했습니다.
그 때를 돌이켜본다면, 엄청난 절제를 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것과 놀고 싶은 것, 모두 절제했던 것 같아요. 휴가도 반납하고 운동했고요.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포기해야 해야 해요.
물론, 돈을 많이 버는 선배들과 좋은 차를 타는 선배들, 예쁜 여자친구가 있는 선배들이 눈에 보일 거에요. 그렇지만 운동을 열심히 하고 운동을 잘 하면, 그런 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거에요.
하고 싶은 걸 줄이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요. 그렇게 절약한 시간을 농구에 투자할 수 있어요. 농구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남들보다 더 잘하기 위해 연습을 해야 해요. 그런 방향으로 시간을 더 투자해서, 프로 선수로서의 가치를 높였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트라이아웃과 드래프트를 하기 전에, 운동 능력과 신체 조건 측정하는 컴바인이 생겼습니다. 김태술 선수 때 컴바인이 생겼다면 어땠을까요?
좋은 성적이 나오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웃음)
양희종 선수는 그 때 컴바인을 했더라면, 본인이 1순위였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신뢰가 가지 않는 이야기입니다.(웃음) (양)희종이가 운동 신경이 폭발적인 선수는 아니잖아요.
다만, 앞에 뽑힌 선수들은 좋은 성적을 받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때는 더 어렸으니까요.
무엇보다 컴바인에서 상위권이면 좋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결국 농구를 잘하는 게 중요하잖아요.(웃음)

양희종은 2007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안양 KT&G(현 안양 KGC인삼공사)에 입단했다. 김태술-정영삼-이광재-김영환-함지훈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과 황금 세대로 주목 받았다. 그런 양희종에게 2007 드래프트는 각별한 기억인 듯했다.
트라이아웃을 할 때부터 느낌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양재교육문화회관에서 트라이아웃과 드래프트가 있었어요. 당일 아침에 가도 되는데 혹시나 늦을 것 같아서, 드래프트 전날에 애들이랑 방을 잡고 같이 잤어요. 서로 좋은 꿈꾸자며, 손 잡고 잔 기억이 나요. 그게 벌써 13년 전 이야기네요.(웃음)
사실 프로에는 당연히 간다고 생각했어요. 대신 어느 팀에 가게 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선수로서 아무래도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는 구단에 가고 싶었고, 저한테 잘 맞는 구단에 가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출중한 동기들이 워낙 많았잖아요.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경쟁들이 있었던 걸로 기억이 나요. 긴장감과 여러 가지 감정 속에 트라이아웃을 치렀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드래프트에 나갔습니다. 호명될 때까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드래프트와 프로 입성은 모든 농구 선수들의 꿈이잖아요. 농구 선수로서의 진로가 결정되는 자리기도 하고요. 얼굴로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속으로는 엄청 긴장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중요한 게 아닌데, 당시에는 어린 마음으로 ‘내가 쟤보다 빨리 가야 되는데’라는 생각도 했어요.(웃음) 어쨌든 돌이켜보면, 색다른 기억이었고 재미있는 추억들이었던 것 같아요.
김태술 선수가 1순위였고, 이동준 선수가 2순위였습니다. 양희종 선수가 그 다음에 호명됐고요. 이름이 불렸을 때 여러 생각을 했을 것 같고, 좀 더 높은 순위로 갔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김)태술이가 드래프트에서 경쟁 상대라고는 하지만, 워낙 친한 친구잖아요. 태술이가 먼저 가든 제가 먼저 가든, 제가 1-2순위에는 호명됐으면 했어요. 그런데 (이)동준이형이 2순위로 뽑히면서, ‘아. 내가 2순위에 갔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했죠. 순위 욕심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제가 KT&G에 입단해서 지금 KGC까지 한 팀에서 계속 선수 생활을 하고 있잖아요. 이 팀에 정말 잘 온 것 같아요. 팀에서 저를 뽑으면서, 팀의 색깔이나 시스템적인 면을 저에게 많이 맞춰주셨거든요. 너무 감사하고, 소속감도 커졌어요.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집보다 회사가 더 편하다는 마음도 들어요.(웃음)
입단 후 처음으로 팀원과 인사를 했을 건데, 그 때를 돌아본다면 어떠셨나요?
유도훈 KT&G 감독님(현 인천 전자랜드 감독)께서 저를 지목해주셨어요. 당시 어린 선수였던 저는 유도훈 감독님을 마냥 무서워했던 기억만 나요. 큰 산이자 호랑이 감독님 같은 느낌? ‘프로는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정신 없이 지나갔던 것 같아요.
또, 제 위에 기라성 같은 형님들이 계셨고, 단테 존스라는 출중한 외국 선수가 있었어요. 신기하고 새로웠죠. 아무래도 신인이다 보니, 눈치를 많이 봤던 기억이 나요.
본인이 겪었던 드래프트와 지금의 드래프트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본인이 느낀 가장 큰 차이는 어떤 게 있을까요?
