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이슬은 ‘WKBL 최고의 슈터’가 됐다. 개인 기량만 놓고 보면 그랬다. 그러나 강이슬이 속했던 부천 하나원큐는 정상과 거리가 멀었다. 강이슬의 커리어 한구석이 허전했던 이유.
우승을 원했던 강이슬은 2020~2021 시즌 종료 후 이적했다. 우승 후보로 꼽힌 청주 KB스타즈로 향했다. 2021~2022 시즌부터 박지수와 함께 원투펀치를 형성했고, 노란 유니폼을 입고 데뷔 첫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팀을 최고로 이끄는 슈터가 됐다. 명실상부한 리그 최고의 슈터가 됐다. 그러나 강이슬의 커리어는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더 높은 벽을 두드리고 있다. 강이슬이 도전하는 무대는 세계 최고들만 모인 WNBA다.

WKBL이 2019~2020 시즌 종료 후 FA(자유계약) 제도를 손질했다. 2차 FA가 된 선수들에 한해, 원 소속 구단 우선 협상 폐지. FA 시장이 열리면, 2차 FA 자원들은 모든 팀과 접촉할 수 있다. 그래서 2차 FA의 주가가 더 상승했다.
2020~2021 시즌이 끝난 후, 강이슬도 2차 FA가 됐다. WKBL 최고의 슈터. 슈팅 능력은 물론, 내구성과 활동량도 겸비한 자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이슬을 주목하는 구단이 많았다. 간단히 말하면, ‘최대어’였다.
강이슬은 ‘우승’을 원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원하는 팀에 가고 싶었다. 청주 KB스타즈가 그랬다. KB스타즈는 박지수와 시너지 효과를 낼 외곽 자원을 원했고, 강이슬에게 2021~2022 시즌 보수 총액 3억 9천만 원(연봉 : 3억, 인센티브 : 9천만 원)을 안겼다. 그리고 보상 선수를 지명하지 않은 하나원큐(강이슬 원 소속 구단)에 9억 원의 보상금을 줬다. KB스타즈가 강이슬한테 쓴 돈만 12억 9천만 원이었다.
강이슬은 2차 FA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부담감은 컸다. 꼭 우승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기 때문. 그러나 반가움도 컸다. 함께 했던 옛 동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2020-2021 시즌 종료 전부터 ‘KB 이적설’이 돌았습니다.
저는 2020~2021 시즌 종료 후에 ‘강이슬이 KB로 이적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이런 소문이 나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거든요. 아무래도 저를 필요로 하는 팀이 KB라는 추측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그런 소문이 나지 않았나 생각해요.
KB스타즈가 강이슬 선수를 위해 엄청난 투자를 했고, 강이슬 선수도 결국 KB스타즈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우승도 중요한 목표였지만, KB스타즈가 저를 너무나 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KB스타즈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계약 후 ‘우승을 못하면 어떻게 하지?’라고 걱정했습니다.
데뷔부터 함께 했던 하나원큐를 떠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고민도 많았고, 과정도 순탄치도 않았어요. 이적 과정에서 좋은 말과 안 좋은 말을 다 들었던 것 같아요.(웃음)
그렇지만 ‘도전’이라는 키워드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즐기고 싶은 마음도 컸고요. 하지만 마음고생을 너무 많이 했고, 그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컸습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이뤄낸 것 같아서 너무 좋아요.(웃음)
김완수 감독님도 새롭게 부임했습니다. 김완수 감독님은 2020~2021 시즌까지 하나원큐의 코치였는데요.
사실 이 부분을 이야기하는 게 아직도 조심스러워요. 감독님과 함께 오다 보니, 오해가 아닌 오해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저는 정말 몰랐어요. 감독님 선임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으니까요.(웃음) 단장님께서도 우승 직후에 “내로라하는 후보들이 많았는데, 김완수 감독님께서 면접장에 들어올 줄 몰랐다”고 하셨고요.
하지만 감독님과 제가 같은 팀에 있었기 때문에, 서로 의지할 수 있었어요. 우승을 목표로 하는 팀에 처음 온 거기 때문에, 부담감도 같이 느꼈을 거라고 생각해요. 감독님한테도 고생했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어요.
도쿄 올림픽에 나서기 전, KB스타즈에 합류했습니다. 첫 인상은 어떻던가요?
