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2000년대 중반 리그 최고 공격형 포워드, 마퀸 챈들러

이재승 기자 / 기사승인 : 2022-04-08 10: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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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가 출범한 이래 외국 선수는 주로 안쪽에서 활약하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센터와 파워포워드가 힘을 떨친 가운데 센터가 아닌 선수들도 골밑에서 역할을 했던 선수들이 주로 재계약을 체결하거나 다른 구단의 부름을 받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러나 외곽에서 주로 공격하는 마퀸 챈들러는 달랐다. 챈들러는 안양과 원주를 거치면서 여러 해 동안 한국 무대를 누볐고, 그의 공격력에 힘입어 안양 KT&G(현 KGC)는 다시금 인기몰이에 나섰다. 원주 동부(현 DB)는 우승 도전에 나설 수 있었다.

프로 진출 이전
챈들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서 태어났다. 뉴어크메모리얼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조지워싱턴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농구 선수의 꿈을 좀 더 키워갔다. 그러나 조지워싱턴 콜로니얼스에는 쟁쟁한 선수가 많았고, 챈들러가 많은 활약은 고사하고 출전시간을 확보하기 쉽지 않았다. 첫 해인 지난 2000-2001 시즌에는 25경기에 꾸준히 나섰으나 당장 많은 역할을 도맡기에 출전 시간이 너무 적었다. 그는 경기당 5.3분을 뛰는 데 그쳤으며, 2점(필드골 성공률: 35.7%, 3점슛 성공률: 25.0%, 자유투 성공률: 33.3%) 1.2리바운드를 올린 것이 전부였다. 한 경기에서 주전으로 나서면서 뜻 깊은 하루를 보냈지만, 전반적으로 많이 뛰지 못했던 만큼, 한계가 적지 않았다. 주로 5분 내외로 뛰었기에 당장 많은 것을 했다고 평가하기 보다는 주로 경기 막판에 남은 시간을 채우기 위해 나설 때가 많았다.
 

2학년 때도 역할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17경기에 나선 그는 평균 17.7분을 뛰며 지난 시즌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출전 시간 확보도 나쁘지 않았다. 기록도 향상이 됐다. 그는 경기당 6.1점(필드골 성공률: 35.2%, 3점슛 성공률: 25.0%, 자유투 성공률: 62.1%) 3.7리바운드를 올렸다. 평균 득점을 좀 더 끌어 올렸고 17분이 넘는 시간을 주로 확보한 것은 고무적이었다. 출전한 경기에서 생애 첫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는 등 두 번이나 10점 이상을 올리면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필드골 성공률은 전반적으로 저조했다. 외곽에서 공격 시도도 아쉬웠다. 포워드라면 좀 더 안정된 외곽슛을 갖추고 있을 필요가 있었으나 외곽에서 시도하는 공격 성공률은 신통치 않았다. 조지워싱턴의 성적도 나아지지 않았다. 2000-2001 시즌에 14승 18패로 애틀랜틱-10컨퍼런스 중하위권에 그쳤으나, 지난 2001-2002 시즌에는 12승 16패로 오히려 성적이 하락했다.
 

