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판은 프로 스포츠에서 좋은 말을 듣지 못하는 직업이다. 늘 비판과 비난에 시달리는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심판이 겪는 스트레스는 생각 이상으로 크다.
WKBL 경기운영본부도 마찬가지다. WKBL 경기운영본부는 심판 판정을 포함한 경기 운영을 총괄하는 단체. 판정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곳이다.
정진경 WKBL 경기운영본부장도 이를 알고 있다. 그래서 경기운영본부장으로서의 첫 시즌을 ‘반성’으로 마무리했고, 두 번째 시즌 역시 ‘반성’으로 준비하고 있다. 그녀가 ‘반성’이라는 단어를 꺼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978년생인 정진경은 190cm의 큰 키에 탄탄한 기본기를 지닌 빅맨이었다. 한국 여자농구의 레전드였던 박찬숙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평가받았다. 그래서 모든 실업 팀이 정진경의 재능에 탐을 냈다.
그러나 IMF가 유망주 빅맨인 정진경의 앞길을 막았다. 드래프트 파동도 겹쳤다. 앞길이 막힌 정진경은 낯선 땅인 대만으로 향했다. 하지만 세 번의 ‘전방십자인대 파열’이 정진경의 앞길을 또 한 번 막아섰다. 발전만 해도 부족한 시간을 재활과 치료에 써야 했다.
그리고 2005년. 한국 나이로 28살에 WKBL로 들어왔다. 신인왕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선수 생활을 오랜 시간 하지 못했다. 너무 많은 부상이 정진경을 지치게 했기 때문이다. 특급 유망주의 프로 생활은 그렇게 화려하지 못했다.
2005년 WKBL 신인왕을 차지했습니다.
(2005 겨울리그에서 20경기 평균 30분 44초를 뛰었고, 5.8점 5.2리바운드 2.1어시스트 1.0블록슛을 기록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코오롱에 입단했습니다. 그렇지만 IMF가 터진 후, 팀이 해체됐어요. 대만으로 넘어가서 8년 정도 선수 생활을 했어요.
대만에서 선수 생활을 마친 후, 중고 신인으로 WKBL에 합류했습니다.(웃음) 그리고 한때는 유망주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대감이 컸습니다. 또, 대만으로 넘어갈 때 이슈(코오롱이 해체된 후, 정진경은 신용보증기금의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지명에 반발해 대만으로 떠났고, WKBL은 정진경에게 ‘5년 자격 정지’를 내렸다)도 있어서, 부담감이 컸습니다. 그리고 한국 오기 전에, 십자인대 수술도 3번을 했죠.
그래도 드래프트 동기들보다 많은 시간을 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기록을 남겼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한참 어린 동기들을 제치고 신인상을 받는 게) 내심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신인상을 안 받으면 안 되냐?”고 구단에 문의를 했죠. 하지만 규정상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말씀하신 대로, 대만에서 농구를 하셨습니다.
코오롱에서 같이 운동했던 천은숙 선배님께서 대만으로 먼저 넘어갔습니다. 당시 천은숙 선배님께서는 외국인 선수로 대만에서 뛰고 있었고, 저에게 “대만 농구의 분위기를 한 번 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셨어요.
저도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또, 대만 팀(태원방직) 감독님이 한국화장품에서 뛰셨던 이형숙 감독님이셨습니다. 그리고 대만에 갔는데, 분위기나 모든 게 신선했습니다. 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어요. “돈을 많이 줘서, 대만으로 간 거 아니냐?”고 말씀하신 분도 계셨지만, 그건 아니었어요. 대만에서 받는 월급이 한국보다 적었고, 대만의 농구 환경 역시 한국보다 좋지 않았거든요.
2007~2008 시즌 종료 후 은퇴했습니다. 꽤 이른 나이에 은퇴하셨는데요.
저를 지명해준 신세계(현 부천 하나원큐)에 너무 죄송했습니다. 그렇지만 무릎이 너무 안 좋았어요. 게다가 한국은 대만보다 운동을 많이 했습니다. 대만에서는 하루에 1번 저녁에만 운동하는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제가 한국으로 들어온 첫 해에, 저희 팀이 가드 외국 선수를 선발했어요. 제가 상대 외국 선수와 맞대결할 수밖에 없었죠. 나름 버티려고 했지만, 무릎이 점점 악화됐어요. 더 해보고 싶었는데, 결국 안 되더라고요.

2007~2008 시즌 종료 후 은퇴한 정진경은 모교에서 코치를 시작했다. 신길초와 숭의여중에서 차례대로 코치를 맡았다. 모교에서 코치 경험을 쌓은 정진경은 중국여자프로농구 산시 신루이에서도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2016년. 친정 팀인 부천 KEB하나은행(현 부천 하나원큐)의 코치를 맡았다. 2016~2017 시즌부터 3시즌 동안 이환우 감독을 보좌했다. 그러나 KEB하나은행은 3시즌 모두 플레이오프에 나서지 못했다. 이환우 감독이 2018~2019 시즌 종료 후 사퇴했고, 정진경 코치도 KEB하나은행에 남지 못했다.