요즘 선수들은 긴장을 많이 안 하는 것 같아요.(웃음) 드래프트를 이벤트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뭔가 즐기는 것 느낌이고요.
그리고 예전에는 잘 하는 선수들이 지명 순위를 생각했었는데, 지금 선수들은 어떤 팀에 가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자신을 키워줄 수 있고, 자신을 많이 뛰게 해줄 수 있는 팀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물론, 저 때도 그랬지만, 예전보다 그런 면이 더 강해진 것 같아요.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 농구 원로 분들과 각 구단 코칭스태프, 각 구단 사무국이 참석하는 자리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압박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 팀 박건호 선수가 작년에 뽑혔을 때 많이 울었잖아요. 그런 걸 볼 때, 가슴이 아팠어요. 모든 선수들이 평생 농구만 해왔는데, 취직을 못하는 선수들을 보면 그런 마음이 더 크고요.
그런 선수들도 다 뽑혔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데, 사회는 냉정하잖아요. 모든 선수들이 프로에 다 뽑힐 수 없다는 게 참 안타까워요.
사실 드래프트에 지명되는 건 시작이잖아요. 베테랑 선수로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로터리 픽에 뽑힐 선수들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요. 그런 선수들은 프로에 잘 적응하고, 부상을 안 당하는 게 중요해요. 준비를 철저히 한다면,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중간부터 마지막까지 뽑힌 선수들은 절실함과 끈기, 열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명 후보에 오르지 못한 선수들도 조금이라도 더 최선을 다한다면, 프로에 지명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프로 무대에 입성한다면, 모든 선수들이 절실함과 끈기, 열정을 보여줘야 해요. 기술도 중요하지만,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거든요. 그런 마음가짐을 높이 평가하는 감독님들도 많으시고요.
지금 신인들은 드래프트 후 경기에 곧바로 뛸 수 있습니다. 본인이 그런 상황이었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보너스 시즌이라고 생각해요. 프로에 몇 달이라도 더 빨리 적응하고, 프로 분위기를 좀 더 일찍 느낄 수 있는 기회잖아요. 성장 속도가 더 빨라지는 요인이기도 하고요.
스스로 보완할 수 있는 게 많고, 장점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코칭스태프와 선수들도 그 선수들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고요. 여러모로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트라이아웃과 드래프트를 하기 전에, 운동 능력과 신체 조건 측정하는 컴바인이 생겼습니다. 양희종 선수 때 컴바인이 생겼다면 어땠을까요?
그럼 1등이죠!(웃음) 무조건 1등이죠. 그 땐 더 피지컬로 먹고 살았는데요. 컴바인이 그 때 생겼으면, (김)태술이가 1순위할 일이 없죠(웃음)

정영삼은 2007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4순위로 창원 LG의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트레이드를 통해 곧바로 인천 전자랜드로 향했다.
김태술-양희종-김영환-함지훈 등 황금 세대 사이에서 로터리 픽에 포함됐다. 그것만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본인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순번에 놀란 듯했다. 그게 정영삼이 드래프트를 기억하는 시작점이었다.
트라이아웃을 할 때부터 느낌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2월 1일에 드래프트를 했었어요. 대학교 일정을 끝내고, 학교에 나와서 1~2달 동안 개인 운동을 하고 있었죠. 그러면서 ‘내가 프로에 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많이 했었어요.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정영삼 선수가 그런 생각을 했다니 의외입니다.
저는 솔직히 2라운드 중반쯤에만 갔으면 했어요. 워낙 잘하는 친구들이 많이 나왔고, 별 기대를 안 했거든요.
드래프트에서 더 큰 초조함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오전에 트라이아웃을 하고, 점심을 먹었어요. 옷 갈아입고 쉬다가, 오후에 드래프트로 갔죠. 엄청 떨렸어요. 떨었던 기억 밖에 없어요.(웃음) 인터뷰를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부수적인 생각들은 꿈도 못 꿨어요.(웃음)
그렇지만 전체 4순위로 지명됐습니다. 황금 세대 중에서도 로터리 픽으로 선발된 거잖아요.
얼떨떨했어요. 어안이 벙벙했고, 아무 생각이 없었죠. 머리가 하얘진 느낌? ‘와! 좋다!’ 이게 아니라, ‘뭐지? 내 이름 부른 거 맞나?’라고 생각했어요. 그 정도로 제가 너무 빨리 불렸다고 생각했죠.(웃음)
다행히 지금 선수들처럼 입단 소감을 말하는 게 없었어요. 유니폼을 입고, 모자를 쓰고, 감독님과 사진을 찍는 게 다였죠. 만약에 단상에서 입단 소감을 말하라고 했으면, 아무 말도 못했을 거에요.(웃음)
입단은 전자랜드로 했는데, LG 유니폼을 입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당시에, 오리온-전자랜드-LG가 삼각 트레이드를 한 걸로 알고 있어요. 제가 선발되고 나서 사진을 찍고 내려왔더니, LG에서 유니폼을 벗어달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리고 나서, 제가 전자랜드로 간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LG에 지명되고도, 안 뽑힌 선수들처럼 정장만 입고 앉아있었죠.