조지워싱턴은 해당 컨퍼런스에서 주로 하위권에 자리한 팀이었다. 그럼에도 챈들러는 뚜렷한 주요 전력으로 분류가 되지 못했다. 2학년 때 좀 더 나아진 모습을 보였지만, 좀 더 많은 역할을 갈망했던 그는 학교를 옮기기로 했다. 그는 한 시즌 동안 뛸 수 없는 징계를 감수하고 새너제이스테이트 스파르탄스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기로 했다. 2002-2003 시즌을 뛰지 못했지만 그는 절치부심했다. 2003-2004 시즌에 새너제이에서 좀 더 많은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당해 시즌 28경기에서 평균 19.8분 동안 9.8점(필드골 성공률: 53.5%, 3점슛 성공률: 51.1%, 자유투 성공률: 70.6%) 4.1리바운드를 올리면서 좀 더 안정된 득점원으로 거듭났다. 이중 12경기에서 주전으로 출장하는 등 이전과 달리 좀 더 주도적인 농구를 펼칠 수 있었다. 전학 전 기록보다 뚜렷하게 나아졌다고 평가하긴 어려우나 슈팅 지표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높은 슛 성공률을 통해 팀에서 필요한 선수로 거듭났다. 시도는 많지 않았지만 3점슛을 50%가 넘는 성공률로 집어넣으면서 공격에서 팀에 기여도가 대단했다. 2점슛 성공률도 높아지면서 무서운 득점원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비로소 그는 4학년인 2004-2005 시즌에 크게 도드라졌다. 29경기 중 28경기에서 주전으로 나섰으며 경기당 35분이라는 많은 시간을 뛰며 무려 19.6점(필드골 성공률: 47.1%, 3점슛 성공률: 34.6%, 자유투 성공률: 77.1%) 8.6리바운드 1.1어시스트를 올리며 생애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기록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실질적인 팀의 주득점원으로 역할을 했다. 이에 힘입어 그는 올-WAC(Western Athletic Conference) 세컨드팀에 호명이 되며 주가를 높였다. 비록 퍼스트팀이나 최우수선수에 선정이 된 것은 아니지만, 대학 입학 이후 처음으로 큰 상을 받는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아쉽게도 팀의 성적은 동반되지 못했다. 새너제이스테이트가 강팀이 아니었던 만큼 전력에서 한계가 뚜렷했다. 챈들러가 뛴 두 시즌 동안 세너제이스테이트는 단 6승을 더하는데 그쳤으며 무려 23패를 떠안았다.
 

하지만 컨퍼런스에서 개인기록 순위에서도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난 2004-2005 WAC에서 그는 야투 성공률 10위, 2점슛 시도 5위, 3점슛 성공 18위, 3점슛 시도 18위, 자유투 성공 11위, 자유투 시도 15위, 자유투 성공률 7위, 평균 득점 5위, 평균 리바운드 5위에 이름을 올렸다. 다른 기록을 차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득점과 리바운드에서 괄목할만한 발전을 선보이며 5위 이내 진입한 부분은 챈들러의 가치를 높일 만했다. 승리기여도에서 17위에 올랐을 정도로 개인 기록으로는 단연 돋보이는 한 해를 보냈다. 전학으로 인해 뛸 수 없는 시간을 포함해 4년 동안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에게 졸업하는 시즌에라도 자신의 진가를 선보였던 부분은 고무적이었다.

KBL 진출 이전 & 안양에서의 최고 활약
대학 졸업 후 그는 NBA 서머리그에서 나섰다. NBA 드래프트에 바로 나서기에는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 그는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트라이아웃을 가지면서 기회를 엿봤다. 그러나 끝내 새크라멘토 소속으로 서머리그를 누비진 못했다. 미국에서 뛰기에는 기량에서 한계가 많았고 신장이 200cm가 되지 않는 포워드가 뛰기에는 득점력, 운동 능력을 비롯한 여러 기량에서 아쉬움이 많은 것이 당연했다. 결국, 그는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지난 2005-2006 시즌에 그는 필리핀리그(PBA)에서 한 시즌을 보냈다. 그가 뛰는 동안 마그놀리아 핫샷은 컨퍼런스 파이널에 오르긴 했으나 우승에 다가서지 못했다.
 

한 시즌을 마친 그는 KBL 드래프트에 신청했다. KBL은 여느 리그와 달리 선수 급여가 원활하게 지급이 되고 리그가 진행이 되는 만큼, 여러 외국 선수가 뛸 곳으로 충분했다. 직전까지 KBL은 외국 선수 제도를 자유계약선수 제도를 유지했다. 그러나 2007-2008 시즌부터 다시 외국 선수 선발 방식을 드래프트로 바꾸면서 챈들러에게 기회가 올 수 있었다. 챈들러는 외국 선수 드래프트에 명함을 내밀었고, 안양 KT&G(현 KGC)에 1라운드 4순위 지명을 받았다. KT&G는 1라운드에서 챈들러, 2라운드에서 T.J. 커밍스를 지명하면서 외국 선수 구축을 마쳤다.
 

