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현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농구공을 처음 잡았다. 그리고 39살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선수 생활을 마친 후에는 원주 DB에서 전력분석원을 했고, 2019년부터 지금까지 휘문중학교 농구부 어시스턴트 코치를 맡고 있다.
농구와 함께 한 시간만 해도 32년이다. 농구와 평생을 함께 해왔고, 농구는 박지현에게 많은 깨달음을 줬다. 그래서 박지현은 “농구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라는 말을 전했다.

부산 동아고등학교와 중앙대학교를 졸업한 박지현은 2002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4순위로 대구 동양 오리온스(현 고양 데이원스포츠)에 입단했다. 패스 센스와 운영 능력을 겸비한 박지현은 김승현(전 해설위원)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자원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김승현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비집고 들어갈 곳이 없었다. 그리고 군 제대 직전 창원 LG로 트레이드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LG에서도 기회를 많이 얻지 못했다. 2008~2009 시즌 종료 후 원주 동부(현 원주 DB)로 트레이드됐다.
그렇지만 동부에서의 박지현은 완전 다른 선수였다. 김주성(현 원주 DB 코치)-윤호영 등 장신 자원과 시너지 효과를 냈다. 포인트가드로서의 역량도 업그레이드했다. 비록 우승 트로피는 한 번도 만지지 못했지만, 팀원들과 좋은 추억을 쌓았다. 그래서 “재미있게 농구했습니다”는 말을 기자에게 전했다.
오리온스 입단 후 LG 시절까지 잠재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아쉬움이 컸을 것 같은데요.
오리온스에 입단했을 때는, (김)승현이형이라는 큰 산이 있었습니다. 저 스스로도 부족한 점이 많았어요. 그렇지만 팀 성적이 좋았고, 배운 점도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군 제대 직전에 LG로 트레이드됐어요. 그 때도 기대를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부상으로 인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어요. 아쉬움이 컸죠.
2008~2009 시즌 종료 후 원주 동부(현 원주 DB)로 트레이드됐습니다.
우상이었던 강동희 감독님을 만났습니다. 패스 타이밍과 경기 운영 능력 등 가드가 지녀야 할 역량들을 많이 배웠어요. 또, 김주성이라는 좋은 빅맨이 있었습니다. (김)주성이가 있다 보니, 저희 팀 수비력이 워낙 좋았어요. 수비가 있었기 때문에, 경기력도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선수 박지현’은 동부산성을 움직이는 숨은 원동력이었습니다. 절친인 김주성(현 원주 DB 코치)과의 호흡도 돋보였고요.
주성이와는 고등학교부터 대학교 때까지 함께 했습니다. 서로를 워낙 잘 알고, 코트 밖에서도 농구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주성이는 너무 좋은 선수입니다. 키는 크지만 달릴 수 있고, 수비도 좋은 빅맨이에요. 블록슛과 도움수비 등 최후방에서 많은 걸 메워줬기 때문에, 저도 앞선부터 압박을 할 수 있었습니다. 주성이 덕분에, 공수 운영 모두 쉽게 할 수 있었어요.
그렇지만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지 못했습니다.
3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모두 놓쳤습니다. 은퇴 전에 우승 한 번 못한 게 너무 아쉽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했기 때문에, 챔피언 결정전도 경험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선수들과 호흡도 맞춘 것도 저에게는 행운이었어요. 결과는 아쉽지만, 재미있게 농구했습니다. 우승은 못했지만,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박지현은 데뷔 시즌(2002~2003)부터 2016~2017 시즌까지 통산 643경기를 소화했다. 경기당 23분 13초를 뛰었다. 개인 통산 4,019점 1.969어시스트 1.151리바운드에 745개의 스틸을 기록지에 남겼다. A급 가드는 아니었지만, 경쟁력 있는 가드였다.
모든 선수의 마지막이 그렇듯, 박지현도 마지막과 마주했다. 2016~2017 시즌 종료 후 정든 유니폼을 벗었다. 그렇지만 은퇴 후 새로운 직함을 받았다. 원주 DB의 전력분석원이었다.