그리고 마지막에 지명된 사람끼리 사진을 찍는데, 저만 유니폼이 없었어요. 누가 저한테 ‘쟤는 왜 옷이 없어?’라고 할 때, LG에서 유니폼을 잠깐 줬어요. 그렇게 사진을 찍었고요.
드래프트 당일에 트레이드된 것 말고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사실 너무 오래 전 일이고, 정신도 없어서 기억이 다 나진 않아요. 그런데 딱 하나 기억에 남는 게 있어요. 제가 4순위에 뽑혔을 때, 주변에서 ‘우와!’라는 탄성이 나왔어요. 주위도 웅성웅성했죠. ‘역시 정영삼이 4순위에 뽑힐만하지’의 반응이 아니라, ‘뭐야? 정영삼이 누구야?’라는 반응이었어요. 그 정도로 제가 엄청 빨리 뽑혔어요.(웃음)
그런 반응 때문에, 오기도 품었을 것 같습니다.
앞순위에 뽑히고 싶다는 욕심도 기대감도 전혀 없었어요. 말 그대로 4순위는 저에게 행운이었죠. 애초부터 2라운드 후반 픽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너무 만족스러웠어요. 주위의 평가를 생각하는 것보다, 그저 프로에 적응을 잘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입단 후 처음으로 구단과 인사를 했을 건데, 그 때를 돌아본다면 어떠셨나요?
지명된 날 최희암 감독님께 인사를 드리고, 사무국에서 바로 구단 숙소를 구경시켜주신다고 하셨어요. 제 부모님과 같이 지명된 선수들, 같이 지명된 선수들의 부모님까지 함께 갔죠.
첫 인상은 이랬던 것 같아요. ‘응답하라’ 드라마 시리즈를 보면, 시골 애들이 서울을 처음 왔을 때의 느낌?(웃음) ‘여기가 프로 숙소구나’라는 걸 느꼈죠. 그리고 대선배님들과 함께 운동하면서 ‘내가 프로 선수가 됐구나’라는 걸 더욱 실감했고요.
본인이 겪었던 드래프트와 지금의 드래프트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본인이 느낀 가장 큰 차이는 어떤 게 있을까요?
너무 달라졌어요. 우선 요즘은 선수들마다 입단 소감을 말하잖아요. 요즘 선수들은 많이 힘들 것 같아요.(웃음) 드래프트에서 정신 없을 건데, 소감도 말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요즘은 구단별로 지명 순번을 미리 정하더라고요. 팀이 순번에 맞게 필요한 선수들을 생각할 수 있고, 드래프트를 준비하는 선수들도 어느 팀에 갈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잖아요. 그리고 요즘 선수들이 워낙 똑똑해서, 어느 팀에 갈 걸 예상하고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서 오는 것 같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저희 때는 드래프트 직후에 주구장창 연습만 했었는데(웃음), 지금 신인들은 드래프트 후에 곧바로 뛸 수 있잖아요. 저는 드래프트 직후에 경기를 많이 갈망했는데, 지금 선수들은 뛸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신인 선수들의 풋풋함이죠.(웃음) 그리고 드래프트는 여전히 긴장과 기대감, 감동이 있는 현장이잖아요. 많은 분들이 그러시겠지만, 아무래도 요즘 신인 선수들의 부모님과 대학교 관계자들도 긴장과 기대를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안 뽑히는 선수들은 허무함과 절망감을 많이 느껴요. 예전에 제가 드래프트를 할 때, 선발되지 못한 선수의 부모님은 쓰러지셔서 나가시기도 했어요. 결과에 낙담을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인생의 쓴맛을 볼 수 있는 현장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사실 드래프트에 지명되는 건 시작이잖아요. 베테랑 선수로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프로에 뽑힌다고 해서, 다 프로 선수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뽑혔다고 해서 너무 좋아할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순위에 너무 좋아하거나 너무 기분 나빠할 필요도 없어요. 순위는 그저 대학교 4학년 동안 준비해온 결과일 뿐이고, 결국 프로에 얼마나 적응을 잘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프로에서 얼마나 자기 실력을 보여줄지를 가장 많이 생각해야 하고요.
