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메인만큼 강력했던 조력자, 임재현 배재고 코치

손동환 기자 / 기사승인 : 2021-11-28 22:2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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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인터뷰는 2021년 9월 9일 오전 10시 20분에 진행됐고,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1년 10월호에 게재됐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신 스틸러’라는 말이 있다. ‘주연’처람 많은 시간 나오는 건 아니지만, 짧은 시간 임팩트 있는 연기로 관객들의 시선을 끄는 존재다.
임재현(현 배재고등학교 코치)도 현역 시절 최고의 ‘신 스틸러’ 중 하나였다. 주연으로서는 강한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조연으로서는 팀 승리에 필요한 존재였다.
임재현은 선수로서 2번, 지도자로서 1번의 우승을 경험했다. 선수 생활을 마친 후, 3년 동안 프로에서 지도자 생활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선수와 코치로서 쌓은 노하우를 모교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제2의 이상민
임재현에게 제일 많이 붙은 수식어는 ‘제2의 이상민’이었다. 뛰어난 패스 센스와 안정적인 경기 조율, 적재적소에 맞는 플레이 등 정교함을 추구하는 포인트가드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제2의 이상민’에 맞는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우승 DNA를 갖춘 농구인이었다. 전주 KCC에서 두 번의 우승을 차지했고, 지도자로 발걸음을 떼자마자 고양 오리온에서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
이상민에 못 미쳤을 뿐, 포인트가드로서의 경쟁력이 뛰어났다. 2000~2001 시즌 데뷔 후 세 시즌 연속 정규리그 전 경기 출전(45경기 : 1회, 54경기 : 2회)를 포함, 개인 통산 정규리그 전 경기 출전 6회를 달성했다. 개인 통산 651경기에서 평균 26분 22초 동안 7.3점 3.4어시스트 2.3리바운드에 1.3개의 스틸을 남겼다.
그러나 임재현은 스스로를 냉정하게 돌아봤다. ‘제2의 이상민’이라는 칭호는 자신에게 과분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뷰에서 “나는 그 정도에 다가갈 수 없는 선수다”라고 이야기했다. 과분한 칭호로 인해, 이상민(현 서울 삼성 감독)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제2의 이상민’으로 불렸습니다.
이상민 감독님은 워낙 대단한 분입니다. 저랑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분이죠. 다만, 신체 조건과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했기 때문에, 제가 그런 칭호를 받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제2의 이상민’으로 불렸지만,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청소년 대표를 했고, 또래 사이에서는 괜찮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주위에서 스피드와 패스, 득점 능력을 좋게 봐주셨습니다.
그렇지만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과 비교하기에는, 제가 너무 부족했습니다. 저 스스로도 ‘그 정도의 선수는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또래 선수들에 비해 괜찮게 하는 정도여서, 그런 기대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 정도의 선수가 아닌데, 왜 이렇게 큰 칭찬을 해주실까?’라는 생각도 했고요.(웃음)
본인을 너무 과소평가하시는 것 같아요. 너무 낮게 평가하기에는, 우승 경험도 많으셨잖아요.
중앙대 3~4학년 때는 전관왕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동료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제 위로는 조우현 선배가 계셨고, 제 밑에는 송영진 휘문고 코치와 김주성 DB 코치가 있습니다. 우승을 많이 할 수 있는 멤버였죠.
다만, 그 때 우승을 하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중요한 경기에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스타성 있는 선수가 큰 경기에는 필요하다고도 생각했고요.
프로에서는 30대 초중반에 첫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농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때였죠. 경험과 노련함도 어느 정도 쌓였던 것 같아요. 감독님과 동료들이 원하는 걸 알고 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해요.
주축 선수로 우승에 기여하는 것도 어렵지만, 조력자로서 우승에 기여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임재현 코치님께서는 현역 시절 조력자로 우승에 많이 기여했습니다.
