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홍경기, 대구의 봄에 투혼을 더한 남자

손동환 기자 / 기사승인 : 2022-06-03 1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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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5월호에 게재됐다. 인터뷰는 4월 27일 오후 2시에 진행됐다.(바스켓코리아 웹진 1년 구매 링크,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2년 5월호 단독 구매 링크)
잊혀질 수도 있었다. 사라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버티고 버틴 끝에, 누군가의 뇌리에 자신의 이름을 깊이 새겼다.
그리고 2021~2022 시즌에 자신의 모든 걸 보여줬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경기력을 선보였다. 비록 소속 팀은 4강 앞에서 좌절했지만, 그 선수의 투지와 집념은 빛이 났다. 대구 한국가스공사 홍경기의 이야기다.

洪世龍
홍경기를 학창 시절부터 본 이들이라면, 홍경기보다 홍세용이라는 이름이 익숙하다. 개명 전 이름이 홍세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파트는 ‘홍세용’이라는 이름을 쓰려고 한다.
홍세용은 군산고와 고려대 시절 뛰어난 슈터로 평가받았다. 키는 작지만, 슈팅의 폭발력과 정교함만큼은 일품이라는 평가였다.
그러나 홍세용이 나가야 했던 2011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는 초호화 무대였다. 오세근(안양 KGC인삼공사)과 김선형(서울 SK), 최진수(울산 현대모비스) 등 쟁쟁한 선수들이 많이 참가했기 때문이다.
홍세용의 지명 순위가 늦었던 이유였다. 지명 후에도 자기 가치를 보여주지 못했다. 농구공을 어쩔 수 없이 내려놓아야 했다. 그리고 기나긴 공백기가 홍세용을 찾아왔다.

2011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20순위로 안양 KGC인삼공사에 입단했습니다.
3학년 때 부상으로 1년을 쉬었어요. 4학년 때 복귀를 했지만, 대학리그 성적이 좋지 않았어요. 학교 상황도 좋지 않았고요. 불안함이 컸죠.
그래도 개인 성적은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조금은 기대를 했죠.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순위보다 많이 뒤처졌더라고요. 물론, 프로에 갔다는 생각에 안도를 했지만, 실망감도 있었어요.
무엇보다 정신이 너무 없었어요. 어안도 벙벙했고요. 사실 안양에서 제 이름을 불러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드래프트 직후 원주 동부(현 원주 DB)로 트레이드됐습니다. 하지만 주어진 기회는 많지 않았는데요.
(홍세용은 2011~2012 시즌 정규리그 16경기에 나섰다. 평균 출전 시간은 2분 28초였다)
기회는 많이 얻지 못했지만, 잘하는 형들의 플레이를 많이 봤어요. 농구를 많이 배웠고, 농구를 많이 알 수 있었죠. 팀 성적도 좋았기 때문에, 신인이었음에도 재미있게 보냈던 것 같아요.
데뷔 시즌 후 3년의 공백이 있었습니다.
첫 시즌을 마치고, 군대를 갔습니다. 농구를 많이 생각했고, 코트에 돌아가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동부가 생각한 선수 구성에 저는 없었어요. 아쉽고 섭섭했죠.
하지만 제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어요. 아쉬움을 털어내고, 다른 일을 시작했죠. 1년 동안 아는 선배의 농구 교실에서 일을 했어요. 그 때만 해도, 농구가 너무 보기 싫었어요. 코트로 돌아가겠다는 꿈 역시 접었고요.
2015~2016 시즌에는 부산 KT(현 수원 KT)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또 공백기가 있었습니다.
농구 교실에서 일을 하다가, KT에서 테스트를 요청했습니다. 저는 2015~2016 시즌 중반에 테스트를 받았고, KT로 입단했죠. 그저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감사했어요.
하지만 3년을 쉬다 보니, 몸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부랴부랴 운동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또, 몸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뛸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제가 프로에서 경기를 많이 뛴 게 아니었고, 공백기도 있었거든요.
결국 재계약이 안 됐고,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어요. 그 때 ‘놀레벤트 이글스’라는 실업 팀이 창단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대학교 후배한테 박성근 감독님의 연락처를 받은 후, 박성근 감독님한테 전화를 드리고 찾아뵀어요. 놀레벤트에서 운동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죠.