전력분석원은 보통 컴퓨터와 마주한다. 경기 영상을 편집하고, 문서 작업을 통해 팀에 필요한 것을 보고한다. 선수 때처럼 농구를 마주하는 것은 똑같지만, 선수 때와는 완전히 다른 일과를 보냈다. 선수 출신 전력분석원들이 처음에 많이 힘들어하는 이유.
박지현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걸 새롭게 배웠다. 선수 때와는 다른 시각으로 농구를 봤다. 그렇지만 전력분석원을 맡았던 시간이 박지현에게는 큰 자산으로 다가왔다. 농구를 넓게 볼 수 있는 터닝 포인트였기 때문이다.
2016~2017 시즌 종료 후 은퇴했습니다.
2016~2017 시즌 개막 전부터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이도 많았고, 두경민과 허웅(현 전주 KCC)이라는 젊고 발전 가능성 높은 선수가 저희 팀에 있었거든요. 감독님도 바뀌시면서(김영만->이상범), 자연스럽게 은퇴를 결정한 것 같아요.
은퇴 후 곧바로 팀의 전력분석원이 됐습니다. 어떻게 제안을 받으신 건가요?
은퇴를 결정할 때, 구단에서 제의해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했어요. DB라는 팀에 애정이 많았고, DB에 헌신하고 싶은 마음도 컸거든요.
농구를 보는 시각이 선수 때와는 달랐을 것 같습니다.
상대 팀 공수 패턴 분석이나 저희 팀의 움직임을 리뷰하기 위해, 영상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또, 경기가 끝난 후, 일을 시작해야 하는 직업이에요. 선수 때는 쉽게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어렵더라고요. 그렇지만 사수였던 배길태 전 KT 코치님께서 많이 알려주셨고, 덕분에 쉽게 적응했습니다.
모든 걸 새롭게 배우셨습니다. 어렵지 않으셨나요?
선수 때는 컴퓨터를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전력분석원은 컴퓨터를 잘 다뤄야 합니다. 영상 작업과 문서 작업을 많이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모든 걸 처음부터 배웠습니다. 업무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컴퓨터를 배우는 건 어려웠던 것 같아요.(웃음)
스카우터를 하면서 어떤 걸 배우셨나요?
선수 시절에는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는지에 집중했습니다. 그렇지만 전력분석원은 다른 시각으로 농구를 봐야 합니다. 상대 팀의 공격 패턴이 어떤지, 수비를 어떻게 준비했는지에 집중했죠. 선수 개인이 아닌, 팀의 전체적인 것들을 디테일하게 살펴봤습니다. 농구를 넓게 볼 수 있었습니다.

박지현은 접하지 못했던 것들을 배웠다. 그렇지만 2017~2018 시즌 종료 후 원주 DB를 떠났다. 건강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몸 관리를 위해 농구와 멀어져야 했다.
그리고 2019년. 휘문중학교 농구부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부임했다. 대학교 1년 후배이자 동갑내기 친구인 최종훈 코치의 제안이 있었다.
프로 무대에만 15년 넘게 있었던 박지현이다. 그런 그가 중학생 선수들과 한 곳에 섰다. 눈높이를 낮춰야 했고, 기다려줘야 했다. 예상치 못한 변수들도 대처할 줄 알아야 했다. 지금도 몰랐던 것들을 공부하고 있다. “모르는 게 너무 많습니다”는 말을 한 이유였다.
2019년부터 휘문중 A코치로 부임했습니다.
전력분석 업무를 하다가, 건강에 문제가 생겼어요. 몸 관리를 하고, 쉬고 있었죠. 그 때 최종훈 코치가 A코치를 제안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는데, 최종훈 코치 덕분에 일을 시작했습니다.
중학생 선수들과 처음 마주했습니다.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이해시켜야 하나?’라는 생각이 컸죠. 또, 프로 구단과 달리, 중학생 선수들은 기본기 훈련을 많이 해야 합니다. 팀 훈련도 중요하지만, 선수 개인의 성장이 더 중요하거든요. 그 점을 최종훈 코치랑 많이 의논했습니다. 매년 고민하는 주제이기도 하고요.