또한, 프로에 안 뽑혔다고 해서, 낙담할 필요도 없어요. 프로 선수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끝난 게 아니잖아요. 농구 선수 외에 갈 수 있는 길도 많고요. 그런 점을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지금 신인들은 드래프트 후 경기에 곧바로 뛸 수 있습니다. 본인이 그런 상황이었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저는 한 경기도 못 뛰었을 것 같아요.(웃음) 제 포지션에 조우현 선배님과 김성철 코치님 등 워낙 좋은 선배님들이 많으셨어요. 언급된 분들 말고도,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이 많으셔서...(웃음)
저한테는 시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던 게 더 좋았던 것 같다. 최희암 감독님의 가르침을 받고 선배님들의 조언을 들으면서, 연습 경기나 해외 전지 훈련 등 다양한 방식으로 프로를 경험했죠. 그게 지금까지 큰 자산으로 남아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트라이아웃과 드래프트를 하기 전에, 운동 능력과 신체 조건을 측정하는 컴바인이 생겼습니다. 정영삼 선수 때 컴바인이 생겼다면 어땠을까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 같아요. 운동 능력이 좋다고 해서, 농구 잘 하는 게 아니잖아요. 운동 능력과 신체 조건은 하나의 기준이지, 그 선수를 파악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도 아니고요.

송창무(서울 SK)는 2007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7순위(전체 17순위)로 창원 LG에 입단했다. 김태술-양희종-정영삼-김영환-함지훈 등 황금 세대와 함께 드래프트에 나섰다. 경쟁자가 많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선택 받았기에, 2007 드래프트는 송창무에게 특별한 의미일 것 같았다.
트라이아웃을 준비한 과정부터 듣고 싶은데요.
제가 나온 명지대학교가 용인에 있었어요. 당일에 트라이아웃 현장으로 가기엔 무리일 것 같아서, 저랑 친구 2명(김영수-김봉수)이랑 전날 저녁에 서울로 방을 잡았어요. 그렇게 잠을 자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거든요.(웃음)
저는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트라이아웃과 드래프트 때 필요한 이것저것들을 챙겼죠. 다른 선수들은 일반 가방을 멨는데, 저만 ‘망치가방’이라는 큰 가방을 짊어졌더라고요.(웃음)
그리고 제가 드래프트에 나갈 때, 황금 세대에 있던 선수들이 같이 나왔어요. 너무 센 경쟁자들이 많았죠. 열심히 안 하면 살아남기 힘들겠다고 생각했어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했던 것 같아요.
트라이아웃을 치른 후 드래프트에 나갔습니다. 호명될 때까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앞 순위에 뽑힐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저랑 같이 간 학교 친구들이 저보다 먼저 뽑히더라고요.(김영수 : 2R 3순위-대구 오리온스, 김봉수 : 2R 4순위-원주 동부) 제 이름이 2라운드 거의 끝까지 나오지 않아서, 제가 불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게다가 황금 세대들이 나온 드래프트라 더 암울했고요.
당시 명지대 감독님(강을준 오리온 감독)께서 하셨던 이야기도 생각이 났어요. ‘1년만 더 하고 내년 드래프트에 나갈 생각이 없냐’라고 물으셨죠. 하지만 제가 이미 남들보다 2년 더 늦었기 때문에, 1년 더 있다가 드래프트에 나가는 건 너무 늦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 이름이 나오지 않으니, 감독님 말씀을 들을 걸 하고 후회했죠.(웃음)
그러다가 본인의 이름이 불렸습니다. 호명됐을 때, 여러 생각을 했을 것 같은데요.
강을준 감독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하다가, 제 이름이 호명됐어요. 처음에는 거짓말인줄 알았죠.(웃음) 제 이름이 흔치 않은 이름인데도, 제가 불린 걸 몰랐어요.
제가 제 이름이 불렸는데도 가만히 있으니, 옆에 있던 친구들이 ‘뭐해? 얼른 나가야지’고 하더라고요. 친구들이 알려줘서 제 지명을 알았을 만큼, 제가 긴장했던 것 같아요.
입단 후 처음으로 팀원과 인사를 했을 건데, 그 때를 돌아본다면 어떠셨나요?
드래프트 때 입었던 옷과 갖고 있던 짐 그대로 LG 체육관에 갔어요. 체육관에 도착하자마자 연습복을 하나 받았고, 운동 준비를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가자마자 저희 상대 팀 용병 패턴을 숙지했고, 상대 팀 용병 역할을 했어요. 드래프트 당일에 오후 운동을 한 거죠.(웃음)
저희 드래프트 때만 해도, 신인들이 바로 뛸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저말고 다른 친구들은 1~2달 놀다가 팀에 합류했어요. 그 때 저한테 술 먹으러 오라고 했는데, 저는 이미 운동을 하고 있었어요.(웃음) 드래프트하고 며칠 동안은 제 생활도 하나 못하고, 정신 없었던 기억만 나요.
그리고 그 때 저희 팀이 1라운드에서 (정)영삼이를 뽑았는데, 영삼이가 드래프트 직후에 전자랜드로 트레이드됐어요. 저 혼자 신인이었던 거죠. 그래서 더 고생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도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이를 악물고 했던 것 같아요.
본인이 겪었던 드래프트와 지금의 드래프트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본인이 느낀 가장 큰 차이는 어떤 게 있을까요?