코치로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내적 자산을 놓고 보면, 실패라고 하기 어려웠다. 실패 속에 많은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진경은 “코치 시절 많은 것을 배웠다”고 전했다.
2016~2017 시즌부터 부천 KEB하나은행(현 부천 하나원큐)의 코치를 맡았습니다.
은퇴 후 제가 다녔던 초중학교에서 7년 동안 코치를 맡았습니다. 초중학교 코치 생활을 끝낸 후, 잠시 쉬는 타이밍이 있었어요. 그 때 임달식 감독님께서 저한테 “중국으로 같이 가자”고 제안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임달식 감독님께서 일찍 한국으로 오셨습니다. 감독님께서 떠나셨지만, 저는 소속 팀의 한국 전지훈련 일정까지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전지훈련 중 하나원큐와 연습 경기를 했는데, 하나원큐도 마침 감독님을 바꾼 상황이었어요. 그 때 하나원큐에서 저에게 코치를 제안해주셨습니다. 저는 당연히 가고 싶었고, 하나원큐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코치 정진경’과 ‘선수 정진경’은 어떤 게 달랐을까요?
저는 잘하는 선수로 은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대만으로 가기 전만 해도, ‘탑 클래스 유망주’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선수로서 욕심과 자부심이 컸죠. 그렇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경기력으로 선수 생활을 마쳐서, 저 자신에게 화도 나고 속상했습니다. 실력이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 역시 받아들이지 못했죠.
그렇게 은퇴한 후, 1년 만에 코치를 시작했습니다. 코치를 처음 할 때만 해도, 선수 때 갖고 있던 마음을 버리지 못했어요. 자존감이 높았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코치 시작한 지 3년 정도 됐을 때, 제가 뭔가를 깨닫는 계기가 생겼습니다. 신장이 크지 않았던 초등학생 선수의 키에 맞춰서 시범을 보였는데, 그 아이의 눈높이로는 위쪽을 바라보기 어려웠습니다. “이 친구는 이런 게 어려웠겠구나”라고 생각했죠. 그 때의 경험이 저에게 큰 깨달음을 줬어요. 그제서야, 선수의 눈높이를 어떻게 맞출지 생각했습니다.
2018~2019 시즌 종료 후 코치에서 물러났습니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게 내심 아쉬웠을 것 같습니다.
코치로 있던 세 번의 시즌 모두 성적이 좋지 않았어요. 상당히 힘든 시기였죠. 경기 끝나고 돌아가는 길이 더 추웠던 것 같아요.(웃음) 아쉬움도 컸고요. 그렇지만 코치로서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팀이 좋은 성적을 못낸 건, 코치의 책임이 분명 크거든요.
하지만 초중고와 중국 프로 팀, WKBL에서도 코치를 경험했습니다. 다양한 경험은 저에게 큰 자산이 됐습니다. 많이 진 건 아쉽지만, 오히려 많이 졌기 때문에 더 많은 걸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대로, 정진경은 2018~2019 시즌 종료 후 KEB하나은행 코치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코트에서 물러난 건 아니었다. 해설위원과 칼럼니스트로 코트를 부지런히 누볐다. 새로운 분야에 계속 도전했다.
그리고 2021년 4월. 박정은 전임 경기운영본부장이 부산 BNK 썸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박정은의 자리를 대신한 이는 정진경이었다. ‘WKBL 경기운영본부장’이라는 새로운 직함으로 2021~2022 시즌을 시작했다.
신임 경기운영본부장의 철학은 확고했다. 의욕도 컸다. 그러나 경기운영본부장으로서의 첫 시즌은 ‘반성’의 연속이었다. 의욕은 컸지만, 문제를 정확하게 대처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잘못을 알았다는 것에 만족한 첫 시즌이었다.
2021년 4월 WKBL 경기운영본부장으로 임명됐습니다.
코치에서는 물러났지만, 코트와는 가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코트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저에게 생겼어요. 해설위원이나 칼럼니스트 자격으로 코트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죠.
그렇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경기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코트로 갈 기회도 줄어들었죠. 그러던 와중에, WKBL로부터 경기운영본부장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것에 계속 도전했기 때문에, 새로운 곳으로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운도 많이 따랐고요.
경기운영본부장의 가장 큰 임무는 무엇인가요?
경기 운영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심판 판정’입니다. ‘심판이 얼마나 공정하게 판정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요. 이긴 팀과 진 팀 모두 판정 때문에 억울하면 안 됩니다.
심판 판정이 매 시즌 발전하려면, 경기운영본부가 신경을 써야 합니다. 또, 감독님과 코치님, 선수들과 지속적으로 소통을 해야 합니다. 모두가 억울하면 안 되기 때문에. 경기운영본부는 경기를 치르는 모든 구단에 믿음을 줘야 해요.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임 후 가장 먼저 강조했던 건 어떤 걸까요?