洪炅基

홍세용이라는 이름으로 지내던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홍세용은 언젠가부터 ‘홍경기’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 나섰다.
익숙치 않은 이름. 그러나 이름을 바꾼 후, 그 사람의 존재가 더 커졌다. 홍세용보다 홍경기라는 이름이 많은 이들에게 더 친숙해졌다. 오히려 홍세용이 아닌, 홍경기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름을 바꾼 홍경기는 다시 프로 구단으로 돌아왔다. 홍경기의 행선지는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 그 곳에서 홍경기는 빛이 났다. 자신의 이름처럼 말이다.(‘빛날 경’ 그리고 ‘터 기’가 홍경기의 한자 이름이다)

뜬금없지만, ‘홍경기’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쓰신 건가요?
2016년 전국체전에서 연세대를 이기고 4강에 갔어요. 농구대잔치를 나가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 고민을 하다가 작명소로 가셨다고 하더라고요. 작명소에서는 “세용이라는 이름은 맞지 않다. ‘빛날 경’ 그리고 ‘터 기’, 경기를 추천한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새로운 이름이 적힌 쪽지가 제 가족 채팅방에 올라왔어요. 그 때만 해도, 저는 제 이름이 달라졌다는 걸 몰랐어요. 그래서 제가 “홍경기가 누구야?”라고 했어요.(웃음) 그 때 어머니가 전화를 주셨고, 저한테 “경기야”라고 부르셨어요. 저는 “무슨 말이야?”라고 되물었죠.(웃음) 제가 그렇게 반응하니, 어머니가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2016년 10월부터 그 이름으로 살게 됐죠. 제 이름이 법적으로 바뀐 건 두 달 후였고요.
2017~2018 시즌부터 인천 전자랜드에 입단했습니다.
놀레벤트 소속으로 몽골프로리그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동국대 총감독님이셨던 이준복 스님께서 동행하셨어요. 그 분께서 제 플레이를 보고, 실력이 너무 아깝다고 여기셨던 것 같아요. 저한테 도움을 주겠다고 하셨죠.
그런데 저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내가 과연 프로를 갈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었죠. 그래서 이준복 감독님한테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정말 전자랜드에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그리고 전자랜드에서 연락을 받았죠.
전자랜드 입단 초만 해도, 기회를 받지 못했습니다.
적은 기회 때문에, 마음고생한 건 아니었어요. 다만, 계약 기간이 길지 않다는 게 저를 힘들게 했어요. 그렇지만 전자랜드에서 저를 좋게 봐주셔서, 제 계약 기간이 계속 늘어났어요. 그러다 보니 기회가 조금씩 늘어났고, 지금까지 뛸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2019~2020 시즌 때 출전 시간이 급격히 늘었습니다.
(홍경기는 2019~2020 시즌 26경기에서 평균 11분 30초를 뛰었다. 데뷔 직후부터 2018~2019 시즌까지 뛰었던 경기는 28경기. 홍경기의 입지는 그만큼 달라졌다)

정규리그에는 많이 못 나갔지만, D리그를 꾸준히 뛰었습니다. 그리고 감독님께서 2019년 비시즌 때 출전 기회를 많이 주셨어요. 연습 경기에 많이 나설 수 있도록 해주셨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기회를 잘 못 잡았어요.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고, 그 자신감을 어떻게 찾아야할지도 몰랐죠.
그러다가 어느 순간 ‘D리그를 씹어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때부터 D리그를 죽어라 뛰었고, 개인 성적이 좋게 나왔어요. 그리고 정규리그를 위해 준비도 많이 했고요. 감독님께서 그걸 보시더니, 저에게 기회를 다시 한 번 주셨어요. 그렇게 기회를 받았고, 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시기도 생겼어요. 그래서 출전 시간이 길어졌던 것 같아요.
전자랜드가 2020~2021 시즌 종료 후 ‘구단 운영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2017년부터 4년 동안 전자랜드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이었죠. 그렇게 함께 했던 전자랜드가 없어진다고 하니, 너무 섭섭했어요. 하지만 더 좋은 팀으로 인수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어요.
그런 것도 있었지만, 전자랜드라는 이름으로 마무리를 잘하고 싶었어요. 다들 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다짐했죠. 비록 전자랜드가 4강 5차전에서 지기는 했지만, 팬들한테 마지막까지 좋은 인상을 남겼다고 생각해요. 그런 상태에서 매각이 됐다는 게 만족스러웠죠. 즐겁고 행복하게 마지막 시즌을 치른 것 같아요.

