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2010년대 중반에 돋보였던 득점원, 라이온스

이재승 기자 / 기사승인 : 2022-11-07 10: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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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9월 중순에 작성했으며,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2년 10월호에 게재됐습니다. (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2014년부터 프로농구에서 뛰면서 세 시즌 연속 뛴 이는 많지 않았다. 

 

당시 리그를 대표하는 외국 선수인 애런 헤인즈와 로드 벤슨을 제외하고는 장수하지 못했다. 리오 라이온스도 빼놓을 수 없다.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하기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각기 다른 팀의 부름을 받았다. 비록 마지막은 기량 미달로 교체가 되긴 했으나 2010년대 장신이면서도 공격력을 두루 갖춘 선수들이 많았고, 그 중 라이온스도 있었다.

대학 시절 & KBL 진출 이전
라이온스는 미국 캔자스주 토페카에서 태어났다. 캔자스주의 파이퍼고등학교를 다니다 버지니아주의 코스털크리스털고교로 학교를 옮겼다. 파이퍼고를 다닐 당시 평균 18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라이온스는 캔자스주를 대표하는 고등학교 선수에 이름을 올렸다. 전학 이후에도 평균 21점 9리바운드를 올리면서 두각을 보였다. 그는 파워포워드 중에서 유망주로 두각을 보였다. 미주리대학교로 진학했다. NCAA 미주리 타이거스는 빅12컨퍼런스의 강호이자 미주리주를 대표하는 학교였다.
 

첫 두 시즌 동안에는 뚜렷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1학년인 지난 2005-2006 시즌에는 25경기에 꾸준히 나섰으나 경기당 9.5분을 뛰며 2.6점을 올리는 데 그쳤다. 

 

이듬해에는 30경기에서 평균 17.9분을 소화하며 출전시간을 확보했다. 이에 힘입어 경기당 7.4점(필드골 성공률 : 55.0%, 3점슛 성공률 : 19.0%, 자유투 성공률 : 64.6%) 4.3리바운드를 올렸다.
 

그는 3학년 때부터 두각을 보였다. 지난 2007-2008 시즌에 31경기에 나섰으며, 이중 22경기를 주전으로 출장하며 붙박이로 자리를 잡았다. 평균 22.1분 동안 13.1점(필드골 성공률 : 58.3%, 3점슛 성공률 : 7.7%, 자유투 성공률 : 63.5%) 5.7리바운드를 올렸다. 직전 시즌 대비 각종 평균 기록이 늘었다. 슛 성공률이 단연 돋보였다. 그러나 외곽에서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대미는 4학년일 때였다. 지난 2008-2009 시즌에는 37경기에서 경기당 23.2분 동안 14.6점(필드골 성공률 : 49.3%, 3점슛 성공률 : 38.5%, 자유투 성공률 : 74.3%) 6.1리바운드 2어시스트 1스틸을 기록했다. 대학 진학 이후 해마다 발전했던 그는 지난 2007-2008 시즌부터 밴더빌트 코모도스에서 전학 온 드마레 캐럴(밀워키 코치)과 함께 뛰었다.
 

캐럴과 주요 전력으로 나서면서, 미주리가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 일조했다. 지난 2008-2009 시즌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토너먼트와 거리가 있었던 미주리는 12승 4패로 정규시즌을 3위로 마쳤다. 그러나 토너먼트에서 살아남으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 해 라이온스는 올-빅12 서드팀에 선정됐다. 정규시즌에 좋은 성적을 거둔 데 힘입어 NCAA 토너먼트에도 나섰다. 토너먼트에서 8강에 올랐으나, 엘리트에이트에서 코네티컷 허스키스에 패하며 아쉽게도 파이널포에 오르지 못했다.
 

