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숱한 변화와 마주했던 농구인, 구본근 현대모비스 사무국장

손동환 기자 / 기사승인 : 2022-06-15 10: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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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2년 5월호에 게재됐다. 인터뷰는 4월 22일 오후 1시에 진행됐다.(바스켓코리아 웹진 1년 정기 구독 링크,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2년 5월호 구매 링크)

누구에게나 변화는 찾아온다.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농구 선수였던 구본근도 마찬가지다. 10년 넘게 농구공을 쥐었지만, 평생 코트를 뛸 수는 없었다.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후, 곧바로 제2의 인생을 살았다.
제2의 인생을 살기 시작한 구본근은 너무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그 변화를 너무 잘 견뎠다. 변화를 성공적으로 마친 구본근은 현재 한 프로농구단의 사무국을 총괄하는 사람이 됐다. 구본근이 갖고 있는 현 직함은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프로농구단 사무국장’이다.

농구대잔치 세대
한국 농구의 중흥기는 1990년대였다. 농구대잔치가 가장 성행했던 시기였다. 그 때를 경험했던 선수들 대부분이 연예인 이상의 인기를 누렸다.
1994년 연세대학교에 입학한 구본근도 그랬다. 신입생 때는 서장훈의 뒤를 받쳤지만, 그 후에는 김택훈과 함께 더블 포스트를 형성했다. 1년 후배인 조상현(현 대한민국 남자농구 대표팀 감독)과 조동현(현 울산 현대모비스 코치), 황성인 등과 함께 연세대에 또 한 번 중흥기를 안겼다.
하지만 구본근이 4학년이 되던 1997년, KBL이 창설됐다. 한국에도 프로농구가 생겼다. 구본근은 실업 팀이 아닌 프로 팀으로 입단했다. KBL에서 최초로 시행한 1998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0순위로 지명, 대전 현대(현 전주 KCC)에 입단했다.

연세대 시절부터 간단히 돌아봐주신다면?
제가 대전고등학교를 나왔어요. 대전고 3학년 때 연세대 농구부에 이미 합류했죠. 그 때부터 신입생 자격으로 농구대잔치를 뛰었어요.
최희암 감독님께서 처음에는 저를 베스트 멤버에 포함시켰습니다. 전반전과 후반전 모두 뛰게 하셨죠. 그런데 어느 순간, 출전 시간이 줄더라고요. 전반전이나 후반전만 뛰었죠.
열심히 뛰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기회는 많지 않았어요. 그리고 최희암 감독님과 면담을 했어요. 최희암 감독님께서 “기회를 주는데, 기대에 왜 부응하지 못하냐?”고 하셨어요.
면담 후, 혼자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삭발을 했죠. 선배님들께서 “왜 삭발했어? 삭발했는데도 못하면 쪽팔리는 거야(웃음)”라고 농담을 하셨지만, 저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운 좋게도 그 후에 많은 경기를 뛰었죠.
1997년 KBL이 출범됐습니다. ‘선수 구본근’은 1998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0순위로 현대에 입단했습니다.
저희가 KBL 첫 드래프트 세대였습니다. 저희가 드래프트를 할 때만 해도, 지금처럼 트라이아웃을 하지 않았어요. 지명 순번에 따라, 금액이 다르다는 것만 알고 있었고요. 저는 그 때 참가도 안했고, “10순위로 현대에 입단했다”는 전화 통보만 받았어요.
그리고 나서, 당시 신선우 감독님(현 대구 한국가스공사 총감독)한테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한약을 주시더라고요. 그 후에 “왼쪽 허벅지가 오른쪽 허벅지보다 1cm라도 두꺼워지면, 경기를 뛰게 해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사실 대학교 다닐 때 무릎 수술을 2번 했고, 수술한 쪽의 허벅지 근육이 많이 부족했거든요.
그래서 2년 동안 숙소에서 나가지를 않았어요. 매일 운동만 했죠. 그 때 룸메이트였던 (추)승균이형(현 SPOTV 해설위원)이 “바람 좀 쐬라. 병 걸리겠다”고 했어요. 승균이형이 걱정을 많이 했는지, 숙소(용인 마북동)에서 서울로 나갔다오라고 택시도 불러줄 정도였죠. 그런데도 저는 경기를 많이 못 뛰었어요.(웃음)
 