대구 그리고 한국가스공사
홍경기를 포함한 전자랜드 선수들은 2021년 6월 새로운 팀과 만났다. 새로운 모기업은 한국가스공사였다.
한국가스공사의 본사는 대구에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대구를 새로운 연고지로 선택했다. 인천에 터를 잡고 있던 선수들 모두 대구로 내려와야 했다.
하지만 처음이라 완벽할 수 없었다. 게다가 한국가스공사와 대구광역시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가 계속됐다. 선수들이 연습할 체육관부터 확정되지 않았다. 프로 선수이기에 환경을 탓하면 안 된다고는 하나, 사람이기에 외부 환경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어느 정도의 환경이 구축됐다. 그리고 정점이 찍혔다.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라는 신생 구단이 마침내 창단됐다. 모든 게 확정되자, 홍경기 또한 설레는 기분으로 새로운 시즌을 준비할 수 있었다.

새로운 모기업이 한국가스공사로 결정됐습니다.
시즌 중반부터 뜬구름 잡는 소문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시즌이 끝나고도, 선수단을 운영할 기업은 결정되지 않았어요. 다들 걱정을 많이 했죠.
그리고 한국가스공사가 농구단을 인수한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듣고, ‘좋은 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죠. 또, 좋은 조건에서 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했고요.
비시즌 초반만 해도, 훈련 여건이 완벽히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준비하는데 차질이 있었을 것 같아요.
한국가스공사가 농구단을 인수했을 때만 해도, 저희는 인천에서 지냈습니다. 대구로 가는 것도 확정되지 않았어요. 만약 대구로 내려가게 되면 살 집을 구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하기도 했죠.
막상 대구로 내려갔는데, 연습 체육관과 웨이트 트레이닝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았어요. 숙소라도 있다면 쉬는 시간을 좀 더 늘릴 수 있었을 건데, 확정된 체육관 없이 ‘운동-식사-집-운동-식사-집’이라는 패턴을 소화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운동에만 집중해도 될까말까인데, 외적인 걸 생각해야 해서 힘이 들었죠.
그래도 선수들 모두 운동에 최대한 집중했어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스킬 트레이닝이나 팀 훈련 등 제가 할 수 있는 운동에 집중했죠.
그리고 구단에서 정말 많이 고생하셨어요. 선수들의 운동 여건을 위해, 계속 뛰어다니셨어요. 그러면서 훈련 여건이 점점 구축됐죠. 너무 감사했어요.
마침내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가 공식 창단됐습니다.
전자랜드 때는 주황색 유니폼을 입고 뛰었습니다. 그리고 한국가스공사 창단식 때, 빨간 유니폼을 입었어요.
처음에는 전자랜드의 기억 때문인지, 빨간색이 주황색으로 보였어요.(웃음) 그런데 제가 고려대를 나와서 그런지(고려대의 유니폼은 빨간색이다), 뭔가 새롭더라고요. 대학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또, 창단식을 해보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창단식 자체가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한국가스공사라는 이름으로 첫 시즌을 치른다는 설렘도 컸고요.