하나원큐 시설이 워낙 좋았습니다. 그래서 내심 ‘시설이 불편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의구심을 품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괜찮았어요.(웃음) 시설과 첫 인상, 선수들이 환영하는 분위기 모두 좋았어요. 무엇보다 (염)윤아 언니를 만나서 좋았어요.(웃음)
염윤아 선수와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김정은 언니(아산 우리은행) 그리고 (염)윤아 언니와는 좋은 기억 밖에 없어요. 다시 한 팀이 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죠. 좋은 기억을 가진 언니와 재회했기 때문에, 더 반가웠어요. 의지할 곳도 생겼고요. 윤아 언니도 “잘 왔어”라고 반겨줬고요.
그래서 저는 시즌 내내 윤아 언니한테 붙어있었어요. 그냥 언니를 괴롭혔던 것 같아요. 언니도 장난삼아 “내 업보다”고 하더라고요. 윤아 언니가 그렇게 이야기해도, 전 윤아 언니한테 붙어있었죠.(웃음)

강이슬은 프로 데뷔 후 2020~2021 시즌까지 플레이오프에 한 번도 나서지 못했다.(2015~2016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 나섰으나, 당시 하나원큐의 기록은 ‘첼시 리’ 사태 때문에 삭제됐다) 팀 성적에 목말랐던 이유. 그래서 우승 후보인 KB스타즈를 새로운 팀으로 선택했다.
박지수와 강이슬, 다양한 멤버가 어우러진 KB스타즈는 개막 9연승을 달렸다. 그리고 WKBL 역대 최소인 24경기 만에 정규리그 1위를 달성했다. 그 때까지 당한 패배의 숫자는 ‘1’에 불과했다. 그 정도로, KB스타즈는 강력했다.
강이슬에게는 너무나 익숙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강이슬은 어느덧 1위 팀의 선수가 됐다. 아니, 팀을 1위로 만든 일등공신이 됐다. 너무나 낯설었던 ‘연승’과 ‘1위’라는 단어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
KB스타즈 유니폼을 입고 뛴 첫 경기가 2021~2022 시즌 공식 개막전이었습니다.
(강이슬은 2021년 10월 24일 용인 삼성생명전에서 34분 35초 동안 18점 6리바운드 1어시스트에 1개의 스틸과 1개의 블록슛을 기록했다)
개막전 직전만 해도, 설렘과 부담감 모두 컸습니다. 그렇지만 경기가 막상 시작되고 나니, 즐겁게 뛰었던 것 같아요.
개막 9연승을 달성했습니다. 강이슬 선수에게는 익숙치 않은 상황이었는데요.
개막전을 제외하면, 1라운드에는 개인적으로 부진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선수들이 너무 잘해줘서, 팀이 좋은 성적을 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른 선수들에게 너무 고마웠어요. 또, 제가 속한 팀이 이렇게 이긴다는 거에 적응하지 못했어요. 그러면서 내가 우승권 팀에 있다는 걸 실감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KB스타즈는 점점 위력적인 팀이 됐습니다.
하나원큐에 있을 때 생각했던 KB스타즈의 약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처음 KB스타즈에 올 때부터, ‘팀의 약점을 메워보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시즌을 치르면서 ‘내가 과연 팀의 약점을 잘 메우고 있나?’라는 고민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그래도 잘해내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죠.
KB스타즈의 약점은 어떤 거였고, 강이슬 선수는 KB스타즈의 약점을 어떻게 메우려고 하셨나요?
KB스타즈가 워낙 잘하는 팀이기는 하지만, 빠르지는 않은 팀이었어요. 정적인 팀이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박)지수에게 너무 많은 걸 의존하는 것 같았어요.
저는 활동량이 많은 스윙맨이예요. 그래서 제 강점인 많은 활동량과 움직임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렇게 상대 수비를 헤집고, 그렇게 상대 수비를 부숴야 한다고 생각했죠. 제가 그렇게만 한다면, KB스타즈의 약점이 어느 정도 메워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잘 메웠는지는 모르겠어요.(웃음)
그리고 주장이었던 (강)아정 언니(현 부산 BNK 썸)가 빠져서, 제가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동료들과 이야기도 많이 하려고 했고요. 사실 제가 많이 직설적인데, 언니들과 동료들 모두 제 이야기를 잘 받아줬어요. 너무 고마웠어요.