제가 신인일 때는 황금 세대로 불린 선수들이 있었어요. 경기 뛸 선수가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은퇴해야 하는 선수들이 나올 정도였죠.
그런데 지금은 뽑을 선수가 없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어요. 선수들이 선수들 간의 경쟁 속에서 발전해야 하는데, 선수 풀이 점점 좁아진다는게…
어쨌든 드래프트는 기대를 하게 하는 행사잖아요. (이)종현이가 나올 때만 해도, 지명권을 얻은 유재학 감독님께서 환호하실 정도였고요.
감독님들과 구단 관계자분들 모두 예전에는 무조건 높은 순위에 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높은 순위를 받아도 반신반의하시는 것 같아요. 잘 하는 선수가 매년 있다고 해도, KBL 판도를 뒤집을 정도도 아니고요.
그리고 ‘코로나 19’가 터지면서, 연습 경기가 많이 줄었잖아요. 드래프트를 준비하는 신인들이 보여줄 기회가 줄었어요. 구단도 어느 선수가 좋은지 파악하는 게 이전보다 힘들어졌고요. 이번 드래프트는 유독 불확실성이 많아진 것 같아요.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좋은 신인을 선발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신다는 거에요. 전력분석원들과 함께 직접 분석하기도 하지만, 선수들에게 물어보기도 하세요. 직접 부딪혀본 선수들의 이야기도 많이 신뢰하시는 것 같아요.
사실 드래프트에 지명되는 건 시작이잖아요. 베테랑 선수로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형들과 생활해도 어려움 없는 신인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신인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은 신인들은 형들과의 관계 때문에 운동할 때에도 눈치를 보더라고요.
형들과의 관계 때문에 너무 눈치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신인들이 형들과 어울리는 걸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선수가 눈치를 보게 되면,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못하거나 자기가 해야 하는 걸 잊게 되요. 이도 저도 안 되는 거죠.
특히, 운동할 때는 더욱 그러면 안 되요. 코트에서는 선후배가 없잖아요. 신인 선수들이 형들과의 관계에서 눈치 보지 말고, 마음 편히 코트에 와서 마음 편히 기량을 발휘하면 좋겠어요.
물론, 눈치를 아예 안 볼 수는 없겠죠. 성격상 그런 선수들도 분명 있을 거고요. 하지만 선수가 그 팀에 뽑혔다는 건 자기 역량을 어느 정도 갖췄다는 거잖아요. 코칭스태프께서 선수의 잘했던 걸 더 잘 하게 해줄 거고, 못했던 걸 더 보완시켜줄 거에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자기가 해왔던 걸 보여주면 될 거 같아요.
그리고 드래프트에 선발되면, 프로 선수로서는 시작점에 선 거잖아요. 부담감이 많겠지만, 기회가 왔을 때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감독님께서 나를 코트에 넣은 건 나를 믿고 뛰게 한 거다. 그러니, 내가 하던 걸 보여주겠다’라고 생각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데뷔전이 자기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중요한 경기지만, 그 경기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경기 감각을 쌓고 몸을 만들다 보면, 좋은 터닝 포인트가 꼭 찾아오거든요.
지금 신인들은 드래프트 후 경기에 곧바로 뛸 수 있습니다. 본인이 그런 상황이었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저는 바로 뛸 수 있었을지 모르겠어요.(웃음) 제 기량이 좋아서 뽑힌 게 아니라, 제 가능성 때문에 뽑혔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키 때문에 기회를 받았을 지도 몰라요. 받은 기회 속에서 잘 한다면 좋겠죠. 하지만 안 풀렸을 때는 감독님과 팀원에게 안 좋게 보일 수 있다는 게… 그게 좀 걱정이 될 것 같고요.(웃음)
실제로, 저는 신인 때 많은 기회를 얻었어요. 하지만 기량이 부족했어요. 혼도 많이 났고요. 신선우 감독님께서 많이 챙겨주셨는데, 기대에 부응을 하지 못해 죄송했어요. 한 시즌만 하고 감독님께서 바뀌셔서, 더 죄송한 마음이 컸고요.
그렇지만 그 때 부딪히고 깨지면서 많은 배움을 얻었던 것 같아요. 그건 경기에 바로 투입된 신인이 누릴 수 있는 장점이라고 봐요.
지금은 트라이아웃과 드래프트를 하기 전에, 운동 능력과 신체 조건 측정하는 컴바인이 생겼습니다. 송창무 선수 때 컴바인이 생겼다면 어땠을까요?
제도라는 건 미흡한 게 늘 있고, 그 미흡한 걸 채워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드래프트도 마찬가지에요. 트라이아웃과 컴바인 등을 신설하면서, 선수들을 더 세밀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됐잖아요.