식스맨으로 많이 나갔습니다. 주축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거나 힘들어할 때, 제가 투입되는 경우가 많았죠. 또, 상대가 주전 선수들한테 집중하다 보니, 제가 마음 놓고 경기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 체력도 어느 정도 쌓고, 좋은 여건 속에 경기를 뛰었습니다. 그래서 제 경기력을 유지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식스맨이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투입될지를 생각했습니다. 전태풍 선수(은퇴)나 강병현 선수(현 창원 LG), 추승균 감독님(현 SPOTV 해설위원) 등이 쉴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했습니다. 교체될 선수에 맞춰, 어떤 걸 해야 할지 생각했던 거죠.
그리고 기회를 받았을 때 이행을 못하면, 저는 기회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 기회가 다른 선수에게 간다는 걸 알기에, 저는 죽기살기로 했습니다. 그런 간절함도 컸던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경기는 어떤 게 있을까요?
2010~2011 시즌 4라운드였을 겁니다. 서울 삼성과의 경기에서 결승 버저비터를 넣었습니다. 그 경기(2011년 1월 14일 : 전주 KCC vs 서울 삼성, 잠실실내체육관)가 기억이 납니다.
그 날 경기가 접전이었어요. 2차 연장 때도 승부가 안 났어요. 저희가 107-104로 이기고 있을 때, 저희가 애런 헤인즈한테 자유투를 내줬어요. 헤인즈가 1구를 성공하고 2구를 실패했는데, 저희가 강혁 선수(현 한국가스공사 코치)한테 풋백 득점을 허용했어요. 동점이 됐죠.
3차 연장에 가야 하나 싶었는데, 4초 정도 남았더라고요. 엔드 라인 부근에서 볼을 잡고 다 제친 다음에 슛을 했어요. 그게 운 좋게 들어갔죠.(웃음)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어요. 허재 감독님(전 대한민국 남자농구 대표팀 감독)을 비롯해, 벤치에서 다 같이 좋아해줘서 더 기뻤던 것 같아요. 팀 승리를 결정한 버저비터라, 저 스스로도 더 큰 희열을 느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2010~2011 시즌 우승이 기억납니다. 그 때 전태풍 선수가 아파서, 제가 플레이오프 때부터 많이 뛰었어요. 챔프전 때는 제가 거의 뛰었죠. 공헌도가 많은 상태에서 우승을 했기 때문에, 자부심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우승 반지를 얻어도 벤치에만 있으면 의미가 없을 건데, 그렇지 않아서 기쁨이 컸던 것 같아요.

시즌 중 은퇴, 더 큰 기쁨으로 다가오다
인생을 사는 누구든 ‘은퇴’라는 단어와 마주한다. 기존에 살았던 인생과 다른 인생을 살아야 하기에, 막막함을 느낀다.
임재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막막했다. 그러나 불안함을 어느 정도 덜었다. 은퇴 직후 코치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선수를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아쉬움은 컸지만, 곧바로 다른 경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임재현은 2015~2016 시즌 중 오리온에서 은퇴했다. 곧바로 코치를 시작했다. 그 때 오리온은 2015~2016 시즌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차지했고, 임재현은 코치로서 첫 우승 반지를 거머쥐었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하자마자, 더 큰 기쁨과 마주했다. 오리온에서의 우승 반지를 값진 선물로 여긴 이유였다.

은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선수 시절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주전도 많이 해보고 식스맨도 많이 해봤습니다. 1군에서 뛸 경기 체력을 만들기 위해, 39~40살 때도 2군 생활을 했습니다. 불평불만 없이 주어진 역할을 꿋꿋이 해왔더니, 40살에도 선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시즌(2015~2016) 때, 최진수(현 울산 현대모비스)가 군 제대 후 돌아왔습니다. 진수는 어쨌든 팀에 들어와야 했고, 나머지 11명 중 1명이 빠져야 했습니다.
저는 사실 코칭스태프의 배려 때문에 포함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후배의 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선수 생활을 더 해야 하나라고 고민하는 찰나에, 추일승 감독님께서 코치 제의를 해주셨습니다. 저에게 너무 감사한 제안을 해주셨죠. 덕분에, 저는 감사한 마음으로 은퇴했습니다.