2007-2008 시즌에는 챈들러 외에도 테렌스 레더(당시 삼성)가 국내 무대에 진입했다. 레더는 챈들러보다 한 순위 앞에 호명이 됐으며, 이후 수년 동안 KBL에서 꾸준히 뛰었으며, 서울 삼성과 전주 KCC를 결승으로 이끄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들에 앞서서는 레지 오코사(당시 동부), 브랜든 크럼프(당시 KCC)가 주요 선수로 다른 구단의 부름을 받았다. 앞의 첫 세 명 모두 센터로 나서는 이였다면 챈들러는 달랐다. 당시 KT&G에는 주희정(고려대 감독)이 핵심 전력으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주희정을 중심으로 빠른 농구를 펼치길 바랐던 KT&G의 유도훈 감독(현 한국가스공사 감독)은 챈들러를 1라운드에서 전격적으로 호명했다. 외국 선수 제도가 바뀌면서 안쪽을 다지고자 하는 팀이 우선적으로 빅맨을 뽑은 것과는 단연 대조적이었다.
 

챈들러는 첫 시즌부터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자유계약시절 당시 단테 존스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유 감독이 추구하는 농구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했다. 주희정과의 호흡도 원활했다. 주희정과 챈들러의 픽게임은 단연 돋보였다. 챈들러는 지난 2007-2008 시즌에서 평균 22.9점(2점슛 성공률: 53.2%, 3점슛 성공률: 37.8%, 자유투 성공률: 82.9%) 9.3리바운드 2어시스트을 기록하며 펄펄 날았다. 챈들러가 주득점원으로 나서면서 주희정의 패스가 큰 빛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간 주희정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확실한 외국 선수와 조합을 찾지 못했다. 이상민과 김승현이 각각 영혼의 파트너를 얻으면서 팀을 끌어 올린 것에 비해 주희정은 외국 선수 운이 다소 따르지 못했다. 그러나 챈들러와 만나면서 주희정도 비로소 그와 원활한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이를 찾았고, 이는 곧 주희정을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로 떠오르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챈들러의 내구성도 좋았다. 그는 안양에서 뛰는 두 시즌 동안 결장하는 경기가 단 두 경기에 불과했다. 당시에는 외국 선수가 뛰는 빈도가 지금보다 많았던 점을 고려하면 외국 선수 부상은 시즌 운영에 아주 결정적인 변수였다.
 

챈들러는 다치지 않고 꾸준히 코트를 누비면서 팀의 공격을 확실하게 주도했다. KT&G는 이에 힘입어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이전에도 시즌 막판에 외국 선수 부상으로 아쉽게 플레이오프에서 고배를 마시기도 했으며, 존스 합류 이후에는 존스의 경기력에 따라 지나치게 팀의 명운이 엇갈렸다. 그러나 다치지 않는 챈들러가 공격의 중심을 잘 잡으면서 KT&G가 30승 24패로 리그 4위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했다. 비록, 챈들러는 테렌스 섀넌(당시 전자랜드)과 레더에 밀려 외국선수상을 수상하지 못했으나 KBL에 무난히 적응했음을 확실하게 알렸다. 여느 선수와 달리 내외곽을 고루 오가며 득점을 올렸고, 이는 KT&G가 수월하게 공격을 전개할 수 있는 아주 단단한 밑거름이 됐다. 여기의 주희정이 더해지면서 KT&G만의 농구 색깔을 확실히 찾았다.
 