24경기 만에 정규리그 1위를 확정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한 번 밖에 패하지 않았어요.
그저 얼떨떨했던 것 같아요. 그냥 좋다?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거칠 것이 없었던 KB스타즈. 그러나 그런 KB스타즈에 청천벽력이 떨어졌다. 유망주였던 선가희가 지난 3월 4일 세상을 떠난 것.
날벼락이었다. 누구보다 밝았던 동료가 떠났다. KB스타즈 선수들 모두 슬픔에 허덕였다. 정신적인 에너지가 너무 가라앉았다.
하지만 선수들 모두 주저앉지 않았다. 정상이 눈앞이었기 때문이다. 우승 트로피 혹은 우승 반지를 선가희에게 꼭 주고 싶었다. 그래서 KB스타즈는 더 일치단결했다. 똘똘 뭉친 KB스타즈는 마지막 한 걸음을 준비했다.
KB스타즈가 일찌감치 정규리그 1위를 확정했지만, 강이슬 선수는 A매치 브레이크 때 대표팀으로 차출됐습니다. 월드컵 티켓이 달린 최종 예선이어서, 부담감이 컸을 것 같아요.
물론, 강호들과 하는 시합이기 때문에, 진다고 해도 잃을 건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종 예선에서 성과를 거둬야, 우리 나라 여자농구가 16번 연속 농구 월드컵에 참가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부담감이 컸던 것 같아요. 또, 출국 직전에 발목을 다쳐서, 몸 관리를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도 들었고요. 그래도 다행히 최종 예선을 잘 치렀고, 월드컵 티켓도 획득했어요.
귀국 후 슬픈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선가희 선수가 하늘나라로 갔는데요.
(선)가희가 2월 중순에 쓰러졌을 때, 대표팀에 나갔던 저와 다른 선수들(박지수-허예은)은 그걸 몰랐어요. 감독님께서 저희한테 신경 쓰지 않게끔 하셨던 것 같아요.
문득 저희가 출국하기 전에, 가희가 했던 말이 생각났어요. “이슬 언니. 이제는 저 언니 잘 막을 수 있어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라는 말이었죠.
가희가 너무나 밝고 해맑게 말했어요. 그랬던 가희였는데... (가희가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멍했어요. 믿기지 않았고, 이상했어요. 장례를 치르고 나서야, 실감이 났죠.
오랜 시간 같이 했던 건 아니지만, 가희와는 좋은 추억을 갖고 있어요. 너무나 밝고 너무나 잘 다가오는 후배였고, 모든 선수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선수였어요. 그래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선수들이 많았어요. 팀적으로는 분위기를 추슬러야 하는 게 맞는데, 그게 너무 어려웠어요.
KB스타즈 주축 선수들이 다른 구단 주축 선수보다 늦게 ‘코로나19’에 확진됐습니다. 초조함과 불안함이 더 컸을 것 같아요.
대부분의 선수가 A매치 브레이크 때 확진됐고, 저와 몇몇 선수들도 확진됐지만 플레이오프 일정에 지장을 받지는 않았어요. 차라리 빨리 걸리고 플레이오프 때 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다행이었어요.
그런데 증상이 생각보다 심했어요. 몸살과 두통, 인후통과 발열, 근육통 등 코로나19 관련 증상들은 다 겪었던 것 같아요. 너~~무 아팠어요. 그래서 ‘후유증이 오면 어떻게 하지?’라고 걱정했던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악재가 있었지만, 선수들은 더 단단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A매치 브레이크를 기점으로 힘든 일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모두가 힘들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런 것 때문에, 우승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어요. 다들 “가희를 위해서라도 우승을 하자. 가희한테 우승 트로피와 우승 반지를 꼭 전해주자”고 이야기했고, 그 계기로 더 뭉쳐서 좋은 결과를 낸 것 같아요. 지금은 가희가 기뻐하지 않을까요?

슬픔은 슬픔으로 묻어야 했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그렇게 해야 했다. KB스타즈 선수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다가온 플레이오프를 준비했다.