특히, 컴바인 같은 게 저희 때에도 있었다면, 선수들이 더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어쨌든 선수들한테 테스트가 생기면, 선수들은 그 테스트를 위해 더 열심히 준비하니까요. 저도 마찬가지였을 거고요.(웃음)

허일영은 2009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 오리온)에 입단했다. 그 후 10년 넘게 한 팀에서만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드래프트 때만 해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당시 전태풍-이승준-문태영 등 혼혈선수들을 위한 드래프트가 따로 있었고, 허일영과 함께 드래프트에 나선 이들이 ‘최악의 세대’로 평가 받았기 때문.
하지만 허일영은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자가 강자’라는 걸 증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11년 전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는 것 같았다.
트라이아웃 때의 기억부터 듣고 싶습니다.
제가 그 때 로터리 픽으로 뽑힐 거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었어요. 그래도 제가 트라이아웃에서 보여줄 수 있는 건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저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트라이아웃을 치른 후 드래프트에 나갔습니다. 호명될 때까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당시 혼혈선수 드래프트가 있었고, 로터리 픽을 행사할 수 있는 팀이 3팀(인천 전자랜드-대구 오리온스-울산 모비스)이었어요. 세 팀 다 1순위를 얻으면 저를 뽑는다는 이야기가 있었죠. 저는 그냥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가야지라고 생각했어요.
지명 순위가 나오고, 10분간 정회를 했어요. 주변에서 이미 축하한다고 말해줬고요. 그런데 이상했어요. 당시에 전자랜드가 1순위로 나왔는데, 전자랜드는 저를 안 뽑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웃음) (박)성진이랑 저랑 고민한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했고요.
사실 저는 어떻게든 프로에 가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전자랜드가 1순위로 성진이를 부르길래, 오리온이 다음에 저를 부르겠다고 생각했죠.
오리온이 본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본인의 이름이 호명됐을 때, 여러 생각을 했을 것 같은데요.
오리온에서 저를 불러주실 거라고 생각할 때, 오리온에서 저를 불러주셨어요. 제가 뽑히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긴장이 되더라고요. 기분이 조금 묘했죠. 그리고 ‘드디어 가는구나. 이제 시작이구나’라고 생각했고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드래프트 전날에 양재교육문화회관 근처에서 잤어요. 고향은 부산이고 학교(건국대학교)는 이천이라, 고향이나 학교에서 자고 오기 힘들었거든요. 친구 집에서 잘까도 했는데, 마음 편히 하루 전날 드래프트 장소 근처로 가서 잤죠. 잠은 잘 잤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특별한 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 혼혈선수 드래프트 때문에 말이 많았어요. 이른 순번에도 선수 지명을 포기하는 팀이 생겼고, 그 때 대학 관계자와 드래프트 참가 선수들 모두 중간에 나갔어요. 보이콧을 했었죠.
대학연맹에서는 ‘국내 선수가 먼저이지 않느냐’라고 했었고, 저희 또한 피해자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이유 때문에 단체로 드래프트를 나갔는데, 대학과 프로 간의 대화가 어느 정도 이뤄져서 다시 들어갔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허일영 선수가 나온 2009 국내 신인 드래프트는 2000년대 후반 드래프트 중 최악의 드래프트로 불렸잖아요. 그런 것 때문에, 더 오기를 품었을 것 같은데요.
기분이 좋은 건 아니었죠. 그래도 그런 평가 때문에,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선배님이나 제 동기들이나 남은 사람이 별로 없잖아요. 나이가 점점 들면서, 그 때 선수들이 더 줄어들고 있고요.
저희 때 뽑힌 선수 중에는 저를 포함해서 2명(허일영-김강선)만 남았어요. 공교롭게도 다 저희 팀에 있고요.(웃음) 어쨌든 살아남았으니, 저와 강선이가 승자이지 않을까요? 강선이랑 그런 점에 자부심도 가지고 있고요.(웃음)
입단 후 처음으로 감독님과 인사를 했을 건데, 그 때를 돌아본다면 어떠셨나요?
드래프트 직후에 단장님과 감독님께 먼저 인사를 드렸는데, ‘잘해보자’는 말씀을 해주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집에 갔다가, 팀에서 합류하라고 할 때 합류했죠.
팀에 합류하고 몇 게임을 따라다닐 때, 프로에 왔다고 실감했어요. 당시 홈 코트가 대구에 있었는데, 팬들께서 많이 좋아해주시고 반겨주셨어요. 그러면서 ‘프로는 역시 다르다’는 걸 느꼈죠.
본인이 겪었던 드래프트와 지금의 드래프트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본인이 느낀 가장 큰 차이는 어떤 게 있을까요?
전반적인 틀은 비슷한 것 같아요. 장소가 양재교육문화회관에서 잠실학생체육관으로 변경된 정도? 그리고 지금은 드래프트에 선발된 선수들이 입단 후 포부를 밝히는데, 저희는 사진 찍고 그냥 내려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드래프트 시기도 달라졌고요.