KT&G는 4위를 차지했기에 플레이오프 첫 관문에서 리그 5위로 시즌을 마친 서울 SK와 마주했다. 챈들러가 이끄는 KT&G는 그의 활약에 힘입어 SK를 상대로 완승을 거뒀다. 당시 1라운드는 3전 2선승제였던 만큼, 시리즈 초반의 기선 제압이 중요했으며, 당연히 1차전 경기 결과가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1차전에서 KT&G는 접전 끝에 SK를 따돌렸다. KT&G는 연장까지 치른 접전 끝에 SK에 90-87로 진땀승을 거뒀다. 1차전을 따내면서 KT&G는 2라운드 진출에 아주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2차전에서도 양 팀은 팽팽하게 맞섰다. 경기 종료 51.3가 남은 가운데 여전히 양 팀은 89-89, 동점으로 맞선 가운데 KT&G의 집중력이 좀 더 돋보였다. 결국, 이날 94-90으로 이기면서 KT&G가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 진출했다.
 

이전까지 KT&G는 준결승에 진출한 적이 단 두 번 밖에 없었으나 챈들러가 팀을 확실하게 견인하면서 팀을 높은 곳까지 잘 이끌었다. 그는 이날 가장 많은 41점을 올리면서 리그 최고 득점원다운 면모를 여과 없이 발휘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13리바운드 10어시스트를 고루 곁들이면서 이날 KT&G의 2라운드 진출에 결정적인 활약을 펼쳤다. 플레이오프 시리즈를 매조지는 중요한 경기에서 트리플더블을 올린 것. 40점을 포함해 트리플더블을 동반했을 정도로 이날 챈들러의 활약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반대로 SK는 선전하고도 상대 주포인 챈들러를 막지 못해 끝내 생존하지 못했다.
 

하지만, KT&G는 준결승에서 리그 최고 높이와 수비를 구축하고 있는 원주 동부를 상대로 맥없이 무너졌다. 1라운드 치르고 올라간 것도 부담이었다. 결정적으로 레지 오코사와 김주성(DB 코치)이 책임지는 수비가 단단했다. 챈들러도 공격에서 활로를 찾기 쉽지 않았다. KT&G는 결국 1차전에서 62점을 올리는데 그쳤다. 1라운드에서 SK를 상대할 때만 하더라도 두 경기 평균 92점을 올렸으나 동부의 수비를 상대로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결국, 73점을 내준 KT&G는 1차전을 패하면서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KT&G는 챈들러의 활약에 힘입어 2차전에서 시리즈 첫 90점 돌파해 성공하며 승리를 거뒀다. 공격의 호조에 힘입어 다른 토종 선수까지 살아나면서 동부의 수비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2차전에서 94-90으로 이기면서 지난 1라운드 2차전과 같은 기분 좋은 점수를 만들어내며 시리즈를 장기전으로 끌고 갈 채비를 마쳤다.
 

KT&G가 적지에서 열린 두 경기 중 한 경기를 따내면서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다시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2차전이라는 최근 경기를 이기면서 분위기를 고취시킨 점도 돋보였다. 2차전에서 주희정이 9어시스트를 뿌리면서 경기를 잘 풀어간 것도 오는 안양에서 열리는 2연전 전망을 밝게 했다. 3차전에서 KT&G는 80점 이상을 뽑아내면서 여전히 날카로운 공격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수비에서 다소 많은 점수를 내준 것이 화근이었다. KT&G는 89-82로 지면서 이날 경기를 내주고 말았다. 3차전을 아쉽게 내주면서 KT&G는 벼랑 끝에 몰렸다. 4차전도 홈에서 열리는 만큼,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 볼 만했다.그러나 KT&G는 4차전에서 91-77로 대패하고 말았다. 모처럼 준결승에 올라 결승 진출을 노렸으나 역부족이었다.
 

첫 시즌을 무사하게 치렀던 챈들러는 당연히 KT&G와 재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이듬해에도 여전한 경기력과 탄탄한 내구성을 자랑하며 팀을 중심을 굳건하게 잡았다. 챈들러는 이전 시즌과 같은 53경기에 나섰다. 평균 25.5점(2점슛 성공률: 53.9%, 3점슛 성공률: 35.2%, 자유투 성공률: 78.0%) 8.8리바운드 2.1어시스트를 올리면서 변함없는 활약을 펼쳤다. 이전 대비 평균 득점은 약 3점 가량이 많았을 정도로 대단한 득점력을 자랑했다. 평균 리바운드가 소폭 하락했지만 득점으로 메우고도 남을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KT&G는 지난 시즌처럼 많이 이기지 못했다.
 