창단부터 1년, 어느 때보다 길었을 1년
한국가스공사는 정말 어렵게 첫 시즌을 시작했다. 과정 또한 어려웠다. 정효근이 2021년 비시즌 중 전방십자인대 파열로 시즌 아웃됐고, 국내 주축 선수와 외국 선수 모두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지는 날이 많았다.
그러나 한국가스공사 선수단은 전자랜드 시절처럼 투지와 집념을 보여줬다. 플레이오프 마지노선에서 밀려날 뻔했지만, 정규리그 후반부에 전혀 다른 경기력을 보여줬다. 결국 플레이오프행 막차를 탔다. 창단 첫 플레이오프 진출.
하지만 한국가스공사의 창단 첫 플레이오프는 너무 빨리 끝났다. 안양 KGC인삼공사에 3전 전패. 그러나 대구 팬들한테 15년 만에 플레이오프를 보여줬다는 것. 거기에 의미를 뒀다. 한국가스공사 그리고 홍경기의 창단 첫 시즌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한국가스공사는 6위를 위해 마지막까지 싸웠고, 홍경기 선수는 데뷔 후 커리어 하이를 작성했습니다.
(홍경기는 2021~2022 시즌 정규리그 37경기 출전에 평균 13분 25초 동안 5.3점을 기록했다. 경기당 0.9개의 3점슛 성공애 42.0%의 3점슛 성공률을 보여줬다)

정규리그 초반에는 엔트리에 거의 들지 못했어요. 마음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정)효근이가 시즌 아웃됐고, (두)경민이가 무릎 부상 때문에 엔트리에서 제외됐어요. (차)바위도 시즌 중반에 손등 부상을 당했고요.
그런 상황들이 있었지만, 저도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강혁 코치님과 시간 날 때마다 수비 연습을 했고, D리그를 통해 경기 감각과 경기 체력도 쌓았어요.
그러다가 2라운드 DB전 때 (허)웅이를 전담 수비했어요. 웅이 수비를 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웃음), 팀에 피해를 주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 후부터 기회를 얻었던 것 같아요.(허웅은 2라운드 한국가스공사전에서 11점에 3점슛 성공률 12.5%에 그쳤다)
한국가스공사는 6강 3경기를 모두 졌지만, 홍경기 선수는 6강 시리즈 내내 두 자리 득점을 해냈습니다. 특히, 3차전에서는 34분 27초 출전에 19점을 퍼부었고요.
(홍경기는 1차전에서 18분 53초 동안 3점 2개를 포함해 10점을 넣었다. 2차전에서는 25분 9초 동안 3점 2개를 포함해 11점을 넣었다. 3차전에서는 34분 27초 동안 3점 3개를 포함해, 19점 5리바운드 4어시스트로 맹활약했다)

1차전에는 (차)바위가 다쳤고, 2차전에는 (두)경민이가 이탈했어요. 3차전에는 (김)낙현이까지 다쳤고요. 그래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죽어라 해야 된다고 생각했죠.
또, 6라운드부터 컨디션이 너무 좋았어요. 과장을 조금 보태면, 20대 때 몸과 비슷하다고 느껴졌어요. 이렇게 좋아도 되나 싶을 정도였죠.(웃음)
제가 해야 할 역할은 전성현을 전담 수비하는 거였어요.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잘 막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어요. 이렇게 자신 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였죠.(웃음) 그리고 공격할 때는 자신 있게 던지려고 했어요. 그런 것들이 개인 기록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팀적으로는 너무 아쉬웠어요. 플레이오프에서 한 번도 못 이겼다는 게...
3차전 끝나고 쥐가 났습니다.
대구에서 15년 만에 봄 농구를 했습니다. 한 경기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어요. 3차전만큼은 무조건 이기고 싶었어요.
3쿼터까지 대등하게 경기했습니다. 조금만 더 힘내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겠다 싶었죠. 하지만 많이 버겁더라고요.
사실 4쿼터 중반에 쥐가 한 번 났어요.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제가 끝까지 뛰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최대한 빨리 조치를 취했죠. 그래도 마지막에 다시 쥐가 올라오더라고요. 그렇지만 마무리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참고 뛰었던 것 같아요.
2021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너무 길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정말 너무 길었어요.(웃음) 너무 다사다난했고, 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힘들었던 시즌이라고 생각해요.
고참 축에 속하다 보니, 팀에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후배들을 이끌어가고 싶은 생각도 컸고, 처음으로 주장을 맡은 (차)바위에게 도움도 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러지 못했어요. 너무 아쉽고, 너무 미안했어요.

사진 제공 = KBL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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