강이슬은 공식적으로 데뷔 첫 4강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너무나 소중한 기회. 그래서였을까? 강이슬의 어깨에는 힘이 더 들어갔다. 1차전에서 8점 6리바운드(공격 2) 2어시스트 2스틸에 그쳤다. 야투 성공률은 25%(2점 : 4/11, 3점 : 0/5).
2차전에서는 다른 경기력을 보였다. 23점 4리바운드 4어시스트에 2개의 스틸. 그러나 3점슛 성공률은 30%에 불과했다. ‘슈터 강이슬’의 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스타즈는 4강 플레이오프에서 부산 BNK 썸을 2전 전승으로 제압했다. 손쉽게 챔피언 결정전에 올라갔다. 강이슬의 첫 4강 플레이오프는 그렇게 끝이 났다.
4강 플레이오프는 처음이었습니다.
기록은 삭제됐지만, 플레이오프를 뛰어보기는 했어요. 다만, 그 때는 막내급이어서 부담 없이 신나게 뛰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어요. 책임감과 부담감이 컸어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죠. 그래서 긴장을 했던 것 같아요.
두 번째 경기는 조금 달랐습니다.
첫 경기를 망치고 나니, 2차전은 오히려 편했어요. 그렇지만 플레이오프 내내 슛이 들어가지 않았죠.
그래도 던져야 하는 입장이었어요. 제가 실패해도, 동료들이 잡아줄 거라는 믿음도 컸고요. 또, 동료들의 집중력이 플레이오프 때 올라갔어요. 특히, (김)소담 언니가 그랬어요. 플레이오프 후에 소담 언니의 팬이 될 정도로요.
왜요?
원래 잘하는 선수였지만, 플레이오프 때 정말 다른 선수가 된 것 같아요. 정규리그와는 차원이 다른 선수가 됐죠. 너무 멋있더라고요. 물론, 모든 선수들이 다 잘해줬지만, 소담 언니가 그렇게 해줬기 때문에, 저희가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챔피언 결정전 상대는 우리은행이었습니다. 상대 전적 3승 3패의 우리은행을 상대하는 건 부담이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챔피언 결정전에 돌입하고 나서, 큰 긴장감은 들지 않았어요. 챔피언 결정전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정규리그 같은 느낌이 들었죠.
다만, 우리은행은 강한 팀이에요. 저희 팀과 라이벌 구도를 구축한 팀이기도 하고요. 농구를 알고 하는 베테랑 언니들이 많고, 위성우 감독님께서는 여자농구를 워낙 잘 아는 분이세요. 그래서 저희 팀원들의 집중력이 떨어진다면, 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들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KB스타즈는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리은행을 만났다. 정규리그에서 상대 전적 3승 3패로 호각을 이뤘다. 아무리 압도적인 KB스타즈라고 해도, 챔피언 결정전이 쉽지 않았던 이유.
그러나 KB스타즈는 챔피언 결정전마저 상대를 압도했다. 3전 전승. 1~3차전까지의 경기당 득실 마진은 +15였다. 2차전(80-73)을 제외한 두 경기 모두 두 자리 점수 차의 승리를 거뒀다.
KB스타즈는 2018~2019 시즌 이후 3년 만에 통합 우승을 해냈다. V2. 그리고 강이슬은 데뷔 후 처음으로 통합 우승을 경험했다. 통합 우승을 확정한 이후, 한참을 울었다. 데뷔 후부터 이적까지 겪었던 모든 과정들이 강이슬의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1차전을 78-58로 완승했습니다. 그렇지만 강이슬 선수는 플레이오프 1차전처럼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강이슬의 챔피언 결정전 1차전 기록은 14점 4어시스트 3리바운드 1스틸이었다. 3점슛 성공률은 20%에 불과했다)
플레이오프 1차전 때만 해도,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그렇지만 챔피언 결정전 1차전 때는 마음을 편하게 먹은 것 같아요. 기록은 비슷했지만, 그런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또, 우리 팀의 집중력이 얼마나 높은지 잘 알고 있었어요. 우리 팀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제가 몸으로 느낀 것 같아요. 제가 조금 못하더라도, 팀은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죠. 그래서 조급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2차전은 접전이었습니다. 그리고 강이슬 선수의 자유투 유도가 인상적이었는데요.
