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윌커슨, 2010년대 중반 KCC 이끈 전천후 포워드

이재승 기자 / 기사승인 : 2022-05-10 10: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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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중반, KCC는 다시금 우승을 노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하승진의 입대로 일시적인 변화를 맞이했던 KCC. KCC는 약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타일러 윌커슨과 함께 하면서 순위를 유지했다. 돋보이는 성적은 아니었지만, 윌커슨이 중심을 잘 잡으면서 버틸 수 있었다. 이어 2014년에 하승진의 소집해제, 2년 차를 맞이하는 김민구, 새로 영입한 김태술까지 더해 막강한 전력을 구축했다. 그 중심에 윌커슨이 있었다. 그러나 KCC는 끝내 그와 함께 빛을 보지 못했다.

※ 본 인터뷰는 3월에 작성했으며,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1년 4월호에 게재됐습니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KBL 진출 이전
윌커슨은 라파옛고등학교를 졸업 후 마샬대학교에 진학했다. NCAA의 C-USA의 마샬 썬더링허드에서 네 시즌을 보냈다. 마샬대학교는 NCAA 토너먼트에 진출한 적이 많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빌리 도너번 감독(시카고 감독)이 선수들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당시 도너번 감독은 현지 나이로 28세에 감독이 되면서 팀을 이끌었고, 이후 그는 플로리다 게이터스의 감독이 된 후 팀을 2년 연속 NCAA 정상에 올리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윌커슨이 진학할 때 도너번 감독은 이미 플로리다대학교로 자리를 옮긴 이후였다.
 

대학에 입학했으나 윌커슨은 주로 벤치에서 나서야 했다. 지난 2006-2007 시즌에 28경기에 나서면서 꾸준히 코트를 밟았으나 주요 전력으로 활약하지 못했다. 그는 경기당 11.7분 2.6점(필드골 성공률 : 46.8%, 3점슛 성공률 : 33.3%, 자유투 성공률 : 42.4%) 3.8리바운드 0.9블록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출전 시간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7-2008 시즌에 30경기에서 뛰었으며, 17경기에서 주전으로 출장하기도 하면서 가능성을 보였다. 그는 평균 21.7분 9.2점(필드골 성공률 : 55.6%, 3점슛 성공률 : 23.5%, 자유투 성공률 : 67.7%) 5.9리바운드 1.0블록을 올렸다. 시도한 만큼 외곽슛이 잘 들어가진 않았으나 평균 10점에 버금가는 득점을 올리면서 마샬의 로테이션에 진입했다.
 

이를 시작으로 2008-2009 시즌부터 실질적인 주전급으로 거듭났다. 예년과 달리 많은 경기에서 출장하진 못했으나 22경기에서 코트를 밟은 그는 평균 21.6분 동안 10.4점(필드골 성공률 : 52.9%, 3점슛 성공률 : 16.7%, 자유투 성공률 : 71.9%) 6.2리바운드 0.7블록으로 활약했다. 대부분을 주전으로 뛰면서 이제는 어엿한 중심 전력으로 도약을 알렸다. 졸업반인 지난 2009-2010 33경기에서 26.3분을 소화하며 14.0점(필드골 성공률 : 51.8%, 3점슛 성공률 : 32.6%, 자유투 성공률 : 77.1%) 7.2리바운드 1.0블록으로 활약했다. 32경기에서 주전으로 뛰는 등 어엿한 핵심 전력감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대학에 계속 머물렀다는 것은 곧바로 프로농구 선수가 되기에는 모자랐다는 뜻이다. 특히, 미국에서 NBA에 진출하고자 했다면, 최소 한 시즌 후에 빅리그 진출을 선언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물론 기량이 갖춰져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윌커슨은 그러지 못했다. 마샬이 돋보이는 대학이 아닌 점을 고려하면 그가 학교를 졸업 후 프로 무대를 두드린 것 만으로도 한계를 엿볼 수 있다.
 

대학 졸업 이후 NBA 진출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2010 드래프트에 명함을 내밀었으나 호명을 받지 못했다. 1부에서 뛰는 선수들도 대부분이 낙마하는 곳인 만큼, 아쉽게도 윌커슨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스몰포워드를 보기에는 기동력과 볼핸들링이 모자랐고, 파워포워드를 소화하기에는 무게감이 떨어졌다. NBA가 충족하는 신체 조건을 맞추기도 쉽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그가 지명될 확률은 없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빅리그 진입을 시도했다는 것 만으로도 큰 감점이다. 결정적으로 NCAA에서 첫 해부터 두각을 보이지 못한 것을 고려하면, 여러모로 NBA와 인연을 맺기에 거리가 먼 것은 당연했다.
 