또, 각 팀에서 가져갈 수 있는 지명권 확률이 달라졌어요. 플레이오프를 떨어진 팀들이 지금은 예전만큼 높은 확률을 얻지 못하는 것 같아요. 반면, 우승했던 팀과 플레이오프에 올라갔던 팀들도 1라운드 1순위를 얻을 확률이 높아졌고요.
드래프트가 전력 보강을 하는 기회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워요. 특히, 좋은 선수들이 드래프트에 많이 나올 때가 그럴 것 같아요. 그 때 좋은 성적을 거둔 팀이 높은 지명 순번을 얻는다면, 각 팀의 전력 차이가 커질 수 있잖아요. 그런 면은 아쉬운 것 같아요.
사실 드래프트에 지명되는 건 시작이잖아요. 베테랑 선수로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요즘은 드래프트에 뽑혔다고 해서 안주하는 선수들이 많은데, 어떻게든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을 먹어야 해요.
또, 순위가 아예 상관이 없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뒤늦게 뽑히더라도, 순위에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하면 좋겠어요. 다만, 왜 그 순위에 갔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거죠. 본인 생각보다 낮은 순위로 선발됐다면, 더 독기를 품고 선수로서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한, 요즘 선수들이 이전 선수들보다 뛰어난 신체 조건과 개인 기술을 지니긴 했어요. 그런데 처음부터 너무 이것저것 다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확실한 강점을 못 보여주는 느낌이에요. 하나의 특장점을 먼저 만들고, 다양한 능력을 보여주는 게 좋다고 봐요.
허일영 선수는 슛이라는 확실한 강점을 지녔고, 자기 강점과 팀에서 해야 할 일에 맞춰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요.
물론, 농구는 잘 막는 것도 중요해요. 하지만 어쨌든 잘 넣어야 이기는 스포츠잖아요. 그래서 슛만큼은 확실히 장착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팀에서 원하는 수비나 리바운드 등 궂은 일을 잘 해줘야 해요.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저 개인적으로는 슛을 먼저 만든 다음에, 다른 강점을 보여주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지금 신인들은 드래프트 후 경기에 곧바로 투입될 수 있습니다. 본인이 그런 상황이었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그 때의 상황이 저에게 좋았던 것 같아요. 팀에서 훈련하고 선배님들의 경기를 지켜보는 게 좋았던 것 같아요. 프로 경기와 저희 팀의 분위기를 느끼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었거든요.
아무래도 시즌 중간에 합류하면 헷갈려요. 뭐가 뭐지 모르고 해야 해요. 정신도 없을 거고요.
무엇보다 프로는 대학이랑 다르잖아요. 전술과 시스템이 훨씬 세밀하고요. 준비 과정 없이 실전을 뛰는 건 어렵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트라이아웃과 드래프트를 하기 전에, 운동 능력과 신체 조건 측정하는 컴바인이 생겼습니다. 허일영 선수 때 컴바인이 생겼다면 어땠을까요?
선진 시스템을 따라가는 건 고무적이라고 봐요.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해요. 점프가 좋다고 해서 꼭 농구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빠르다고 해서 농구를 잘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만약에 저 때 컴바인을 했다면, 런닝 점프 말고는 중간 정도였을 것 같아요.(웃음)

예상치 못했던 2순위, 이정현의 10년 전 기억
이정현(전주 KCC)은 2010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부산 kt의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kt는 당시 나이젤 딕슨을 안양 KGC인삼공사에서 얻어왔고, 그 대가로 1라운드 신인 지명권을 KGC인삼공사에 내줬다.
KGC인삼공사는 자력으로 1순위 지명권을 얻었다. 그리고 kt가 2순위지명권을 획득하며, KGC인삼공사는 2순위 지명권까지 행사했다. 1순위로 박찬희(인천 전자랜드)를 선택했고, 2순위로 이정현을 지명했다. 이는 이정현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다가왔다.
트라이아웃 없이 드래프트에 나갔습니다. 호명될 때까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두려움과 설렘, 간절함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전체 선수 중 두 번째로 이름이 불렸습니다.
제 예상보다 너무 빨리 불렸어요. 어안이 벙벙했죠. 멍했고, 정신도 없었고요.(웃음)
당시 2순위 지명권은 kt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창진 kt 감독님(현 전주 KCC 감독)과 사진을 찍고, 곧바로 안양 KT&G(현 안양 KGC인삼공사)에 트레이드됐는데요. 그러면서 프로에 입성한 걸 더 실감했을 것 같습니다.
kt의 지명권이 KT&G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kt에 호명 받기는 했지만, KT&G 관계자와 바로 인사를 나눴죠. 그래서 ‘트레이드가 됐구나’라는 감정은 없었어요. 다만, ‘프로가 이런 거구나. 신인 지명권이 오갈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KT&G가 저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kt에 저를 뽑아달라고 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KT&G에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드래프트를 앞두고,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대학 생활을 마치고, 1월말까지 드래프트를 기다렸어요. 조마조마했고 긴장도 많이 했죠. 드래프트 전날에는 잠을 못 자고, 얼굴이 부어서 현장에 왔어요.(웃음) 너무 떨었고,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본인의 이름을 부른 전창진 감독님이 지금 KCC의 감독님이신데, 그 때 이야기를 하실 때가 있나요?