챈들러는 건재했으나 다른 외국 선수 활약이 아주 저조했다. 시즌 초반에 켈빈 워너가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뛰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워너가 빠져 있는 동안 챈들러의 부담만 가중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워너가 대마초 흡연이 적발되면서 중징계를 피하지 못했다. 워너가 KBL에서 제명이 되면서 KT&G는 전력 유지에 빨간불이 켜졌다. 새로운 외국 선수를 찾았으나 신통치 않았다. 워너가 빠져 있는 동안 로버트 서머스와 조나단 존스가 들어왔으나 워너의 자리를 채우기에 모자랐다. 이후 그의 제명 이후 토마스 패얼리의 가세로 그나마 전열을 구축했으나 여러모로 꼬인 실타래를 풀기에는 부족했다. 그럼에도 KT&G는 챈들러와 주희정을 내세워 플레이오프 진출을 꾸준히 노렸으나 역부족이었다.
 

결국, KT&G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KT&G는 지난 2008-2009 시즌에 29승 25패로 창원 LG, SK와 공동 5위로 정규시즌을 마쳤다. 결국, 3자 동률이 나온 가운데 타이브레이커 결과 LG가 5번시드, LG가 6번시드를 차지했다. KT&G는 LG와 SK를 상대로 유독 많은 승리를 챙기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LG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SK에 밀려난 것은 실로 뼈아팠다. 두 팀은 지난 2008 플레이오프 첫 관문에서 마주했고, KT&G가 이기면서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 올랐기 때문. 그러나 이 때 SK에 밀리면서 KT&G가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챈들러의 시즌도 다소 아쉽게 마무리가 됐다. 그러나 KT&G에서는 주희정이 소속팀이 플레이오프에 탈락하고도 정규시즌 MVP를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원주에서의 우승 도전 & 서울을 거쳐 다시 안양으로
KBL은 2009-2010 시즌부터 외국 선수 출장 규정을 보다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2, 3쿼터에 한 해 두 선수가 나섰다면, 2009-2010 시즌부터 두 명 보유 한 명 출장으로 제도가 바뀌었다. 이로 인해 많은 구단이 센터 둘을 외국 선수 전력으로 분류한 가운데 동부는 1라운드에서 KT&G와 재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챈들러를 지명했다. 2라운드에서 센터인 게리 윌킨슨을 선택한 것. 김주성이라는 빼어난 토종 빅맨을 보유하고 있는 동부로서는 이참에 공격에서 좀 더 원활하길 바랐다. KT&G의 간판이던 챈들러가 동부로 이적한 셈이 되면서 동부의 전력이 훨씬 더 강해졌다. 김주성이 버티고 있어 그가 수비 부담을 덜게 된 점이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종전처럼 외국 선수가 동시에 나설 수 없게 되면서 챈들러 영입 효과는 생각만큼 도드라지지 않았다. 외국 선수 간 매치업이 야기되기도 했으며, 김주성이 센터로 나설 수는 있었으나 부담이 가중된 측면도 없지 않았다. 챈들러도 이전처럼 30분 이상을 꾸준히 뛰기 어려웠다. 두 선수 중 한 명만 코트를 밟아야 했기 때문. 그러나 그는 탄탄한 내구성을 자랑하는 이답게 모든 경기에 나서면서 꾸준한 득점력을 자랑했다. 54경기에서 평균 16.1점(2점슛 성공률: 51.9%, 3점슛 성공률: 36.4%, 자유투 성공률: 89.0%) 3.7리바운드 2.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동부의 공격을 이끄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동부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만족했다. 직전 시즌 우승을 차지하며 기세를 드높였지만, 33승 21패로 리그 5위로 시즌을 마쳤다. 플레이오프에서 리그 4위인 LG를 만나 높이의 이점을 드러내며 한 경기도 내주지 않고 완승을 거뒀다. 김주성이 1차전에 29점을 올리는 등 1라운드를 치른 세 경기에서 평균 20.3점을 올리며 LG의 골밑을 확실하게 침공했다. 반면, 챈들러는 1라운드에서 다소 주춤했다. 그러나 2라운드에서 살아났다. 준결승에서 울산 모비스를 상대로 나아진 모습을 보였지만, 팀의 승리로 이어지지 못했다. 모비스가 브라이언 던스턴을 주요 전력으로 두고 있어 매치업을 위해 챈들러를 주요 선수로 두기도 쉽지 않았으며, 그가 뛸 때 실점도 적지 않았기 때문. 저득점 행진이 펼쳐진 끝에 2차전에서 72-70으로 이기면서 유리한 고지를 잡았으나 안방에서 열린 3, 4차전을 내리 내주고 말았다.
 

