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리그 최초 스트레치 빅맨, 바비 레이저

이재승 기자 / 기사승인 : 2022-09-08 09:5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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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2년 8월호에 게재됐습니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프로농구에서 외국 선수는 주로 빅맨이었다. 골밑 점령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 높이 싸움과 득점력을 겸비했거나, 수비 존재감이나 이타적인 플레이를 잘하는 선수가 많았다.
 

그러나 바비 레이저는 기존 선수와 상이했다. 그의 역할은 스트레치 빅맨이었다. 한국 땅을 밟았던 기존 외국 선수들과는 확연하게 결이 달랐다.

 

대학 시절
고교 졸업 후 레이저는 농구 명문 시라큐스대학교로 진학했다. 카멜로 앤써니(현 LA 레이커스)가 뛴 학교로 유명하며, 미국 북동부 지역을 대표하는 농구 명문 중 하나다. 그러나 레이저는 시라큐스에서 주요 전력으로 활약하지 못했다. 주전을 꿰차기에 수비력과 운동 능력, 에너지 레벨이 부족했다. 파워포워드로 나서기에는 높이와 힘이 모자랐으며, 스몰포워드로 나서기에는 스피드와 횡적인 움직임이 그리 양호하지 않았다. 로테이션 자원으로도 뛰기 어려웠다.
 

1학년이었던 1994~1995 시즌에는 22경기에서 경기당 7.8분을 뛰었다. 평균 2.4점(필드골 성공률 : 51.2%, 3점슛 성공률 : 0%, 자유투 성공률 : 43.5%) 1.8리바운드 0.3어시스트를 올리는데 그쳤다. 2학년이던 1995~1996 시즌에는 21경기 평균 7.3분 동안, 2.1점(필드골 성공률 : 43.8%, 3점슛 성공률 : 33.3%, 자유투 성공률 : 58.3%) 1.8리바운드 0.3어시스트에 머물렀다. 

 

전년 대비 3점슛 성공률은 늘었으나, 2점슛 성공률이 53.8%에서 46.2%로 하락했다. 평균 득점도 줄었다. 레이저는 고심 끝에 학교를 옮기기로 했다. ‘한 시즌 출전 불가’라는 징계를 감수한 그는 애리조나 스테이트 선데빌스로 옮겼다.(우리가 주로 알고 있는 애리조나 와일드캣츠와는 다른 팀이다)
 

상대적으로 약체인 학교로 옮겼다. 레이저는 이전보다 쉽게 자리를 잡았다. 1년 동안 뛰지 못했지만, 1997~1998 시즌부터 주전으로 출장하며 입지를 다졌다. 대학 진학 이후 처음으로 코트를 꾸준히 밟았다. 32경기 중 31경기를 주전으로 뛰었고, 경기당 31.8분이라는 많은 시간을 소화했다. 16.8점(필드골 성공률 : 55.8%, 3점슛 성공률 : 40.5%, 자유투 성공률 77.7%) 7.8리바운드 1.6어시스트 1.2블록슛 1스틸로 두각을 보였다.
 

슛 성공률을 개선한 레이저는 야투 시도 대비 많은 득점을 올렸다. 시라큐스가 속한 애틀랜틱코스트컨퍼런스(ACC)에서 뛸 때보다 다소 약한 수비와 마주했고, 득점 사냥이 이전보다 원활해졌다. 3점슛 시도가 많지 않았으나, 성공률이 높았던 건 고무적이었다. 시도 개수가 평균 1.2개에 불과했지만, 시도 대비 양호한 성공률을 자랑했다. 스트레치 빅맨으로서 가능성을 보였다. 2점슛 성공률은 무려 60%에 육박했을 정도로 대단했다.
 

1998~1999 시즌에는 좀 더 나아진 경기력을 보였다. 30경기에 모두 주전으로 출전하며, 평균 36.1분을 뛰었다. 출장 시간에서 드러나듯, 팀에서의 레이저가 어떤 위치인지 알 수 있었다. 평균 18점(필드골 성공률 : 49.1%, 3점슛 성공률 : 28.4%, 자유투 성공률 : 75.1%) 8.7리바운드 3어시스트로 코트를 수놓았다. 