그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졸업 후 이스라엘에서 처음으로 프로 선수로 거듭났다. 하포엘 길보아에서 뛸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6경기를 뛴 것이 전부였다. 경기당 21분을 소화하며 10.7점(필드골 성공률 : 52.7%, 3점슛 성공률 : 100%, 자유투 성공률 50%) 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시즌 도중 팀을 옮겼다. 준수한 모습을 보인 그는 다른 팀에서 한 시즌 더 뛸 기회를 얻었고, 마카비와 재계약을 체결했다.
 

이스라엘에서 총 두 시즌을 마친 그는 다시 미국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고자 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 소속으로 2012 NBA 서머리그에 나설 기회를 얻었다. 당장 빅리그나 G-리그는 아니지만, 서머리그에서 뛰면서 자신을 알릴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그는 서머리그 직후 방출됐고, 당시 샌안토니오 산하 G-리그팀은 어스틴 토로스(현 스퍼스)에서 뛰게 됐다. 그는 지난 2012-2013 시즌 어스틴에서 36경기에 나서 평균 12.1점(필드골 성공률 : 52.9%, 3점슛 성공률 : 0%, 자유투 성공률 : 62.6%) 7.8리바운드 1.1블록으로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G-리그에서 오롯하게 한 시즌을 보낸 그는 시즌 이후 KBL 진출을 시도했고, KBL 외국 선수 트라이아웃에 명함을 내밀었다.


한국 무대에서의 윌커슨과 당시 프로농구 판도
KCC는 지난 2013 외국 선수 드래프트에서 윌커슨을 1라운드 3순위로 지명했다. 직전 시즌 하위권에 머물렀던 KCC는 외국 선수 지명에서 높은 순번을 획득하면서 전력을 끌어 올릴 기회를 잡았다. 지난 2012-2013 시즌에 KCC는 전력이 돋보이지 않았고, 시즌 막판에 서울 SK와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당시 SK는 애런 헤인즈와 큰 신장을 갖춘 토종 선수를 중심으로 리그 1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SK는 안쪽 전력 보강을 위해 외국 선수 트레이드에 나섰다. KCC는 코트니 심스를 보내는 대신 SK로부터 김효범과 크리스 알렉산더를 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해당 트레이드로 경험이 있는 김효범을 품은 KCC는 외국 선수 드래프트에서 좋은 빅맨을 뽑을 필요가 있었다.
 

당시 KCC의 지휘봉을 잡고 있던 허재 감독은 윌커슨을 호명하면서 전력을 다졌다. 순번 대비 아쉬운 평가라는 반응도 있었으나 허 감독은 “농구를 할 줄 안다”면서 그의 지명에 만족했다. 당시 KCC의 추승균 코치도 “많은 외국 선수의 경우에도 마무리가 오른쪽에 국한된 경우가 많다”면서 “윌커슨은 양쪽 다 가능하다”며 좋은 선수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추 코치는 “포스트플레이를 할 때 힘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스텝을 놓을 줄 안다”고 운을 떼며 “피벗이 좋아 기술로 충분히 득점을 올릴 수 있고, 외곽슛도 갖추고 있다. 체중을 감량해 몸이 날렵해졌다”면서 KCC가 그를 지명한 이유를 밝혔다.
 

드래프트를 진행할 때, KCC에서 윌커슨을 지명할 때, 장내가 술렁였을 정도로 다소 의외의 선택이라는 평도 적지 않았을 정도. 결정적으로, 당시 윌커슨이 부상으로 완전한 몸 상태가 아니었기에 트라이아웃에서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당시 KGC인삼공사가 윌커슨의 순번이 내려오길 기다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KCC가 먼저 윌커슨을 택하면서 KGC는 션 에반스를 호명해야 했다.
 

당시 KCC는 하승진이 군 복무를 위해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KCC는 2013 드래프트에서 김민구를 1라운드 2순위로 지명하면서 확실한 토종 전력감을 더했다. 김민구는 대학 시절부터 프로에서도 통할 기량으로 관심을 모았기에 KCC는 국내 선수와 외국 선수를 두루 채우면서 비로소 도약할 수 있는 전력을 갖췄다. 안쪽에서 윌커슨이 힘을 내는 가운데 김민구가 백코트에서 자리를 잡을 경우 KCC도 무시할 수 없는 전력으로 분류될 수 있었다.
 

윌커슨은 첫 해부터 국내 무대에 잘 적응했다. 그는 꾸준히 많은 경기에 나섰다. 경기당 21.3점(필드골 성공률 : 50.4%, 자유투 성공률 : 66.8%) 9.6리바운드 1.2어시스트 1.0블록을 기록했다. 그는 꾸준히 더블더블을 작성하면서 KCC의 골밑을 지키는 데 일조했다. 뿐만 아니라 내외곽을 두루 오갈 수 있는 공격력과 슛 거리를 갖추고 있어 KCC 공격에서 거의 모든 역할을 도맡았다. 당시 KCC의 국내 선수층이 두텁지 않고, 김민구는 이제 갓 진출한 신인에 불과했던 만큼, 많은 임무를 수행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KCC는 윌커슨이 있어 그래도 꾸준히 상대를 괴롭힐 수 있었다.
 