만 27세 코치
구본근은 대학 시절 소위 전도유망한 센터였다. 농구대잔치가 유지된다면, ‘선수 구본근’은 많은 팬들에게 오랜 시간 인식될 수 있었다.
그러나 KBL 10개 구단 모두 2명의 외국 선수를 부를 수 있었다. 대부분의 구단이 센터 유형의 외국 선수를 영입했다. 구본근이 설 자리는 많지 않았다.
‘선수 구본근’은 KBL에서 존재감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1998~1999 시즌에는 10경기 출전에 평균 2분 1초를 소화했고, 1999~2000 시즌에는 21경기 출전에 평균 2분 51초를 뛰었다. 2000~2001 시즌에는 28경기 동안 평균 3분 57초 출전.
출전 기회와 출전 시간이 점점 늘었다. 그러나 구본근의 입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2001~2002 시즌 19경기 평균 2분 40초를 소화한 후, KBL에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데뷔 4시즌 만에 은퇴를 했다.
그렇지만 적은 출전 기회 때문에 은퇴한 건 아니었다. 새로운 직책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직급은 꽤나 특별했다. 그 직급은 바로 ‘만 27세 코치’였다.

KBL에서는 ‘선수 구본근’을 자주 볼 수 없었습니다.
대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외국 선수가 없었습니다. 다들 붙어볼만한 상대였죠. 그런데 프로에 오니까, 외국 선수들의 하드웨어가 너무 좋았어요. 제가 아무리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해도, (외국 선수와 붙으면) 벽을 미는 느낌이었어요. 거기서부터 쉽지 않았죠. 그래서 가비지 타임을 소화하거나, 외국 선수의 파울 트러블 혹은 부상일 때만 뛰었던 걸로 기억해요.
소속 팀인 대전 현대는 1998~1999 시즌 2연패를 달성했습니다.
멤버가 워낙 좋았어요. 벤치에 앉아있으면, 진다는 생각을 안 했어요. 2~30점을 지고 있다고 해도, 이긴다고 생각할 정도였죠. 그만큼 현대가 당시에는 강팀이었던 것 같아요.
대전 현대가 2001~2002 시즌부터 전주 KCC로 연고지와 팀명 모두 바꿨습니다. 고향 팀에서 못 뛴다는 아쉬움이 컸을 것 같아요.
대전이 연고지라고 해도, 제가 집을 오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연전이 있거나 대전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있을 때, 잠깐 가족들 얼굴을 보는 정도였죠.
물론, 변화는 있었어요. 같은 현대 계열이지만, 모기업은 엄연히 달라졌거든요. 사무국 인원도 그랬고, 홈 코트도 대전에서 전주로 옮겼잖아요. 분명 달라졌다는 느낌은 받은 것 같아요.
2001~2002 시즌 후 기록이 없습니다.
시즌 끝나고, KCC와 모비스가 3대3 트레이드를 한 걸로 기억해요. 제가 있던 KCC가 저와 김태진(현 명지대 감독), 이상영(현 안양고 코치)을 모비스로 보냈고, 모비스에서는 고(故) 표명일 코치와 김동언, 송태영을 KCC로 보냈을 거예요.
그 때 최희암 감독님께서 모비스 감독으로 부임하셨습니다. “기회를 줄 테니, 열심히 해봐”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시즌을 준비하다가, 박승일 코치님께서 저한테 출력물을 하나 주셨어요. “나 루게릭병에 걸렸어. 코치를 못할 것 같아”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일이 있고 나서, 최희암 감독님이 저한테 “코치를 해봐라”고 하셨고, 저는 코치를 하게 됐어요.
너무 웃긴 일이었어요. 날고 기는 선수가 많고 제 위로 7명의 선배님이 계신데, 고작 27살짜리가 코치를 한다는 게... 다행히 오성식 선배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코치와 선수의 위계 질서를 확립할 수 있도록, 저를 많이 배려해주셨어요.