한 번도 하셨던 적이 없었어요. kt가 KT&G를 대신해 지명한 거라, 감독님께서 그 일을 크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입단 후 처음으로 팀원과 인사를 했을 건데, 그 때를 돌아본다면 어떠셨나요?
대학교 때는 해봐야 2-3살 터울 형들만 있었어요. 그런데 드래프트되고 인사를 하러 가니까, 프로 감독님과 코치님, 전력분석원과 매니저님, 11살 이상 차이 나는 형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내가 프로에 왔구나’라는 걸 또 한 번 느꼈어요. 사회에 들어왔다는 걸 실감하게 됐죠.
본인이 드래프트에 뽑힌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본인이 겪었던 드래프트와 지금의 드래프트는 많이 달라졌는데요. 본인이 느낀 가장 큰 차이는 어떤 게 있을까요?
얼리 엔트리가 들어온다는 게 가장 큰 것 같아요. 저희 때는 얼리 엔트리를 상상도 못했어요. 무조건 대학교를 졸업해야 했거든요.
당시에는 대학 선수들의 풀도 넓었어요. 각 대학마다 에이스 역할을 하는 선수들이 있었고요. 그리고 그 때는 각 팀 모두 전력 보강이나 즉시 전력 자원을 뽑는 느낌이었어요. 팀에 필요한 선수들을 뽑는다고 생각했죠.
반면, 지금은 대학 선수층이 많이 얇아진 것 같아요. 물론, 출중한 선수들은 있지만, 고루 분포되지 않는 느낌이에요. 각 팀들도 지금은 재능 있는 선수들을 뽑은 후에 키우는 느낌이 강해진 것 같아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저희 때 경쟁률이 셌던 것 같아요.(웃음) 저보다 선배님들은 더 그랬고요. 그래서 드래프트 때 더 긴장하고, 지명 순위에 압박감을 가졌던 것 같아요.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각 구단이 1~4라운드까지 선수들을 선발할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도 뽑히는 선수는 20명 내외에요. 프로 선수로 될 수 있는 기회가 적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선수들이 프로에 뽑히고, 프로농구의 풀이 좀 더 넓어졌으면 좋겠어요. 경쟁할 분위기가 더 크게 조성이 됐으면 해요. 하지만 구단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거에요.
사실 드래프트에 지명되는 건 시작에 불과하잖아요. 베테랑 선수로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요즘 선수들의 신체 조건과 개인 기술은 예전에 비해 훨씬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개인 능력은 분명 좋아졌어요.
그런데 신인들이 올 때마다 느끼는 게 있어요. 농구 자체를 이해 못하는 선수들이 있고, 농구의 기본적인 틀을 모르는 선수들이 많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 틀을 새롭게 배우는 선수들이 많고요. 프로를 준비하는 선수들이 농구의 기본적인 틀을 미리 알고 온다면, 프로에 좀 더 쉽게 적응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면, 팀 플레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야 해요. 프로에는 작전과 포메이션, 패턴들이 워낙 많은데, 농구의 길을 모르면 그런 것들 사이에서 헤맬 수 있어요. 그래서 개인 능력도 중요하지만, 팀 농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점을 꼭 이야기하고 싶어요.
지금 신인들은 드래프트 후 경기에 곧바로 투입될 수 있습니다. 본인이 그런 상황이었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6~7개월 동안 준비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대학생 티를 벗었고, 프로에 적응할 시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대학 때 체중이 많이 나갔는데, 그걸 감량하면서 프로에 맞는 몸을 만들 수 있었어요. 그래서 신인 때 적응을 잘 한 것 같아요.
워낙 재능이 좋은 선수들은 실전에 바로 쓸 수 있겠지만, 그런 사례가많지 않다고 봐요. 특히, 최근 2-3년 동안에는 바로 두각을 나타내는 신인 선수들이 없었는데, 신인 선수들이 적응 기간 없이 프로에 바로 뛰어들어서 그런 문제도 있다고 봐요. 조금 더 여유를 두고, 몸을 만드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러면 신인들의 경쟁력이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정현 선수 때부터 트라이아웃이 잠깐 없어졌다고 들었습니다. 만약에 트라이아웃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선배님들께서 트라이아웃 때 ‘이 선수가 이런 면도 있구나’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셨어요. 저도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트라이아웃이) 없어졌죠.(웃음)
하지만 아쉬움이 훨씬 컸어요. 트라이아웃이 만약에 열렸다면, 제가 준비를 더 잘 해서 제 강점을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렇지 못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죠.
사진 제공 = KBL
바스켓코리아 / 손동환 기자 sdh2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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