KCC에서는 윌커슨이 중심을 잘 잡았으나 다른 선수들의 활약이 다소 저조했다. 윌커슨 홀로 평균 20점 이상을 책임지면서도 평균 두 자릿수에 가까운 리바운드를 잡아냈다. 그러나 KCC에서는 다른 선수들이 평균 15점 이상을 책임지지 못했다. 신인인 김민구가 평균 13.4점을 올렸고, 강병현이 11.7점을 보탠 것이 전부였을 정도. 경기당 15점은 고사하고 두 자릿수 득점을 꾸준히 책임진 이가 윌커슨, 김민구, 강병현이 전부였다. 당연히 KCC는 치고 올라갈 수 없었다. 당시 프로농구에는 SK, 울산 모비스가 강세를 떨치기도 했거니와 중위권 싸움에 치열하게 전개됐다. KCC는 직전 시즌에 이어 하위권을 피하기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윌커슨의 뒤를 받칠 다른 외국 선수의 부진도 크게 한 몫 했다. 당시 KCC는 2라운드에서 이케네 이베케를 지명했다. 그러나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쳤고, 끝내 교체를 피하지 못했다. KCC는 아터 마족을 데려왔다. 마족은 놀랍게도 평균 3.4점 1.9리바운드에 그쳤다. 그는 지난 2011 NBA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28순위로 LA 레이커스의 부름을 받았다. 비록 레이커스와 신인계약을 체결하진 못했으나 그만큼 기량만큼은 인정을 받았다고 봐야 한다. 국내 무대를 호령했던 많은 선수 중 대부분도 NBA 드래프트를 거치지 못했던 점을 고려하면 마족의 이력은 단연 돋보였다. 그러나 그가 KCC에서 선보인 경기력은 NBA 지명자와 거리가 멀었다.
 

결국, KCC는 장고 끝에 그를 교체하기로 했다. 그를 내보내고 국내 무대 경험이 있는 데리언 타운스를 대체 선수로 영입했다. 타운스는 지난 2012-2013 시즌 서울 삼성에서 뛰면서 나름의 경기력을 인정을 받았다. 당시 삼성도 하위권을 중하위권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타운스는 삼성의 주요 전력을 활약했다. 한 팀을 끌고 가기에는 다소 아쉬울 수 있었으나 당시 KCC는 백업 센터 확보가 시급했던 만큼, 타운스와 함께 하기로 했다. 그러나 타운스도 부진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시즌 중에 계약하기도 했거니와 삼성에서 뛸 때처럼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경기당 6.8점 4.6리바운드 0.9블록을 기록했다. 윌커슨이 많은 시간을 뛰고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기에 타운스도 제약이 없진 않았으나 타운스로 전반적인 무게감이 채워지지 않았다.
 