코치로 부임하자마자 우승을 차지하셨습니다.
12인 엔트리에서 계속 버텼다면, 선수로서 우승할 수 있었습니다.(웃음) 하지만 코치를 하면서, 코치 자격으로 우승 경험을 했습니다. 감정이 남달랐어요.
추일승 감독님과 김병철 코치님, 조상현 코치님(현 대한민국 남자농구 대표팀 감독)을 조금이라도 도왔다는 게 좋았습니다. 그래서 이전 우승과는 남다른 감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시즌 중 은퇴는 아쉬웠을 것 같아요.
제가 팀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했다면, 저는 더 뛰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희 팀에는 젊고 잘하는 선수들이 탄탄하게 포진했습니다. 제가 선수 생활을 접는 게 맞는 판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은퇴식 때 눈물을 많이 흘리셨습니다.
아쉬움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고마운 사람들과 저를 도와준 사람들 때문이었죠. 고마웠던 사람들을 생각하다 보니, 은퇴사를 하기도 전에 눈물이 났던 것 같아요.(웃음)

지도자 생활 그리고 모교 코치
임재현은 2017~2018 시즌까지 오리온에서 코치를 했다. 추일승 감독에게서 지도자의 노하우를 익혔다. ‘선수 임재현’의 딱지를 뗀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2017~2018 시즌 종료 후 야인이 됐다. 사회의 냉정함과 마주했다. 막막함이 많았다. 농구와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모교인 배재고등학교가 임재현의 손을 잡아줬다. 임재현은 고민 끝에 모교의 코치를 맡았고, 지금도 모교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선수 그리고 지도자로서 쌓은 노하우와 농구 철학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3년 동안 오리온에서 코치를 했습니다. 어떤 걸 많이 배우셨나요?
먼저 추일승 감독님한테 기록하는 습관을 많이 배웠습니다. 농구를 많이 보는 습관도 배웠고요. 그리고 추일승 감독님 옆에서 한 시즌을 끌고 가는 방법과 한 달 단위 운영 계획, 시즌 종료 후 차기 시즌 운영 계획 등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2020년부터 배재고의 코치를 맡고 있습니다. 제가 지닌 농구 철학에 감독님께서 알려주신 것들을 많이 접목하고 있습니다. 감독님의 지도 방법을 많이 따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모방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만약 제가 선수를 은퇴하고 바로 배재고에 왔다면, 코치를 제대로 못했을 것 같아요. 아이들한테 많이 창피했을 것 같아요. 어떤 거 가르쳐야 하는 건지 생각하다가, 코치 생활이 끝났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만큼 오리온에서의 3년이 저한테는 큰 자산이 됐어요.
2년 정도 야인 생활을 하셨습니다.
다 내려놓기는 했지만, 어디 들어갈 데 없는지를 많이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다른 걸 준비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고요. 첫째 아들이 야구 선수를 시작할 때라, 뒷바라지를 해야 했거든요. 가족들 또한 부양해야 했고요.
그렇지만 혼자 힘으로는 농구판에 다시 들어가기 어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선배님들을 찾아뵈러 다녔습니다. 지인들도 많이 만났고요.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한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배재고의 코치가 되셨습니다.
배재고 후원회에서 “모교 출신이 코치를 맡아야 한다”고 예전부터 말씀하셨습니다. 저한테도 그런 이야기를 하셨고요.
그렇지만 저는 “절대 안 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변청운 코치님께서 잘 하고 계신데, 괜히 제가 자리를 빼앗으러 간다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변청운 코치님을 많이 응원하기도 했고요.
또, 제가 맡아서 잘 되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을 경우에 어떤 이야기를 들을지도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싶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제 역량이 한 팀을 온전히 가르칠 수 있는 정도인지도 의문이었고요.