대학 졸업 후 2009 드래프트에 명함을 내밀었다. 하지만 지명을 받지 못했다. NBA 서머리그에서 나섰으나 한계를 보였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인디애나 페이서스 소속으로 뛰었으나 8경기에서 평균 12.3분을 뛰며 7.4점(필드골 성공률 : 61.8%, 3점슛 성공률 : 33.3%, 자유투 성공률 : 80.0%) 2.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이후 이스라엘리그에서 한 시즌을 보냈다. 그는 이후 다시 서머리그를 찾았다. 뉴욕 닉스 소속으로 나섰으나 뚜렷한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그는 D-리그(현 G-리그)에서 기회를 엿보고자 했다. 어스틴 토로스(현 스퍼스)에서 뛰었다. 27경기에서 평균 14.9점 6리바운드를 올리면서 조금씩 두각을 보였다. 지난 2011-2012 시즌에는 26경기에서 경기당 16.2점 8.9리바운드를 올리면서 생애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그는 시즌 도중 다코타 위저즈(현 샌터크루즈 워리어스)로 트레이드가 됐다. G-리그 생활을 마친 그는 다시 유럽을 택했으며,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몸담았으며, 터키에서 뛴 후 한국행을 택했다.

서울 삼성 & 고양 오리온스
그는 지난 2014 외국 선수 드래프트에 얼굴을 보였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유계약 시절에야 코트를 밟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된 바 있으나, 뚜렷한 성장을 이뤄내지 못하면서 국내 무대에 관심을 보였다. 당시 서울 삼성이 1라운드 1순위 지명권을 얻었고, 라이온스를 호명했다.

삼성은 고양 오리온스(현 캐롯)와의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삼성은 라이온스와 방경수를 오리온에 내주기로 했고, 오리온은 찰스 가르시아와 이호현을 건네며 거래가 성사됐다. 오리온은 당초 플레이오프 진출 이상을 노렸다. 

 

트로이 길렌워터라는 좋은 득점원을 보유하고 있었던 오리온은 가르시아가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였고, 오리온스의 추일승 감독(현 대표팀 감독)이 라이온스를 눈여겨 본 결과이기도 했다. 오리온스는 길렌워터에 라이온스까지 더하면서 막강한 외국 선수 전력을 꾸렸다.


그러나 라이온스의 오리온스행은 생각보다 큰 효과가 없었다. 라이온스는 많은 시간을 뛸 때, 좀 더 주도적인 활약을 펼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리온스에는 이미 길렌워터가 1옵션으로 자리하고 있었던 만큼, 라이온스가 삼성에서 뛸 때처럼 돋보이는 전력이 되긴 쉽지 않았다. 

 

라이온스는 삼성과 오리온스에서 뛰는 동안 경기당 26.4분을 소화하며 18.9점(필드골 성공률 : 44.4%, 3점슛 성공률 : 34.0%, 자유투 성공률 : 77.1%) 8.9리바운드 2.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삼성에서 핵심 전력으로 뛰었으나 오리온스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트레이드로 시즌 중에 팀을 옮겼던 만큼, 호흡이 원활했다고 보기 어려웠다.
 

오리온스는 정규시즌 5위를 차지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그러나 6강 플레이오프에서 데이번 제퍼슨이 이끄는 창원 LG를 넘어서지 못했다. 제퍼슨과 길렌워터의 맞대결로 관심을 모은 가운데 LG가 웃었다. 

 

LG는 제퍼슨과 문태종을 주축으로 나섰으며, 김종규(DB)와 김시래(삼성)가 주전 전력으로 나서면서 탄탄한 전력을 과시했다. 양 팀은 연고지 이동 중 가장 먼 창원과 고양을 오가며 최종전인 5차전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1차전을 큰 점수 차로 패한 오리온스는 2차전을 따내며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가져갔다. 그러나 3차전에서 74-73으로 아쉽게 경기를 내주면서 탈락 위기에 놓였다. 4차전을 가져오며 시리즈를 마지막까지 몰고 갔으나 적지에서 열린 5차전에서 83-80으로 패하면서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울산 모비스 & 전주 KCC
라이온스는 지난 2014-2015 시즌 후 오리온스와 재계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2015년에 다시 외국 선수 드래프트에 나섰다. 울산 모비스(현 현대모비스)는 1라운드 10순위로 라이온스를 뽑았다. 

 

직전 시즌 우승을 차지하며 프로농구 최초로 3연패를 달성했던 모비스는 리카르도 라틀리프(라건아)가 삼성에 1순위로 뽑혔고, 문태영이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전력 약화를 피하지 못했다. 