(강이슬은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서 13점을 넣었다. 그 중 8점이 자유투로 얻은 득점)
자유투를 많이 넣었다고 하지만, 이전 경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슛이 너무 들어가지 않아서, 저 스스로는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이 정도의 경기력을 보여주려고 챔프전에 온 게 아닌데... 팀이 이긴 건 너무 좋지만, 저 스스로에게는 불만이 컸어요. 화도 많이 났고요.
그래서였을까요? 3차전에서는 3점슛 5개를 포함해, 32점을 넣었습니다.
3차전 들어가기 전부터, ‘난 오늘 무조건 이길 거야. 오늘 무조건 끝낼 거야’라는 마음뿐이었어요. 슛이 들어가든 들어가지 않든, ‘내가 왜 여기 왔는지 증명하겠다’는 생각만 했어요. 그래서 더 적극적이었고, 그게 좋은 결과로 나왔다고 생각해요.
데뷔 첫 통합 우승이 확정된 후, 많은 눈물을 보였습니다.
팀 동료들이 놀리더라고요.(웃음) 아마 제가 첫 우승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단순히 첫 우승 때문은 아니었어요. 만약 그랬다면, 그렇게 북받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데뷔 후 10년 동안 개인 기록은 좋았어요. 그렇지만 팀 성적이 좋지 않았어요.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느꼈죠. 저도 모르게 마음고생을 많이 했어요.
팀 성적과 여러 요소들 때문에, 이적을 선택했어요. 이적 과정도 힘들었고, 새로운 팀에서의 첫 시즌 역시 쉽지 않았어요. 시즌 내내 품었던 부담감과 걱정들이 머리 속을 지나갔고, 그래서 우승 후에 북받쳤던 것 같아요.
사실 경기 종료 10초 전부터 눈물이 났어요. 그런데 경기 끝나기 전에 우는 건 경기를 치르는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선수의 도리에도 어긋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꾹꾹 참았는데, 버저 울리자마자 터졌던 것 같아요. 긴장이 터지면서, 완전히 무장 해제가 됐죠. 그 때서야 ‘해냈다’고 생각했어요.

강이슬은 4월 14일 데뷔 첫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틀 밖에 쉬지 못했다. 우승 후 3일 만에 미국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떠난 이유. WNBA 워싱턴 미스틱스의 트레이닝 캠프에 초청받았기 때문이다. WNBA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WNBA에 입성하지 못할 확률도 높다. 하지만 세계 최고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 그렇기 때문에, 강이슬은 ‘도전’이라는 단어 하나로 벅찬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 이번 미국행을 남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미국으로 떠납니다.
미국으로 가겠다고 마음먹은 건 굉장히 오래 됐어요. 5년 정도 됐을 거예요. 그러다가 3년 전에 초청을 받았어요. 그 때만 해도, 미국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이래저래 3년이 흘렀고, 미국이 더 간절해졌어요. 또, 에이전트께서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저한테 유리한 조건을 조금이라도 더 만들어주셨고, 제가 조금이라도 더 뛸 수 있는 팀을 알아봐주셨어요.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이번에 미국을 간다면, 꼭 정규 엔트리에 들고 싶어요.
이번 미국행은 강이슬 선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WNBA에 진출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불확실해요. 또, 한국에서는 센터 자원들만 WNBA에 진출했을 뿐, 스윙맨들은 진출한 사례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WNBA에 진출하는 것 역시 바위에 계란치기와 같아요. 가능성이 낮죠.
그렇지만 도전해보고 싶어요. WNBA라는 벽이 높다고는 하지만, 그 벽을 깨보고 싶어요. 또, 제가 미국이라는 벽을 한 번이라도 두드린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그 벽을 두드려보지 않을까요?
이번 캠프에서는 어떤 걸 보여주고 싶어요?
워싱턴이 워낙 3점을 좋아하는 팀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저를 추천했다고 생각해요. 제 장점을 최대한 극대화하고, ‘강이슬은 코트에 들어가면 3점 하나는 넣어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만약 WNBA 경기를 뛴다면 어떨 것 같아요?
WNBA 엔트리에 드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박)지수를 정말 리스펙트해요. 경기에 뛰지 못해도 좋으니, 벤치라도 앉았으면 좋겠어요. 어렵겠지만 만약 WNBA에 뛴다면, ‘내가 정말 성공했구나’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웃음) 또, 선수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이뤘다고 생각할 것 같고요.
사진 제공 = WKBL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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