농구 코트와 법정 모두 코트(court)라고 부릅니다. 법정에는 판사가 있다면, 코트에는 심판이 있어요. 판결과 판정 모두 특정한 쪽으로 기울면 안 되고, 판사와 심판 모두 공정하게 상황을 볼 수 있어야 해요. 과정의 투명함도 중요하고요.
앞서 말씀드렸듯, 심판과 벤치의 소통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벤치에서 항의를 했을 때, 심판들은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벤치에 설명해야 합니다. 오심 역시 나올 수 있기에, 오심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확하지 못한 판정에는 “미안하다”고 해야 해요. 경기에 임하는 양 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모두 경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심판진이 더 집중해야 합니다.
2021~2022 시즌은 경기운영본부장으로서 맞은 첫 시즌이었습니다.
어느 일이나 그렇듯, 처음에는 기대감과 의욕이 컸어요. 긴장도 많이 하고, 모든 걸 반짝반짝하게 봤습니다. 업무 자체에 있어서는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다만, 시즌 후반부로 갈수록, 논란 있는 판정이 나왔습니다. 거기에 더 정확하게 대처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저희가 이런 점을 놓쳤습니다’고 인정하고, ‘이렇게 하는 게 정확했다’고 소통을 해야 했는데, 그런 대응이 미진했습니다. 반성도 많이 했고요.

WKBL은 2022~2023 시즌부터 ‘파울 챌린지’를 도입할 예정이다. 지난 8월에 열린 박신자컵에서 ‘파울 챌린지’를 시험 적용했다.
‘파울 챌린지’의 방법은 간단하다. 시합에 임하는 양 팀 감독이 미심쩍은 파울 콜에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는 것이다.(단, 4쿼터에 단 1회만 사용 가능하다) 의도는 명확하다. 심판진의 집중력을 높이고, 오심을 줄이는 것이다.
제도적 변화가 크지만, 경기운영본부가 해야 할 원칙까지 변한 건 아니다. 경기운영본부가 견지해야 할 원칙은 ‘공정성’과 ‘투명함’이다. 경기운영본부장으로서 두 번째 시즌을 맞은 정진경도 원칙에는 변화를 주지 않았다.
경기운영본부장이 지켜야 할 가장 큰 가치는 어떤 걸까요?
심판 분들도 그렇겠지만, 저 역시도 ‘공정성’과 ‘투명함’을 갖춰야 합니다. 그리고 농구를 했기 때문에, ‘정진경 본부장이 A랑 친하지 않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변의 그런 말들을 견뎌내야 하고, 저 스스로 그런 생각을 없애야 합니다. 중립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해요. 그런 점을 심판 분들에게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판정은 자신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심판은 칭찬을 받지 못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실수할수록 위축될 수 있습니다. 멘탈도 흔들리고요. 물론, 심판 분들에게 “그런 상황이 와도, 흔들리면 안 된다”고 강하게 이야기하지만, 자신감도 심어줘야 합니다. 경기 운영을 어수선하게 한 심판에게는 정확한 피드백을 하되, 좋은 판정을 한 심판에게는 그에 걸맞은 대우와 자신감을 줘야 해요.
로컬 룰을 도입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룰이고,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요?
NBA에서 시작한 ‘파울 챌린지’를 도입할 예정입니다. 승패가 갈릴 수 있는 상황에서 나오는 오심을 정정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심판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제도라고 볼 수도 있지만, 오심 하나를 없애기 위한 제도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일단 감독님과 관계자 분들께서 긍정적으로 바라봐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시작하려고 합니다. 다만, 시즌 시작하고 나서는 어떤 상황이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지속 가능성에 관한 문제도 고민해야 하고요.
경기운영본부장으로서 두 번째 시즌을 맞았습니다. 어떤 목표를 갖고 계신가요?
새로운 로컬 룰이 도입된 만큼,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됩니다. 두려움도 있고요. 그리고 2년차로 접어드니, 경기운영본부장으로서 해야 할 일들과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더 많이 보여요. 첫 시즌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첫 번째 시즌에 잘못했던 점들을 많이 반성했습니다. 걱정하고 있는 것들 때문에, 시즌을 못 치르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팬들께서 농구를 즐겁게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구단이 겪을 수 있는 억울함도 나오지 않도록, 경기운영본부장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하겠습니다.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
사진 제공 = WKBL
[저작권자ⓒ 바스켓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BK포토화보] 부산 KCC vs 고양 소노 챔피언결정전 4차전 경기모습](/news/data/20260511/p1065589134006878_578_h2.jpg)
![[BK포토화보] 부산 KCC vs 고양 소노 챔피언결정전 3차전 경기모습](/news/data/20260510/p1065541043822507_203_h2.jpg)
![[BK포토] 소노 VS KCC 챔피언결정전 1차전](/news/data/20260505/p1065616440284380_902_h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