 

이에 힘입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팩-10 컨퍼런스(현 팩-12 컨퍼런스) 올해의 팀(First Team)에도 이름을 올렸다. 총 10명의 선수가 선정되는 가운데, 레이저도 당당히 자리했다. 당시 선정된 이들은 배런 데이비스, 에디 하우스, 토드 맥컬러프, 마크 매드슨, 제이슨 테리 등이었다. 비록 레이저는 비록 NBA와 인연을 맺지 못했으나, NBA에서 오랜 시간 뛴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을 정도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대구에서의 2003-2004 시즌
바비 레이저는 지난 2003 KBL 외국 선수 드래프트를 통해 대구 오리온스로 입성했다. 당시 오리온스는 2002~2003 시즌에 이어 마르커스 힉스와 함께 하기로 했다. 이에 2라운드 지명권만 갖고 있었던 오리온스는 2라운드에서 레이저를 호명했다. 당시 오리온스는 레이저를 통해 공격력을 끌어올리고자 했다. 힉스-김승현(전 해설위원)-김병철(전 고양 오리온 코치)이 주요 전력으로 활약했으나, 빅맨 유형 외국 선수의 부재와 국내 빅맨이었던 전희철(현 서울 SK 감독)의 빈자리를 메우기 쉽지 않았다.
 

스몰포워드인 박재일의 가치가 높아졌지만. 빅맨 외국 선수가 뚜렷하게 자리를 잡지 못해 한계를 보였다. 이에, 오리온스는 아예 공격 보강을 택했다. 출중한 외곽슛을 갖추고 있던 레이저는 김승현이라는 리그 최고 가드와 많은 옵션을 창출할 수 있었다. 또, 레이저의 애리조나 스테이트 시절과 프랑스리그 기록을 보면, 수비가 약한 선수도 아니었다. 몸싸움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 있으나, 스틸과 블록슛에 능했다. 골밑 수비에서도 기여할 수 있는 게 많았다. 또한, 힉스라는 리그 최고 블로커가 자리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레이저의 가세가 오리온스의 부족한 외곽 공격을 충원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힉스가 오프 시즌에 부상을 당하고 만 것. 힉스는 2003~2004 시즌을 치를 수 없었다. 오리온스는 다른 누구도 아닌 힉스를 교체해야 했다. 오리온스의 시즌 구상에 큰 차질이 생겼다. 오리온스는 전술을 바꿔야 했다. 힉스가 아닌 레이저를 중심 자원으로 삼아야 했다. 레이저를 공격의 전면에 내세워야 했다. 김승현이라는 리그 최고 볼 핸들러를 적극 활용하되, 레이저를 스크리너로 삼았다. 2대 2 이후 팝 아웃을 통한 외곽슛을 레이저에게 주문했다.
 

김승현이 상대 수비를 확실히 안쪽으로 몰 수 있었기에, 레이저가 손쉽게 슛을 시도할 수 있었다. 또, 힉스 대체로 들어온 아이작 스펜서가 안쪽에서 나름의 역할을 했다.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오리온스가 나름의 전력으로 순항할 수 있었다. 김승현의 빠른 볼 운반과 레이저의 외곽포, 스펜서의 속공 가담이 더해졌다. 오리온스는 공격적인 농구를 할 수 있었다.
 

레이저는 30점은 물론이고, 40점씩 퍼붓기도 했다. 김승현과 호흡이 원활해질수록, 레이저의 득점력은 더욱 돋보였다. 지난 2003년 12월 18일 창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창원 LG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44점을 퍼부었다. 팀의 패배로 빛이 바랬지만, 레이저의 물오른 공격력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따금씩 기복을 보이긴 했으나, 전반적으로 양호한 공격력을 유지했다.
 

그러나 스펜서가 한계를 노출했다. 슛거리가 길지 않은 것은 물론, 1대1 공격을 통해 상대를 제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오리온스는 시즌 막판에 외국 선수를 교체하기로 했다. 스펜서를 방출하고, 아티머스 맥클레리를 데려왔다. 맥클레리는 삼성의 2000~2001 시즌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 그러나 맥클레리도 이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중거리슛을 갖추고 있지 않았으며, 신장도 크지 않았다. 수비에서 많이 고전했다. 특히, 김주성과 리온 데릭스가 포진한 원주 TG(현 원주 DB)와의 경기에서 힘겨워했다.

 

반면, 레이저는 시즌 내내 꾸준했다. 올스타에도 뽑혔다. 찰스 민렌드에 이어 외국 선수 중 두 번째로 많은 표를 획득했다. 2004 올스타전에서 김승현과 여러 차례의 앨리웁을 합작해, 경기장을 가득 채운 팬들의 함성에 화답했다. 오리온스의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32승 22패를 기록. 간판이자 팀의 전부인 힉스가 부상으로 낙마했음에도, 리그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다. 전자랜드와 같은 공동 3위에 올랐으나, 전자랜드와의 맞대결에 앞서 3번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오리온스 우승에 일조했던 라이언 페리맨과 조성원(전 창원 LG 감독)이 이끄는 LG와 마주했다. 리그 최고의 공격력을 갖춘 팀 간의 맞대결. 두 팀의 맞대결은 치열했고, 시리즈는 최종전인 3차전으로 향했다.
 