그러다가 2020년에 또 한 번 연락을 받았습니다. 변청운 코치님께서 그만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변청운 코치님과 연락을 했는데, “성적도 안 나고, 아이들 대학도 많이 못 보냈다. 너가 와서 아이들을 잘 가르쳐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고민을 했습니다. 고민 끝에, 지원을 했습니다. 합격을 했고, 그 때부터 배재고 코치를 맡았습니다.
배재고의 최근 성적은 좋지 않았습니다. 선수들을 가르치는데 어려움이 컸을 것 같은데요.
고등학교 중 최하위라는 것과 최근 3년 동안 매년 1승 밖에 못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부임하기 전만 해도, 그런 게 저한테는 크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임 첫 날 현실을 알았습니다. 중학교 3학년과 연습 경기를 하는데, 어렵게 이기더라고요. 그 때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여건 자체가 부족한 건 아니었어요. 선수들이 포지선별로 포진했고, 선수들 기량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거든요. 수비 조직력을 만들고 패배 의식을 없앤다면,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패배 의식을 없애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10점 정도 앞서고 있어도, ‘우린 질 거야’라는 생각을 품고 있더라고요. 포기도 빨랐고요. 그래서 선수들에게 “끝까지 하자”며 근성을 주입했습니다.
경기를 운영하는 방법과 변수에 대처하는 방법도 맞춤형으로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는 대회가 없어서 검증을 못했어요.(웃음) 그래도 작년 11월 주말리그에서 제물포고와 안양고를 만났는데, 생각보다 괜찮게 하더라고요.
동계 훈련을 열심히 하고 스카우트도 잘 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쉽지 않더라고요. 제 역량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도 아이들이 저를 많이 믿고 따라와주더라고요.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이 고민하고, 더 열심히 지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임재현에게 농구란?
코트에 선 5명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어느 팀이든 이길 수 없다. 그게 농구의 원칙이다.
임재현 역시 농구의 원칙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농구의 의미를 ‘헬프(Help)’라고 말했다. 농구를 서로의 도움 없이 할 수 없는 종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을 기억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표시했다. 임재현과의 인터뷰는 그렇게 끝이 났다.

선수 시절 제일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면?
‘국가대표’와 ‘프로 선수’라는 꿈을 어릴 때부터 지녔습니다. 운동을 열심히 하면, 돈도 명예도 얻을 수 있다는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목표에 다가갔고, 팀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선수로서 인정을 받고, 경쟁 구도 속에서 살아남는 것에 치중했습니다. 그런 일상 때문에, 긴장감이 컸습니다. 조마조마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매 시즌을 잘 치르다 보니, 선수 생활 끝날 때까지 즐겁게 운동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뿌듯했던 시기가 있었다기보다, 늘 즐거웠던 것 같아요.
‘선수 임재현’을 어떻게 돌아볼 수 있을까요?
힘든 상황이 있었지만, 열심히 성실하게 그 어려움을 잘 넘어줬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슈퍼 스타는 아니었지만, 열심히는 했다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고비를 매번 넘었기에, ‘잘했다’는 칭찬을 저에게 해주고 싶습니다.(웃음)
농구는 어떤 의미인가요?
‘헬프(Help)’라고 생각합니다. 농구는 그렇게 해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 제자들에게도 “선수 1명이 1.5인분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너의 임무는 당연히 해야 하고, 다른 선수도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잘 돼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도 했고요. 그런 도움이 없다면, 농구의 의미가 퇴색될 거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임재현’을 그리워하는 팬들한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선수 임재현’을 얼마나 기억을 해주실지 모르겠습니다. 다 잊으신 분도 있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웃음)
하지만 제가 선수 시절 겪었던 많은 과정을 기억하시는 분도 여전히 있으실 겁니다. 제가 선수 시절에 겪었던 모든 과정들을 응원해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은 아마추어 농구 지도자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추어 농구에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부탁의 말씀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팬들에게 감사했다는 말씀 전합니다. 언젠가 팬들과 인사를 나눌 시간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 KBL 제공, 임재현 제공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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