윌커슨이 공격지향적인 선수였던 만큼, 외국 선수 다른 한 자리는 수비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안쪽에서 힘을 보태줄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마족과 타운스는 여러모로 모자랐다. KCC는 한 번 더 선수를 교체했다. 델본 존슨을 영입했다. 한국 농구에 경험이 없는 그를 데려오면서 기회를 엿봤다. 그러나 존슨도 이전의 선수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평균 2.4점 2.4리바운드를 올린 것이 전부였다. 결국, KCC는 윌커슨이라는 유의미한 공격수를 주요 전력으로 잘 낙점했으나 다른 외국 선수 영입이 실패했고, 약해진 국내 선수층을 극복하지 못했다. 플레이오프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다음 시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KCC는 도약을 노렸다. 윌커슨과 김민구가 리그 적응을 마쳤다고 봐야 하며, 하승진이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왔기 때문. KCC는 이전 시즌에 외국 선수 센터 확보로 골머리를 앓았던 부분을 확실하게 해결했다. 하승진과 윌커슨이 동시에 출격할 수 있으며 때로는 나눠서 뛸 수 있었기 때문. 윌커슨이 적응을 무난히 마쳤을 뿐만 아니라 파워포워드로 나설 수 있기 때문에 KCC가 가진 전력은 좀 더 강해질 것으로 예상이 됐다. 지난 2013-2014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도 당시 KCC의 허재 감독의 표정은 그리 어두워 보이지 않았다. 다음 시즌 구상이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KCC는 교통 정리에도 나섰다. 김민구라는 확실한 슈팅가드가 자리하고 있는 만큼, 사인 & 트레이드를 통해 김태술을 데려오며 백코트 전력을 단번에 끌어 올렸다. 강병현과 장민국을 안양 KGC인삼공사로 보내는 대신 김태술을 데려왔다. 김태술의 가세로 KCC는 ‘하승진-윌커슨-김민구-김태술’이라는 환상적인 라인업을 꾸리게 됐다. 당시 기준으로 국가 대표급 세 명이 자리하고 있어 2014-2015 시즌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완연한 국가 대표는 김민구 하나였지만, KCC의 선수 구성은 단연 돋보였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2014 농구 월드컵과 2014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대표팀에서 부상자가 발생한 것. 김민구의 음주운전으로 그는 치명상을 피하지 못했으며, 졸지에 대표팀 구성에 큰 변화가 생기고 말았다. 다음 시즌 장밋빛 미래를 꿈꿨던 KCC도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과 마주한 셈이다. 그가 있어 강병현과 장민국을 트레이드했으나, 다시금 전열 구축이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KCC는 김태술과 하승진이 있는 가운데 윌커슨이 어김없이 주득점원으로 나서면서 힘을 냈다. 윌커슨은 평균 17.9점(필드골 성공률 : 50.7%, 자유투 성공률 : 70.7%) 7.4리바운드 1.4어시스트 0.6블록을 기록했다. 하승진과 함께 뛰면서 기록 하락은 일정 부분 예상이 됐다. 다만 전반적인 경기력은 아쉬웠다. 윌커슨은 공격 시에 상당한 공간이 필요했다. 안에 하승진이 버티고 있어 오히려 윌커슨이 공격하는데 제약 아닌 제약이 되고 말았다. 오히려 백업 선수인 디션 심스가 뛸 때 하승진과 조합이 좋았다. 오히려 윌커슨이 주전으로 나서긴 하나 실질적으로 백업 센터 역할을 소화해야 했다. 수비력도 아쉬웠다. 하승진은 느린 것이 당연했기에 수비력이 약한 윌커슨이 동시에 출장할 때 수비 지표가 썩 돋보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KCC는 시즌 개막 앞서 받았던 기대와 달리 좀처럼 치고 올라가지 못했다.
 

윌커슨도 직전 시즌만 못한 생산성을 자랑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출장 시간도 줄어드는 것이 당연했다. 윌커슨도 나름 좋은 호흡을 보였던 김민구의 부재와 새로운 선수와 호흡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다. 윌커슨도 달라진 환경과 전력 변화에 활약하기 쉽지 않았던 측면도 있었다. 그도 김태술과 간헐적인 픽게임에 나설 때, 공격 창출이 쉽지 않았다. 하승진이 안쪽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 결국, KCC는 셋의 정확한 공존을 끌어내지 못했다. 하승진은 픽게임을 풀어갈 센터로 적합하다고 보기 어려웠다. 게다가, 김태술의 경기력이 이적 이전과 다소 달라지면서 KCC는 기대와 달리 다시금 올라가지 못했으며, 하위권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KBL 진출 이후
KCC와 재계약을 맺지 못한 그는 리그 내 다른 구단의 부름도 받지 못했다. 이후 그는 중국으로 향했다. 구이저우 화이트타이거스에서 뛰기도 했다. 중국프로농구(CBA)에서 뛰는 동안 그는 평균 15점 8리바운드를 올리면서 선전했다. 그러나 외국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아주 높은 곳인 CBA에서 뛰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웠다. 결국, CBA에서도 오랫동안 뛰지 못했으며, 푸에르토리코에서 뛰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중국과 푸에르토리코를 오가면서 2년을 보냈다.
 

푸에르토리코에서 뛸 때 2014년 4월 1일(이하 한국시간)에 생애 최다인 19리바운드를 잡아낸 바 있다. 또한, 정확히 1년 뒤에는 가장 많은 42점을 퍼부은 바 있을 정도로 여전한 기량을 자랑했다. 2016년에는 필리핀으로 건너갔다. 필리핀의 산미구엘 비어멘에 몸담기도 했다. 이어 중국프로농구 2부리그(NBL)의 샨시 울브스를 거치면서 여러 리그와 구단을 오갔다. 이후 그는 아랍에미레이트리그에서 한 시즌을 보낸 후 오프시즌에 다시 푸에르토리코로 건너갔다가 아랍에미레이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나, 이후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어린 시절 좋아하는 선수는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로 알려져 있다. 스타더마이어는 2000년대 중반 피닉스 선즈의 공격 농구의 최선봉에 서 있었던 빅맨이다. 피닉스에서 전성기를 보낸 이후 뚜렷한 활약을 펼치지 못했지만, 윌커슨과 엇비슷한 플레이로 빅리그를 누볐던 올스타 빅맨이다.

사진_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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