매니저 그리고 사무국
구본근은 만 27세에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현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의 코치가 됐다. 그러나 위에서 이야기했듯, 상황이 좋지 않았다. ‘코치’라는 직함을 오랜 시간 하는 건 어려웠다.
그래서 모비스는 구본근을 선수단 매니저로 보직 변경했다. 그리고 구본근은 9년의 시간 동안 모비스 선수들과 동고동락했다. 매니저를 하는 동안, 모비스는 2번의 통합 우승(2006~2007, 2009~2010)이라는 값진 결과물도 만들었다.
9년 동안 매니저를 한 후, 보직을 옮겼다. 사무국 직원. 이 때까지 해왔던 경험과 너무 달랐다. 모든 걸 처음부터 배워야 했고, 모든 걸 처음부터 공부해야 했다. 그러나 ‘시작’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동시에, 자기 앞에 놓인 과제들을 해내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코치를 하다가, 매니저로 보직 이동했습니다.
제가 코치로 첫 시즌을 치른 후, 많은 말들이 돌았습니다. 핵심은 “코치가 너무 어린 거 아니냐?”였죠. 최희암 감독님께서도 그걸 알고 계셨고, 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매니저를 하면서 공부를 해라. 나이가 어느 정도 들었을 때, 코치를 하면 어떻겠냐?”고 하셨죠. 그렇게 매니저를 시작했습니다.
선수 시절 때 봤던 매니저는 어땠나요?
트레이너 파트와 통역, 버스 기사님 모두 전문 인력입니다. 하지만 매니저는 아직까지 전문 직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 나라에서는 보통 은퇴하는 선수들이 많이 하는 직업이니까요.
사무국은 어떻게 가신 건가요?
제가 선수였을 때만 해도, 매니저가 고참이면 신입 선수들을 많이 시켰어요. 자기 일을 하라고 월급을 주는 건데, 자기 일을 후배들한테 시키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후배들을 시키고 있더라고요. 스스로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고, 대전에 농구교실을 차렸어요. 농구교실을 차린 초창기에는 주말에만 농구 교실을 했어요. 매니저 업무를 쉬는 날에 농구 교실을 운영했고요.
그리고 아마 2009~2010 시즌 통합 우승 후였을 겁니다. 저희가 우승을 하고 나서, 유재학 감독님께서 피로연 때 그룹 부회장님한테 부탁을 드렸어요. 그 자리에서 “구본근 매니저를 사무국으로 발령해주시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저하고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야기하셔서...
기분이 좋지 않았던 이유는 어떤 거였나요?
사실 제가 선수 생활할 때, 코치가 너무 싫었어요. 애들을 너무 뭐라고 하고, 그 때는 욕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운동을 관둬도 코치를 안 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27살 때 어쩔 수 없이 코치를 했던 거죠.
코치를 하는 1년 동안, 하루에 3시간 밖에 못 잤어요. 비디오 테이프를 편집하고, 자료를 분석하느라 그랬죠. 형들이 저한테 “얼굴이 왜 이렇게 익었어?”라고 할 정도였죠.
그런데 하다 보니,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코치를 더 오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유재학 감독님께서 처음 부임하고 난 후에 “나중에 돈 모아서, 해외 유학을 해보고 싶습니다. 코치 공부를 해보고 싶어요”라고 말씀드렸고, 감독님께서는 “나갈 필요가 뭐가 있어? 나한테 배워”라고 대답하셨죠. 그렇게 9년을 보냈는데, 감독님께서 “사무국으로 발령을 내달라”는 부탁을 하셨던 거죠. 그래서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코치와 매니저는 선수의 연장선상이라고 하지만, 사무국 직원은 그렇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너무나 달랐어요. 뭘 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그래서 일단 ‘기본적인 것부터라고 하자’고 다짐했어요. 처음으로 든 생각은 ‘출근만큼은 빨리 하자’였고, 회사까지 걸어서 10~15분 정도의 거리에 집을 얻었죠.
저 개인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도 있었어요. 사무국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출근을 안하더라고요.(웃음) 선수단에서는 일요일 저녁 말고는 거의 숙소에 있었고, 그마저도 감독님께서 저녁을 먹자고 하면 숙소 밖으로 나가지 못했거든요. 그런 게 저한테 신세계로 다가온 것 같아요.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인수인계를 30분 정도 밖에 받지 못했고, 저 스스로 공부도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토요일에도 회사에 출근했고, 기존에 작성된 보고서와 품위서 등 여러 서류들을 살펴봤어요. 정말 아무 것도 몰랐거든요.
그런데 제가 사무국에 오자마자 예산 업무를 맡았어요. 사무국에서 관리하는 돈은 어마어마해서, 걱정이 너무 컸어요. 이유도 정말 말도 안 됐어요. “너처럼 큰 애가 가야, (재정적인 걸로 부탁하는 게 있을 때) 이야기하는 걸 다 들어준다”였죠.(웃음)
무엇보다 저는 사무 프로그램을 한 번도 다뤄보지 않았습니다. 엑셀을 몰라서 계산기를 일일이 두드릴 정도였죠. 필요성을 알고 나서는, 문서 프로그램이나 PPT를 잘 다루기 위해 밤을 새서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에너지 음료를 그 때 처음 먹어봤어요. 또, 잠을 깨야 하니까. 연필심이 제 머리로 오게끔 세워놨어요. 제가 졸 때, 연필심이 제 머리를 찍도록 조치한 거였죠. 그런데도 졸음에는 장사 없더라고요.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제가 사무국의 일원으로 인정받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또 다른 변화 그리고 다짐
구본근은 2019~2020 시즌 개막 직전 현대모비스의 사무국장이 됐다. 사무국의 업무를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다.
선수와 코치, 매니저를 거쳐, 사무국장에 올랐다. 어느 자리에서든 자기 역할을 해냈기에, 넓은 스펙트럼 그리고 극단적(?)인 변화들을 감당할 수 있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사무국장은 많은 걸 책임지고 많은 걸 총괄하는 자리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보다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또, 이전보다 많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업무의 시야와 범위가 넓어졌다. 그러면서 한국 농구의 현실을 더 잘 알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농구를 누구보다 걱정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한국 농구를 위해, 한 발 더 뛰어야 한다고 말이다.