오리온스의 안방에서 경기가 열렸다. 오리온스가 유리해 보였다. 그러나 직전 홈 경기였던 시리즈 첫 경기를 내줬기에, 마냥 유리하다고 점치기는 쉽지 않았다. 또, 4쿼터 종료 0.4초 전 빅터 토마스에게 동점을 내주며, 승부는 연장전으로 향했다. 연장전 후반부에도 강동희에게 3점슛을 내줬다. 오리온스가 81-84로 밀렸다. 그러나 이후 석연치 않은 판정이 나왔다. 먼저 토마스가 베이스 라인을 밟았으나, 심판진이 이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오리온스가 수비에서 손해를 봤다.

울산에서의 2004-2005 시즌 & 전주에서의 2006-2007 시즌
KBL은 2004~2005 시즌부터 외국 선수 영입을 드래프트에서 자유계약으로 바꿨다. 이 때, 오리온스는 네이트 존슨과 로버트 잭슨을 데려왔다. 바비 레이저와 재계약하지 않았다. 그러나 레이저는 울산 모비스에서 기회를 얻었다. 모비스(현 울산 현대모비스)에서 지휘봉을 처음 잡은 유재학 감독과 함께 했고, 프로 무대에 갓 데뷔한 양동근(현 울산 현대모비스 코치)과도 함께 했다.
 

그러나 모비스는 시즌 초반부터 연패에 놓였다. 그래도 레이저는 분전했다. 2004년 11월 11일 SK와 홈 경기에서 21점 11리바운드로 활약했다. 시즌 초반부터 더블더블에 버금가는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다른 구단의 외국 선수와 매치업을 쉽게 하지 못했다. 모비스와 오랜 시간 함께 하지 못했다. 

 

레이저는 2006~2007 시즌에도 KBL의 부름을 받았다. 전주 KCC 유니폼을 입은 것. 민렌드의 부재로 전력이 약해진 KCC는 마이클 라이트와 레이저를 중심으로 전력을 다지고자 했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다. 2006~2007 시즌을 앞두고, 외국 선수 출전 제한 규정이 생긴 것. 2~3쿼터에 한해, 외국 선수가 한 명만 뛸 수 있게 됐다. 국내 선수의 역할이 더욱 중요했으며, 토종 선수층의 깊이가 리그를 치르는 또 다른 변수가 됐다. 

 

공교롭게도 조성원이 은퇴했고, 이상민(전 서울 삼성 감독)과 추승균(전 전주 KCC 감독)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즉시 전력 자원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외국 선수 부상까지 겹치면서, KCC는 최악의 시즌을 보내야 했다. 심혈을 기울여 영입했던 라이트가 부상으로 팀을 떠난 것.
 

라이트의 대체 자원으로 타이론 그랜트가 왔으나, 레이저가 상대와 매치업에서 버티기 쉽지 않았다. 자유계약 제도로 인해, 상대 외국 선수의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 레이저의 공격이 외곽에 머무는 빈도가 더욱 많아졌고, 국내 선수들의 미진한 활약이 레이저를 향한 집중 견제를 야기했다. 

 

KCC는 결국 레이저도 교체하기로 했다. 레이저가 KCC에서 남긴 기록은 8경기 평균 13.4점 8.8리바운드였다. 시즌 전에 계약한 외국 선수가 모두 바뀐 가운데, KCC는 15승 39패로 리그 최하위에 그쳤다. 레이저와 KBL과의 인연도 끝이 났다.

* 레이저에 관한 말말말
오리온스의 감독이었던 김진 감독은 “모든 선수들이 속공에 가담할 수 있게 하며, 빠른 농구를 추구하기 위함이었다. 힉스의 능력을 최고로 만들어 줄 수 있는 파트너라 생각돼, 레이저를 선택했다. 하지만 힉스가 없는 상황에서 레이저는 100% 확신 할 수 없다”며 레이저를 선발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오리온스에 입단한 바비 레이저는 당시 “몸싸움에서는 취약할 수 있겠으나, 선수들 개개인만의 플레이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포스트와 외곽 공격을 함께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나만의 최고 장점이라 생각한다”며 자신의 장점을 이야기했다.
 

또, 레이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KBL 수준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높다.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리그 운영이 NBA와 비슷한 게 사뭇 인상적이다. 선수들의 실력도 좋아, 앞으로 최선을 다하며 경기에 임할 생각이다”며 의지를 보였다.
 

당시 오리온스는 힉스의 부상으로 하위권에 위치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레이저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면서, 오리온스는 개막 후 첫 9경기에서 6승을 수확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그러면서도 “코치진과 김승현의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 김승현은 한 발 빠른 패스로 쉽게 득점을 돕는 아주 훌륭한 포인트가드이다. 국제대회 참가로 인해 팀 합류가 늦었지만, 많은 부분에서 호흡을 맞춰가고 있다”면서 김승현을 최고 선수로 치켜세운 바 있다.
 

사진_ NBA Mediacent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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