또, 이해를 잘하는 친구들과 그렇지 못한 친구들을 같이 끌어올려야 합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더라고요. 예상을 하기 어렵거든요. 제 기대에 못 미치는 선수들도 있고, 제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잘해주는 선수들도 있어요. 휘문중에 온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모르는 게 많습니다. 제가 몰랐던 점들을 끊임없이 연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선수 시절에 경험하고 익힌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녹여내야 합니다. 그 작업이 제일 어려울 것 같습니다.
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 모두 가르치는 방식이 다릅니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중학교에서도 선수들의 습득 속도에 맞게 가르쳐야 합니다. 선수마다 성장 과정이나 속도가 다르거든요. 단순히 제가 배우고 경험했던 걸 알려주는 게 아니라, 선수에 맞는 지도 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 점이 아직도 어렵습니다. 계속 공부하는 중이고요.
학생 선수들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 큰 보람으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저희 학교가 작년에 5관왕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5관왕 멤버들이 2학년 때만 해도, 기량이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선배들만큼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었어요. 그래서 8강이나 4강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렇지만 저희 예상과 다르게, 아이들이 너무 열심히 해줬습니다. 그래서 좋은 결과를 냈다고 생각해요.
또, 제가 처음 왔을 때, 김성훈이라는 친구가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2m의 큰 선수이긴 하지만, 처음에는 공도 만지지 못했어요. 뛰지도 못했고요. 속으로 ‘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점점 성장했고, 5관왕의 주축이 됐습니다.
그 친구가 성장하는 걸 보면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또, 중학생 선수들은 기다려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자라는 선수들이다 보니, 성장 속도의 차이가 더 크다는 걸 알게 됐죠.

위에서 이야기했듯, 박지현은 현재 유망주들을 가르치고 있다. 농구 선수이자 학생인 제자들에게 ‘기본기’와 ‘인성’을 강조하고 있다. ‘기본기’와 ‘인성’은 농구뿐만 아니라 사회 생활에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농구를 시작한 박지현은 27년 동안 선수 생활을 했다. 은퇴 후 스카우터 1년-아마추어 코치 3년의 경력을 쌓고 있다. 30년 넘게 농구와 호흡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농구’는 박지현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자신이 살아온 ‘농구 인생’ 또한 특별하게 생각했다. “농구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라는 박지현의 마지막 말이 진심으로 다가왔다.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으세요?
아마추어라고 해서, 성적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농구를 즐겁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목표 의식을 가졌으면 해요.
또, 엘리트로 시작한 친구들은 농구를 미래의 직업으로 생각할 겁니다. 농구를 길게 봤으면 좋겠어요. 중학교 때 못했다고 해서 고등학교 때 못할 거라는 법 없고, 중학교 때 잘했다고 해서 계속 잘할 거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르치는 선수들 모두 코트에서 꾸준하고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그렇게 하려면, 어떤 걸 더 공부해야 할까요?
‘기본기’와 ‘인성’이 중요합니다. 단체 생활을 하기 때문에, 양보-배려-협동심 등을 배워야 합니다. 특히, 농구를 잘한다고 해서, 남을 깔보면 안 됩니다. 운동을 잘하는 것보다,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친구들끼리 놀리거나 욕을 할 때, 저는 혼을 많이 냅니다. 그래서 저도 아이들 앞에서 말을 조심합니다. 어른이 욕하는 걸 들으면, 아이들도 따라하거든요.
‘농구’는 어떤 의미인가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32년 동안 하고 있습니다. 제 평생을 같이 하고 있는 존재죠. 가족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지현의 농구 인생’을 한 번 돌아봐주세요.
저는 공부보다 운동을 좋아했던 학생이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에 마침 농구부가 있어서, 농구를 시작했죠. 재미로 농구를 시작했고, 프로 선수를 목표로 삼지 않았습니다. 또, 부산에서 운동을 해서 그런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농구를 하면서 많은 걸 얻었거든요. 농구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 때로 돌아가도, 다시 농구를 하실 건가요?
다시 그 시절로 가라고 하면, 힘들 것 같아요.(웃음) 강압적인 분위기였고, 폭력도 많았거든요. 하지만 지금 같은 환경에서 하라고 한다면, 농구공을 또 한 번 잡을 것 같아요.
사진 제공 = KBL, 박지현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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