시즌 후 그는 서울 SK로 향했다. 당시 SK는 삼성에서 맹활약하던 레더를 주요 외국 선수로 데려왔으며, 다음 챈들러를 품기로 했다. 원래 챈들러에 앞서 마이클 헤인즈와 계약했으나 시즌 개막 직전에 헤인즈를 내보내기로 했다. SK는 경력자를 찾기로 했으며, 챈들러를 영입하기로 했다. 챈들러는 네 시즌 연속 한국에서 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그는 SK에서 역할이 좀 더 줄었다. 레더가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했기 때문. 문제는 그의 몸 상태였다. 이전과 같은 몸놀림이 전혀 아니었다. 개막 이후 12경기에서 평균 6.1점(2점슛 성공률: 48.8%, 3점슛 성공률: 28.6%, 자유투 성공률: 70.0%) 1.9리바운드 0.8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결국, SK는 시즌 도중 그와 결별하기로 했다. SK는 챈들러를 방출하고 자시 클라인허드를 데려오면서 골밑을 다지는데 중점을 뒀다.
 

선수 생활 이후 처음으로 시즌 중 방출을 겪은 그는 이후 바레인, 포르투갈에서 뛰면서 남은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후 지난 2011-2012 시즌에는 새로운 계약을 따내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2012년 여름에 일본의 지바 제츠와 계약해 한 시즌을 보냈으며, 일본에서 검증을 마친 그는 다시 안양의 부름을 받았다. 그 사이 KT&G는 KGC인삼공사로 팀을 바꿨으며, 안양에서 뛸 수 있게 됐다. 이번에도 챈들러는 시즌 개막 직전에 교체 선수로 KGC에서 뛰게 됐다. 주요 선수로 분류되긴 어려웠던 만큼, 대체 선수로 합류해 자신의 친정에서 뛸 기회를 얻었다. 그나마 챈들러는 SK에서 부진할 때의 모습은 아니었다. 24경기에서 평균 9.2점(2점슛 성공률: 44.4%, 3점슛 성공률: 29.0%, 자유투 성공률: 84.0%) 3.4리바운드 1.2어시스트를 올리며 명예 회복에 성공했다.
 

그러나 KGC는 시즌 중후반에 외국 선수를 바꾸기로 하면서 아쉽게도 제대로 시즌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그의 대체 선수로는 웬델 맥키네스가 가세했다. 그는 방출 직후 푸에르토리코에서 프리시즌을 치른 후, 농구공을 잡지 않았다. 한 번의 시범경기를 소화한 것을 끝으로 은퇴했다. 곧바로 은퇴한 것으로 봐서는 정식 계약을 따내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30대에 접어들면서 더는 이전의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한 탓이 컸다. 결정적으로 그가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도중 KBL도 외국 선수 출전 시간을 대폭 축소한 탓에 센터가 아닌 그가 한국에서 많은 시간을 뛰는 것이 어려웠던 탓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챈들러가 은퇴한 이후 더는 외곽에서 주도적으로 공격을 창출하는 포워드를 외국 선수로 보기 쉽지 않아졌다.
 

사진_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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