 

모비스는 라틀리프와 문태영과 함께할 수 없게 되면서 모비스는 새로운 판을 짜기로 했다. 모비스는 1라운드에서 센터가 아닌 포워드인 라이온스를 택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2라운드에서는 커스버트 빅터를 택했다. 2015-2016 시즌에는 장·단신으로 선수를 구분해서 선발해야 했다.
 

라이온스는 초반에 모비스에 좋은 전력이 됐다. 득점원이 부족했던 모비스에서 공격력을 갖춘 라이온스는 필요한 조각이었다. 라이온스는 시즌 초반에 전주 KCC와의 경기에서 라이온스가 이날 가장 많은 29점을 포함해 10점 4어시스트를 올리며 힘을 냈다. 

 

함지훈과의 호흡이 단연 돋보였다. 3연패 기간 동안 라틀리프와 문태영 사이에서 역할이 다소 많지 았었던 그였지만, 이들이 떠나면서 안쪽에서 공간을 잘 활용하며 다시금 진가를 보였다. 여기에 외곽에서 주로 공격하는 라이온스가 더해지면서 좋은 조합을 자랑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라이온스는 시즌 초반에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중상을 당하며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모비스는 하는 수 없이 대체 선수 물색이 나섰고, 아이라 클라크를 데려왔다. 

 

클라크는 이때를 시작으로 수년 동안 모비스와 인연을 맺었고, 지난 시즌까지 현대모비스에서 코치로 재직하는 등, 현대모비스와 꾸준히 동행했다.
 

부상으로 남은 시즌을 뛰지 못했던 그는 2016년에 다시 외국 선수 드래프트에 나섰고, 이번에는 KCC의 부름을 받았다. KCC는 2라운드 7순위로 그를 택했다. 

 

이전까지 꾸준히 1라운드에 뽑힌 그였지만, 그 사이 약점이 간파됐을 뿐만 아니라 한계도 명확했기에 지명 순번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부상 이후 경기력은 고사하고 운동 능력 유지가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기에 그에 대한 기대치는 높지 않았다.
 

KCC는 직전 시즌에 엄청난 득점력을 자랑했으나 그만큼 공을 소유하는 시간이 많았던 안드레 에밋과 재계약을 체결했다. 에밋이 단신 선수로 자리했던 만큼, 장신 선수를 뽑아야 했던 KCC는 2라운드에서 뚜렷한 빅맨을 고르기 쉽지 않았다. 이에 국내 무대 경험이 있는 라이온스를 택했다. 

 

그러나 라이온스는 지난 2016-2017 시즌을 끝까지 채우지 못했다. 부상을 당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32경기에서 평균 32분을 뛰었다. 21.3점(필드골 성공률 : 48.7%, 3점슛 성공률 : 23.4%, 자유투 성공률 : 75.9%) 9.7리바운드 2.5어시스트를 올렸다.
 

문제는 에밋과 함께 뛸 때였다. 공존은 여전히 쉽지 않았고, 하승진이 있긴 했으나 그가 많은 시간 뛰기 어려웠던 만큼, 그의 뒤를 받칠 백업 센터가 필요했다. 이에 KCC는 라이온스를 내보내고 클라크를 불러들였다. 

 

클라크는 지난 2015-2016 시즌에 이어 2016-2017 시즌까지 2년 연속 대체 선수로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며, 공교롭게도 라이온스의 후임(?)으로 KCC에서도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반면, 라이온스는 KCC에서의 시즌을 끝으로 프로농구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일본에서
라이온스는 KBL을 떠난 이후 거의 일본에 정착했다. 프로농구에서 세 시즌 연속 뛴 이후 현재까지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KCC에서 방출된 이후 곧바로 일본의 B리그에서 뛰고 있다. 2017년에 치바 노던해피네츠에서 시즌을 마쳤다. 2017-2018 시즌에는 치바 제츠, 2018-2019 시즌부터 토야마 그로우시스에서 두 시즌을 보냈다. 

 

지난 2020-2021 시즌에는 나고야 다이아몬드돌핀스, 2021-2022 시즌부터 알트리 치바에 몸담고 있다.

 

사진_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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