사무국장은 어떻게 맡으신 건가요?
2018~2019 시즌 종료 후에, 단장님께서 “구본근 과장이 이제는 사무국장을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하셨고, 전임 사무국장도 “너도 언젠가는 사무국장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언론 홍보를 해봐야 한다. 그게 너한테 도움이 된다”고 했어요.
그 때 저는 제 업무에 익숙해진 상태였어요. 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했고요. 게다가 당시 국장님과는 15년 동안 함께 했던 사이여서, 마음이 편했어요. 제가 굳이 사무국장을 해서, 많은 걸 책임지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못하겠다.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전임 국장님께서 2019~2020 시즌 개막 두 달 전에 다른 협회로 인사발령을 받았어요. 그 때도 저는 안 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단장님께서 전임 국장님과 저를 부르신 후 “너가 좋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너가 싫다고 해서 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사 문제가 그렇다. 난 이미 위에다가 너를 사무국장으로 발령해달라고 이야기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아직 윗분들에게 보고하는 게 많이 미숙하다. 그런 점은 많이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대답했어요. 그리고 보름 후에 사무국장으로 발령받았어요. 그렇게 사무국장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사무국장은 사무국의 업무를 모두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서 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2019~2020 시즌을 준비하는 와중에, 전임 국장님께서 다른 협회로 가셨습니다. 시즌을 준비하는데 너무 촉박했죠. 여기에 직원들 업무를 다 파악해야 하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2019년 12월에 대상포진이 생길 정도였죠.
병원에서는 “2주 동안 진통제를 맞아야 한다.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때 홈 5연전이 있었어요. 입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결국 진통제 맞으면서, 경기를 다 나갔죠.
물론, 단장님께서 사무국의 대표이긴 하시지만, 사무국장이 실무를 많이 책임져야 해요. 제가 했던 업무는 알지만, 제가 해보지 않았던 것도 총괄해야 했어요. 그런게 어려웠고, 그래서 저한테 과부하가 생겼던 것 같아요.
물론, 아직도 한참을 더 배워야 해요. 다른 국장님들한테 모르는 걸 여쭤보고, 공부도 계속하고 있어요. 특히, 문서 정리가 깔끔하지 않은 걸 보완해야 하고, 대외적인 업무도 잘 해내야 해요.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선수와 매니저, 코치와 사무국 직원, 사무국장까지 경험했습니다. 장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적어도 제가 경험했던 직종만큼은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시스템이 달라져도, 기본적인 건 크게 달라지지 않았거든요. 잠깐이기는 했지만, 코치가 하는 일도 어렴풋이 알고요.
그리고 스포츠단 직원들은 열정 없이 이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또, 예전의 환경과 지금의 환경은 많이 달라졌기에, 지금 일하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해요. 그게 ‘소통’의 시작이니까요.
‘구본근’을 추억으로 삼는 분들한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라는 사람을 추억하기보다, 옛날 농구를 추억하시는 분들이 저를 떠올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연세대 센터 구본근’이라면 더 그렇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농구 인기는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었어요. 시청률이나 마케팅 관련 지표 등 모든 수치가 그래요. 그건 저희가 반성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농구계에서 일하는 만큼은, 다시 한 번 농구대잔치 시절의 영광을 재현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차기 시즌 때는 더 많이 움직이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시즌을 위해 치열하게 준비할 모든 선수들에게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사진 = 김우석 기자(본문 1-4-5번째 사진),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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